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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캐릭터로 레벨업-157화 (157/169)

제157화

16장 군계일학 낭중지추(7)

* * *

벌판은 그야말로 축제가 따로 없었다.

“미친! 이게 다 얼마냐? 아이템이 다 들고 못 갈 정도로 깔려 있어!”

“레벨도 올랐어! 레이드 인원이 많아서 경험치가 거의 안 들어올 줄 알았는데 완전 대박이잖아? 대체 얼마나 많은 몬스터들이 있었던 거야?”

연합 헌터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몬스터들이 드랍한 아이템들을 한 아름씩 주워들었고.

“마족들이 모두 소멸했다! 그 악랄한 놈들이 전부 사라졌다고!!”

“얼마 만에 이긴 거야, 흑흑! 여기가 무덤이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이겨서 살아남을 줄이야…!”

라크시아 연합 기사들은 투구를 높이 던지거나 서로 얼싸안으며 승리를 만끽했다.

조금 전, 죽기 살기로 벌이던 추격전은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축제 같은 분위기였는데, 던전에서 축제라는 건 굉장히 모순적이었지만 분위기는 그 정도로 들떠 있었다.

내게 일어난 일 역시 그랬다.

[열 번째 업적을 클리어했습니다.]

[EX급 던전을 클리어하세요(1/1)]

[히든 퀘스트 : 군주의 업적(10/10)]

[모든 업적 달성 시, 히든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히든 퀘스트, 군주의 업적을 모두 달성했습니다.]

[메시지를 터치할 시, 해당 보상이 수여됩니다.]

[보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상 목록]

[1. 열 번째 업적 클리어 보상]

[2. 군주의 업적 클리어 보상]

[3. 히든 보상]

[주의 : 히든 보상은 던전 형식입니다. 입장이 가능할 때 수여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EX급 던전 클리어 후, 무려 세 개의 보상이 주어졌다.

당장 열 번째 업적을 클리어해서 얻은 것 하나.

군주의 업적을 모두 클리어한 대가로 하나.

마지막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히든 보상 하나.

과연 어떤 게 나올 것인가.

무려 세 개나 되는 보상에 설렘과 호기심이 일었지만 당장 수령하기는 힘들었다.

우선 가장 빨리 확인해보고 싶은 히든 보상은 던전 형식의 보상이었거니와.

“이방인들이시여, 정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마족 군단을 모두 처치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신념의 정수를 탈취하시길래 적인 줄 알았는데, 이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 그런 것도 모르고 무기를 들이댄 점, 깊은 사죄의 말씀 올리겠습니다!”

내 주위에 감사를 표하는 라크시아 연합 기사들과 SSS급 헌터들이 있어 보상을 수령할 타이밍이 아니었다.

“하하, 괜찮습니다. 워낙 시간이 촉박하여 설명하지 못한 저희 잘못도 있는걸요. 다 좋게 해결됐으니 사과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강철만은 너스레를 떨며 라크시아 연합 기사들의 사과를 받더니 내 귀 옆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속삭였다.

“와, 한상우 헌터님 말씀대로군요. 진짜 NPC 같습니다. 10년 넘게 던전에서 활동했지만 이렇게 소통할 수 있는 지성체를 만나는 건 처음이에요!”

핀트가 약간 어긋나긴 했으나, 강철만은 라크시아 연합 기사들을 보며 신기해하는 중이었다.

조금 전까진 임무를 수행하느라 티를 내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고, 라크시아 연합 기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자 상식을 뛰어넘는 상황을 감상한 것이다.

하지만 신기해하는 것도 잠시, 강철만은 다시 긴장한 상태로 돌아갔다.

“여기까지 도망쳤었군. 신념의 정수를 탈취한 자들이.”

“헛! 연합 군단장님, 오셨습니까!”

“비켜, 비켜! 연합 군단장님께서 오셨어!”

라크시아 연합 기사들의 인파를 뚫고 황금 갑옷 차림에 턱수염과 콧수염이 인상적인 라크시아 연합 군단장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념의 정수를 탈취당했기 때문일까.

환한 표정인 일반 기사들과 달리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편한 기색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표정을 보니 뭔가 언짢아 보이는군요.”

“아무래도 저희한테 신념의 정수를 탈취당한 앙금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싸워야 하는 건 아니겠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죠. 만약 전투가 벌어진다면 연합 군단장은 제가 맡겠습니다.”

강철만과 칼 제이스, 리 샤오펑은 근엄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연합 군단장을 보며 살짝 긴장했다.

다행히 그건 기우였다.

“흠, 흠흠. 고맙소, 낯선 이방인들이여. 그대들이 마족들을 모두 처치했다고 들었다오. 조금 전에 도둑 취급하며 공격했던 걸 사과하겠소.”

연합 군단장은 SSS급 헌터들의 앞으로 걸어와 헛기침을 하더니 멋쩍은 얼굴로 사과와 함께 악수를 청했다.

연합 헌터들의 방법이 과격했으나 결과가 좋으니 마지못해 인정하는 느낌도 없잖아 있었다.

SSS급 헌터들은 시선을 교환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강철만이 대표로 연합 군단장의 악수를 받으며 화답했다.

“아닙니다, 충분히 분노하실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오히려 이제라도 이해해주셔서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뭐, 아까 얘기했어도 납득하지 못했을 거요. 신념의 정수를 이용해 마족들을 모두 처치할 수 있다는 말을 누가 믿을 수 있겠소?”

“하하, 그것도 그렇네요. 여기 계신 한상우 헌터님이 마족 군단장을 처치하고 마신의 파편을 가져오기 전까진 저희도 믿지 못했었으니까요.”

“호오! 마족 군단장을 처치했다는 말씀이십니까?”

한결 부드러워진 분위기.

강철만은 연합 군단장의 말에 웃으며 내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악수를 마친 연합 군단장이 내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구국의 영웅을 뵙습니다.”

“……!”

앞선 SSS급 헌터들과는 사뭇 다른 대우.

라크시아 연합 기사들도 놀랄 정도였다.

대체 나한테만 왜 이렇게 하는 걸까.

이유는 곧 밝혀졌다.

“앞선 분들도 훌륭하지만, 단신으로 마족 군단장을 처치하고 마족의 파편을 가져오신 분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 할 수 있지요.”

“좋게 말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만, 그렇게까지 고개 숙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닙니다, 세상 그 누구도 할 수 없을 업적을 이룩하셨습니다.”

연합 군단장의 극진한 예우가 부담스러워 살짝 뒤로 뺐으나 소용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판단을 하신 겁니까, 한상우 헌터님? 이제 와서 보니 진영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게 신의 한 수였어요.”

인정하는 건 강철만뿐만이 아니었다.

강철만의 말에 칼 제이스와 리 샤오펑도 한 마디씩 덧붙였다.

“동감합니다. 신념의 정수는 라크시아 연합에서 정말 애지중지하는 물품이더군요. 마물과의 전투 도중 요새를 포기하고 저희를 쫓아올 정도였으니까요. 만약 인간 진영을 선택했다면 신념의 정수를 확보하는 게 정말 어려웠을 겁니다. 요새 앞에 있는 수만 마리의 몬스터들도 함께 처치해야 했을 테고요.”

“그렇습니다. 추가 보상으로 마계 몬스터들이 사라진 걸로 봤을 때, 마족 진영을 선택했다면 그대로 마족과도 싸웠을 가능성도 크고요. 같은 인간인 라크시아 연합군을 처단하는 게 꺼림칙하다는 건 둘째치고도, 분명 지금 정도로 좋은 결과가 있진 않았을 겁니다.”

사실 유추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전에 용족 군단 던전에서 봤던 용족의 최종 목표는, 랑데르크 공국 점령을 넘어 지구까지 진출하는 것이었으니까.

겉으로는 열악한 전황 속에서 활로를 터주는 듯했으나, 실상은 그들의 노예가 되어 인류 멸망에 앞장서는 것이었다.

분명 그때와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선택지는 비슷했고, 이번 마족 군단의 목표 역시 유사할 확률이 높았다.

그때처럼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아도 여러 정황과 느낌으로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것보다 단숨에 본진으로 쳐들어가 싸우는 게 전투를 최소화하는 길이기도 했다.

“직감이라고 해두죠. 마족 진영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수상했거든요.”

나는 SSS급 헌터들의 감탄에 대충 둘러댔다. 그리고 라크시아 연합 군단장에게 다가가 투명한 액체가 담긴 유리병을 건네주었다.

“신념의 정수는 다시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연합에 아주 중요한 물품인 것 같으니까요.”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희에게는 아주 중요한 물건입니다.”

연합 군단장이 신념의 정수를 받으며 감사를 표했지만,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신념의 정수]

[등급 : 알 수 없음]

[마신의 파편을 파괴하는 데 힘을 소진해, 아무 효과도 없습니다.]

설명을 보아하니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은, 단순한 퀘스트용 아이템을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게 나와 있었고.

하지만 연합 군단장은 크게 감동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어떻게 보답이라도 하고 싶은데 드릴 수 있는 게 없군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승전 연회를 함께 즐기고 가시지 않겠습니까?”

“초대는 감사드립니다만 괜찮습니다. 저희는 본국으로 가야 해서요.”

연합 군단장이 머물다 갈 것을 제안했으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더 머물 이유가 없기도 하거니와.

촤아아아아악-!

EX급 던전 레이드가 끝나 벌판 한가운데 출구 포탈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빨리 밖으로 나가 보상을 확인하고 싶었다.

“저도 얼른 나가고 싶군요. 너무 많은 일이 있어 더 있을 기력이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칼 제이스와 리 샤오펑도 피로를 느끼는 듯 얼른 나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하나 남아있었다.

“음, 그런데 이대로 전부 나가면 저기 벌판에 있는 마정석과 아이템들이 사라질 텐데요? 여긴 일회성 던전입니다. 헌터가 모두 나가면 포탈과 함께 사라질 겁니다.”

일회성 던전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나 클리어 후, 안에 남은 헌터가 없으면 완전히 소멸된다.

현재 벌판엔 수많은 몬스터들이 드랍한 아이템이 있는데 양이 워낙 많다 보니 연합 헌터들이 한 번에 수거하기 어려웠다.

나는 벌판에서 아이템을 줍는 헌터들을 보며 말했다.

“확실히 아이템을 모두 옮길 때까지 던전에 누군가 남긴 해야 하는군요. 하지만 누구로 해야 할지….”

“그런 거라면, 던전엔 제가 남도록 하겠습니다.”

“강철만 헌터님께서요?”

“네, 많은 인원 필요 없이, 저만 이곳에 남으면 될 것 같습니다. 다들 피로하셔서 쉬고 싶은 것 같은데, 전 반대로 지금 이 던전이 너무 재미있어서 좀 더 있고 싶거든요. 마치 게임을 하는 느낌이기도 하고요.”

진성 게이머라고 해야 할까.

강철만은 던전을 게임처럼 생각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순간 걱정되기도 했지만, 이내 강철만을 믿어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봐온 강철만은 이런 상황에 자기 이득을 위해 허튼짓을 할 만한 인물도 아니고, 무슨 일이 생겨도 강철만 정도의 무력이면 알아서 헤쳐나올 수 있을 테니까.

결국, 나와 헌터 연합은 강철만만 남겨둔 채 던전을 나섰다.

사우디로 나가 일차적으로 클리어 사실을 알리고, 강철만이 지키는 나머지 아이템은 짐꾼들을 시켜 추가로 회수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렇게 잠시 후, 출구 포탈 앞에 서서 나갈 준비를 하자.

“크으! 믿기지가 않네. 들어올 때만 해도 나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렇게 EX급 던전을 클리어하다니!”

“아마 우리가 나가면 사람들은 더 놀라서 자빠질걸?”

연합 헌터들이 아이템을 한 아름 안은 채 키득거렸다.

기뻐하는 건 캐릭터들도 마찬가지였다.

-헌터들의 분위기가 처음에 들어왔을 때와는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주군. 다들 웃음꽃이 피었군요.

-기뻐할 만하지. 실력만 놓고 보면 죽을 운명이었는데 마스터 덕분에 살아서 던전을 나가고 있으니.

-동의합니다. 만약 로드의 판단이 아니었다면 저들 중 살아서 나갈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맞아용! 전부 사장님 덕분이에용!

‘…그, 그래. 좋게 봐줘서 고맙다, 다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너무 대놓고 띄워주니 낯간지러웠다.

나는 캐릭터들의 칭찬에 볼을 긁적이며 답한 후, 오와 열을 맞추며 도열한 헌터 연합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럼 리야드로 복귀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침내 성공적으로 끝난, 세계 최초의 EX급 레이드.

우리는 라크시아 연합 기사들의 배웅을 받아 던전 포탈을 나섰다.

이제 밖으로 나가면 우레와 같은 함성과 환대가 쏟아질 것이었다.

카메라 셔터가 터지고, 곳곳에서 인터뷰 요청도 쇄도하겠지.

그런데.

화아아아아악-!!

막상 포탈을 통과하자.

“……?”

“이, 이게 무슨…?”

우리를 반긴 것은 카메라의 셔터와 환호성이 아니었다.

눈 앞에 펼쳐진 것은.

타닥- 타닥- 화르르륵-!

무너진 건물들과 거리 곳곳에 널브러진 사람들.

그리고.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구나. 진짜로 EX급 던전을 클리어하다니.”

루미나스의 수장 카마트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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