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화
16장 군계일학 낭중지추(10)
전장에 피어오르는 폭발과 연기.
“큭큭…. 뭔가 특별할 줄 알았더니 너무 쉽게 당하는군요. 시시하네요, 정말.”
셀리나는 공중에 떠오른 채 아래를 내려다보며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이번에 개량된 강화 물약은 이전과 달랐다.
바로 체내의 신성력을 매개로 대상을 폭발시키는 스킬, [신성 순교]를 위한 신성력을 섞은 것이다.
덕분에 루미나스 헌터들이 죽으면 막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건 디바인 실드 헌터들도 다르지 않다.
신성력을 주입할 당시, [신성 순교]의 매개가 되는 신성력을 함께 주입해놓았기에 자신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폭탄으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디바인 실드 헌터들은 체내에 축적해놓은 신성력의 양이 상당하기에, 한명 한명이 도시 하나를 날릴 수 있는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SS급 이상의 실력에 죽으면 자폭하는 능력까지 갖춘 헌터들.
세상에 이보다 더 완벽한 병기는 없을 텐데도, 셀리나는 내심 가슴을 졸였다.
한상우가 지금껏 보여준 활약은 상식을 한참 뛰어넘는 것이었기에, 이번 공격도 통하지 않으면 어쩌나 했다.
하지만 다행히 기우에 그쳤고, 한상우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폭발에 휩쓸렸다.
비록 신성력이 적은 루미나스 헌터가 자폭해 폭발이 생각했던 것만큼 크진 않았지만 근접한 거리에서 목숨을 앗아가기엔 충분한 수준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 중상은 입을 만한 폭발력.
그런데.
“자폭이라…. 진짜 가지가지 하는군.”
“……!”
연기가 걷히고 나타난 한상우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셀리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상은 곧 드러났다.
“괜찮으십니까, 주군. 목숨을 잃었는데 자폭까지 하다니. 정말 악질입니다.”
한상우의 앞으로 금발 헌터가 방패를 앞세우고 서 있었다.
“마, 말도 안 되는…!”
셀리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자신은 공중에 떠 있는 상태라 전황을 한눈에 파악하고 있었는데, 중갑 차림의 금발 헌터는 방금까지 제법 떨어진 거리에서 디바인 실드 헌터들을 상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검은 마스크를 쓴 헌터와 분홍 머리칼에 플라스크를 던지던 소녀.
한상우와 함께 폭발에 휩쓸렸던 동료들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신성 순교]의 폭발력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건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슈확-! 슈확-!
“우왓! 하마터면 폭발에 휩쓸릴 뻔했네용! 감사합니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마스터.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괜찮아. 큰 피해는 없었으니까.”
폭발이 잦아든 직후, 상처 하나 없는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아무도 없던 공간에 연기를 흩날리며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셀리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마나의 느낌과 갑자기 사라졌다 다시 등장하는 모습…. 당신의 길드원들은 헌터가 아니라, 소환수였군요. 소환 능력을 가진 건 당신이고요.”
“이제 알았나? 눈치 한번 더럽게 빠르군.”
폭발이 일어난 순간, 한상우는 다크어둠과 연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소환을 해제하고 땡길거야를 자신의 앞으로 재소환했다.
자폭의 위력이 생각보다 강했기에, 캐릭터들의 피해는 줄이는 동시에 자신의 방어력은 높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하고 움직였다기보다는 본능적으로 한 판단.
덕분에 무방비 상태였던 다크어둠과 연진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고, 자신도 무사할 수 있었다.
물론 대놓고 [캐릭터 소환]을 재사용한 탓에 셀리나에게 소환 능력을 들키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먼저 그런 걸 신경 쓸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기도 하고, 어차피 셀리나 칸데바는 여기서 끝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셀리나에겐 나름의 의미가 있는 듯했다. 그녀가 의구심이 해결됐다는 듯 후련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요. SSS급 던전 클리어의 주역일 정도로 강한 인물들인데 정보가 없어도 너무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납득이 되는군요. 소환수였으니 정보가 없는 게 당연하죠. 이제 보니 제법 큰 비밀을 숨기고 있었군요, 당신.”
“그래도 루미나스와 디바인 실드를 동시에 이용한 당신만큼은 아니지.”
“원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개척자는 우민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비밀을 가지고 있는 법이죠. 마지막으로 기회를 드릴게요, 한상우 헌터. 신성력을 받아들이고, 위대하신 분께 귀의하세요. 그럼 당신만은 그 능력을 높이 사, 동등한 위치로 대우해 드리겠습니다.”
“그 위대하신 분은 누구지?”
“그건 알 필요 없어요. 인간은 감히 존함도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하신 분이니까요. 당신은 그저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된답니다. 그럼 각성자만이 존재하는 낙원에서, 불멸을 누리게 될 거예요.”
“각성자만 존재하는 낙원에서 불멸이라….”
한상우는 셀리나의 말을 되뇌었다.
그녀가 [캐릭터 소환]을 보고 의구심을 풀었듯, 한상우도 셀리나의 제안에서 의문의 퍼즐 조각을 맞추었다.
일전에 홍진성이 얘기했던 루미나스의 목표, 각성자를 위한 세상은 셀리나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힘은 위대하신 분이라는, 다른 누군가한테서 받는 것인 듯했다.
신성력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 것일까.
당장 그 정체를 알 순 없었지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했다.
“답을 들려주도록 하지. 내 답은….”
그 위대하신 분은 이곳에 없고, 작금의 사태는 셀리나를 죽여야만 끝날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상우는.
‘매직킹, 지금이다!’
-예, 로드!
말을 내뱉는 대신 행동으로 보여줬다.
디바인 실드 헌터들을 상대하고 있던 매직킹에게 미리 명령을 내려 준비하고 있던 스킬을 사용하게 한 것이다.
그러자 그 뒤로.
[캐릭터 : 매직킹이 금제 개방을 사용합니다.]
[유폐된 차원이 개방됩니다.]
콰아아아아아아-!!
땅 위로 생성된 심연에서 공허충이 뿜어낸 광선이 솟구쳤다.
지금까지 그 어떤 헌터도 막지 못했던 공격.
그러나.
“후후, 그럴 줄 알았습니다. 끝까지 복을 발로 걷어차는군요!”
과연 루미나스와 디바인 실드의 수장이라고 해야 할까.
셀리나는 예상했다는 듯 옅게 웃더니 마법진 끝으로 이동해, 초록빛 보호막을 형성해 광선포를 막아냈다.
더불어.
“전원 공격! 한 놈도 살려두지 마세요!”
격한 폭발 이후,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병력들을 일으켜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한상우도 빠르게 대처했다.
[캐릭터 소환 : 제장이]
[친위대가 완성되었습니다.]
[친위대 편성 효과가 발동합니다.]
[친위대 편성 효과]
[효과 1 : 군주의 특성 –압도의 효과 10% 상승]
[효과 2 : 친위대 소속 캐릭터의 모든 스탯 5% 상승]
[효과 3 : 캐릭터 소환의 마나 소모량 10% 감소]
“부르셨습니까, 군주님!”
“땡길거야, 다크어둠, 매직킹은 셀리나를 처치해! 나는 연진, 제장이와 함께 헌터들을 막는다!”
“알겠습니다, 주군!”
“헌터들은 내부에 가진 이상한 힘을 매개로 폭발하는 것 같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로드!”
만렙 캐릭터들은 셀리나를 상대하도록 한 후, 자신은 제장이, 연진과 함께 일반 헌터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루미나스와 디바인 실드 헌터들이 셀리나에게 조종당하고 있으니, 최고 전력인 만렙 캐릭터들을 이용해 숙주를 먼저 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상대 또한 만만치 않았다.
“킥킥, 잡힐 것 같나요? 어림도 없습니다!”
“크윽, 쥐새끼가 따로 없군!”
[끌어오기], [디스펠], [쾌속 이동] 등 만렙 캐릭터들이 어떻게든 셀리나를 따라잡으려 했으나, 셀리나는 마강진이 사용했던 공간 이동 스킬과 홍진성이 썼던 염력 스킬을, 비교도 되지 않는 숙련도로 활용하며 이리저리 빠져나갔다.
물론,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쫓아가 주지!”
매직킹이 똑같이 공중을 나는 스킬, [레비테이션]을 사용해 쫓아가기도 했다. 땡길거야와 다크어둠도 [레비테이션]의 효과를 받아 셀리나를 추격했다.
그러나.
“크윽, 너무 빨라서 맞추는 게 쉽지 않군…!”
“제길, 나도 마찬가지야. 공중이라 회피할 공간이 많다 보니 단검 맞추는 게 쉽지 않아!”
그녀를 처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땡길거야가 [끌어오기]를 사용하고, 다크어둠이 단검을 투척했으나 셀리나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회피했다.
그사이.
“크캬아아아악!!”
“크윽!!”
한상우는 칼 제이스와 다른 헌터들에게 공격당해 위기에 빠졌다.
“위험해용, 사장님!”
“감히 군주님을…! 으윽! 비켜, 이놈들아!!”
중간중간 연진과 제장이가 지원하려 했으나 그 둘도 디바인 실드와 루미나스 헌터들이 퍼붓는 공격에 수세에 몰렸다.
그때였다.
콰아아아앙-!!
한상우와 칼 제이스가 스킬을 주고받으며 동시에 뒤로 날아갔다.
촤차차차착-!!
몇 미터나 날아온 걸까.
“허억, 허억….”
한상우는 땅에 화산검을 박고,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주위를 둘러봤다.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격렬한 전장.
전투는 사실상 패배한 거나 다름없었다.
“컥, 커억….”
리 샤오펑은 목이 꿰뚫려 죽기 일보 직전이었으며, 다른 연합 헌터들도 디바인 실드와 루미나스 헌터들의 협공에 대부분이 전투 불능 상태가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어디 그뿐인가.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 민간인들도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희망이라곤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이다. 남은 길은 얼마든지 있어.’
한상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끝을 논하기엔, 아직 남은 게 있었기에.
“크아아아악!!”
“쳇, 끈질기긴.”
[발화] [분화]
콰아아아아아앙-!!
한상우는 잠깐의 여유도 주지 않고 달려드는 칼 제이스와 헌터들을 [분화]로 날려 버리며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연진아, 제장아! 잠깐만 시간을 벌어줘!”
“알겠습니당, 사장님!”
“최대한 버텨보겠습니다!”
방어 인력을 세우고 적들의 포위망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졌다.
연진과 제장이는 접근하려고 하는 헌터들의 앞에, 플라스크 스킬들을 활용해 불과 얼음의 벽을 세우고, [강철 전격]으로 전격을 둘렀다.
치열한 전장 속, 잠깐 생긴 한순간의 틈.
한상우는 재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리고.
[1. 열 번째 업적 클리어 보상을 수령합니다.]
[캐릭터 소환의 스킬 레벨이 10에서 11로 증가합니다.]
[유일 스킬 : Lv 11. 캐릭터 소환]
[캐릭터 소환의 스킬 레벨이 증가함에 따라 선출 가능 횟수가 1회 충전됩니다.]
[현재 소환 캐릭터 : (5/5)]
[보유 캐릭터 : 5]
[선출 가능 횟수 : 1]
[2. 군주의 업적 클리어 보상을 수령합니다.]
[군주의 힘이 강화됩니다.]
[강화된 군주의 힘을 어디에 사용할지 결정하세요.]
[강화 / 개방]
[두 개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EX급 던전 클리어 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수령하지 않았던 두 개의 보상을 동시에 수령했다.
‘좋았어!’
최고의 보상이 나왔다.
그토록 고대하던 선출이 나왔을 뿐만 아니라 군주의 힘도 강화됐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대하는 대로만 나와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었다.
[캐릭터 : 제장이의 소환을 해제합니다.]
한상우는 제장이의 소환을 해제해 소환 자리를 만든 다음, 바로 선출을 사용했다.
그러자.
[여섯 번째 캐릭터를 소환합니다.]
[선출되는 캐릭터는 무작위입니다.]
번쩍-!!
실로 오랜만에 보는 메시지 뒤로 섬광이 번쩍이더니.
[캐릭터 명 - 세상에이런힐이]
[레벨 - 999]
[직업 - 사제]
<스탯>
[힘 : 385] [민첩 : 430] [지력 : 780] [체력 : 370] [마력 : 910]
<스킬>
[치유의 손길] [재생의 바람] [정화의 물결] [쾌유의 빛] [청명] [구원] […….]
[충성도 – 580 / 999]
“제 이름은 세상에이런힐이. 신의 목소리를 전하는 희망의 사제예요. 당신이신가요? 제가 모셔야 할 용사님이.”
네 번째 만렙 캐릭터가 강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