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4화
16장 군계일학 낭중지추(14)
“갑자기 던전이 왜…?”
강철만이 서 있던 자리 위로 불길한 기운의 포탈 하나.
한상우는 앞을 가로막은 땡길거야를 지나쳐 언덕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한발 앞서 도착한 세이가 지팡이를 든 채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사악한 여인이 가지고 있던 황금 구체와 여기 있던 기사가 가진 사특한 힘이 반응했어요, 용사님. 죄송해요. 반응한 순간 바로 대응해 던전의 크기를 최소화하기는 했지만, 지금 외부에서는 안에서의 일을 전혀 알 수가 없어요.”
근처에서 구호 활동을 하던 도중, 세이는 황금 구체와 강철만한테서 이상한 징조를 누구보다 빠르게 눈치채고 정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강철만을 구하진 못했으니.
최선을 다했음에도 황금 구체에서 뿜어져 나온 의문의 힘이 강철만을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세이는 숨을 헐떡이며 사과했고, 한상우는 던전 앞으로 걸어가 그녀를 다독이며 물었다.
“사과할 필요 없어. 충분히 잘했으니까. 그럼 이건… 정화할 수 없는 건가?”
“제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 같아요. 이건 힘의 응집체이기도 하지만, 던전의 형태로 봉인되어 있어요. 클리어 외엔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세이의 대답에 한상우는 언덕 아래에 형성된 포탈로 다가가 정보를 살펴봤다.
과연 처음 보는 특이한 형태였다.
[최후의 순교]
[등급 : EX급]
[마신의 힘으로 생성된 던전입니다.]
[제한 시간 내에 클리어하지 못할 경우, 강철만의 신성력을 매개로 삼아 폭발합니다.]
[남은 시간 : 30분]
[1인 던전입니다.]
[단 한 명만 진입할 수 있으며 진입자 외의 존재는 해당 던전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던전의 이름은 최후의 순교.
셀리나가 모신, 마신이라는 존재의 힘으로 생성된 던전이었는데 30분 내에 클리어하지 못할 경우 폭발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건 던전 보초였던 한상우도 듣도 보도 못한 형태였는데,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건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포탈 근처로 다가와 언덕을 살펴보며 말했다.
“이 던전은 조금 특이하군요, 마스터.”
“그리고 터지게 내버려두면 그 범위가 상당할 것 같습니다, 로드”
“범위가 어느 정도일지 예측할 수 있어, 매직킹?”
“전투 당시 폭발했던 루미나스 헌터보다 수백 배는 더 많은 신성력이 내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도시를 집어삼키고 주변까지 파괴할 정도의 폭발력이 예상됩니다.”
한상우의 물음에 매직킹이 폭발 범위를 계산해 대답했다.
리야드뿐만이 아니라 그 주변까지 피해를 입힐 수 있을 정도라니.
실로 어마어마한 파괴력이었는데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라? 그런데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대용, 사장님!”
“기운이 불길하군요. 최악의 경우, 주군께서 진입하신 뒤 저희는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주군.”
확실한 건 아니지만, 이 던전에선 [캐릭터 소환]이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
한상우는 언덕에 손을 대고 있는 세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때, 세이. 안으로 따라올 수 있겠나?”
“불길한 힘… 설명대로라면, 마신의 힘이 가로막고 있어서 화신체인 저희들은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보여요, 용사님. 우선 정화는 계속 시도해볼게요.”
세이도 나름 이리저리 방법을 찾고 있었지만, 잘되지 않는 듯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방법은 두 가지였다.
클리어하거나, 그냥 터지게 두거나.
전자는 [캐릭터 소환] 없이 혼자서 해야 했기에 리스크가 컸고, 후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사전에 듣기로는 리야드에만 수백만 명이 산다고 했는데, 30분도 안 되는 시간에 모든 사람을 대피시킨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으으, 한상우 헌터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이제야 정신이 든 것일까.
근처 잔해에 널브러져 있던 리 샤오펑이 비틀거리며 한상우에게 다가왔다.
한상우는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셀리나는 처단했고, 디바인 실드와 루미나스 헌터들은 기절시켰습니다.”
“허…. 중간중간 한상우 헌터님께서 검은 악마와 싸우는 걸 본 것 같았는데 그게 꿈이 아니었던 겁니까? 대체 어떻게 된 거죠? 전 분명 목이 꿰뚫렸던 것 같은데 상처는 말끔히 치유되어 있고, 또 저 던전은 무엇인지….”
정신이 돌아오고, 상황이 급변해 있자 상황 인지가 잘 안 되는 것일까.
리 샤오펑은 질문을 쏟아냈다.
하지만 지금 한상우에겐 지난 일을 일일이 설명할 여유가 없었다.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드리겠습니다. 우선은… 다른 분들을 최대한 깨워, 사람들을 대피시켜 주세요. 몬스터가 된 루미나스 헌터들은 인간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그냥 처치하시고요.”
“아, 알겠습니다. 연합 헌터들도 하나둘씩 깨어나는 것 같으니, 부상자 수습부터 하겠습니다.”
다행히 눈치는 있는 편이었다.
리 샤오펑은 한상우의 명령에 따라 부상자들을 폐허가 된 건물 잔해에서 끄집어내고, 기절한 적들은 포박하며 현장을 수습했다.
그사이, 한상우는 포탈 앞으로 걸어갔다.
[남은 시간 : 25분]
진상을 파악하고, 주변을 수습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EX급 던전의 클리어에 제한 시간이 걸려 있으니, 최대한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한상우는 마나 포션을 마시고, 화산검과 화산방패를 살펴보며 장비를 점검했다.
그러자 캐릭터들이 다가와 한마디씩 응원의 말을 건넸다.
“결단을 내리셨군요, 주군.”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로드. 마신의 힘을 파훼할 방법을 계속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적이 보이면 그냥 죽여버리십쇼, 마스터.”
“버프 포션 잔뜩 드릴게용, 사장님!”
“저도 용사님께 도움이 되도록 신의 가호를 걸어드릴게요.”
연진과 세이는 한상우에게 포션을 건네고 버프까지 걸어주었다.
[상급 힘의 물약을 마셨습니다.]
[힘이 10% 상승합니다.]
[상급 체력의 물약을 마셨습니다.]
[체력이 10% 상승합니다.]
[캐릭터 : 세상에이런힐이가 용맹의 축복을 사용합니다.]
[캐릭터 : 세상에이런힐이가 신속의 축복을 사용합니다.]
[캐릭터 : 세상에이런힐이가 충격의 축복 사용합니다.]
[힘이 20% 상승합니다.]
[민첩이 20% 상승합니다.]
[상대방이 보유한 체력의 90%에 달하는 피해를 줄 경우, 상대방을 기절시킵니다.]
끝없이 올라오는 메시지들.
한상우는 연진이 주는 포션을 마시고, 세이가 걸어주는 버프도 모두 받은 후 감사를 표했다.
“고맙다, 연진아. 이따 다시 부르마.”
“네, 사장님!”
그리고 내친김에.
[캐릭터 : 연진의 소환을 해제합니다.]
[캐릭터 : 제장이를 소환합니다.]
“부르셨습니까, 군주님!”
“그래, 제장아. 버프 좀 줄래?”
“넵! 바로 걸어드리겠습니다!”
제장이를 소환해 버프를 받았다.
[캐릭터 : 제장이가 꼬마 대장장이의 축복을 사용합니다.]
[각인된 아이템의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비록 꼬마 대장장이의 각인이 표시된 화산검과 화산방패의 능력치가 5% 증가하는 것에 그쳤으나, 지금의 한상우에게 5%란 수치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한상우는 캐릭터들한테 받을 수 있는 버프들을 모두 챙기고.
“후우, 출발해볼까.”
“무운을 빌겠습니다, 주군.”
“응원하겠습니다, 군주님!”
“용사님께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길 기도할게요.”
캐릭터들의 응원을 뒤로한 채 포탈 속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 순간.
[최후의 순교에 진입했습니다.]
[당신 이외엔 어느 누구도 해당 던전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던전의 주인을 처치하여 던전을 클리어하세요(0/1)]
폐허가 된 도시에서 밤하늘의 별이 떠 있는 들판으로.
낯선 메시지가 떠오르면서 풍경이 바뀌었다.
주변에는 어떤 장애물도, 적도 보이지 않았다.
던전이라기보다는 별을 관측할 수 있는 전망대 같은 풍경.
그러나 방심할 수는 없었다.
한상우는 던전에 진입하자마자 주변을 경계했다. 다행히 시작부터 공격이 쏟아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캐릭터 소환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던전 진입 직후, [캐릭터 소환]을 사용해봤지만 세이와 매직킹의 예상대로 캐릭터들을 불러낼 수도 없었다.
아무래도 혼자서 던전을 클리어해야 할 것 같았는데, 그래도 다행히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다.
“강철만 길드장님…?”
갈대가 휘날리는 들판 중앙.
강철만이 등을 보인 채 우두커니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섬광에 휩쓸렸기에 혹시라도 잘못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목숨을 잃거나 몬스터가 되지는 않은 것처럼 보였다.
다만.
‘왜 반응하지 않지?’
완전히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분명 목소리를 냈고, 강철만이라면 자신이 들어왔다는 걸 충분히 인지할 수 있을 텐데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밤하늘을 바라보고만 있었기 때문이다.
“강철만 길드장님, 괜찮으십니까?”
한상우는 화산검과 화산방패를 들어 올리고 조심스럽게 강철만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옳았다.
한상우가 들판을 걸어 가까이 다가간 순간, 강철만이 돌연 대검을 든 채 쇄도해온 것이다.
자조치종을 파악할 새도 없었다.
후우우웅-! 쩌어어어어어엉-!!
“크윽!!”
한상우의 화산검과 강철만의 대검이 맞부딪치며 충격파가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