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화
17장 맞대결(2)
항복을 선언하듯 내려놓은 방패에서 일어난 폭발.
정확히 빈틈을 노렸기에, 대응하기란 쉽지 않은 공격이었다.
그러나.
“흥, 허튼짓을.”
강철만에 빙의한 마신은 대검의 넓은 면으로 폭발을 쉽게 막아냈다.
애당초 화산방패의 [기폭]의 파괴력은 강한 편도 아니거니와 사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상우의 변칙 공격을.
“감히 필멸자 주제에 불멸자를 능멸하려 들다니…. 하지만, 좋다. 군주라면 그 정도의 기개는 있어야지. 네 뜻대로, 이 차원도 철저히 파괴해주마!”
마신은 강철만의 입을 빌려 소리친 후, 대검을 휘둘러 [기폭]이 만들어낸 흙먼지와 한상우의 신형을 동시에 베어버렸다.
그런데.
후우우웅-!
“……!”
없었다.
분명 흙먼지와 한상우를 동시에 베어버렸건만, 검풍이 지나간 자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파괴? 그 전에, 내가 널 처단할 것이다.”
[기폭]이 발동한 직후, 한상우는 [은신]으로 모습을 감추고 [침투]로 강철만의 사각지대로 접근했으니까.
그리고.
[발화] [요새 뚫기]
화산검을 내질러 즉시 발동할 수 있는 스킬 중 가장 강력한 검술을 사용했다.
물론, 일격에 강철만을 처치할 수는 없었다.
“어딜…!”
[기폭]으로 선공권을 가져오긴 했으나 강철만이 재빠르게 대검을 돌려 오러 랜스를 막아낸 탓이었다.
쩌어어어어엉-!!
무위로 돌아간 듯한 회심의 일격.
그러나 한상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검술을 이어나갔다.
한상우 역시 선제공격이 막힐 걸 예상하고 후속타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게 한상우의 진짜 노림수였다.
[반월 베기] [만월 가르기] [급소 찌르기]
[제국기사단의 검술의 연계기가 완성됐습니다.]
[연계 효과 : 월광 폭발]
가공할 만한 파괴력으로 지금껏 수많은 보스 몬스터들을 처치한 푸른 불꽃의 화염이.
화르륵-! 콰아아아아앙-!!
“크윽…!”
강철만에 빙의한 마신의 코앞에서 터져 나왔다.
폭발이 어찌나 강력한지 한상우의 몸도 뒤로 밀려날 정도였다.
일반적으로 헌터는 스킬을 사용할 때, 본능적으로 자신에게는 피해가 오지 않을 정도로 조절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 한상우는 그런 것은 신경쓰지 않고 최대 출력의 폭발을 발생시켰고, 화산방패도 없다 보니 충격량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정도 위력이 정통으로 들어갔으니, 이제 강철만은 마신과 함께 푸른 화염에 휩싸여 소멸할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때.
콰광-! 쩌어어어어엉-!!
이변이 발생했다.
푸른 화염 속에서 갑자기 검은 화염이 일렁이더니 이내 격렬하게 폭발한 것이다.
“크윽…!”
한상우는 급한 대로 화산검을 앞세워 검은 화염을 막아냈다.
하지만 [월광 폭발]과 비견될 정도로 강한 위력의 폭발에, 제법 먼 거리를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월광 폭발]의 연계를 수없이 사용해 왔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한상우는 거친 숨을 내쉬며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 속을 주시했다.
그러자.
“허를 찌르는 솜씨가 제법이구나. 이 몸에 쓸 만한 검술이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당할 뻔했어.”
강철만이 검은 화염이 피어오르는 대검을 늘어뜨린 채 걸어 나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했던가.
마신은 강철만의 두 번째 필살 스킬, [유성 폭발]로 [월광 폭발]에 대처했다.
대검만으로는 폭발을 전부 막아낼 수 없으니, 마찬가지로 폭발을 일으켜 [월광 폭발]의 피해를 상쇄하고 최소화한 것이다.
‘쳇, 역시 만만치 않군.’
한상우는 이를 악물었다.
제국기사단의 연계기는 자신에게 필살기나 다름없는 스킬인데, 고작 갑옷의 어깨 부분을 일부 녹이고 생채기를 입히는 것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방법은 몇 개 없었는데 무턱대고 쓰기도 어려웠다.
아무리 강한 기술이라도, 막히면 의미가 없다.
변칙적으로 일으킨 [월광 폭발]도 이렇게 막아내는데 급조해서 무턱대고 지른 스킬을 맞아줄 리가 있을까?
갑옷에조차 피해를 입히지 못할 게 분명했다.
이기기 위해선, 반드시 다른 약점이나 돌파구를 찾아내야만 했다.
하지만 마냥 고심하면서 서 있을 수만도 없었다.
[남은 시간 : 4분]
이 싸움은 단순한 대결이 아니니까.
제한 시간 내에 강철만을 처치하지 못하면 던전은 폭발할 것이고, 자신뿐만 아니라 외부의 수많은 이들까지 희생될 것이었다.
‘제길, 일단 가자…!’
답이 보이지 않을 땐 우선 움직이는 게 최선인 법.
[은신] [침투]
한상우는 다시 한번 [은신]과 [침투]를 사용하며 땅을 박찼다.
“같은 수법에 또 당할 것 같으냐!”
하지만 이미 한 번 본 수법이어서일까, 강철만에 빙의한 마신은 움직임을 곧바로 간파해냈다.
까아아앙-!!
한상우가 휘두른 화산검이 강철만의 대검에 막혔다.
언뜻 헛수고처럼 보이기도 하는 일격.
그러나 그건 본격적인 공세의 서막에 불과했다.
한상우는 [요새 뚫기]를 시작으로 [화염타], [분화] 등을 사용하며 공격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화산방패조차 들지 않은, 공격 일변도의 파상 공세.
남은 시간은 5분도 채 되지 않았다. 당장 공격하기에도 부족해 방어를 할 여유도 없었다.
“무모하기 짝이 없도다!!”
강철만에 빙의한 마신이 가하는 반격에 옆구리가 무방비로 노출이 되었지만 한상우는 개의치 않았다.
[급속 냉동]
까아아앙-!!
극지방 거인 족장의 허리띠에 내재된 스킬이 대검의 타격을 한 번 막아주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드러난 강철만의 빈틈.
한상우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강철만의 옆구리를 향해 [반월 베기]를 휘둘렀다.
그런데.
까아아앙-!!
강철만에 빙의한 마신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한상우가 화산검을 휘두르자 [급속 냉동]과 마찬가지로 지점 위에 웬 검은 오러가 형성된 것이다.
데칼코마니처럼 주고받은 공격과 반격.
이건 이후의 전투도 마찬가지였다.
한상우의 노림수에 강철만도 똑같이 행동했고, 반대로 강철만이 회심의 일격을 하면 한상우도 비슷하게 받아쳤다.
검이 부딪히고, 살갗이 베이고, 폭발이 두 사람을 휘감은 순간 서로의 목을 향해 칼날이 빛났다.
비등한 걸 넘어 무아지경이 되어 이어지는 전투의 호흡.
그 속에서 한상우는.
‘강철만…!’
어느 순간 강철만과 싸우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마신이 빙의해 조종하는 상태라고는 해도, 몸은 어디까지나 강철만의 몸.
장비도, 스킬도, 검술도 모두 강철만의 것이었다.
“크하핫! 몸에 익숙해질수록 확신이 든다. 역시, 잘못본 게 아니었군! 이 투쟁심! 이 육체! 가히 최고의 그릇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야!!”
빙의한 마신은 강철만의 육체에 감탄을 내뱉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강철만의 몸에 적응해, 한상우와의 싸움을 원하는 내면의 투쟁심과 그의 실력을 느낀 것이다.
그건 상당히 큰 시너지를 일으켰다.
애초에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강철만인데, 마신의 힘까지 더해지니 한상우로서는 호각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엔.
그 균형마저 깨지고 말았다.
한상우가 잠시 대검의 움직임을 좇는 사이, 강철만이 발을 들어 복부를 걷어찬 것이다.
“커헉…!”
한상우의 몸이 들판을 구르며 저 멀리 날아갔다.
그러자.
“애썼다만, 여기까지구나!”
강철만이 제자리에 서서 승리를 확신한 비웃음을 날렸다. 추가 공세도 펼치지 않았다.
확실히 여유를 부릴 만했다.
[남은 시간 : 58초]
시간은 어느새 1분도 남지 않았고.
[용맹의 축복이 종료됩니다.]
[신속의 축복이 종료됩니다.]
[꼬마 대장장이의 축복이 종료됩니다.]
캐릭터들한테 받았던 버프는 대부분 끝났으며.
[용기탱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 24시간]
스펙을 올려줄 수 있는 비장의 수단인 [용기탱천]은 앞서 이미 사용해 쓸 수 없었다.
한상우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저 멀리 서 있는 강철만을 바라봤다.
각성 전, 하이어에서 자신에게 1위를 빼앗고 벽을 선사했던 존재.
각성 후에는 헌터계에서 입지적인 행보와 높은 레벨, 열정 넘치는 정의감으로 자신을 앞에서 끌어 당겨줬던 인물.
언제나 뛰어넘고 싶었고, 따라잡고 싶었던 사람, 강철만.
그런 그가 마치 자신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듯 꼿꼿하게 서 있었다.
승산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상황.
그러나.
한상우는 화산검을 지팡이 삼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부터,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었다.
대한민국 최고 헌터인 강철만을 던전 보초에 불과했던 자신이 뛰어넘는다는 것은.
하지만 자신은 근성과 노력, 그리고 캐릭터 소환이라는 자신만의 무기로 여기까지 올라왔다.
게임에서 바닥에서 시작해 1위를 찍었던 것처럼.
‘최고가 되고 싶다.’
한상우는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 믿었다.
할 수 있다고. 강철만뿐만 아니라, 나는 내 앞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장애물들을 격파하고 뛰어넘어서 최고가 되고 말 것이라고.
“하아, 하아…. 강철만!!”
쿵-!
몸을 일으킨 한상우는 땅을 박차고 앞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최후의 일격]
체력의 99%를 소진하는 제국기사단의 최종 비기, 제5식 [최후의 일격]을 사용했다.
다만.
“바보 같은, 뻔히 보이는 수에 맞춰줄 것 같으냐!”
정석적인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강철만에 빙의한 마신이, 던전의 폭발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이용해 회피에 전념했기 때문이다.
녀석은 뒤로 훌쩍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고, 한상우는.
“맞춰줄 필요 없다. 내가 직접 따라가 뛰어넘을 테니까. 흐읍!!”
[최후의 일격]을 머금은 화산검을 강철만을 향해 날렸다.
쉬이이이이익-! 쩌어엉-!!
빛나는 검신으로 공기를 가르며 날아간 화산검이 강철만을 정확히 타격했다.
그러나.
“크윽! 이놈이…!!”
그 일격으로 녀석을 처치하진 못했다.
밤하늘에서 내려꽂힌 일섬은 정통으로 명중했으나, 마신의 힘인 검은 오러가 뭉쳐 갑옷이 부서지는 정도로 피해를 최소화한 탓이었다.
추가 타격이 필요했다.
한상우는 맨손으로 강철만에게 달려들었다.
“제법 괜찮은 한 수였다만, 검을 버리다니! 뒤는 생각하지 않은 멍청한 공격이구나!”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맨손이라면 그 전투력은 급격히 떨어지기 마련이다.
강철만에 빙의한 마신은 비웃음을 날리며 크게 대검을 휘둘렀다.
빈틈이 가득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승기는 자신에게 완전히 기울었으므로.
하지만 마신이 모르는 게 있었으니.
“그렇게밖에 생각을 못 하다니, 단순하기 짝이 없군.”
한상우에겐 인벤토리 기능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랑데르크의 대검을 장착합니다.]
비장의 수로 남겨놓은 무기가 보관되어 있었다.
한상우는 랑데르크의 대검을 양손으로 잡은 뒤, 곧바로 스킬을 사용했다.
[기사의 긍지]
[일시적으로 공격력이 3배 상승합니다.]
[심판의 검]
[오러 블레이드의 길이와 강도, 파괴력이 증폭됩니다.]
한상우의 대검이 강철만의 것보다 더욱 거대해졌다.
그와 동시에 휘둥그레지는 강철만의 동공.
“이, 이건…!”
강철만에 빙의한 마신은 크게 휘두르던 대검을 서둘러 거두고 태세를 전환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한상우는 길어진 오러 소드로 [반월 베기]를 사용, 강철만의 자세를 무너트리고.
[만월 가르기]로 대검을 동강낸 뒤.
“하아아아앗!!”
[급소 찌르기]로 연계기를 완성시켜 [월광 폭발]을 일으켰다.
그 뒤로.
“크헉…!”
콰아아아아아앙-!!
강철만이 쓰러졌다.
화르르르-
들판 곳곳에 남은 푸른 불씨.
“하아, 하아… 고맙습니다, 강철만.”
한상우는 바닥에 널브러진 강철만을 돌아보며 감사 인사를 남겼다.
찰나였지만, 마지막 순간 시야에 들어왔다.
[급소 찌르기]를 사용하던 순간, 반격하려던 강철만의 대검이 멈칫한 것을.
마신은 강철만의 투쟁심을 이야기했으나, 강철만은 그 이상으로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을 막고자 한 것이다.
실로 강철만다운 선택이라 할 수 있었다.
한상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강철만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모든 게 끝난 줄로만 알았던 그 순간.
푹-!
“어…?”
이변이 일어났다.
[체력을 모두 소진했습니다.]
[남은 체력 : 0]
분명 강철만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건만, 웬 날카로운 물체가 한상우의 등을 관통해 앞으로 튀어나온 것이다.
진상은 곧 드러났다.
[마신의 사념체(???)]
“…기대 이상이군. 유희는 끝이다. 네놈의 지위는, 내 양분으로 삼아주마.”
강철만을 조종하던 마신이 이번엔 강철만의 그림자에 들어가 한상우의 뒤를 기습한 것이었다.
0이 되어 버린 한상우의 체력.
더불어 하필이면 관통당한 곳이, 복부도 아니고 심장이었다.
누가 봐도 한상우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한상우는 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멀쩡하게 움직였다.
촤아아아악-! 서걱-!
심장을 관통당한 채로 몸을 돌려 그대로 강철만의 그림자를 베어버린 것이다.
“어, 어떻게…?”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 속, 마신의 황망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한상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촤차차차차착-!!
말없이 대검을 휘둘러 강철만의 그림자에 빙의한 마신을 조각조각 낼 뿐이었다.
그러자 그 뒤로.
[마신의 사념체(???)를 처치했습니다.]
[군주의 특성, 독존이 발동합니다.]
[경험치 30배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무수히 많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상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남은 시간 : 2초]
[던전의 주인을 처치하였습니다.]
[던전의 주인을 처치하여 던전을 클리어하세요(1/1)]
[최후의 순교가 종료됩니다.]
강철만을 쓰러트린 뒤에도 진행되던 카운트가 멈추면서 [최후의 순교]가 끝이 났다.
그리고.
[필멸자로서 감히 이루기 힘든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칭호가 개방됩니다.]
[업적을 달성하고, 새로운 칭호를 획득해 주세요.]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능력도 개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