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8화
18장 쓸어 담기(1)
부자들은 흔히 얘기한다.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고, 열심히 일하고, 최고가 되면 돈은 자연히 따라온다고.
그러니 돈을 좇지 말고, 돈이 따라오게 만들라고.
솔직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던전 보초를 섰을 땐 근무한 시간대로 임금이 나왔고, 헌터가 된 이후에도 아이템 판매 금액에 맞게 수익이 발생했다.
가끔 헌터청의 부탁으로 던전을 클리어해 레이드 비용을 받았지만, 그것도 정당한 노력의 대가였다.
많은 금액을 벌긴 했으나 부자들이 얘기하는, 돈이 따라오는 느낌은 아니었다. 스스로 일한 만큼의 대가라고만 느껴졌다.
그러나.
디바인 실드와 루미나스를 넘어 마신의 사념체까지 처치한 지금.
나는 그 말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500억 달러. 한화로 65조 원.
대한민국 1년 예산의 10%에 달하는 돈을 EX급 던전 클리어의 보수로 받게 됐기 때문이다.
65조 원이라니.
EX급 던전 레이드 성공 시, 총 5조 원의 보수를 받기로 했으니 기존보다 무려 13배 높은 금액이었다.
사실 왕궁 회의실에서 사우디 국왕으로부터 그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믿기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이번 사태를 해결한 주역이라고 해도 65조 원이라는 금액은 너무 과한 액수가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단일 보수로 저 정도의 돈을 받은 이는, 인류 역사상 단 한 명도 없었다.
솔직히 보수 금액을 들었을 때, 기쁘기도 했지만 부담스러움이 앞섰다.
하지만 사우디 국왕은.
“부담 갖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한상우 헌터님. 저희는 오히려 이것도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만약 한상우 헌터님과 군주 길드의 길드원 분들이 안 계셨다면 사우디아라비아는 루미나스에게 함락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것도 부족하다면서,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실제로도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중동의 석유 재벌들은 세계의 부자들을 줄세울 때 빼고 세야 할 정도로 큰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65조 원이란 돈이 크긴 해도 수백 명에 달하는 EX급 레이드 파티의 전체 운영 금액과 비교해보면 과하다고 할 정도로 크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이러한 금액을 나뿐만이 아니라 땡길거야와 다크어둠, 매직킹, 그리고 연진까지 받게 됐다는 것이다.
세간에는 이들이 소환수가 아닌 군주 길드의 소속 헌터로 알려져 있으니, 캐릭터들의 보수까지 합쳐 65조 원이 아니라 325조 원을 받게 되었다.
즉시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은 아니고, 여러가지 현물과 주식, 채권과 함께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어음의 형태로 지급되긴 했지만 당장 그만큼의 현금은 나로서도 필요 없었다.
이게 돈이 따라온다는 것일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많이 따라오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받은 만큼 일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긴급] 세계 헌터 연합, EX급 던전 클리어 성공!>
<[속보] 사우디 수도 리야드, 루미나스에 의해 침공. 사우디 국왕 긴급 대피>
<[충격] 디바인 실드 수장과 루미나스의 수장, 동일 인물로 밝혀져…. 자세한 사항 조사 중>
이번 사건의 사안이 워낙 크고 중요하다 보니 책임지고 정리할 총책임자가 필요했는데, 내가 그 적임자로 채택된 것이다.
확실히 정리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 나밖에 없긴 했다.
전 세계, 우수한 헌터들이 모두 모였지만 그중 대다수가 디바인 실드 헌터였고, 셀리나에게 조종당한 전력이 있기에 일을 맡길 수 없었다.
연합 헌터들은 세이에 의해 회복되긴 했으나 아직 디바인 실드 헌터들에게 당한 불신과 후유증으로 바로 활동하기는 어려웠고.
그래서 나는 EX급 레이드가 끝났음에도 잠깐 사우디에 남아 부수적인 일을 처리했다.
몬스터가 되어 리야드 곳곳에 숨은 루미나스 헌터들을 추적해 처치한다든가, 정신을 차린 디바인 실드 헌터들을 조사한다든가, 지금 상황에 필요한 일들의 진행을 전반적으로 맡았다.
물론, 이러한 일들은 평소 하지 않았던 것들이라 낯설었지만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디바인 실드와 루미나스에 대한 조사는 리 샤오펑에게 맡기고, 언론에 발표하는 건 신대훈과 나머지 수행원들에게 부탁해 배포하면 됐으니까.
나는 그렇게 리 샤오펑과 신대훈에게 몇 가지 일을 맡긴 후, 다른 일에 집중했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우선 첫 번째는.
“얘들아, 밖에 나와 있는 거 피곤하진 않지?”
“예. 괜찮습니다, 주군.”
“이 정도는 거뜬합니다, 마스터.”
“로드,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재밌는데용, 사장님! 사람들이 막 사진도 찍자고 해용!”
“저도 괜찮아요, 용사님. 새로운 경험이라 신선하네요.”
[충성도 업적 6]
[캐릭터 소환 시간 1,000시간 달성하기 – 3%]
새로 개방된 [충성도 업적 6]의 수행이었다.
캐릭터들의 동시 소환을 유지해야 했던 기존 업적과는 다르게 이번엔 캐릭터의 소환 시간을 총 1,000시간만 달성하면 됐다.
중간에 소환을 해제해도 시간은 누적되는 방식이었는데, 나는 제장이를 제외한 모든 캐릭터들을 소환했다.
동시 소환을 유지할 필요는 없지만 최대 소환 캐릭터 수를 꽉꽉 채우는 게 퀘스트 수행에 유리하기도 했거니와, 다른 사람들의 의심을 피하려면 이번 사건에서 활약했던 캐릭터들은 일반 헌터처럼 계속 모습을 보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막간의 휴식 시간을 이용해 캐릭터들과 함께 여러 일정을 소화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럼 지금부터 EX급 던전에서 드랍된 아이템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마족 군단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 경매 참여였다.
강철만을 구한 뒤, 나는 사건 현장을 정리하는 한편 사우디 헌터청과 협의해 짐꾼들과 다시 EX급 던전 안으로 진입했다.
마족 군단의 던전은 일회성 던전이라 던전 내부에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으면 사라질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디바인 실드와 루미나스의 습격에 대피한 연합 헌터들이 있어, 던전은 사라지지 않았고 아이템들도 남아 있었다.
나는 헌터 및 짐꾼들과 함께 수백 개에 달하는 아이템들을 수거해 탈출했다.
아이템의 개수는 수백 개.
등급은 고급에서 신화까지 다양했는데, 그중 신화 아이템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마족 군단장의 장검]
[등급 : 신화]
[효과 : 공격력 +560]
[스킬 : Lv 3. 대지 가르기 – 땅을 가를 정도로 막대한 오러를 방출합니다. 마나 100 소모.]
[스킬 : Lv 2. 폭풍 날리기 – 투척 시, 검이 회전하며 날카로운 오러의 바람을 방출합니다. 마나 70 소모.]
[스킬 : Lv 1. 회수 – 검이 어디에 있든 불러와 회수합니다. 마나 1 소모.]
검은 칼날에 포악한 기운이 풍기는 검.
바로 강고한 마족 군단장이 드랍한 아이템이었다.
장검 안에는 녀석이 쓰던 스킬이 탑재되어 있었는데, 최상급 공격력에 스킬 하나하나가 강력하고 검을 회수할 수 있는 기능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후우, 저건 꼭 사야 돼.”
“미친, 장검이 공격력 500이라고? 이런 게 또 어디서 나오겠어?”
경매에 참여한 연합 헌터들은 하나같이 침을 흘리며 마족 군단장의 장검을 주시했다.
그 외의 경매 아이템들은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다들 각 나라에서 최고라 불리는 헌터들이고, 바라는 게 있던 만큼 고급이나 전승 등급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종종 영웅 등급 아이템이 나오면 입찰 경쟁이 벌어지곤 했는데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다.
이번 경매는 형평성을 위해 EX급 던전 레이드에 참여한 헌터나 그 대리인만 참가할 수 있기에, 진짜 자신에게 필요한 아이템을 사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망의 마지막.
모두가 고대하던 마족 군단장의 장검 차례가 돌아왔다.
가격은 시작부터 살벌하게 올라갔다.
“1,000억 원부터 시작하겠습니다.”
“2,000억.”
“4,000억.”
“6,000억”
진행자가 말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가격을 제시했다.
작은 단위도 아닌데 두 배씩 뛰는 가격.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너무 과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다른 이들은 오히려 저렴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1조.”
“지금부터 단위를 1조 원으로 변경하겠습니다.”
“2조.”
“3조.”
가격이 계속해서 올라 어느덧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서 성공 보수로 제시한 3조 원까지 올라왔다.
그럼에도 모두 입찰을 멈추지 않았으니, 이 경매에 참여한 헌터들은 저 장검 하나만으로도 이번 레이드에 대한 보상은 충분하다고 판단하는 듯했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9조.”
“12조.”
“15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대한민국의 웬만한 지자체의 1년 예산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
하지만 세상은 넓고 부자는 많다고 했던가.
특히 여기는 전세계에서도 내로라하는 최상위 헌터들만 모인 곳이라 그런지 돈이라면 아주 그냥 넘쳐나는 듯했다.
“18조.”
“20조!”
가격은 계속해서 올라만 갔다.
그런데 그때, 한창 뜨거워졌던 열기가 나직한 탄식과 함께 일순 차갑게 내려앉았다.
20조.
그 이후 아무도 손을 들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50조.”
지금까지 나온 최고 금액의 두 배가 넘는 금액.
그러자.
“…….”
경매장이 일순간 고요해졌다.
침묵은 길지 않았다.
“…한상우 헌터님께서 50조 원을 부르셨습니다. 받으실 분 계십니까?”
“역시, 한상우 헌터님께서도 생각이 있으셨군.”
“그렇다면 내어드리는 게 맞지. 인류의 영웅이시니 자격은 충분해. 그런 분과 경쟁하고 있을 수는 없지.”
“맞아, 그리고 저 정도면 더 부를 사람도 없을걸? 무려 50조라고.”
진행자를 시작으로 다들 빠르게 사태를 파악하고 손을 뗐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인류의 영웅인 내게 검을 내어줘야 한다는 의견부터 적정한 가격이라는 의견까지.
경매장에 참여한 연합 헌터와 대리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더니 더 이상 입찰을 진행하지 않았다.
“이것으로 경매를 종료하겠습니다. 마족 군단장의 장검은 한상우 헌터님께서 입찰받으셨습니다.”
그렇게 마족 군단장의 장검은 내 손으로 들어왔고.
“축하드립니다, 한상우 헌터님. 최고의 검이 최고의 주인을 만났군요.”
“저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한상우 헌터님이 아니셨다면 저는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헛! 저도 그렇습니다. 한상우 헌터님, 실례가 안 된다면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겠습니까? 함께 레이드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경매장의 헌터들은 내게 다가와 악수와 사진 등을 청하며 축하 인사를 전했다.
무수히 쏟아지는 악수의 요청.
마음 같아서는 전부 응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과 악수는 제가 할 일이 있어서 다음 기회에 해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비켜주세용, 여러분! 사장님께서 지나가십니당!”
“밖으로 모시겠습니다, 주군.”
“후우. 인파가 너무 많으니 욕이 마렵군요.”
“계속해서 몰려드는데 죽일까요, 마스터?”
“…용사님의 얼굴을 봐서 참으세요, 암살자님.”
나는 캐릭터들의 호위를 받으며 경매장을 빠져나와 호텔 방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마족 군단장의 장검을 인벤토리에 넣은 후.
마지막 세 번째.
[열 번째 업적을 클리어했습니다.]
[EX급 던전을 클리어하세요(1/1)]
[히든 퀘스트 : 군주의 업적(10/10)]
[모든 업적 달성 시, 히든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히든 퀘스트, 군주의 업적을 모두 달성했습니다.]
[메시지를 터치할 시, 해당 보상이 수여됩니다.]
[보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상 목록]
[1. 수령 완료]
[2. 수령 완료]
[3. 히든 보상]
[주의 : 히든 보상은 던전 형식입니다. 입장 가능할 때 수령하세요.]
군주의 업적 10개를 모두 클리어하고 받은, 마지막 히든 보상 메시지를 터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