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9화
18장 쓸어 담기(2)
각성 후 쉬지 않고 달려왔던 군주의 업적.
대망의 마지막 세 번째 보상.
히든 보상 중 첫 번째는 [캐릭터 소환]의 스킬 레벨 상승으로 세상에이런힐이를 소환했고, 두 번째는 군주의 힘 개방으로 [통찰]을 획득했다.
과연, 이번엔 어떤 보상이 나올 것인가?
그리고 대체 어떤 보상이길래 던전 형식으로 제공하는 것일까?
나는 궁금증과 기대감을 안고 메시지를 터치했다.
그런데.
[히든 보상 던전을 개방하시겠습니까?]
[네 / 아니오]
[최소 레벨 제한 : 700]
[권장 레벨 : 750 이상]
[주의 : 공략 실패 시, 목숨을 잃을 수 있으며 히든 보상 또한 사라지니 신중하게 선택하세요.]
히든 던전이라 그런 것일까?
평소와 다르게 레벨 제한과 권장 레벨, 그리고 주의 사항이 떠올랐다.
레벨 제한 700에 권장 레벨 750 이상이라….
나는 상태창을 열었다.
[상태창]
[이름 - 한상우]
[레벨 - 615]
[고유 특성 - 하이어의 군주]
<스탯>
[힘 : 608] [민첩 :580] [지력 : 543] [체력 : 625] [마력 : 710]
<…….>
EX급 던전에 진입하기 전, 595였던 레벨은 어느덧 615로 상승해 있었다.
마족 군단의 던전에서는 나보다 레벨이 높은 SSS급 헌터들이 있어 경험치 99% 감소 페널티를 받았는데, 마신의 사념체를 처치하면서 무려 20레벨이나 폭렙업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 확인했던 마신의 사념체의 등급은 ‘???’.
현재로서는 무슨 등급인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EX급 몬스터 한 마리를 잡아도 레벨이 바로 오르지 않는데 단 한 번 처치하는 것으로 20레벨이 오르는 등급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만큼 죽을 각오를 하고 겨우 이길 수 있었지만, 어쨌든 마신의 사념체를 잡은 덕분에 나는 SSS급 헌터의 분류 기준인 601레벨을 넘게 됐다.
그러나.
그런 엄청난 성과를 이룩해도 히든 보상 던전의 진입 조건은 달성하지 못했다.
히든 보상 던전에 진입할 수 있는 최소 레벨은 700.
현재 내 레벨보다 무려 85레벨이나 높았다. 그리고 그것도 어디까지나 최소 조건이고, 권장 레벨은 50이 더 높았다.
‘135레벨업이라….’
얼마 되지 않았다면 근처에 있는 던전에 들어가서 레이드라도 돌아 빠르게 올렸겠지만, 차이가 너무 크다 보니 당장의 목표로 잡기는 힘들었다.
‘이건 그냥 나중에 하는 게 낫겠네.’
마음 같아선 바로 레벨업을 해서 던전에 입장하고 싶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무엇보다 한국이라면 마음껏 던전을 돌 테지만 여긴 타국이고, 지금은 큰일을 수습하는 중이라 레이드에만 집중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원래 열 번째 군주의 업적은 700레벨 이상은 되어야 모두 클리어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내가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게 클리어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건 게이머에게는 상당한 자부심을 주는 것이다.
퀘스트를 누가 설계하고 부여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기존의 설계보다 내가 몇 발은 더 앞섰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내가 설계자의 예상을 뛰어넘은 대단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래도 감이 죽지는 않았네. 히든 보상 던전은… 조금 뒤에 깨자.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메시지창에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뭔가 기쁜 일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주군.”
“그러게용! 갑자기 사장님의 입꼬리가 올라 갔어용!”
옆에 있던 땡길거야와 연진이 내 얼굴을 보며 마찬가지로 웃었다.
나는 내 뒤로 주르륵 서 있는 캐릭터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별거 아냐. 다들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피곤할 텐데 좀 쉬도록 해.”
“감사합니다, 마스터.”
“용사님의 깊은 배려, 감사드립니다.”
“혹시 모르니 이 방에 결계를 쳐놓고 쉬도록 하겠습니다, 로드.”
다크어둠과 세이, 매직킹 등 캐릭터들은 감사 인사를 하더니 각자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건 없었다.
땡길거야는 쉬면서도 경계 근무를 서듯 창가에 서서 리야드 시내를 내려다봤고, 다크어둠은 방을 돌아다니며 침입자가 없는지 체크하였으며, 매직킹은 소파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더니 명상을 시작했다.
“사제 언니! 차 한잔 드실래용? 제가 집중력 올라가는 걸로 만들어 드릴게요!”
“좋아요, 연금술사님.”
연진과 세이는 주방으로 가더니 약초를 꺼내 차를 만들고 티타임을 가졌다.
마치 친한 언니 동생 같은 모습.
나는 흐뭇한 광경에 피식 웃으며 세이의 동시 소환 효과를 살펴봤다.
[다섯 캐릭터를 동시에 소환했습니다.]
[캐릭터 간의 상성에 따라 동시 소환 효과가 발생 및 중첩됩니다.]
[사제 : 상생, 상생, 상생, 상생 – 모든 스탯 20% 상승]
친절하고 나긋한 성격에 타인을 돕는 직업이어서 그런 것일까.
세이는 모든 캐릭터들과 상생을 이루고 있었고, 그에 따라 모든 스탯이 20% 상승하는 효과를 받고 있었다.
다른 캐릭터들도 세이로 인해 각각 버프 효과 5% 상승의 추가 효과를 받고 있었고.
‘동시 소환 효과는 걱정할 필요가 없네. 그런데… 히든 연계 퀘스트는 어떻게 하면 뜨려나.’
모든 게 상생이다 보니 동시 소환 효과나 캐릭터 관계에 관해서는 신경 쓸 게 없었다.
그래도 굳이 하나 꼽자면, 사제의 능력을 배울 수 있는 히든 연계 퀘스트가 아직 뜨지 않았다는 건데….
‘이것도 나중에 하자.’
나는 사제의 히든 연계 퀘스트를 찾는 것을 뒤로 미루었다.
세이의 그림자를 밟거나 욕 108개를 시키는 등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의 방법을 시도해볼 수는 있지만, 지금까지의 패턴을 봤을 때, 내가 무언가 의도적으로 하지 않아도 언젠가 자연스레 뜰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모처럼 갖는 휴식 시간이니 쉬게 내버려 두고 싶기도 하고.
나는 동시 소환 효과창을 끈 뒤,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마침 TV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이 직접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이번 리야드 침공은 루미나스의 소행이지만 루미나스의 수장과 디바인 실드의 수장은 동일 인물로 밝혀졌습니다. 디바인 실드의 헌터들 또한 그 명령에 따라 일반 헌터들을 공격했고요. 디바인 실드 헌터들에게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으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습니다. 리야드를 파괴한 건 루미나스지 디바인 실드가 아니니까요. 그리고 그들이 다른 헌터를 공격한 것도 어디까지나 세뇌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무엇보다 이후 그들은 몬스터가 된 루미나스 헌터 체포에 누구보다도 앞장섰습니다. 또한 디바인 실드는 EX급 던전도 클리어하였기에 그들은 루미나스와 한패라기보다는 수장에게 이용당한 피해자로 보고 있습니다.
기자 회견은 막바지인 듯 질의응답이 이어지고 있었다.
기본적인 정보는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밝혀졌기에, 사실 확인보단 구체적이고 날카로운 질문이 주를 이루었다.
-EX급 레이드 연합 헌터들이 구국의 영웅이라는 입장에 변화가 없으신 것이군요.
-예, 맞습니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죠.
-세뇌당한 헌터들은 그렇지 않은 연합 헌터들이 제압했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한국의 군주 길드의 활약이 엄청났다고 들었는데, 사실일까요? SS급 헌터 수백 명을 10명도 안 되는 인원이 제압한다는 게 가능한 일입니까?
-그 부분은 저희가 답변할 수는 없습니다. 헌터 개개인의 전력은 개인적인 기밀 사항이니까요. 그 부분은 한국 헌터청 또는 군주 길드 측에 직접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계속되는 질의응답 속, 어느 기자가 나와 캐릭터들의 힘에 대해 궁금증을 표했지만 사우디 국왕은 적당히 대답을 회피했다.
“음, 일 깔끔하게 잘하네.”
사실 사우디 측에서도 나와 캐릭터들의 힘을 모르기에 딱히 할 말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밝히지 않고, 상대방의 비밀을 지켜주는 것도 능력이기에 나는 기자 회견을 보다가 나직이 감탄했다.
기자 회견 전의 회의 때도 사우디 측은 군주 길드의 힘에 대해 의문을 표하긴 했으나 자세히 파고들지는 않았다.
만약 저들이 나와 캐릭터들의 힘에 관해 깊이 파고들려고 했다면?
나 또한 지금과 같은 협조적인 태도를 재고했을 것이고, 서로의 관계는 틀어졌을 것이다. 물론 손해를 보는 건 사우디 측이었을 테고.
사우디도 그것을 알기에 지금처럼 현명하게 행동하고 있었으며, 그 외의 대처도 훌륭했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 민간인 대피도 빠르게 이루어졌고, 부상자의 치료도 신속하게 진행됐다.
그리고 EX급 던전 포탈 앞에서 싸웠던 일을 생각하다 보니.
‘잠시 강철만의 상태나 좀 보고 올까.’
자연스레 강철만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원래 계획엔 없었지만, 기자 회견을 보고 있자니 한 번 병문안을 가는 것도 좋을 듯했다.
나는 TV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호텔 방을 나섰다.
“출타하십니까, 마스터?”
“호위하겠습니다, 주군.”
“아냐, 괜찮아. 쉬고 있어. 같은 건물에 있는 방에 잠깐 다녀오는 것뿐이니까.”
중간에 캐릭터들이 따라 나오려고 했으나 나는 만류하며 방에 머물 것을 명령했다.
어차피 강철만은 같은 건물에 있기도 하거니와.
“엇! 외출하십니까, 한상우 헌터님?”
방 밖에는 한국 헌터청의 수행원과 사우디 헌터청의 수행원 등 여러 사람들이 있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꽤 번잡해지기 때문이다.
‘이거 뭐, 감시가 일상이 되어버렸네.’
마음 같아서는 다 떼어버리고 싶었지만, 지금 나는 어떤 면에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으니 언론이나 기관 등에서 온 온갖 사람들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직이 한숨을 쉰 후, 복도를 걸으며 말했다.
“외출은 아니고, 잠시 강철만 길드장님의 방에 갈까 합니다.”
“그렇군요. 그럼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아니, 괜찮은….”
“한상우 헌터님께서 강철만 길드장님 방으로 이동하십니다.”
수행원들은 각자 착용한 무전기로 무전을 보내더니 엘리베이터까지 잡고, 강철만이 있는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러자.
“어서 오십시오, 한상우 헌터님.”
환대가 이어졌다.
강철만의 방 앞에서 대기하던 수행원들도 무전을 듣고, 내가 다가오자 깍듯하게 인사했다.
그리고 나를 반기는 건 수행원들뿐만이 아니었다.
딸칵-
“하, 한상우 헌터…!”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문 앞에 도착하자 방문이 열리더니 추성태, 지소영, 서지환, 성재경 등 SS급 헌터들이 뛰어나온 것이다.
그들은 신발도 신지 않고,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돌연.
“정말 고맙습니다, 한상우 헌터!”
무릎을 꿇고, 넙죽 절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