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20화
탐욕룡 아란발론 (1)
“다들…… 지금껏 전투에 참여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저 바깥. 음, 그러니까 올리비아와 제임스가 나간 곳의 상황을 지켜보느라 그랬다.”
팔을 떨친 카푸가 손을 이리저리 뒤엉켰다.
그에 맞춰 홀로그램이 허공에서 자유분방하게 움직였다.
마치 SF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이펙트.
하지만.
“젠장, 지금 그런 거 볼 여유가 없습니다!”
중년이 질린 표정으로 외쳤다.
“어어? 아저씨! 뒤로 빠져요! 위험해!”
“블라디미르 씨! 스킬 좀 빨리 돌려주시면 안 되나요? 계속 붙잖아요!”
“어이, 보채지 마. 나도 쿨타임이라는 게 있다고.”
중년뿐만 아니라.
병사들과 대치 중인 모든 팀원이 정신없는 상태였다.
잠깐이라도 정신 팔았다간.
저승행 기차가 바로 코앞에 등장할 터.
올리비아나 제임스의 소식 따위가 뭐가 그리 중할까?
하지만, 그런데도.
“훈이라도 지켜봐라.”
카푸는 꿋꿋했다.
“그만큼 충격적인 장면이다.”
“예, 알겠으니까! 일단, 보여줘요!”
나는 카푸를 질책하지 않았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어차피 카푸의 고유 능력은 ‘길잡이’ 특화.
전투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원래 던전에서는 이런 사소한 정보 하나하나가 천금같이 소중한 법.
‘아까 제임스가 말없이 튈 당시, 그의 등을 보며 중얼거리던 게 추적 스킬을 걸던 거였다니.’
나는 카푸의 센스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조금 전 상황은 나조차 벙찔 정도로 황당한 순간이었거든.
콰앙! 콰아앙!
볼트는 계속해서 쏘아졌다.
뼈가 울릴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나는 송출되는 홀로그램 영상에 눈을 떼지 않았다.
왜일까.
묘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엘드린이 추측했던 ‘용’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을 것만 같은 기분?
우우웅!
이윽고 영상추적 장치가 작동됐다.
곧, 화면과 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제임스의 시선이 담긴 장면이었다.
* * *
타다닷!
“하악, 하악!”
보물을 움켜쥔 제임스는 계속해서 내달렸다.
그의 입김에서 거친 숨결이 뿜어져 나왔다.
‘괜찮아.’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이 가슴을 툭툭 건드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저 앞에 달리고 있는 올리비아도 똑같은 여자일뿐더러.
‘원래 이런 게임이었잖아?’
테마1에서의 살생이 규칙 중 하나였던 것처럼.
팀장을 버리는 것 또한 테마2의 새로 생긴 규칙일 뿐이었다.
[팀원들은 언제든 ‘보물’ 하나를 골라 거대성을 탈출할 수 있습니다.]
[탈출한 팀원은 테마2 ‘합격’입니다.]
‘합격!’
테마를 벗어나 랭커가 될 수 있다면, 뭔들 못할까.
제임스가 생각하는 이곳, 시련의 기준은 도덕성이 아니었다.
그저 살아남는 사람이.
통과하는 사람이 장땡인 게임이었다.
실제로 세상이 그랬다.
여기서 랭커가 되기만 한다면.
그 과정이 어떤 것이든, 그만큼의 대우를 받겠지.
전 세계가 VIP 대우를 해줄 것이고.
모든 헌터들이 존경스럽다는 눈빛으로 쳐다볼 것이었다.
으득!
제임스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 잘될 거다.’
그는 쉬지 않고 내달렸다.
혹여 뒤를 돌아보면, 부리부리한 눈빛의 심판창이 창을 내지르고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번쩍!
제임스는 하얀 ‘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거대성을 탈출할 수 있는 문.
배신의 대가로 ‘합격’ 통보를 받을 수 있는 문.
하지만.
“응?”
문을 지나 그의 눈앞에 보인 것은.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이전보다 더욱 시커먼 광경에, 더욱 거대한 홀.
그리고.
“뭐, 뭐야?”
거대한 무언가가 존재했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무언가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도 일평생을 상급 헌터로 지내오며, 많은 몬스터들을 만나봤다고 생각했는데.
또한, 최악의 수들을 떠올리곤 했었는데.
적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커헉!”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보기만 했는데도.
제임스의 입에서 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실로 말이 나오지도 않을 만큼 엄청난 거력(巨力)!
“미친……!”
그의 눈앞에는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커다란 용이 있었다.
등골이 서늘할 만큼 살벌한 눈과 자신의 몸보다 수십 배는 커다란 발톱.
이런 존재 앞에서는 모두가 한낱 미물일 게 분명했다.
“꺄아아악! 끄아아아아악!”
심지어.
그토록 전율할 만큼 엄청난 존재는 앞서 들어섰던 올리비아를 잔인하게 뭉개고 있었다.
“사, 살려줘! 살려줘!”
발톱에 깔린 채, 눈물을 흘리며 발버둥 치는 그녀.
그녀의 주변에는 시뻘건 피가 낭자해 있었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제임스의 귀로 낯선 음성이 들려왔다.
- 끌끌,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자들이여.
- 감히 내 보물을 가지고 나갈 수 있을 듯싶었더냐?
용이 낮게 울었다.
올리비아를 향하던 용의 눈길이 제임스를 향해 쏘아졌다.
“미, 미친? 이건 약속과 다르잖아!”
제임스가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보물만 가지고 나가면 합격이라며! 심사위원! 심사위원 어딨어! 내보내 줘! 날 내보내 달란 말이다!”
- 쯧쯧, 어리석은 것.
거대한 존재가 혀를 찼다.
용의 목소리에선 즐거움이 묻어나왔다.
- 탐욕은 화를 부른다는 기초 상식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다니. 너희는 나, 아란발론의 시련에 합격할 자격이 없도다.
후웅!
용의 발톱이 제임스를 향해 움직였다.
꾸욱!
피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날아간 발톱이 제임스의 하체를 짓뭉갰다.
“끄, 끄아아아아악!”
엄청난 고통에 제임스가 울부짖었다.
들고 있던 아란발론의 보물들은 이미 바닥에 떨군 상태였다.
“끄아아악! 끄악!”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만약 이게 정답이 아니었다면, 팀장 곁에서 빌어먹을 병사들의 공격을 견뎌내기라도 해야 했다는 건가?
“이 개새끼들! 이게 뭐 하는 짓거리들이야! 조건을 내걸었으면 조건대로 해야지! 사람 목숨을 두고 이딴 식으로 장난치는 게 어딨냔 말이다!”
- 눈을 가린 것은 너다, 어리석은 것이여.
용이 친절하게 읊조렸다.
- 애초에 조건은 ‘국보’를 찾는 거였다. ‘배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보? 그놈의 국보가 도대체 뭔데!”
- 그걸 모르니까, 지금 이렇게 내 발에 깔려 있는 것이고.
용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 곧 진실을 알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거겠지.
파직! 파직!
동시에 터지는 올리비아와 제임스의 머리.
우우웅!
용의 몸통에서 미증유의 기운이 올라왔다.
동시에.
스스슷!
녹아내리는 시체와 회수되는 보물들.
- 크크크큭.
용이 재밌다는 듯 흥얼거렸다.
- 이 세상에서 가장 탐욕스러운 건 오직 나여야만 하느니라.
* * *
파즛!
홀로그램이 꺼졌다.
제임스의 시신이 녹음과 동시에, 영상추적 장치도 파괴되었기 때문.
“미, 미친?”
일행 중 한 명이 외쳤다.
바쁜 와중에서도 다들 힐끗 보고 있었던 것이다.
“용?”
“여, 역시! 함정이었던 거예요? 저렇게 무지막지한 용이라니?”
“하아? 이러면 진짜 ‘국보’를 안 찾고는 못 배기는 거잖아?”
후우웅!
아란발론 병사의 검이 휘둘러졌다.
허리를 튼 심판창이 그걸 피해낸 후, 녀석의 눈에 창을 박아 넣었다.
“거봐라. 정해진 배신의 말로였다.”
까앙!
창이 튕겨 나왔다.
“그럼,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죠?”
올레나가 튕겨 나온 부분에 워터볼을 던지며 물었다.
“그렇잖아요! 탈출구도 없고! 그렇다고 ‘국보’를 찾아낼 시간을 주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여기서 뭘 더 할 수 있냐는 거예요!”
“…….”
“거기다가 솔직히 ‘국보’가 뭔지 감 잡은 분도 없잖아요? 여기 다 뒤지려면 적어도 1년은 넘게 걸릴 텐데!”
맞는 말이었다.
틀린 말 하나 없었다.
“다들 여기서 병사들을 처리할 게 아니라, 흩어져서 뒤져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올레나가 말했다.
“꼭 같이 찾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다 흩어져서 찾다 보면 누군가 발견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역시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아뇨.”
내가 입을 열었다.
“시련이 이런 식일 수가 없어요.”
“네?”
“만약, 시련이 이런 식이었다면, 다들 델라일라 시련에서 랭커가 되기는커녕 다 뒈졌을 거예요.”
나는 방패를 더욱 힘있게 잡았다.
“그거 알아요? 솔직히 여기 시련, 객관적으로 봐도 하위급 랭커가 와도 견디기 힘들걸요? 그런 걸 참가자들끼리 함께 견뎌내라? 견뎌낸 다음에 ‘국보’까지 찾아라? 말도 안 되는 거죠.”
“그럼, 뭔데요?”
“흠, 이건 제 추측인데.”
“그니까. 말해봐요.”
“혹시. 우리 이미 국보를 찾은 거 아닐까요?”
용의 말에서 떠올린 발상이었다.
- 애초에 조건은 ‘국보’를 찾는 거였다. ‘배신’을 하는 것이 아니라.
- 이 세상에서 가장 탐욕스러운 건 오직 나여야만 하느니라.
탐욕스러운 용, 아란발론.
녀석은 탐욕스러운 자를 살려두지 않는다.
올리비아나 제임스처럼 짓밟아 죽여 버린다.
본인이 탐욕스럽기에.
다른 자가 탐욕스러운 걸 싫어하는 걸 테지.
“국보를 찾았다고? 그게 뭔데?!”
블라디미르가 외쳤다.
“음, 그러니까.”
나는 손등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용은 탐욕스러운 걸 싫어하잖아요? 아니, 탐욕스러운 걸 싫어하기보단, 자기가 레어에 쌓아놓은 보물을 누군가 훔쳐 가는 걸 싫어하는 거죠.”
“음?”
“그렇기에 ‘국보’는 물질적인 ‘보물’을 찾는 게 아니라. 조금 더 관념적인 개념 아닐까요?”
“뭐? 도대체 뭐라는 거냐. 알아듣기 쉽게 좀 설명해 봐!”
블라디미르가 답답한 듯 가슴을 두들겼다.
“아, 혹시 처음 테마2를 시작할 때 떠올랐던 임무. 기억나세요?”
“임무? 그거야 한쪽에 띄워 뒀지.”
“그거 한번 다시 봐보세요.”
블라디미르가 미간을 찌푸린 채, 눈동자를 올렸다.
다른 멤버들도 그에 맞추어 홀린 듯 뒤적거렸다.
[임무가 도착합니다.]
[스테이지 : 보물찾기!]
[뽑힌 10명의 팀원은 서로 ‘협동’하여, 중앙 거대 성(城)에 숨겨진 ‘국보’를 찾아야 합니다.]
“이게 뭔데! 그냥 다 아는 내용이잖아?”
“저기 강조 표시된 글자 안 보여요?”
‘협동’.
그리고 ‘국보’.
내가 말했다.
“애초부터 시스템은 말했죠. 국보는 협동 그 자체라고. 용도 말했어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배신을 하는 게 아니라 국보를 찾는 거라고. 만약, 그게 지금처럼 함께 싸우고 있는 행동. 그 자체라면요?”
“……그럼 국보가 도망치지 않았던 것, 그 자체라는 거냐? 팀장 말은. 국보가 의리라도 된다는 거야?”
“제 예상이 맞다면요.”
만약, 이곳을 지나왔던 모든 랭커가 같은 시련을 겪었다면.
서울 오성(五星) 역시, 이곳에서 완전한 동기가 되었을 거다.
위기의 순간에.
서로를 버리지 않고, 배신하지 않았기에.
나와서도 그런 끈끈한 우애가 지속될 수 있었던 거겠지.
꾸욱!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내 추측이 틀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직감을 믿었다.
지금껏 100% 확률로 성공해왔던 나만의 직감.
우뚝!
그때였다.
내 말에 답변이라도 하듯.
쏘아지던 볼트가 더는 날아오지 않았다.
“뭐, 뭐야! 애들 왜 이래?”
“갑자기 굳었는데요?”
칼을 휘두르던 병사들 역시 다시 석상처럼 굳었다.
그와 동시에.
[축하합니다!]
[팀장이 ‘국보’의 의미를 해석했습니다!]
[탐욕룡, 아란발론이 흡족하게 웃습니다.]
너무 정확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정말로 예측이 맞았던 것이다.
“우와!”
“지, 진짜였어?”
“티, 팀장님? 이거 실화예요?”
“우와아아아아! 살았다! 살았다고!”
순간 폭발하는 팀원들의 환호 소리.
하지만.
“엘드린.”
여기서 만족하면 내가 아니다.
“예, 주인님.”
“잠깐 이리 와봐.”
내 명에 엘드린이 삐걱거리며 다가왔다.
약 5분 정도.
그녀와 무언가를 속닥이고 있자.
“어이, 팀장! 당신 진짜 천재야? 도대체 어떻게 안 거야? 진짜 신기하구만. 음? 그나저나 왜 이렇게 표정이 심각한 거지?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블라디미르가 다가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들, 여기서 잠깐 기다려 주세요.”
“으잉? 왜. 다 끝난 거 아니야?”
“끝난 건 맞는데. 갑자기 또 도전 정신이 뿜뿜 올라와서요.”
“도전 정신?”
“저 너머에 용을 봤는데. 그냥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