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26화
아란발론 vs 거대마룡 (3)
[‘스페이스 세퍼레이션’(SSS급)이 작동합니다.]
위이잉!
허공에 복잡한 수식들이 가득 메워지더니.
두쿵!
옅게 북 치는 소리와 함께.
공간이 둥- 떠올랐다.
전부 떠오른 게 아니라, 딱 나와 팀원들이 있는 그 공간만 떠올랐다.
아예 이곳만 다른 세상으로 갈라놓은 것 같은 이질적인 느낌.
[30분간, 해당 지역을 분리합니다.]
[지역 간 어떠한 물리 법칙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휘오오오…….
거센 바람이 사그라들었다.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던 힘도.
용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도.
더는 이곳에 닿지 못했다.
두 마리 용의 모습이, 그저 TV 속 화면을 보는 것처럼 평범하게 느껴졌다.
팅! 티잉!
어쩌다 날아오는 돌 조각 파편도, 그저 가볍게 튕겨낼 뿐.
공간 밖 그 어떤 물질도 이곳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올레나가 입을 떡 벌렸다.
다른 헌터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광경을 바라봤다.
“SSS급……이라고?”
“팀장, 이거 팀장 작품이야?”
스킬 작동 메시지는 나에게만 보이는 게 아닌.
팀원 전원에게 보였다.
[남은 시간 – 00:29:40]
“오오! 사, 산 거야? 우리 산 거야? 지금 이거. 30분 동안 절대적으로 방어되는 스킬 맞지?”
“팀장! 역시 다 생각이 있었구나! 무모한 게 아니었어! 어찌 이런 스킬을?”
“대, 대단해요!”
팀원들이 흥분하여 함성을 토했다.
그냥 봐도 경이로울 지경의 스킬인데.
그 덕에 죽다 살아나기까지 했으니, 오죽하랴.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그들은 희망을 느꼈다.
안도와 행복을 느꼈다.
“마법진이 무슨…….”
물론, 생존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희열을 느낀 사람도 있는 것 같았지만.
“훈? 이게 뭐예요? 이건 미쳤어요. 미친 수식이에요. 어찌 이런 발상을? 아아!”
사방에 가득 메워진 수식을 바라보며 올레나의 눈이 풀렸다.
마치 아쿠아리움에 처음 온 어린아이처럼.
두리번두리번하며 감탄을 토해냈다.
“이런 걸 나 혼자 봐야 한다니……. 안타까워요. 마탑주께서 함께 봤다면 옥스포드의 위상이 한결 더 올라갈 텐데……!”
이게 그 정도인가?
하긴, SSS급 마법이다.
마법에 종사하는 자들이라면, 저런 반응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마법을 보고 감탄하는 게 아니다.
바로 눈앞.
콰가가가가!
두 브레스의 기운이 온전히 발사될 준비를 마쳤다는 듯 꿈틀거리고 있었으니까.
파앗!
먼저 준비된 거대마룡이 하늘을 향해 도약했다.
- 흐으으읍!
몸만큼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벌린 아가리를 아란발론 쪽으로 들이밀었다.
이윽고.
콰가가가가!
빛이 굴절되어, 공간이 일그러질 정도의 검은 기운이 아래로 쏘아졌다.
아름답고, 빠른 빔이었다.
물론, 아란발론 측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발을 바닥에 박아 몸체를 고정한 후, 하늘을 바라봤다.
마치 미사일을 요격하는 대공 장비처럼 굳건하게 고개를 돌려 조준했다.
그리고.
쿠아아아아!
아란발론의 입에서도 엄청난 기운의 갈색 광선이 폭사했다.
두 브레스의 충돌!
삽시간 벌어진 사태에 팀원들이 입을 벌렸다.
“어어, 허어?”
“……미친.”
말이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그저 정적 속에서, 거칠게 부딪혀 힘겨루기하는 검은색과 갈색의 기운을 볼 뿐이었다.
그 기세는 엄청났다.
벼락이라도 치듯.
1초에 수십 번의 빛이 번쩍였으며.
주변의 모든 물질이 녹아내렸다.
이미 바닥 또한 사라져, 허공에 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태.
“음.”
블라디미르가 말했다.
“이거 브레스를 피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닌데?”
그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얼마나 깊게 파였는지,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내려가 있는 지면(地面).
“30분 지나면, 다 같이 추락사잖아?”
그의 외침에 내가 입을 열었다.
“블라디미르 씨.”
“앙?”
“기력 좀 남았어요?”
“음, 조금 있긴 하지만, 왜?”
“30분 후에, 여기 있는 인원들. 전부 용의 몸체 위로 올릴 수 있을까요?”
“뭐?”
블라디미르가 눈을 크게 떴다.
“저 위로?”
“예, 우리 용 잡으러 들어온 거잖아요. 용을 잡으려면 용 앞으로 가야죠.”
“맞지. 그건 맞지만.”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휴, 요즘 들어 느끼는 건데, 팀장이랑 무슨 얘기하기가 무섭다니까. 도대체가. 어떤 말이 튀어나올지 알 수가 없으니.”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죠. 용 사냥에 함께 참여한 순간, 우리 모두 또라이라는 걸 인정한 거예요.”
지금 보니, 그렇다.
미쳐야 미친다고.
미친놈이 되지 않으면, 랭커가 될 수 없다.
그만큼 빡센 과정을 거쳐 올라온 헌터들이 비로소 랭커라 불리는 거였다.
“쩝, 틀린 말은 아니네. 우리 다 미친놈이지. 아니, 이런 상황을 겪고 미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가능하다는 거예요?”
“암, 그래. 가능이야 하지. 그래, 어디로 올라설까? 아란발론? 거대마룡?”
블라디미르가 포기한 듯 중얼거렸다.
“잠시만요.”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두 용의 부딪힘.
그 처참한 전투 현장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아직도 부딪히고 있는 두 기운 사이에서.
그 단단하던 용의 피부가 흉측하게 녹아내리고 있었으며.
두 존재 모두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 크아아아아!
- 죽어라!
상태들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느 한쪽에 손을 들어주자면.
‘거대마룡의 우세.’
기운 자체도 아직 거대마룡 쪽에 여유가 있었으며.
표정 역시 아란발론이 더 버거워 보였다.
우리가 용아병들을 정리해 줬던 그 스노우볼이.
여기까지 굴러와 눈덩이처럼 불어난 탓이었다.
“친우여, 정말 싸울 건가? 저 말도 안 되는 존재랑?”
지켜보던 심판창이 옆으로 다가왔다.
저벅저벅.
신기하게 바닥이 없었지만, 바닥이 느껴졌다.
바닥이 아닌 공간을 밟고 있달까?
“그럼 당연히 싸워야지요. 왜요, 이제 살짝 겁나요?”
“겁난다기보다는…….”
그가 우직하게 창을 들었다.
“흥분되는군. 사람이 아닌 용을 상대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우리 성공하면 다 같이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는 건가요?”
올레나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용이 존재하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무슨 알자마자 용잡이라니.”
블라디미르도 피식 웃었다.
내 말을 듣던 팀원들 하나, 둘.
무기를 들어 올렸다.
저런 존재를 보고도, 다들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믿고 전의를 불태웠다.
“…….”
두 용의 싸움을 묵묵히 지켜보며, 각자 결의를 굳게 다지는 팀원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남은 시간 – 00:03:00]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3분이었다.
이미 두 용의 브레스는 끊긴 상황이었고.
서로 모든 기운을 퍼부은 상태에서도.
쾅! 콰아앙! 쾅! 쾅!
끊임없이 서로를 몰아세우며, 전투하고 있었다.
꿀꺽.
나는 침을 삼켰다.
동시에 무기를 창으로 바꾸었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
“슬슬 준비하시죠.”
동시에.
나는 비장의 스킬을 사용했다.
가장 힘들 때.
가장 위태로울 때.
나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나의 스승.
[스킬, ‘만술의 가르침’(S급)을 사용합니다.]
[기력 20을 사용합니다.]
[‘만술의 달인’이 등장합니다.]
“이 미친 자식아…….”
등장하자마자 상황을 파악한 노인이 중얼거렸다.
“어째 불러낼 때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인 게냐?”
어허, 어르신!
말은 그렇게 해도 다 압니다.
어르신도 이런 게 재밌잖아요?
나는 씩 웃었다.
긴장감이 온몸을 장악했지만.
그냥 즐기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최악의 상황이라 해봐야, 죽음일 텐데.
이미 최근 1년간 목숨을 건 스릴감은 수없이 겪어봤다.
익숙했다.
나는 노인을 바라봤다.
“저 이번에도 살아남을 수 있겠죠?”
“쯧,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쩌냐? 네놈을 아주 예뻐해 마지않는 하늘을 향해 물어야지.”
“살아남는다는 말이로군요.”
“……신기한 놈.”
천운(天運).
그래, 진짜 천운이란 게 있다면.
하늘은 언제나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남은 시간 - 00:00:30]
[주의!]
[‘스페이스 세퍼레이션’(SSS급)이 끝나갑니다.]
[다시 연결되는 공간에 주의해 주세요!]
“블라디미르.”
“어어, 팀장! 걱정하지 마. 준비됐으니까. 저 검은 용 등 위로 이동하면 되는 거지?”
블라디미르가 씩 웃으며.
지팡이를 엑스자로 휘둘렀다.
나는 다른 팀원들을 돌아다봤다.
“다들. 준비됐죠?”
[남은 시간 – 00:00:20]
“네, 팀장님. 준비됐습니다.”
“최선을 다해보지. 혹여, 죽는다고 하더라도. 그대와 함께해서 영광이었다.
“어디 한번 해보자고요.”
지금까지가 구경이었다면.
이제는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는 단계.
[남은 시간 – 00:00:10]
남은 시간은 고작 10초.
긴장감 섞인 적막이 공간을 장악했다.
[남은 시간 – 00:00:05]
이제.
그 끔찍한 용을 눈앞에 두고.
진짜 싸워야 할 단계.
[남은 시간 – 00:00:04]
이번엔.
나 혼자 싸우는 게 아니다.
나 혼자 해결하는 게 아니다.
[남은 시간 – 00:00:03]
팀원들과 함께.
동기들과 함께.
[남은 시간 - 00:00:02]
[남은 시간 – 00:00:01]
‘같이.’
협동해서 깨는 거다.
[남은 시간 – 00:00:00]
마침내 시간이 영을 가리켰다.
나는 온몸에 힘을 주었다.
[‘스페이스 세퍼레이션’(SSS급)이 종료됩니다.]
두쿵!
벌어졌던 공간이 다시 붙기 시작했다.
느껴졌던 이질감이 다시 사라졌고.
후우웅!
거센 바람이 뺨을 두들겼다.
두 용의 엄청난 기세가 다시 온 피부로 느껴졌다.
[분리된 공간을 다시 잇습니다.]
드디어 오른 본 전투의 막!
“블라디미르!”
“오케이!”
그 순간, 블라디미르 로디긴의 공간술이 펼쳐졌고.
번쩍!
세상이 점멸했다.
* * *
눈을 떴다.
바로 아래에는 검은 바닥이 보였다.
아니, 바닥이 아니다.
거대마룡의 피부다.
탓!
나와 동료들은 그 위에 가뿐히 착지했다.
과연, 블라디미르.
그의 공간술은 정밀하고도 정교했다.
비록 짧은 거리였다고는 하지만.
이 많은 인원을 정확히 거대마룡 위로 옮겨놓다니!
“팀장! 성공했다!”
“좋아요!”
나는 외쳤다.
“다들 비늘을 붙잡아요!”
바로 떨어질 일은 없었다.
거대마룡 자체가 너무도 거대해서.
어차피 옆으로 굴러봐야 거대마룡 위거든.
하지만 그렇다고 멀뚱히 서 있으면 안 된다.
거대마룡은 지금도 아란발론과 격돌 중이니까.
“각자 최선을 다해서! 이놈을 쓰러뜨리는 겁니다!”
우웅!
나는 창을 휘둘렀다.
동시에 다시 등장한 스켈레톤 군단들.
허공에 등장한 뼈다귀들이 거대마룡 등 위로 착지했다.
- 으음?
등에서 이물감을 느꼈는지.
한창 싸우던 거대마룡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 뭐냐. 네놈들. 아까 뒈진 거 아니었나? 기척 하나 없던 놈들이 어떻게?
“그건 네가 알 바 없지.”
콰득! 콰드득!
그 순간.
스켈레톤들이 일제히 거대마룡에게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팀원들 역시 가진 모든 기력을 활용해 스킬을 퍼부었다.
나 역시 온 힘을 다해 창을 내려찍었다.
힘을 떠나.
무기가 더 날카로운 덕분인지.
푸욱!
질긴 감각이지만 그래도 공격이 들어가긴 했다.
- 이 약은 놈들! 아까는 날 돕더니. 이제는 저놈의 편을 드는 거냐?
“……아까 팀 먹을 땐 아무 소리 안 하고 냠냠 잘 받아먹더니. 이 정돈 당연히 예측했던 거 아냐?”
나는 더욱 창을 깊게 찔러넣었다.
- 시끄럽다! 내 아무리 다쳤어도 너희의 공격 따위. 따끔거리지도 않을 정도이니…… 크흡?
악을 지르던 거대마룡이 돌연 말을 멈추었다.
“허허, 벌써 효과가 드는 모양이다.”
옆에서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씩 웃었다.
“그래도 도와줘서 다행이네요, 이 녀석.”
그렇다.
나는 모기처럼.
창을 통해 찔러낸 틈 사이로.
독무(毒霧)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주륵! 주륵!
사실 도와달라 요청하지도 않았다.
그저 거대한 먹이를 발견함에, 신나서 달려가는 걸 통제하지 않았을 뿐.
그래그래, 독무야.
어서 들어가서.
맛있게 먹어치우도록 해라.
- 이, 이놈이! 내 몸에 무슨 짓을 하는 게냐?
거대마룡이 포효했다.
당황한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