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33화
드래곤 슬레이어 (6)
콰가가가!
끔찍한 기운이 용의 입가에 모여들었다.
기운이 압축되고 또 압축되었다.
용의 심장에서 솟구친 기운이 강한 중력으로 주변 모든 것들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과연.’
꿀꺽, 내가 침을 삼켰다.
‘고대 마법’(SSS급)의 보호를 받을 땐 몰랐는데.
용의 브레스를 정면에서 바라보니, 그 위용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지금은 아까보다 할 만해.’
태청심법이 말해줬다.
아까 두 용이 부딪힐 때 사용했던 브레스가 전력의 90% 정도였다면.
지금은 전력의 5% 정도?
‘일단 최대한 막아보자, 그러다 안 되면…….’
난 혹시 몰라 ‘소원을 들어주는 주문서’(S급)까지 꺼내 입에 물었다.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뜯을 생각이었다.
“어이, 미친놈들……. 지금 뭐 하는 거냐! 그러지 마라!”
뒤에서 블라디미르가 그의 앞을 꽁꽁 틀어막는 멤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설마 저걸 막겠다고? 그냥 마법도 아닌 용의 브레스를? 난 괜찮으니까, 그냥 두고 튀라니……!”
“시끄러워요.”
블라디미르 옆에 서 있던 묘이 하나가 지혈용 천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은 것은 그때였다.
“당신만 멋있는 사람이고 우린 멋있는 사람이 되면 안 되는 거예요?”
“읍읍! 으으읍!”
“그런 걸 우린 내로남불이라고 해요.”
좋다.
지금은 누군가의 말을 들을 여유가 없었다.
쿠구구구!
곧 쏟아질 브레스에 집중하기도 벅찼기 때문.
“블라디미르의 말이 맞다. 팀장이 내 친우인 것처럼, 이곳에 있는 자들 또한 나의 친우.”
후우웅!
심판창이 창을 휘둘렀다.
“미약한 힘이겠지만, 브레스를 쳐내는 데 보태도록 하지.”
“나 역시.”
그런 그의 옆으로 중년, 막시밀리언이 섰다.
그는 칼을 들고 진지한 표정으로 읊조렸다.
“최고향검(崔高向劍), 오의(五意) 제오검(第五劍) 심검(心劍)을 준비하겠네.”
“말만 들어도 화려한 스킬명이네요.”
올레나가 빙긋 웃었다.
“전 워터 실드를 중첩으로 거는 것밖에 못 도와드려요.”
좋았다.
심판창도, 막시도, 올레나도.
뭐가 됐든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야 할 상황이었다.
쿠웅!
그런 내 앞으로 뼈사와 그의 수하들이 겹겹이 쌓였고.
화르륵!
나 역시 붉은 방패를 커다랗게 만들어, 몸을 지탱했다.
쿠구구구구!
[막대한 힘이 몰아칩니다!]
[이동속도가 감소합니다.]
[기력이 지속적으로 하락합니다.]
엄청난 압력에 숨이 턱 막혀왔다.
“젠장!”
“버텨요!”
“기운을 쳐내라!”
요동치는 기운에, 서 있는 것조차 힘들 만큼의 강풍이 불어닥쳤다.
‘아아.’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제 곧.
저 응축된 갈색 기운이 우리를 향해 폭사한다.
거대한 기운의 폭풍이 우리를 집어삼킨다.
콰앙! 콰아앙!
태양이와 엘드린을 비롯한 스켈레톤들이 계속해서 공격을 가하고 있었지만.
그리하여 아란발론 또한 심한 타격을 입고 있었지만.
용의 머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직.
우리를 향해.
고정시키고 있었다.
“흐아아압! 와라!”
내가 온몸에 힘을 준 채 기합을 내지를 때였다.
우우웅!
들고 있던 방패가 살짝 진동했다.
[화(火)의 정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
나는 눈을 부릅떴다.
평소 응답하지도 않던 화(火)의 정수가 갑자기?
정수가 응답했던 순간은 딱 둘이다.
처음 무기를 획득했을 때.
그리고 ‘고대 마법’(SSS급)이라는 존재를 만났을 때.
[화(火)의 정수가 한숨을 쉽니다.]
[고작, 그 정도로는 턱도 없다고 합니다.]
[99.99%의 확률로 녹아서 없어질 거라 합니다.]
“……뭐?”
이 정도로 못 막는다고?
바로 죽는다고?
화(火)의 정수는 대단한 존재다.
신살(神殺)급인 데다가 SSS급인 ‘고대 마법’조차 고개를 조아리는 존재.
그런 자가 말할 정도면 확실히 신빙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오른손으로 재빨리 입에 물고 있던 종이를 집었다.
빠르게 뜯어야 한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곧 있으면 용의 브레스가 쏟아진다.
[화(火)의 정수가 도와주냐고 묻습니다.]
“……?”
도와준다고?
움찔!
주문서를 뜯으려던 내 손이 멈칫했다.
[화(火)의 정수가 간만에 만난 마음에 드는 귀여운 생명체를 잃기 싫다고 합니다.]
[다만, 주의해야 합니다.]
[화(火)의 정수의 힘은 엄청납니다. 도움을 받기는커녕, 목소리만 들어도 육체에 무리가 갈 수 있습니다.]
[화(火)의 정수의 의지를 메시지로 전해 들을 수밖에 없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래……?”
갑자기 왜 답 없던 녀석이 나를 도와주겠다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마음이 변해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최근 내 행보가 마음에 들어서일 수도 있겠지.
신은 변덕쟁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파츠츠츳!
이 와중에도 브레스는 한층 더 강해지고 있었다.
빨리 결정해야 한다.
‘궁금하긴 하단 말이지.’
화(火)의 정수의 도움을 받으면 주문서를 하나 아낄 수 있다.
또한, 궁금했던 이 무기의 힌트를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다.
SSS급 ‘고대 마법’이 공손하게 대가리를 박았던 그 힘을 잠깐이나마 느낄 수 있다.
“좋아요!”
나는 방패를 더욱 강하게 아래로 박으며 외쳤다.
육체에 무리가 간다고 했지?
상관없어.
그건 어차피 저 브레스를 맞아도 마찬가지거든.
“도와주세요. 뭔 짓을 해도 좋으니, 저 빌어먹을 용 좀 어떻게 해주세요!”
[화(火)의 정수가 웃습니다.]
[화(火)의 정수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두쿵!
그때였다.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과 함께.
화르르륵!
시야가 벌게졌다.
아니, 시야가 벌게진 게 아니라.
세상이 벌게져 있었다.
동시에.
파직!
머리에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정신을 잃었다.
* * *
탐욕룡, 아란발론.
그는 이 상황이 지겨웠다.
날파리처럼 달려드는 스켈레톤도.
아무리 벗어나려 해봐도 끈질기게 머리를 파고드는 독도.
환멸이 날 지경이었다.
‘신물이 나는구나. 이제 그만 끝내야지.’
콰드드득!
마침내, 심장에 있는 모든 기운을 뽑아냈다.
이걸 통해 전방의 건방진 인간들을 단박에 녹여내면 상황은 끝.
‘어떤 수를 가져와 봐라. 이 브레스를 막아낼 수 있나.’
아무리 힘이 없다 해도.
기력의 일부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해도.
브레스는 브레스였다.
지상 최강의 종족인 용족만이 가진 최후의 공격 수단.
저런 하등 생명체들이 막을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주제를 모르고 까분 대가를 치르거라.’
두쿵!
결국, 아란발론의 입에서 갈색 빔이 뿜어져 나왔다.
엄청난 기운이 터지고 터지는 걸 반복하며, 앞으로 쏘아졌다.
아니, 정확히는 쏘아지는 그 순간이었다.
화륵!
- ……!?
엄청난 마력의 유동을 느낀 아란발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는 순간.
화륵! 화르륵!
자신이 열심히 모았던 기운이.
마지막까지 뽑아냈던 브레스가.
엄청난 열기와 함께 증발함을 느꼈다.
아란발론은 입을 벌린 그대로 굳었다.
- 불……?
용은 전방에 있는 무시 못 할 화(火) 속성 기운을 느끼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아란발론의 머리가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브레스를 증발시키는 불이라고?’
자신도 불을 다룬다.
고열의 불, 끈질긴 불, 심지어 지옥 불이라 부르는 헬파이어까지.
마법을 통해 사용하지 않아본 게 없다.
‘하지만.’
아란발론은 자신의 눈앞에 벌어진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
그가 알고 있는 불 중에, 브레스를…….
그것도 몇 초 만에 증발시켜 버릴 정도의 불은 없었으니까.
- 이게 무…….
아란발론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짐승과 같은 기세를 펼쳐낸 주동훈이 비호처럼 덮쳐왔기 때문.
화륵!
살 타는 소리와 함께.
- 끄아아아아아아!
온 신경으로 느껴지는 작열통에 아란발론이 새된 고성을 질렀다.
또한, 눈을 부릅떴다.
도대체 이게 무슨 힘인가.
단언컨대, 이 세상에 존재한 이후로 경험해 보지 못한 막대한 힘이었다.
- 뭐냐……. 누, 누구야! 넌 누구야!
아란발론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털었다.
그도 그럴 게.
저 기운은 절대 조금 전 봤었던 열등한 종족, 인간이 아니다.
그럴 수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지금 자신을 벌레 보듯 바라보고 있는 존재는…….
용족 따위는 우습게 여길 만큼, 상위 차원에 있는 존재.
콰드드득!
아래 있던 대지가 쩍 갈라지며 시퍼런 불이 솟구쳤다.
그뿐이랴?
하늘이 깨지며, 그 틈 사이로 노란 불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눈앞 인간들과 뼈다귀들은 멀쩡하다.
이 세상에.
오직 자신만이 작열통을 느끼는 것 같았다.
마치 불의 신.
아니, 불의 악마를 마주하는 것 같은 느낌.
- 미, 미친.
제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콰앙!
주동훈이 휘두르는 창의 기운이 아란발론의 복부로 폭사했다.
- 커허어억!
막으려 해도.
이미 힘이 없었다.
가죽도 물렁물렁해져 있었고, 상처도 너무 벌어졌다.
그렇기에, 저런 간단한 휘두름에도 살이 시원스레 찢어졌다.
푸확!
피가 솟구쳤다.
- 끄아아아아악!
아란발론이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하지만.
주동훈의 움직임은 가차 없었다.
마치,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는 듯.
하늘로 솟구친 후.
화르르륵!
불로 이루어진 창을 내려찍었다.
용의 날개를 향해!
콰가가강!
용의 허리를 향해! 복부를 향해!
- 끄아아아악!
온몸이 들썩였다.
뇌에서는 독무가 더욱 심하게 날뛰었다.
신나게 활개 쳤다.
우두두둑!
반동에 다리뼈가 박살이 났고, 척주가 마비됐다.
중심을 잡을 수 없는 아란발론이 당연하게 쓰러지려 할 찰나.
쾅!
어느덧 아래로 이동한 주동훈의 기운이 위로 솟구쳐 올랐다.
미지의 기운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쾅! 쾅! 쾅!
숨이 끊어져도.
온 장기를 터뜨리고, 살과 뼈를 갈아도.
계속해서 때릴 것처럼 사방팔방에서 기운을 뿜어 타격했다.
쾅! 쾅! 쾅! 쾅!
그리고 이내.
스슷!
주동훈의 기운이 일시에 사라졌다.
덩달아 몸도 스르르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 ……!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아란발론의 머리에 물음표가 떴다.
뭐지?
왜 갑자기 그 폭발적인 기운이 사라진 거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라진 건가?’
아란발론은 간절히 바랐다.
제발 그런 것이길……!
이 모든 것이 꿈이며, 저 인간이 감당하지 못할 기운을 끌어 쓴 대가로 증발해 버린 것이길……!
하지만.
- ……!
아란발론의 표정이 일시에 멍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자신의 머리 위에 나타난 사내가 불의 창으로 자신의 정수리를 찍어버리고 있었으니까.
푸욱!
- ……빌어먹을!
찍힌 창에서 감당하기 힘든 불의 기운이 온몸을 녹이기 시작했다.
온 시야가 염화(炎火)로 새하얗게 물들었다.
‘아아.’
아란발론이 속으로 탄식했다.
결국, 이렇게 가는 건가.
그 침입자 용의 말이 맞았나?
나는 오늘.
이곳에서 소멸할 운명이었던 건가?
- …….
그의 몸이 녹아내렸다.
부들거리며 막아보려 해봐도, 대자연의 기운을 막을 순 없었다.
그 압도적인 거력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
뜨거웠다.
온 신경이 뜨겁다고 울부짖어도 피할 곳이 없었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무력함.
- 도대체…… 뭐냐, 이 힘은.
궁금했다.
살면서 만났던 존재 중 가장 강력했기에.
죽을 걸 알면서도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화륵!
마지막 불꽃과 함께 아란발론은 비명을 채 지르지도 못한 채, 녹아내렸다.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녹아내렸다.
테마2 시련의 주인이자.
아란발론 왕국의 국왕.
탐욕룡, 아란발론의 최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