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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138화 (138/368)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38화

1단계

델라일라의 홀로그램 방.

그곳의 분위기는 이전과 사뭇 달랐다.

우선은 인구수부터 차이가 났다.

원래는 델라일라와 뤼카만 있었다면, 지금은…….

“아니, 델라일라 님! 세상에 팀명이 [드래곤 슬레이어]라니요? 우리 기수 때는 [머드스키퍼스]라고 지어주셔놓고!”

“머드스키퍼스(Mudskippers)? 망둥어들인가? 크하하. 하긴, 그러고 보니 자네 얼굴이 망둥어를 닮긴 했지! 자네 동기들도 그런감?”

“뭐라구요?!”

시끌벅적.

뤼카를 제외한 아홉 명의 심사위원들이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았다.

“오오, 그래도 이번 팀명은 그럴듯한데? 멋있으면서도 일리 있잖아.”

“크, 이번 기수는 무조건 기록 갱신하려나?”

“난 ‘한다’에 한 표.”

“난 ‘못 한다’에 한 표! 이번 기수가 남다른 건 인정하지만, 테마3는 또 지금까지와는 아예 다른 개념이거든.”

누군가는 서로 농을 던지고.

또 누군가는 앞으로의 결과를 추측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모두가 너무 신이 나 주체를 못 하는 감정을 온몸으로 풍기고 있다는 것.

그들은 앞으로 펼쳐질 ‘드래곤 슬레이어’ 팀의 행보를.

두 눈으로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고 있었다.

“델라일라 님.”

중앙에서 팔짱 낀 채, 거대한 홀로그램을 바라보고 있는 델라일라의 옆으로.

뤼카가 다가갔다.

“예, 뤼카. 말씀하세요.”

“괜찮으십니까?”

구경 판이 벌어진 심사위원들도 흥분했다지만.

사실상 용을 잡을 당시 가장 흥분했던 건 델라일라였다.

- 진짜로 용을 잡는다고? 저걸?

- 말도 안 돼. 용을 불러내는 것도 이상한데, 그걸 또 진짜 잡아? 저 사람 뭘까요?

- 뤼카……. 보셨어요? 용의 뼈를 자기 스켈레톤에 이식시켰어요! 저런 게 된다고요?

- 세상에! 용이 쓰러졌어! 저 불은 또 뭐야!

입을 떡 벌린 채.

1초도 쉬지 않고 모든 순간을 지켜봤던 그녀.

사실, 선임 심사위원이라 해봤자.

시련 몇 번 참여해서 구경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델라일라는 옛 음지 시절부터.

무려 10년 이상의 기간을 헌터들을 성장시켜왔던 사람이다.

‘왜, 희생해서 헌터들을 키우려고 하시는진 잘 모르겠지만.’

뤼카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뺨이 붉게 올라와 있는 게, 아직 흥분의 여파가 남아 있는 그녀.

그만큼, 그만큼 이번 기수가 말이 안 된다는 거겠지.

“괜찮냐고요? 예, 괜찮지요.”

델라일라가 즐거운 듯 후후 웃었다.

“단언컨대 제 헌터 인생 통틀어, 가장 재미있고 짜릿한 순간이에요. 뤼카.”

“그렇습니까?”

“저길 보세요.”

그녀가 오른쪽 홀로그램을 가리키자.

우우웅!

그것이 즉각 커졌다.

그리고 그곳에는 지금껏 시련을 겪어왔던 기수들의 팀명과 점수가 순서대로 적혀 있었다.

[1위 ‘크레이지’, 73:05:32 (4단계)]

[2위 ‘라이더’, 70:45:05 (3단계)]

[3위 ‘라이온즈’, 68:50:40 (3단계)]

[4위 ‘머드스키퍼스’, 66:23:10 (3단계)]

[5위 ‘마검사’, 65:23:10 (3단계)]

…….

역대 1등은 바로 ‘크레이지’ 팀.

무려 테마3에서 73시간 이상을 버텼고.

유일하게 4단계를 경험한 팀이었다.

“그거 알아요? 지금의 광전사, 장대웅이 저 기록을 깼을 당시…… 제가 얼마나 흥분했었는지.”

델라일라가 턱을 쓰다듬었다.

“근데 지금은 그 정도가 아니에요. 으음, 이걸 뭐라 표현해야 할까요? 그냥…… 지금은 저 역시 하나의 관중이 된 느낌? 그래서 더 기대돼요.”

“주동훈이 4단계까지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뤼카 역시 테마3를 직접 체험해 봤다.

그의 기록은 역대 5위.

다른 팀과는 달리, 혼자였기에.

팀명도 그냥 마검사였다.

“저로선 3단계도 말도 안 되게 힘들었던 터라, 4단계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일 정도입니다.”

3단계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보상을 챙길 수 있다.

그만큼 어려운 난이도의 개연성이기 때문.

“그래서 더 기대되는 거예요.”

델라일라가 홀로그램 기록을 다시 한번 응시하며, 미소 지었다.

“그는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

시련의 주최자인 델라일라의 모습도.

구경하는 여타 심사위원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 * *

스윽, 스윽!

나는 계속 사방을 응시했다.

아예 전용 무기도 간편한 팔찌로 뒤바꾼 다음 집중했다.

퉁! 퉁! 투웅!

고개를 숙이거나 허리를 비틀 필요도 없다.

그저 다가오는 방향을 예측해서 걸음걸이로 피한다.

한걸음에 하나씩.

몸에 힘을 빼고, 부드럽게 움직인다.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일에, 불필요하게 힘을 뺄 필요는 없었다.

“젠장.”

블라디미르가 외쳤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야? 일단, 이 빌어먹을 구체들 피하는 건 일도 아니지만.”

아직 1단계라 그런지.

‘구체’는 굉장히 느리다.

문제는 지루하다는 것.

벌써 1시간 이상이 흐른 것 같은데, 별다를 거 없이 계속 단순 반복만 할 뿐이었다.

“사실, 이게 여간 집중력이 소모되는 게 아니거든. 혹여나 잠깐 정신 팔면 바로 탈락이잖아?”

그의 말이 맞다.

피하는 것보다는 집중력을 유지하는 게 더 어렵다.

말 그대로 깜빡 졸기라도 하면, 그대로 ‘구체’가 몸에 닿을 테니까.

“으음.”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나를 중앙으로 오른쪽에는 심판창과 블라디미르, 막시가 있고.

왼쪽에 카푸, 올레나, 묘이 하나가 있었다.

그중 올레나와 눈이 마주치자.

“우린 아직 할 만해요!”

그녀가 외쳤다.

비교적 육체 능력이 부족한 여자들은 아예 지팡이를 내려놓은 채, 땀을 흘리며 피하고 있었다.

‘사실.’

시련이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마다 능력이 다르고.

그중 육체에 특화된 사람이 있지만, 기술에 특화된 사람도 있을 텐데.

이런 ‘총알 피하기’식 게임은 육체 능력을 갖춘 사람에게 유리한 거 아닌가?

“너무 부담가지지 마세요.”

내가 중얼거렸다.

“어차피 최후 한 명이 살아남아도 팀 전체가 보상받는 개념인 것 같으니까요.”

심판창과 막시, 그리고 내가 캐리해야 하는 판일까?

‘다른 게 더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열심히 피하자.

퉁! 투웅! 퉁!

‘구체’는 계속 쏘아졌다.

우리는 계속해서 피했다.

카푸가 가진 아이템으로도 장치라는 것만 확인할 수 있을 뿐, 그 이상 정보를 뽑아낼 순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퉁! 투웅!

1시간, 2시간, 3시간.

계속해서 흘렀다.

“허억, 허억!”

조용했던 공간에 점점 습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가쁜 숨소리가 들려왔다.

반복되는 유산소 운동에 체력이 점차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투웅! 퉁!

“하, 빌어먹을.”

블라디미르가 욕설을 내뱉었다.

“슬슬 피곤한데. 누가 좀 재미있는 이야기 좀 해봐.”

퉁! 투웅!

“거기 여자들은 많이 힘들어 보이니, 계속 집중하고. 일단, 우리도 나름 이제 동기잖아? 좀 더 딥한 자기소개들 해보는 거 어때? 이견 있는 사람?”

퉁! 퉁! 퉁!

다들 말없이 움직였다.

블라디미르가 슬쩍 날 바라보자,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나쁠 거 없지.

지루함도 덜고.

동료들에 대해 알 수도 있고.

“좋아. 뭐, 다들 동의하는 걸로 안다?”

블라디미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뒤, 말을 이었다.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난 러시아 마피아 출신이야. 뭐, 마피아라 하면 인식이 좀 시궁창이긴 한데, 너무 그럴 필욘 없어. 저기 사악한 놈들은 다 심판해 버린다는 창웨이도 가만히 있잖아?”

“그렇지.”

심판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넌 여타 살인마들과 다른 느낌이니까. 최근 이유 없는 살해를 한 적도 없고.”

“물론.”

그가 웃었다.

“사실 말이 마피아지, 마피아들 때려잡는 마피아였어. 어렸을 적 마피아 새끼들한테 부모를 잃고 나서. 그게 삶의 목표가 됐거든.”

“…….”

“근데 웃긴 게 뭔 줄 알아? 파면 팔수록 해괴하더라고. 마피아가 조국이고, 조국이 마피아 같은 그런 느낌? 알고 보니 고위급 간부들이랑 다 연결되어 있더라고. 그땐 얼마나 역겹던지. 하여간 사회의 폐기물 쓰레기 같은 놈들. 랭커 되면 걔네들부터 정리할 거야.”

그렇게 블라디미르 소개 타임이 시작됐다.

과거에 있었던 사건.

공간술을 활용해 성장해온 과정.

랭커들과 친분을 다지게 된 계기까지.

“아, 간혹가다 나보고 엘리트 집안 아니냐 묻는 사람 있거든? 꼭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래. 블라디미르면 고위층 아니냐고. 근데 씨발, 블라디미르는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흔한 이름이야. 옆 동네 개새끼 이름이 블라디미르인 것도 본 적 있다니까?”

흠.

우리나라의 철수와 영희 같은 느낌인가?

그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욕설과 사담을 섞어가며, 쉬지 않고 떠들었다.

“우리 집단 이름이 뭐냐면 ‘무법자’야 ‘무법자’. 들어본 적 있어? 없겠지. 아직 랭커도 아닌 내가 수장이니까. 근데 기다려. 나중에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칠 집단으로 남아줄 테니까.”

퉁! 투웅! 퉁!

덕분에 우리는 좀 더 수월하게 피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그의 언변이 지루하지 않았고.

사람을 집중시키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

‘그것도 능력이지.’

세상, 그 누가.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10시간 이상을 쓸 수 있을까.

퉁! 퉁!

그렇다.

벌써 시간이 흐르고 흘러.

하루를 앞두고 있었다.

근육이 살짝 땅겨 왔으며, 나도 처음으로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그래도 졸리진 않았다.

움직이면서도 꾸준히 태청심법을 운용해 피로를 풀어냈기 때문.

‘사실.’

무기 만들 때에 비하면, 아직 버틸만한 수준이지.

그러던 어느 순간.

“어?”

내 눈에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아까부터 말없이 ‘구체’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왜, 팀장. 뭐 있어?”

“잠시만요.”

나는 눈을 집중했다.

그리고 ‘구체’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살펴봤다.

‘분명 빨라졌어.’

구체의 속도가 처음과 달랐다.

확연히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만큼 천천히 증가하고 있었던 거 같다.

‘게다가.’

각자에게 날아가는 ‘구체’의 속도가 제각각이다.

요컨대.

묘이 하나에게 날아가는 ‘구체’보다 나에게 날아오는 ‘구체’의 속도가 더 빨랐다.

백이면 백.

다 그랬다.

‘뭐지?’

왜 다른 거지?

나는 다른 구체들도 자세히 살폈다.

똑같았다.

올레나나 카푸, 묘이 하나에게 날아가는 구체의 속도는 우리보다 느렸고.

나나 심판창에게 날아오는 속도는 평균 이상으로 빨라져 있었다.

“이거 설마…….”

내가 중얼거렸다.

“이 구체 사람에 따라, 속도가 다른 걸까요?”

“그게 무슨 소리야? 어?”

“음?”

그제야 다른 팀원들의 눈썹도 올라갔다.

알기 전엔 보이지 않았지만.

아니까 잘 보이는 것.

“진짜네?”

“진짜로군. 나한테 다가오는 구슬이 더 빨라.”

아아.

그런 거였나?

만약, 구슬의 속도가 헌터에 따라 상대적인 거라면…….

“맞네요. 생각해 보면 그게 맞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블라디미르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맞는데?”

“이 던전이요. 뤼카가 말했잖아요. 이제부터 던전이 우릴 단련시킬 거라고.”

- 지금까지의 테마가 랭커 후보를 뽑는 과정이었다면. 앞으로는 본격적인 랭커가 되는 과정.

“혹시 이 던전. 지금 우릴 훈련시키고 있는 거 아닐까요? 각자 한계만큼, 속도를 올리면서.”

랭커를 육성하겠다는 델라일라가 바보도 아니고.

힘겹게 던전을 만들어서, 총알 피하기 게임만 시킨다?

그것 자체가 시간 낭비요, 넌센스였다.

“한계만큼?”

“예, 만약 누구든 노력하면 버틸 수 있게끔. 누구든 답을 찾을 수 있게끔 설정된 거라면?”

올레나가 답을 찾으면 심판창보다 오래 버틸 것이요.

묘이 하나가 답을 찾으면 나보다 오래 버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답이 뭘까?

회피? 반응 속도? 끈기? 집중력?

내가 눈살을 찌푸릴 찰나.

철컥!

그 순간, 벽면이 일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24시간이 지났습니다.]

[2단계로 전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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