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40화
3단계
“허억, 허억!”
“허억, 케엑, 케켁!”
화살이 뚝 끊긴 공간 속.
거친 숨소리와 가쁜 숨소리가 교차했다.
일곱 명이 서 있기에는 나름 넓은 공간임에도 주변은 마치 사우나처럼 달구어져 있었다.
“끝났어? 끝난 거야? 허억, 허억!”
“……이제 3단계 전환이라는데요? 몇 단계까지 있는 걸까요?”
땀을 흘리지 않은 인원이 없었다.
모두가 정수리 끝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고.
모두가 어지러운지 비틀거리고 있었다.
“전 다리에,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요.”
“난 사실 두 시간 전부터 쥐 난 상태였어.”
“근데 어떻게……?”
“씨발, 강제로 풀었지 뭐. 쥐 났다고 화살에 맞을 순 없잖아? 허억, 헉!”
혼자만 힘든 게 아니었다.
모두가 죽을 만큼 힘들었다.
쿵! 쿵! 쿵!
나 역시 심장 박동이 멈추지 않고 뛰는 중.
‘그래도 다들.’
대단했다.
사실, 포기하려면 포기할 수 있었다.
어차피 누구 하나만 통과하면 되는 게임이니, 잘하는 사람에게 넘길 수 있었다.
심판창이라든가, 나라든가.
‘하지만.’
그 누구 하나 포기하는 자가 없었다.
힘을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에도, 또 누군가는 질질 짜면서도 버텨냈다.
‘다들.’
아는 거다.
승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결국 단련이 중요하다는 걸.
랭커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랭커가 되느냐도 중요하다는 걸.
아니면.
적어도 우리끼리 쪽팔리기 싫어서일 수도 있겠지.
도전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건 좀 멋대가리 없으니까?
“후.”
나는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무시하고 짧게 호흡을 뱉어냈다.
그리고 그 순간.
“다들 밑!”
카푸가 외쳤다.
“젠장! 밑을 조심해라!”
“밑?”
그게 무슨 말이냐 물어볼 시간도 없었다.
콰르르르륵!
하얀 바닥이 바둑판 모양으로 금이 가더니, 기형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뭐, 뭐야!”
어떤 바닥은 360도 회전하고, 또 어떤 바닥은 위아래로 요동친다.
그리고 그 밑 틈에는.
“씨발…….”
블라디미르가 어이없다는 듯, 욕을 내뱉었다.
“진짜 가지가지 하는구나. 이건 용암이잖아?”
얼마나 뜨거운지.
암석이 액체로 녹아 끈적하게 흐른다.
곳곳에서는 태양의 플레어라도 되는 듯 뜨거운 불줄기가 분출된다.
“어쩐지 아까부터 덥더라니, 우리 열기 때문이 아니라 저 용암 때문이었어?”
정확히는 둘 다겠지.
어쨌든.
“움직여요!”
내가 외침과 동시에.
쐐애애액!
기존 옆 벽면에서는 또다시 화살이 쏘아졌다.
근데 그 속도가.
2단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적어도 두 배?
아니, 2.5배 정도는 더 증가한 듯싶었다.
“……환장하겠군.”
그 침착한 심판창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니 말 다 했지.
“훈.”
제자리에서 이리저리 회피하던 카푸가 눈을 깜빡거렸다.
내가 카푸를 바라봤다.
“미안하다. 난 여기가 한계인 것 같다.”
“카푸?”
그가 발을 헛디딤과 동시에.
푸욱!
심장에 화살이 꽂혔다.
그의 몸이 바닥 30m 정도 아래 위치한 용암지대에 떨어지다가, 스슷! 하고 사라졌다.
[팀원 중 하나가 ‘화살’에 몸이 닿았습니다.]
[해당 팀원은 탈락입니다.]
“젠장!”
3단계가 시작함과 동시에 팀원 하나가 탈락했다.
이번 단계가 얼마나 만만치 않은지 잘 보여주는 대목.
[스킬, ‘만술의 가르침’(S급)을 사용합니다.]
[기력 20을 사용합니다.]
[‘만술의 달인’이 등장합니다.]
24시간이 흘렀으니.
나는 곧바로 노인을 소환했다.
‘어르신.’
“오냐.”
‘이거 어찌해야 합니……까?’
콰르륵! 쐐액!
난이도가 급증했다.
화살 피하는 것도 미치겠는데, 이제 디딤발까지 주의해야 한다.
신경 쓸 곳이 늘어난 거다.
“허.”
노인이 헛웃음을 쳤다.
“속도랑 환경을 보아하니, 이번엔 거의 한계의 100%로군?”
‘100%……요?’
그렇다면.
지금 내가 움직이고 있는 순간이, 딱 내 한계만큼이란 말인가?
‘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보다 더 빠르게, 이보다 더 효율적으로 움직일 방법을 나는 모르겠으니까.
“주변을 봐라, 이놈아. 다른 애들에게 쏘아지는 거에 비하면, 네놈은 무슨 화살 폭풍우가 쏟아지는 것 같지 않으냐. 클클, 장하다. 네놈이 이들 중 한계가 가장 높다는 거겠지.”
으드득!
내가 이빨을 갈았다.
“흐읍!”
곧바로 상반신을 움직여 화살 하나를 피해낸 후, 요동치는 발판으로 이동했다.
쐐에엑!
그 뒤로 아슬아슬하게 화살 하나가 스쳐 갔다.
‘그래, 어쨌든.’
한계가 100%라는 건.
어떻게든 집중하면 피할 방법이 있다는 거겠지?
“이 녀석아, 아무래도 이 시련은 기술 싸움이 아닌 듯싶다.”
그런 나를 보며 노인이 중얼거렸다.
“하긴, 말이 안 되지. 아무리 천하의 기재라 해도 며칠 만에 보법이나 회피술을 마스터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화살이 무수히 쏟아졌다.
심장박동수가 이전과는 차원이 달라졌다.
쿵쿵쿵쿵쿵!
그야말로 무진장 뛰었다.
“크, 크흡!”
나는 계속 움직이면서도 힘겹게 숨을 뱉어내려 했다.
이건…….
잠깐이나마 정신줄을 놓아버리는 순간 탈락이었다.
“이 녀석아. 이건 내가 해줄 조언이 없다. 이건 기술 싸움이 아니라 정신력 싸움이야. 끝없이 몰아치는 한계의 끝자락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느냐의 싸움.”
“크하아압!”
내가 포효했다.
고통스러웠다.
이전의 고통이 뼈가 으스러지고 혈관이 터지는 그런 고통이었다면.
지금은 좀 다른 고통이었다.
심장이 끝없이 산소를 갈구하는.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 휴식을 요구하는 고통.
“이놈아, 힘드냐?”
예, 힘듭니다.
힘들어 뒈지겠습니다.
“힘들 수밖에 없지. 언제든 포기할 수 있으니까, 포기하면 편해지니까.”
“으으…… 읍.”
“허어, 대단히 무식하면서도 효과 있는 훈련법이로다. 기회는 한 번이면서 이렇게 혹독하게 몰아치다니. 심지어 바닥 밑에 용암을 둠으로써 체력적 한계를 더욱 빠르게 느끼도록 하고 있어. 대단한걸?”
아니, 어르신.
그런 말 말고 좀 도움 되는 말 없습니까?
쐐애액!
뺨 끝 1㎝ 정도 살짝 스치는 화살을 피하며 주변을 돌아다봤다.
“꺄아악!”
이미 묘이 하나는 발을 헛디딘 채, 용암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팀원 중 하나가 ‘용암’에 몸이 닿았습니다.]
[해당 팀원은 탈락입니다.]
“훈, 젠장! 힘내야 해요! 멀리서나마 응원할게요!”
올레나 역시 털썩 주저앉은 채.
푸숙!
허벅지에 화살이 꽂혔다.
동시에 스슷! 하며 사라진다.
[팀원 중 하나가 ‘화살’에 몸이 닿았습니다.]
[해당 팀원은 탈락입니다.]
이제 남은 인원은 총 넷.
나, 심판창, 블라디미르, 그리고 막시.
‘아니.’
나는 눈을 부릅떴다.
‘그저 정신력만을 테스트하는 건 아닐 거야.’
카푸가, 묘이 하나가, 올레나가.
우리보다 정신력이 떨어지기에 먼저 탈락한 건 아닐 터.
‘발판.’
나는 바닥을 주시했다.
육체 능력과 육체 감각이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리 정신력이 뛰어나다 해도 버틸 수 없는 구조다.
‘이건 정신력이 아닌, 기술이다.’
기술로 승부해야 한다.
“흐음?”
노인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네 녀석, 그 와중에도 내 ‘천하제일무적보법’(天下第一無敵步法)을 계속 사용하고 있었구나. 좀 어설프긴 하지만 굉장한 응용력이다. 이런 환경에서 적용하기 여간 쉽지 않을 텐데.”
어려운 환경에도.
노인이 알려준 방식을 적용한다.
상황에 맞추어, 몸이 응용하고 개발한다.
“클클, 과연……. ‘태청공재만성대법’(太淸工材萬成大法)이 효과를 보이고 있어. 정신머리는 모르겠어도, 육체 하나만큼은 천재의 반열에 올라서고 있음이 분명하다.”
저기요, 어르신.
저 힘들어 죽겠거든요?
혼자 신나서 구경하시지 마시고, 좀 뭐라도 도움을……!
“흐읍?!”
쐐액!
또 아슬아슬하게 화살 하나가 지나갔다.
이번엔 진짜 위험했다.
잠깐만 집중력이 흐트러졌어도, 골로 갈 뻔.
“힘내라, 이놈아! 더는 말하지 않으마. 여기선 내가 아니라 교육의 신이 와도 조언 못 해줘. 그저 버티거라.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노인도 내 상황을 인지했는지, 조용히 팔짱 낀 채.
내 고행을 지켜봤다.
힘들었다.
쐐액! 쐐애액!
무진장 힘들었다.
쓔애액! 드르르륵!
노인이 사라지고, 시간이 흐를 동안.
나는 기어코 집중을 끊지 않았다.
마치, S급 무기를 만들 그 당시처럼 회피에 몰입했다.
1시간, 2시간, 3시간.
그리고 4시간째.
“나도 이만 가보겠네. 더는…… 무리야.”
중년, 막시밀리언이 탈락했다.
[팀원 중 하나가 ‘용암’에 몸이 닿았습니다.]
[해당 팀원은 탈락입니다.]
“씨이벌.”
블라디미르가 외쳤다.
“결국, 우리 셋이야? 헉, 커억!”
“나도 곧 한계다. 블라디.”
창까지 집어 던진 채,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심판창이 중얼거렸다.
“한계는 애초부터 온 놈이었고. 크허업! 어이! 팀장!”
“예?”
“이 정도면 된 거 아냐? 헉, 허억! 솔직히 이 정도면 많이 버틴 거 같은데?!”
절레절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입 밖으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아직 더 버틸 수 있는 거다.
한계까지만 몰아붙이는 거지, 한계를 초월한 건 아닌 거다.
“헥, 헥! 진짜 독한 인간이라니……까.”
시간이 계속 흘렀다.
“……!”
간혹가다 농을 던지던 블라디미르의 입술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심판창 역시 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상황은 나 역시 마찬가지.
‘지금쯤 끝나야 하는 거 아닌가?’
체감상인지, 느낌상인지.
아니면 신체 리듬상인지 몰라도.
24시간은 아까 훨씬 넘어선 것 같은데도 끝이 나지 않는다.
내가 헛웃음을 지을 찰나.
“팀장, 난 버틸 만큼 버텼…… 크윽!”
“친우여, 힘내라. 크윽, 역시 그대는 대단하구나. 이겨보려 했는데 더는 안 되겠군.”
블라디미르와 심판창 역시 가슴에 화살을 맞았다.
스슷! 소리와 함께 두 동료가 사라지는데도.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움직이는 것뿐.
‘아아.’
몽롱했다.
점점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꼈다.
피하는 게 나인지, 아니면 화살이 나를 피하는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
삐끗!
잠깐 근육이 움찔거림과 동시에 바닥에 나뒹굴었음에도.
“흐아압!”
다시 벌떡 일어나 걸음을 내디뎠다.
그 옆으로 화살 수십 개가 지나간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기존보다 화살의 속도가 많이 느려져 있다는 것.
현재 내가 움직일 수 있는 한계가 딱 그 정도라는 거겠지.
“씨이발.”
그게 더 개 같았다.
기분이 더러웠다.
마치 이 공간이 날 시험하고 테스트하는 것 같은 느낌?
“더 해봐, 이 개자식들아!”
오기가 생겼다.
나에게 날아오는 화살과 요동치는 바닥이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이게 여태껏 중에 가장 힘들지 않으냐고.
버티기 힘들지 않으냐고.
‘개뿔!’
나는 태양창을 상대하며 몸을 수십 번이고 태웠다.
독무를 받으며, 온몸이 녹아내리는 경험도 했고, 화(火)의 정수라는 괴물도 몸에 잠시나마 받아봤다.
‘고작.’
고작 화살 따위로 내 한계를 가늠할 순 없다.
해봐라.
더 해봐라.
나를 시험하려 했던 놈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줄 테니.
퉤!
아래 용암에 침을 내뱉었다.
그 사이로 더운 숨이 샜다.
폐로 뜨거운 열기가 들어왔다.
이미 심장은 뛰고 뛰어 감각이 없었다.
뇌가 아는 거겠지.
고통스럽다는 신호를 보내봐야 이 몸의 주인이 말을 듣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발과 허리를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러기를 몇 분.
“크하악, 하악! 하악!”
[24시간이 지났습니다.]
마침내.
끝까지 3단계를 버텨낼 수 있었다.
그리고.
[4단계로 전환됩니다.]
당연히도.
그게 끝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