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145화 (145/368)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45화

섀도우 셰퍼드 킹 (1)

“후.”

나는 심호흡을 내뱉은 뒤, 주변을 살폈다.

보름이 비추는 정도의 밝기, 끈적한 어둠으로 잠식된 바닥. 그리고 끝없이 솟아나는 검은 연기.

‘이곳은.’

절대적으로 암습에 유리한 공간이었다.

셰퍼드들이 본연의 힘을 제한 없이 뽑아낼 수 있는 곳.

태양창에겐 사막과 같은.

또한, 엘드린에겐 숲과 같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환경 탓을 하지 않았다.

핑계 대지 않고, 재빠르게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흐읍!”

본능적으로 오른손의 창을 한 바퀴 휙 돌렸다.

후웅!

어깨가 뻐근해짐과 동시에.

퍼어어억!

묵직한 타격감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 그르르르……!

한 대 맞고 튕겨 나간 놈이 다시 눈을 희번덕거렸다.

입에서는 진득한 침이 질질 흘렀다.

‘이제는 깨갱 소리도 안 내는구나.’

벌써 이곳에 들어온 지 2시간 정도가 지났다.

초반 등장하던 놈들보다 수준이 확연히 올랐는지, 셰퍼드들의 투기도 더욱 거세졌다.

- 크르륵! 컹컹!

마치, 원수라도 되듯.

맞아도 물러서지 않았으며, 적응하면 적응할수록 더욱 강렬하게 몰아쳤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이놈아, 뒤!”

옆에서 조언해 주는 노인이 있다는 것.

[만술의 가르침]을 업그레이드한 것은 확실히 신의 한 수였다.

다른 스킬로 당장 더 세지는 것보다.

미래를 생각해, 내 성장 속도를 증폭시키는 선택.

스윽!

나는 고개를 꺾어, 내 뒤통수로 날아오는 셰퍼드의 일격을 피해냈다.

“이 멍멍이들은 아까보다 속도가 더 빠른 대신, 발톱이 뭉툭하다.”

노인이 말했다.

“몇몇 공격은 흘리지 말고 쳐내도 좋다는 뜻이니라. 마냥 피하는 게 정답은 아니야.”

“알겠습니다, 어르신.”

솔직히.

셰퍼드의 종류가 아무리 많아봐야 10종 정도일 줄 알았다.

‘근데.’

녀석의 종류는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기본적인 시커먼 셰퍼드부터.

점박이 셰퍼드, 세모 귀 셰퍼드, 털북숭이 셰퍼드, 대형 셰퍼드 등등.

심지어 웰시코기형 셰퍼드까지.

지금까지 만난 것만 세어봐도 벌써 20종이 넘었다.

또한, 녀석들의 특징이 다 제각각이었다.

[투명화] 스킬을 사용하는 놈, 빠른 놈, 딜이 센 놈 등등.

‘그렇기에 훈련하기 딱 좋지.’

테마3가 반복 훈련을 통한 단련이라면, 테마4는 실전 경험이었다.

모름지기 실전 경험의 장점이란, 다양한 상대를 통해 경험할 수 있다는 것.

물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

“망할.”

지금의 나는 죽을 맛이었다.

퍼억!

갈비에 셰퍼드의 뭉툭한 발톱이 들어왔다.

“크윽!”

아릿한 통증과 함께, 몸의 중심이 무너졌다.

이미 얻어맞은 상황이라, 버티는 것보다는 한 바퀴 뒹구는 게 낫다.

구르면서 충격을 흘려내는 거다.

“흐읏! 뒈지게 아프네.”

개 주제에 몸 전체가 근육 덩어리라 그런지 아픈 것도 눈물 쏙 빠지게 아팠다.

물론, 내 고통 내성 스킬은 S급.

이 정도는 맨정신으로 버틸 수 있다.

“이리 와, 이 개새끼야.”

한 대 맞았는데 그냥 넘어갈 수 있겠는가?

중심을 잡고 일어서자마자, 달려오는 녀석의 얼굴을 창으로 후려쳤다.

퍼억!

소리와 함께 튕겨 나가는 걸.

나는 그대로 달려 나가 녀석의 목을 향해 창을 찔렀다.

푸욱!

제대로 들어갔는지, 셰퍼드가 힘없이 엎어졌다.

그대로 두어 번 더 찔렀다.

푸욱! 푹!

피가 왈칵 튀었다.

코끝에 퍼지는 혈향과 함께 스르릇!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는 녀석.

“하아, 하아.”

이제 슬슬 벅찼다.

새로운 셰퍼드들이 참전하고 참전해, 이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일행들은 잘하고 있으려나?’

싸우다 보니, 먼 거리를 이동했는지.

일행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고개를 꺾으려는 순간.

“이 녀석아, 네 상황에나 집중하거라. 네 친구들은 저 멀리서 네 뼈다귀들이랑 같이 나름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으니.”

“……그렇습니까?”

“그것보다! 왼쪽!”

슈욱!

순간, 왼쪽 시야가 번뜩인 것은 그때였다.

‘뭐야?’

심장이 철렁였다.

태청심법에 잡히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의 발톱이 내 허리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

푸확!

피가 솟구쳤다.

“정신 안 차리면, 네가 잡고 싶다던 그 끝판왕 만나기도 전에 탈락하겠다, 이놈아.”

머리에 피가 몰렸다.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 크르르르.

자세를 낮추고, 앞을 보니.

새로 등장한 세 마리의 셰퍼드가 울부짖고 있었다.

‘강자다.’

그것도 온몸에 털이 솟을 만큼의 강자.

아니, 개니까 강견이라 해야 하나?

이거 원.

이런 걸 정말 잡으라고 만들어 놓은 건지.

혀를 차며, 창을 늘어뜨릴 찰나.

“주군.”

오른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양이? 언제 왔어?”

“이제부터 주군 쪽으로 합류하겠습니다.”

태양이의 창이 환하게 번쩍였다.

“하긴, 그림자에 파묻힌 놈들을 상대하는 데에는 태양창만 한 자가 없을 거예요. 주인님.”

왼쪽에서도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료들을 도와서 싸우다가, 내 쪽으로 붙은 듯했다.

딱 둘만.

그게 태양이의 판단이겠지.

“다른 녀석들은 주군의 동료들을 계속 도우라고 명령해 뒀습니다.”

“잘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적절한 합류였다.

저 세 마리는 지금의 나 혼자서는 무리거든.

물론, 화(火)의 정수나 수(水)의 정수를 사용하면 쉽게 상대할 수 있겠지만.

“…….”

이들은 응답이 없었다.

실제로 불러봐도 묵묵부답.

내가 추측할 수 있는 건.

‘용급의 괴물이 아니면 신경조차 안 쓴다는 거겠지.’

고작 셰퍼드 따위에 흥미조차 못 느끼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들은 그래도 되는, 그럴 만한 존재들이었다.

“자.”

어쨌든.

나도 전력 보충이 된 것 같으니, 다시 시작해 볼까?

“덤벼라, 멍멍이들아.”

- 크르르, 컹!

다시 싸움이 시작됐다.

이른바 개싸움.

나는 창을 들고 달려들었다.

휘둘러 찔렀다.

그에 맞추어.

태양이와 엘드린도 각자의 무기를 휘둘렀다.

‘태양연격’(太陽連擊).

‘월광낙하’(月光落下).

창끝이 연달아 태양 빛을 뿌리며, 번쩍였다.

허공 위로 쏘아진 화살은 달빛이 되어 떨어졌다.

본연의 힘을 절반 이상 되찾은 절대자들의 기술.

또한 몸은 용의 뼈라, 웬만한 공격에 부서지지도 않는다.

- 크르르?

달려들던 셰퍼드들이 당황했다.

눈빛에 경악의 감정이 물듦과 동시에, 거리를 벌리고 경계했다.

‘허.’

나 혼자 있을 땐 죽자고 덤비더니.

역시 저들도 일반적인 짐승일 뿐인가?

타앗!

몸을 허공에 띄운 내가 있는 힘껏 창을 내질렀다.

셰퍼드 한 마리가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그 공간에.

푸욱!

엘드린의 화살이 날아가 꽂혔다.

“나이스!”

수하들의 합류로 전투의 양상이 기울었다.

물론, 녀석들도 피하고만 있는 건 아니었다.

스윽! 투웅!

피하고 막고.

후웅! 퍼억!

내가 휘둘러 때리고.

그렇게 수십 합을 겨뤘을 때야, 한차례 교전이 끝났다.

- 크르르…….

“후욱, 후욱!”

녀석과 우리는 서로 물러서서 휴식했다.

셰퍼드나 나나 체력이 있는 생명체라.

호흡을 조절해 가며, 싸워야 했다.

물론, 뼈다귀들은 아니었지만.

“주군, 괜찮으십니까?”

“그냥 일반적인 몬스터인 줄 알았는데, 제법이에요, 주인님. 우리 세계의 드레이크 정도는 되겠는걸요?”

그래도 나를 위해 물러서 정비했다.

“…….”

나는 말을 아낀 채, 녀석들을 응시했다.

몸에 긴장을 풀지 않고 빈틈을 찾고 있을 찰나.

- 훈, 들리나?

누군가의 목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카푸?”

- 잘 연결되었군. 통신 스킬이다, 훈.

헐.

이런 스킬도 사용할 수 있었던 거야?

완전 유틸 끝판왕이네, 카푸.

- 너무 멀리 가는 것 같기에, 소매에 장치를 붙여뒀어. 우린 따닥따닥 붙어 있어서 나름 버틸 만한데, 훈은 괜찮은 건가?

카푸가 음성으로 물었다.

“……괜찮다고 말하기엔 좀 뭐하죠?”

내가 대답하자, 다시 음성이 흘러나왔다.

- 하긴, 훈보다는 우리가 문제지. 훈은 항상 알아서 잘해왔으니까.

뒤를 살짝 돌아보았다.

일행들이 보이지 않는다.

싸우다 보니.

먼 시야에 닿지 않을 정도로 많은 거리를 이동한 것이다.

- 여기는 점점 더 격렬해지고 있다. 그래도 한 마리 한 마리 잡으면서 점수를 쌓고 있어. 너무 걱정하지는 마라. 최대한 많이 잡아서 이번엔 우리도 기여도를 쌓을 테니까. 그리고. 후우…….

카푸의 목소리에 호흡이 벅찬 게.

나름 치열한 교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 같았다.

- 전할 것만 빠르게 전하겠다. 내 탐색 정보에 의하면, 이놈들은 무음(無音)을 추구한다. 말 그대로 소리 없이 움직이는 것. 그것이 이 종족이 생각하는 최고의 경지야. 그러니 항상 조심해라, 훈. 더 강한 셰퍼드일수록, 소리가 안 들릴 거다.

“소리, 오케이. 알겠어요.”

치직.

통신이 급하게 끊어졌다.

거리가 되다 보니, 나름 힘겹게 연결한 듯했다.

“카푸, 그놈도 참 대단하구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인이 중얼거렸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 통신까지 신경 쓰고. 굳이 네놈을 위해 자잘한 정보까지 전달하려 하다니. 세심한 녀석이야.”

“그러게요.”

확실히 인물은 인물이었다.

“제가 인복이 있나 봐요? 그냥 테마2 때 무작위로 찍었던 사람들인데. 각자 자기 위치에서 잘해주니.”

“끌끌. 네놈이 좋은 녀석이니, 저들도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 거겠지.”

엥.

이 어르신.

요즘 들어 나한테 왜 이리 칭찬이시지?

소환 시간이 12시간으로 바뀐 이후부터, 나에게 굉장히 호의적인 느낌이다.

“……어르신이 그런 말 하니까 살짝 오글거리는데요?”

“시끄럽다, 이놈아.”

노인이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거 아느냐?”

“뭐요?”

“그 셰퍼드의 끝판왕. 지금 이 근처에 있느니라.”

“……?!”

“흥미가 돋는 거겠지. 그것도 꽤나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있어.”

소름이 돋는 말이었다.

가까이에 있는 것도 모자라, 지켜보고 있다고?

나는 아무런 기척조차 못 느끼고 있는데?

‘어딘데요?’

나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왜, 찾아가서 바로 싸우기라도 하게? 아서라. 그냥 저 눈앞에 셰퍼드나 잡거라. 지금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알겠다. 네놈은 죽었다 깨어나도 저놈 못 잡아. 절대.”

“…….”

그 정도라고?

“네놈도 알지 않느냐. 나는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보이면, 도전을 말리진 않는다.”

“그랬었죠.”

“하지만, 저놈은 아직 무리야. 무엇보다도 이곳은 딱 저놈을 위한 공간이다. 원래도 기척 없는 놈을 더 꼭꼭 숨겨놨어.”

“…….”

이거 오기가 생기는데.

- 크르릉!

앞에는 세 마리의 셰퍼드가 다시 전투를 준비한다.

앞으로 또 어떤 셰퍼드가 있을지 모른다.

아마 더 강력한 녀석들도 존재하겠지.

‘원래라면.’

차례차례 잡고 넘어가야 옳다.

그래야 기여도도 더 많이 쌓을 수 있고, 그게 팀에 도움도 더 될 테니까.

하지만, 왜일까.

시간 낭비하기 싫었다.

이대로 차례차례 올라가다가는, 끝판왕이란 놈을 만나기 전에 탈락할 것 같은 느낌?

‘그건 싫어.’

이왕 시작한 거.

내가 이기지 못할 상대라 해도.

그 모습 정도는 보고 싶었다.

‘그래서 어딘데요?’

“……이놈이. 지금껏 뭘 들었느냐.”

‘어르신, 이번엔 뭐, 목숨 거는 것도 아니잖아요? 최악의 경우라 봐야 탈락일 텐데. 전 그놈이 어떻게 생긴 놈인지 봐야겠습니다.’

“후.”

노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네놈더러 스켈레톤 킹이라 하느냐. 네놈은 고집 킹이다, 고집 킹.”

‘감사합니다.’

“징한 놈. 그래, 네 말대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건 아니니.”

노인이 손을 들어 한곳 방향을 가리켰다.

“정확히 네놈 정면을 기준으로 왼쪽 30도 500m 거리에 있느니라.”

오케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