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50화
나중에 다시 볼 날이 온다면
[스킬 : 무음(無音)]
[등급 : S]
[효과1 : 움직임이 은밀해집니다.]
[효과2 : 그림자 속에서 이동속도가 증가합니다.]
[효과3 : 그림자 속에서 보행 시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얼마 만에 새로 얻어보는 스킬일까.
무음(無音)은 패시브였다.
기본적으로 움직임이 암살자의 그것처럼 은밀해졌으며.
또한, 움직일 때마다 몸에서 묵빛의 그림자가 일렁이는 게 느껴졌다.
“녀석.”
노인이 대견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알려주지 않아도 척척 해결하는구나.”
‘에이, 어찌 그러겠습니까. 어르신 덕도 크죠.’
스슷!
내가 발을 내디뎠다.
확실히 움직임이 부드러워졌다.
내가 방금 전에 잡은 셰퍼드 로드.
애칭, [십자 멍멍이]는 이곳에서 킹을 제외하고는 적수가 없는 강자.
그런 자를 이겼으니.
이제는 온전히 내 세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디 또 놀려봐라. 멍멍이들아.”
재빨리 달려가 창을 휘둘렀다.
후웅!
셰퍼드 하나가 당황한 듯 발을 헛디디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너냐?
아까 내 뒤통수 그렇게 때리고 튄 놈이?
곧바로 복수다.
퍼억!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수박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 깨갱!
손에 느껴지는 묵직한 느낌과 함께, 한 마리가 허무하게 사라졌다.
- 크릉!
- 크르르, 컹컹!
남은 셰퍼드들이 경각심을 가진 듯, 진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상한 소리를 내며 놀리지도 않았다.
“…….”
녀석들이 뿜어내는 마력들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과연.’
하나하나가 로드 급은 아니었지만.
이전이었다면 절대 무시 못 할 기운임에는 틀림없었다.
하지만.
스으윽!
나는 천천히 창을 들어 올렸다.
‘이제.’
나에게도 좀 냄새가 난다.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랭커들에게서 나는 냄새가 마침내 내 몸에서도 흘러나오고 있다.
“많이 발전했다. 이제야 공간을 장악할 줄 아는구나.”
‘아직 멀었지요.’
투웅!
바닥을 가볍게 차올랐다.
이제 눈을 감지 않아도 됐다.
눈을 뜨고 사방을 응시했다.
‘나답게.’
녀석들의 그림자가 섀도우 셰퍼드 족의 일상에서 나온 거라면.
내 그림자 역시 나의 일상에서 나온다.
나만의 그림자를 얻은 순간부터, 누군가를 흉내 낼 필요는 없었다.
- 커컹!
달리는 정면으로 한 마리가 다가왔다.
굉장히 빠르고 은밀했지만.
‘십자 멍멍이에 비하면 별로.’
녀석의 공격을 가볍게 흘렸다.
그다음.
푸욱!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할 것처럼, 창날이 셰퍼드의 아랫배를 쑤시고 들어갔다.
스스슷!
녀석이 먼지처럼 사라졌다.
“좋구나.”
노인은 이제 허공에 양반다리를 한 채, 완전히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편해 보여서, 부러울 정도였다.
“그렇지, 그 한 수로 이미 기선제압은 끝났느니라. 저 녀석들은 이미 전투에서 졌다. 앞으로는 그저 끌려다니기만 할 거야. 그게 바로 ‘장악’의 힘. 그뿐만이 아니다.”
위에서 노인이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저들이 가지고 있었던 최고의 장점이 바로 속도와 은밀함이지 않더냐. 근데 이제 그게 먹히지 않고 있다. 네 녀석이 훨씬 더 빠르고, 훨씬 더 은밀하니까.”
맞다.
이제는 내가 더 빠르다.
반응속도도 내가 더 우위에 있으며, 은밀함마저 갖췄다.
또한, 제일 큰 변화는 바로 이제 녀석들의 움직임이 보인다는 것. 느껴진다는 것.
‘물론.’
저들이 날 죽일 목적으로 달려든다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
이 모든 것은 킹이 날 해치지 말라 명했기에 가능한 일.
‘간다.’
나는 끊임없이 창을 휘둘렀다.
앞으로 잡아야 할 셰퍼드들이 널리고 널렸다.
저것들이 다 점수.
이제는 테마를 마무리해야 했다.
* * *
“허어어.”
“허어어어…….”
홀로그램 방.
심사위원들이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그 공기에는 안도의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쓰으벌! 결국, 산 건가?”
“아니죠, 역시 살아 있던 거죠. 그는 주동훈이니까요.”
“후, 어떻게 된 거지?”
아홉 심사위원의 손에는 땀이 한가득 차 있었다.
주동훈이 계속 이동해, 어둑어둑해서 잘 보이지도 않던 공간까지 들어갔을 때는 얼마나 놀랐던가.
그림자의 영역.
섀도우 셰퍼드 킹의 공간은 그들도 처음 보는 종류의 것이었다.
선임 심사위원 뤼카도.
나름 좋은 성적의 머드스키퍼스도.
킹이나 로드는커녕.
그 주변 셰퍼드 간부들 자체를 만나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냥 완전히 컴컴했어.’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도 않는 공간. 빛이 하나도 들지 않는 것 같아 보였는데.’
‘저기서 주동훈은 도대체 뭘 본 거고, 뭘 한 걸까?’
일렁이는 그림자의 영역에 닿는 순간.
주동훈은 말 그대로 사라졌었다.
그것도 꽤나 긴 시간 동안.
“흐아, 쫄깃했다고오오.”
플로아의 이마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왜냐.
그녀는 주동훈 팀이 30만을 넘긴다는 데, 거의 올인에 가까운 돈을 걸었다.
만약, 주동훈이 그 그림자 속에서 사라졌다가 그대로 탈락했다면?
‘그야말로 최악이지.’
이미 페널티란 페널티는 다 먹었는데.
거기다 돈까지 잃는다면…….
“으으.”
파즈즈즉!
끔찍하다는 듯 튀기는 전류가 그녀의 심정을 대변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지.
[1위 ‘드래곤 슬레이어’, 145,000점.]
[2위 ‘크레이지’, 120,500점.]
[3위 ‘마검사’, 100,300점.]
[4위 ‘라이더’, 96,000점.]
[5위 ‘라이온즈’, 95,500점.]
…….
이미 ‘드래곤 슬레이어’는 1위를 탈환한 상태였다.
지금도 주동훈 제외 팀원들이 열심히 사냥하고 있기 때문.
하지만, 그 사실로 놀라는 심사위원은 없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저 팀이 30만을 넘기느냐.
9명 중.
둘은 언더에 베팅했고, 일곱은 오바에 베팅했다.
“가즈아아!”
플로아가 흥분해서 외쳤다.
죽은 줄 알았던 주동훈이 살아 돌아왔다.
공간을 집어삼켰던 그림자가 걷혔고.
다시 셰퍼드들과 대치 중인 주동훈의 모습이 드러났다.
창 하나를 늘어뜨린 채, 섀도우 셰퍼드의 포위를 오시하는 그의 모습.
‘씨발, 멋지잖아!’
플로아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그라면.
자신의 재산을 조금이나마 불려줄 것만 같았다.
“달려, 주인! 다 조져 버리라고!”
그녀의 외침과 함께, 홀로그램 속 주동훈이 창이 유려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바바밧!
거의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달려드는 셰퍼드들을.
퍼버버벅!
주동훈 역시 비슷한 속도로 쳐낸다.
- 키깅!
- 케게게겡!
호수 중앙부터 퍼지는 물결처럼.
주동훈 주변 그림자들이 한 번에 우당탕 떨어져 나갔다.
그런 셰퍼드들을.
스스슷!
주동훈이 직접 움직여 잡는다.
하나하나 처리한다.
[1위 ‘드래곤 슬레이어’, 145,000점.]
안 그래도 압도적인 점수가.
[1위 ‘드래곤 슬레이어’, 186,000점.]
- 깨갱!
개 잡는 소리와 함께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1위 ‘드래곤 슬레이어’, 217,000점.]
그 올라가는 속도가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미쳤어! 미스터 주! 그래서 주인인가? 미쳤다고! 으아아!”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소리 지르는 플로아.
그녀는 내면으로부터 솟구치는 희열을 온몸으로 느꼈다.
다른 심사위원들도 입을 떡 벌린 채,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러던 중.
“그나저나 주동훈…… 좀 변한 것 같은데?”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또 누군가가 답했다.
“같은데가 아니라 변했잖아! 저기 봐, 몸에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다고!”
“그러네, 속도도 빨라지고. 마치 저 셰퍼드들이랑 동족이 된 것 같은…….”
“미친……? 설마 그새 저 기술들을 다 흡수한 거야?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황당했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완전히 다른 그 모습에 모조리 넋이 나가버렸다.
“독무에 이어서 이제는 셰퍼드까지 잡숴버린 거야?”
“와, 저게 무슨 랭커 후보냐고.”
“나도 저 때 저렇게 먹었어야 했는데…….”
누군가는 감탄하고.
또 누군가는 아쉬움을 토해냈다.
후보였을 당시, 주동훈처럼 못 했음을 아쉬워했다.
“지랄.”
플로아가 중얼거렸다.
‘저게 하고 싶다고 되는 건 줄 알아?’
그녀는 직접 주동훈과 겨뤄봐서 알았다.
‘저놈은.’
무언가 특별한 게 있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다.
비록 그사이에 꼼수가 끼어 있을지라도.
‘애초에 델라일라의 시련 조건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거니까.’
그것 또한 실력이었고, 지혜였다.
퍼억! 퍽! 퍼어억!
셰퍼드들이 저렇게 하나하나 줄어감에도.
살기(殺氣)를 드러내지 않는 것 또한 그가 만들어낸 지혜이겠지.
퍼어억! 퍽!
그렇게 시간이 흘러갈수록.
누군가의 표정은 밝아졌고.
또, 누군가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1위 ‘드래곤 슬레이어’, 379,000점.]
왜냐.
이미 30만을 넘겨 버렸거든.
넘긴 것도 모자라, 점수는 계속해서 치고 올라가고 있었다.
고작 기준점을 30만으로 잡았냐는 듯이.
“크하하하하! 믿고 있었다고!”
플로아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녀에게 있어,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이래 첫 득(得)이었다.
* * *
퍼어억!
- 깨갱!
마지막 한 마리의 셰퍼드가 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후우, 후우!”
나는 호흡을 거칠게 내뱉었다.
전신에는 땀이 흘렀고, 심장은 계속해서 펌프질했다.
‘아아, 드디어.’
끝나버렸다.
킹을 제외한 모든 셰퍼드들을 혼자 다 처리해 낸 것이다.
“후.”
나는 거칠게 나오는 호흡을 짧은 숨과 함께 끊어냈다.
그러고는 창을 갈무리하며.
사라진 그림자를 향해 조용히 묵념했다.
왜 모를까.
그들이 봐주었다는 걸.
킹은 약속을 지켰다.
끝까지 날 해치지 않았고, 모든 셰퍼드들을 점수로 주었지.
더군다나 무음(無音)의 경지까지 알려주었다.
“…….”
나는 창을 다시 늘어뜨린 채, 전방을 바라봤다.
거대한 묵빛의 개가 날 부드럽게 응시하고 있었다.
- 이 정도면 된 것 같군. 아직 부족한 부분들이 보이나, 그걸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건 이제 너의 몫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정도면 인정한다.
- 그럼 이제. 약속을 지켜주겠는가?
섀도우 셰퍼드 킹이 조심스레 물었다.
“물론이지.”
어차피 지금도 싸우면 내가 진다.
모든 게 저 셰퍼드 킹의 오해로부터 나온 이득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고마웠다.”
정말 고마웠다.
더 챙겨줄 수 있는 게 있으면 다 퍼주고 싶을 정도로 고마웠다.
- 고맙긴.
하지만.
녀석의 표정 역시 나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 내가 더 고맙다. 덕분에…… 네 덕분에.
목소리도 평소와 다르게 떨리고 있었다.
- 셀 수도 없을 만큼 기다려왔던 그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외계의 존재여, 정말 진심으로 고맙다!
흥분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녀석을 위해 스르릇! 창을 없앴다.
정확히는 팔찌로 변형시켰다.
눈을 감은 채, 가슴을 내밀었다.
- 혹여, 나중에 다시 볼 날이 온다면…….
그 순간.
푸욱!
가슴에 들어오는 차가운 이물감이 느껴졌다.
- 그때는 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으마.
시야가 어지럽게 흐트러졌다.
“…….”
다른 동료들도 마무리하러 갔음일까?
묵빛 개가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띠링!]
[‘드래곤 슬레이어’ 팀이 ‘테마4’의 시련을 마쳤습니다.]
반가운 메시지와 함께.
[‘테마5’의 장소로 이동합니다.]
[생존 인원 : 7명]
[보상을 산정합니다.]
흐트러진 시야가 점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