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59화
충성 서약
‘으음.’
눈을 뜨자 새로운 공간이 보였다.
마치 기억 재현을 썼을 때처럼 몽롱한 환경.
그곳에서 두 유령이 나를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쿠웅!
먼저, 젊을 적 모습을 한 뼈사가 방패를 내리찍었다.
“그렇군. 내 평생의 한을 풀어준 게 당신이었어.”
이전에 봤던 애송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지금의 젊은 모습과는 달리.
기억 속에서 보았던 노년의 카덴과 엇비슷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그래, 나로 인해 강처럼 흘렀던 피를, 산처럼 쌓였던 시신을…… 그 끔찍한 기억을 당신이 지워주었어……. 아아, 당신의 백골(白骨) 부대로 인해, 최소한의 희생으로 모두가 만족하는 평화를 찾을 수 있었지.”
그가 절절하게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결심했는지.
“나. 카덴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투욱.
무릎이 닿는 즉시 고개를 숙였다.
디펜스 마스터(Defence Master).
항간에는 드래곤의 브레스까지 막을 수 있다는 어마무시한 존재.
막강하던 천년 제국 앞에 감히 세력을 일구고, 자신의 사상을 전파했던 영웅의 무릎은 과연 무거웠다.
“죽기 전 내 마음속 응어리를 녹여준 은인께, 평생을 다해 충성을 바칠 것을 약속하겠다.”
쿠웅!
그의 방패가 다시 한번 들렸다 찍혔다.
호오.
뼈사가 왜 항상 이런 제스처를 할까 했는데.
그게 카덴의 습관이었겠구나?
“내 방패는 영원히 은인을 지킬 것이며…… 혹여 내 육체가 가루가 된다 한들, 그대를 지키고자 함은 변치 않을 것이다.”
[디펜스 마스터 ‘카덴’이 그대를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합니다.]
[모든 스탯이 10 증가합니다.]
결연한 포고.
그는 혼자 중얼거린 후, 미동 없이 그 자세를 지켰다.
오오오.
뼈사 멋있는데?
그런 그의 옆으로.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젊을 적 성녀의 모습도 한 발짝 걸어 나왔다.
“비록, 빛이라는 신을 모셨던 사제지만…… 절 진정으로 구원해 준 건 신이 아닌 당신이었어요…….”
대성녀(大聖女)라 불릴 적에도.
과거의 기억으로 지옥 같은 삶을 살았던 그녀, 다나.
“당신의 병사는 의(義)를 위해 싸웠어요. 그 폭력성에 매몰되어 흥분하지 않았어요. 약한 자가 있으면 보호하려 했고, 쓸데없는 살육을 즐기지 않았으며, 아픈 자가 있으면 치유하려 했죠.”
약자를 보호하는 뼈사의 방패.
아픈 자를 치유하는 뼈칠이의 손길.
그녀는 제국과의 전쟁 당시를 떠올리는 듯했다.
한참을 그러더니.
“저, 다나 역시…….”
이윽고 카덴의 옆에 공손히 자세를 낮추었다.
“지옥 같은 기억 속에서 꺼내준 당신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다나가 카덴과 같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앞으로는 신이 아닌 당신을 모실 것을 선포합니다. 당신의 말씀을 복음 삼아 마음속에 새길 것이며, 당신의 신도가 되어 당신만을 기릴 것을 영혼에 서약합니다.”
[대성녀 ‘다나’가 그대를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합니다.]
[모든 스탯이 10 증가합니다.]
‘크으.’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신기한 기분이었다.
옛 기사에게 충성을 받는 귀족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다들 충성 맹세 한번 멋들어지게 하네.’
뼈사와 뼈칠이.
아니, 이제는 카덴과 다나.
내 소환수들의 전생이라 그런지, 나 역시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그들과 감정을 공유했다.
‘어르신은 과거 기억에 먹혀 사는 멍청한 놈들이라 하지만.’
반대로 그러한 ‘한’이 있었기에, 내 곁을 찾아온 게 아니었을까?
적어도 나만은 그들을 이해해 줘야 했다.
나는 그들의 주인이니까.
[‘카덴’의 기억과 의지를 ‘뼈다귀4’가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뼈다귀4’의 이름이 ‘카덴’으로 변화합니다.]
[‘다나’의 기억과 의지를 ‘뼈다귀7’이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뼈다귀7’의 이름이 ‘다나’로 변화합니다.]
스슷!
카덴과 다나.
두 유령이 허공에 투명하게 부스러졌다.
내 소환수에 완전히 동화된 것이다.
즉, 드디어 진정한 각성을 이룬 뼈다귀가 다섯으로 늘었다는 말.
그 말은 매개체 던전을 완전히 클리어했다는 말도 된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그야 이전처럼, 새로운 매개체 아이템이 도착했으니까.
[보상이 도착합니다!]
[축하합니다!]
[아이템, ‘마법 낙제생의 일기’(S급)를 획득합니다.]
[띠링!]
[해당 아이템은 직업 연관성이 있는 아이템입니다.]
‘마법 낙제생?’
이번에 생긴 매개체는 노트였다. 여느 마법서같이 제법 두꺼워 보이는 노트.
‘마법이면 뼈오인가?’
나는 노트를 어루만졌다.
[아이템 : 마법 낙제생의 일기]
[등급 : S]
[종류 : 매개체]
[설명 : 숨겨진 유적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는 뿌리입니다.]
[효과1 : 던전, ‘마법 낙제생’을 개방할 수 있습니다.]
[효과2 : 헌터, ‘주동훈’에게 귀속된 아이템입니다.]
[효과3 : 해당 아이템은 헌터 등급 S 이상부터 활성화 가능합니다.]
[효과4 : 해당 아이템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고대 마법의 파편’(SS급)이 필요합니다.]
‘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S급 이상부터 활성화되는 새로운 난이도인 건 둘째 치고.
SS급 아이템이 필요하다고?
그것도 어디서 구하는지도 모르는 아이템을?
‘게다가 고대 마법이면…….’
[소원을 들어주는 주문서]에 나오는, 요술 램프 속 지니 같은 존재 아니던가.
그것도 SSS급 존재.
그 존재의 파편이라 SS급인 건가?
“후.”
느낌이 싸했다.
왠지 앞으로는 굉장히 복잡하고, 난이도도 대폭 상승할 것 같은 그런 느낌?
‘오케이, 이건 됐고.’
아이템을 따로 챙긴 나는 바로 각성한 녀석들의 상태창을 펼쳤다.
‘먼저, 카덴부터.’
[이름 : 카덴]
[기력 : 650/650]
[고유 능력 : 스켈레톤 로드]
[클래스 : 실더]
[등급 : S]
[힘 : 64] [민첩 : 61] [체력 : 64] [마력 : 63] [기술 : 60]
[보유 스킬]
-‘상급 막기’(Lv.5)
-‘상급 시선 끌기’(Lv.5)
-‘불굴의 방패’(Lv.3)
-‘막아야 한다’(Lv.3)
-‘스켈레톤 소환’(Lv.Max)
‘크.’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우선 스탯이 대폭 늘어 있었다.
태양이나 엘드린만큼은 아니겠지만, 이 역시 제대로 훈련하면 금방 따라잡겠지.
‘스킬도 생겼네.’
기존의 것에 더하여.
‘불굴의 방패’와 ‘막아야 한다’라는 스킬이 추가되었다.
‘산(山)만 한 투명 방패로 일대를 막는 광역 방어기가.’
불굴의 방패.
‘일정 범위 아군 방어력을 높여주는 버프형 스킬이.’
막아야 한다.
‘좋구나.’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카덴이 된 뼈사는 이제 완전한 탱커로 거듭났다.
‘그다음 다나는…….’
[이름 : 다나]
[기력 : 600/600]
[고유 능력 : 스켈레톤 로드]
[클래스 : 힐러]
[등급 : S]
[힘 : 49] [민첩 : 50] [체력 : 48] [마력 : 57] [기술 : 50]
[보유 스킬]
-‘상급 힐링’(Lv.3)
-‘상급 상태이상회복’(Lv.3)
-‘구원’(Lv.3)
-‘광휘’(Lv.3)
-‘리커버리’(Lv.Max)
-‘스켈레톤 소환’(Lv.Max)
“와!”
낱낱이 살펴보던 나는 이내 탄성을 내질렀다.
스탯도 스탯이지만.
새로 생긴 스킬이 미쳤다.
‘상급 상태이상회복’은 그렇다 쳐도.
“구원이랑 광휘가 미쳤네.”
‘구원’(Lv.3)은 일정 범위 내, 모든 아군에게 상급 힐링이 들어가는 최상위급 힐링이었고.
‘광휘’(Lv.3)는 약 3초라는 시간 동안 일정 대상을 ‘무적’ 상태로 만들어주는 스킬이었다.
둘 다 하루에 한 번이라는 페널티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그 유틸성이 어마어마했다.
‘특히, 무적은…….’
잘만 활용하면, 진짜 사기급 스킬로 활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상태창과 스킬 설명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을 찰나.
[축하합니다!]
[스테이지를 완전히 클리어합니다!]
이제 다시 테마 5로 돌아갈 시간이 왔다.
[진행 시간 – 26:30:50]
이미 다섯 시간을 아득히 충족한 상태로 말이다.
* * *
번쩍!
빛이 사그라듦과 동시에, 다시 눈을 뜨니.
[5시간을 버텼습니다.]
[5단계에 합격하셨습니다.]
[오감(五感)이 돌아옵니다.]
[오류 발생.]
[대상자가 없습니다.]
…….
[5시간을 버텼습니다.]
[5단계에 합격하셨습니다.]
[오감(五感)이 돌아옵니다.]
[오류 발생.]
[대상자가 없습니다.]
…….
시야를 한가득 메우고 있는 메시지가 보였다.
동시에.
눈앞에 보이는 용암 지대와 각종 함정.
용암은 굳어서 돌이 되었으며, 화살을 쏘는 기계 장치들은 더는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또한.
나를 제외한 여섯의 동료는 보이지 않았다.
결과가 어떻든, 이미 다 테마 6로 넘어갔겠지.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까.
‘흠.’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후.”
기지개를 켜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찰나였다.
[대상자를 확인합니다!]
[삐빅!]
[오류 발생.]
[대상자가 버틴 시간은 26시간 30분 50초입니다.]
[개연성을 다시 확인합니다.]
“호오?”
시야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잠시 대기해 주세요.]
[‘테마 6’로 넘어가기 전, 보상을 산정 중입니다.]
이거 설마.
5시간을 초과한 부분도 인정해 주는 건가?
상태창을 보니, 감각 자체는 5단계 합격 시 다 돌아오는 것 같긴 한데.
‘제발.’
인정해 줘라.
노력해서 얻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꽁으로 얻는 것도 제법 신선하고 맛있거든?
‘제에발. 시스템아.’
나는 미지의 상태창을 향해 두 손을 꼬옥 잡고 기도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띠링!]
[5단계 통과 보상은 ‘SS급’입니다.]
[당신에게 내려진 적정 보상은 ‘SS급 선물상자’입니다.]
[선물상자는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아이템을 등급에 맞추어 선물합니다.]
헐.
안 주는 거야?
진짜로?
실망하는 기색을 내비치자, 메시지가 다시 올라왔다.
[시스템이 당신의 개연성을 일부분만 인정합니다.]
[당신은 온전한 ‘다섯 시간’을 버티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부분은 인정합니다. 던전의 규칙 중 하나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기에.]
[하지만, 그 외의 부분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와, 시스템 이놈.
생각보다 자기만의 기준이 확고했다.
기존에 섀도우 셰퍼드 때는 단호하게 자격이 있다 말하더니.
이번에는 좀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그래, 내가 봐도 이거까지 쳐주면 좀 사기긴 했어.’
그러니까 당연하게 생각 안 하고 기도한 거지.
‘오히려.’
나는 이런 깔끔함이 마음에 들었다.
예전, E급 헌터 시절부터 원하던 바였지 않은가.
공정하게 똑같은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고.
노력만큼 얻어갈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래, 이번엔 인정하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테마 5는 나라도 좀 빡셌다.
고대 마법이 없었다면, 5단계는커녕 1단계도 통과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고통 없이 클리어한 거로 만족해야지.
[적정 보상을 선택하면 획득할 확률은 100%입니다.]
[단, 당신은 확률을 소모하여, 최대 2단계 더 높은 등급의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신중히 고민하시고 선택해 주세요.]
[100% 확률로 획득 - SS급 선물상자]
[30% 확률로 획득 - SSS급 선물상자]
[1% 확률로 획득 - ???급 선물상자]
[높은 등급 보상 획득에 실패하실 경우, 보상을 얻으실 수 없습니다.]
다시.
선택의 순간이 왔다.
“휴.”
뭘 할까.
당연히 100%에 SS급을 얻어야겠지?
근데 그런 게 있다.
지금껏 계속 ???급만 받아왔는데, 갑자기 SS급 받자니 무언가 아니꼬운 그런 기분.
‘차라리 확 질러버려?’
믿기 힘들겠지만, 나는 본래 위험 기피자다.
도박도 싫어하고, 담배도 싫어하며, 투자도 안전한 쪽에만 하려고 한다.
‘적어도 던전이나 훈련 관련된 것만 빼고는 말이지…….’
하지만, 왜일까.
오늘따라 삐뚤어지고 싶은 느낌.
SS급이 성에 차지 않는 느낌.
“에씨, 몰라.”
즉흥적인 선택이었다.
본래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
어르신이 옆에 있었다면 제자가 천운만 믿고 뇌가 비었다며 꾸중할 선택.
[1% 확률로 획득 - ???급 선물상자]
나는 1%의 확률을 선택했다.
‘어차피 카덴도 다나도 각성했는데.’
기념으로 버리지 뭐.
하하하.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냥 즐기기로 했다.
그렇게 약 3초 정도가 흘렀을까.
파아아앗!
신묘한 빛이 온 시야를 휘감았다.
[보상을 선택합니다.]
[축하합니다!]
[★☆대 To the 박☆★]
[‘???급 선물상자’를 획득합니다.]
“응? 어어?”
나는 눈을 깜빡였다.
뭐야.
‘씨발?’
이거 진짜야?
이내 입을 떡 벌렸다.
세상에.
내 인생 처음으로 맞아보는 진정한 ★☆대 To the 박☆★이 터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