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63화
이게 무슨 추태일까요
진(陈) 가문은 중국의 유서 깊은 창술 명가(名家)였다.
구 양가창을 꾸준히 재해석하여 발전시켜온 현 가주, 진자의(陈子毅).
[당신의 업적을 인정합니다.]
약 13년 전.
세상이 변화하여, 전 세계인이 자신만의 고유 능력을 깨우쳤을 때.
[고유 능력 ‘이화창’(梨花槍)을 획득합니다.]
노년의 가주는 희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아, 기회로구나! 기회가 왔어!’
현대에 와 기능이 축소되고.
고작 체력 단련 용도로 취급받던 무술이.
마침내 우주 끝까지 격상(格上)해 버린 것이다.
던전이 생기고.
법보다 주먹이 우선인 세상의 도래!
수험서를 찾기보다 무공서를 찾는 세상의 도래!
[‘이화창’(梨花槍)을 사용합니다.]
[스킬, ‘□■■□■’(S급)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됩니다.]
[스킬, ‘□■■□■’(SS급)을 획득합니다.]
[해당 스킬은 더 성장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는 헌터가 되어서도 창을 들었다.
고유 능력에 자신의 창술을 녹여내고 더욱더 발전시켰다.
‘많이 노력했지.’
자신의 노력을 이미 온 세상이 안다.
어찌 모를까.
창왕(槍王).
가문의 창술을 전 세계가 ‘창의 왕’이라 칭할 정도의 명성을 쌓았는데. 실력을 길렀는데.
세계 랭킹 10위라는 자리는 결코 노력 없이 올라설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욕심이 일었다.
가문을 더 크게 만들고 싶은 마음.
진 가문의 창술을 더욱더 드높이고 싶은 욕망.
그렇게 찾은 게 심판창, 장웨이였다.
대륙이 낳은 천재이자, 창 관련 고유 능력을 지닌 젊은 헌터.
‘내 모든 걸 다 바쳐 가르쳤지.’
창왕은 장웨이에게 자신의 모든 걸 알려주려 했다.
또한 가문의 모든 것을 이어주려 했다.
‘그렇기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유서 깊은 가문의 가주여서일까?
사실 그는 원래부터 뼛속 깊이 중화사상이 박혀 있었다.
중국 문화가 최고이고, 세상의 중심이 중국이라는 생각.
그래서일까?
‘으음.’
창왕은 눈앞의 사내를 봤을 때, 평소와 달리 거칠게 흥분했다.
‘누가 봐도 100위권 안에 드는 랭커인데, 내 제자의 친우라고?’
그 말은.
시련에 참여하기 전까지만 해도, 고작 랭커 후보였다는 말 아니던가!
‘말도 안 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랭커 후보가 고작 3개월도 안 되는 시간에 저런 기운을 품고 있을 수 있다고?
‘그래서 처음 봤을 때, 심사위원이냐 물었었지.’
하지만 들려오는 제자의 답.
- 사부. 과연 대단한 자였습니다!
- 친우도 특히 창을 사용하는데. 우리 이화창과는 사뭇 다르면서도 확실히 강했습니다.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이 못난 놈이……!’
이 스승의 속도 모르고.
자신이 한평생 연구해온 이화창(梨花槍)을 직속으로 배워놓고, 다른 창술을 칭찬해?
가슴에 천불이 끓었다.
그래서 창을 들었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추한 것을 잘 알면서도 참을 수 없었다.
눈앞의 사내는.
진정한 이화창을 보지 못했을 테니까.
‘이건 그저 가르쳐 주는 거다.’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우물 밖 세상이 무진장 넓음을.
또한, 이화창의 위대함을.
그렇게 잠깐 보여주려 했을 뿐이었는데…….
“크하하하!”
변방 반도의 미친놈이 등장했다.
“꼬챙이 늙은이! 왜, 머뭇거리냐! 덤벼! 덤비라고! 내가 먼저 간다?”
꼴통으로 유명해 중국 내부에서도 말이 많은 자.
광전사(狂戰士) 장대웅.
그가 ‘동생’을 운운하며, 본인에게 투기를 팍팍 뿜어대고 있는 거다.
또한.
“여여! 잠깐! 광전사!”
포효와 함께.
하늘에서 누군가 떨어져 내렸다.
“진정하라고. 진정해! 상대는 창왕이야! 세계 랭킹 10위라고!”
널따란 풍채의 백돈(白豚) 유상돈.
“광전사! 저도 찬성입니다! 방금 말씀하셨잖아요! 국가 분쟁이 될 수도 있다는 거! 창왕도 그렇고 광전사도 그렇고 잠깐 기운을 좀 삭여주세요!”
흑검(黑劍) 이선아도 칼을 늘어뜨리며, 그들 사이에 섰다.
“뭔가. 분쟁인가?”
“늦은 건 아니죠?”
그 뒤로 기소율, 기파랑까지 위치했다.
“흐음.”
창왕이 눈을 좁혔다.
“지금 광전사의 도전을 나보고 참으라는 건가?”
쿠구구!
진자의의 몸에서 기운이 뜨겁게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크흡!”
강대한 마력에 랭커들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자세를 낮췄다.
“이 창왕더러? 내가 무엇이 아쉬워서?”
자신은 세계 랭킹 10위다.
무력으로 이들 모두를 압살할 자신이 있었다.
“주동훈은 자국의 랭커입니다!”
이선아가 나섰다.
“창왕께서 먼저 자국의 랭커에게 창을 들지 않았습니까! 광전사는 그저 그것에 대응했을 뿐입니다! 게다가! 창왕께서도 우리를 건드려 봐야 좋을 거 없을 텐데요? 저희에겐 천마신교가 있습니다!”
“천마신교라…….”
진자의의 골이 더욱 파였다.
“변방 동이족 주제에, 중국의 것을 함부로 가져다 쓴 그 카피 길드 말이더냐?”
“뭐라고요?”
이선아가 눈을 부릅떴다.
“지금…… 그 말 책임질 수 있습니까……? 게다가 본래 천마신교는 베트남 국경의 십만대산(十萬大山)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니, 완전한 중국의 것은 아니지요!”
“그게 무슨 소린가? 베트남이 원래 중국인데.”
“예?”
“뿐만 아니라. 너희 한국의 뿌리 역시 곧 중국 아니더냐? 정확히는 중국 땅에 잠깐 기생하던 오랑캐였지.”
“뭐, 저런 미친놈이?”
결국, 이선아가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어, 어이?! 진짜 싸운다고? 이걸?”
유상돈이 당황했다.
“그냥 넘어가라고! 그냥 중국 늙다리 노인네의 생각일 뿐이라 생각하면 되잖아!”
“크하하하! 거봐라! 결국 싸우게 될 거, 그냥 싸우면 되는 거다! 잴 필요 없어! 상대가 도발하면? 까짓거! 도발 당해주면 되지!”
광전사가 흐뭇하게 웃어 재꼈다.
“더군다나 한계에 도전해서 기대 이상으로 발전한 동생이 보고 있는데, 이 형님이 가만히 있을 수 없지!”
그가 발을 내디뎠다.
후우웅!
몸 뒤로 돌풍이 불었다.
“나는 랭킹 500위 때도 300위대 랭커들과 싸웠으며. 100위일 때도 두 자릿수 랭커들을 넘봤다. 지금도 그때와 똑같이 행할 뿐이야! 크하하하!”
가슴이 뻥 뚫릴 듯한 웃음.
콰가가가!
그의 발걸음이 바닥을 갈며 질주했으며.
그에 맞추어 창왕이 창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불인 줄 알고서도 다가오는 불나방들인가?”
창왕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저 앞에 명궁이 활을 들어 올리고 있으며, 암살자 하나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리석군.”
우스웠다.
고작 창 한 번의 움직임이면 심장이 꿰뚫리고, 뇌가 부서질 놈들이.
그걸 알고도 싸운단 말인가?
‘고작 저자 때문에?’
힐긋.
창왕이 눈을 흘겨 사내를 바라봤다.
중얼중얼.
귀신이라도 본 건지, 허공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제자의 친우라는 사내.
그래, 차라리 잘 되었다.
대륙이 낳지 못한 천재라면.
대륙의 재목을 뛰어넘는 천재라면.
그냥 죽여버리면 되는 거다.
그리하면.
자신의 제자가 지속하여 세계의 천재로 남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후웅!
창왕의 창이 유려하게 회전했다.
“오라.”
두쿵!
그의 기운이 거미줄처럼 퍼져 랭커들을 옭아매려 할 찰나.
“안 됩니다! 스승님!”
“……!”
창왕의 앞을 누군가가 막아섰다.
그의 제자, 심판창 장웨이였다.
“제자 된 도리로 말씀드리옵니다! 스승님께서 품고 있는 생각을…… 제 스킬이 악(惡)이라 판단하오니……! 그만 멈추어주셨으면 합니다!”
“…….”
“사사여친필경필공(事師如親必敬必恭)이라 했습니다. 스승 섬기는 것을 부모 섬기듯 하여 반드시 공경하고 공손해야만 하나, 감히 제 손으로 스승을 심판하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뭐라?”
“스승의 힘은 막대하여, 여기 있는 자들을 한 손으로 휩쓸어 버릴 수 있습니다. 분명 그러하겠지요! 하나, 그리하면, 이 제자…… 이화창을 꺾을 수밖에 없습니다.”
“고얀 놈……! 다…… 네놈을 위한 것임을 모르고 하는 소리더냐?”
“제가 지향하는 이화창은 선(善)한 창이기 때문입니다! 스승님께서는 정말 제가 친우라 인정한 자를 겁박하고 싶으신 겁니까?”
“…….”
창왕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라?
겁박?
아아, 정녕.
이곳에 자신의 편이 하나도 없단 말인가?
더군다나.
제자가 말리고 있었지만, 이미 늦었다.
“크하하하!”
이미 빠꾸 없는 미친놈의 주먹이 창왕의 얼굴에 틀어박히려 할 찰나였으니까.
“…….”
후웅!
광전사의 주먹이 창왕의 얼굴을 뒤덮었다.
창왕이 귀찮다는 표정을 했다.
“느려 터졌군.”
스윽!
광전사의 주먹보다, 창왕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빨랐다.
가볍게 고개를 꺾어 주먹을 흘렸으며, 그의 창대가 광전사의 복부를 정확하게 가격했다.
콰아아아앙!
신비 섬 전체가 흔들릴만한 굉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흐읍!”
광전사가 튕겨 나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크흐으으아하하! 좋구나! 그래! 그래야 재미있지!”
하지만 쓰러지지는 않았다.
튕겨 나가는 와중에도, 중심을 잡고 몸을 지탱시켰다.
또한, 그 웃음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는 침이 질질 흘렀으며, 눈빛엔 광기가 진득하게 흘러나왔다.
왜 광전사가 세계 랭킹 20위인지 알 수 있는 정신력이었다.
“스승님!”
“닥치거라!”
창왕이 일갈했다.
“이 스승은 행패를 부리는 게 아니다!”
으르렁거리듯, 씹어냈다.
“그저 도전에 응하는 거다!”
창이 바람을 가르며 세상을 관통했다.
“나 역시 하나의 랭커로서, 어찌 패기 있는 도전을 무시하랴!”
쿠과가가가!
진자의의 창에서 기다란 창강(槍罡)이 펼쳐졌다.
기운이 뭉쳐 육안으로 확실히 보이는 창기성강(槍氣成罡).
세상 모든 창술가들이 꿈에 그리는 경지였다.
또한 창강에는 살기(殺氣)가 가득 담겼다.
창왕은 명백히, 진심으로 대한민국 헌터들의 목숨을 거두려 하는 거였다.
“……!”
심판창은 눈을 질끈 감았다.
세계 랭킹 10위의 힘은 실로 위대해서.
마음만 먹으면 단박에 대한민국 랭커들의 목이 떨어질 정도의 순간이었다.
안타까웠다.
만약, 정말로 자신의 스승이 여기서 살생을 한다면?
과연 자신이 이화창을 계속해서 배울 수 있을까?
지금껏 자신 앞에서 살의 한번 품지 않았던 스승이 왜 하필 지금 저렇게 변한 것일까……?
하지만.
그 누구도 현재 창왕의 폭주를 막을 수 없었다.
세계 랭킹 10위는 세계 랭킹 10위다.
신(神)과 다를 바 없다는 극 하이랭커.
하지만 대한민국 헌터들은 용감했다.
그러한 창왕의 폭주에도 겁먹은 기색 없이 달려들었다.
그렇게 한차례 충돌이 발생하려 할 찰나.
“뭐 이리 소란일까요?”
두쿵!
세상이 멈추듯, 공간이 멈춘 것은 그때였다.
“흐읍!”
심판창의 숨도 턱 막혔다.
무언가 막강한 기운이 자신의 전신을 짓누르고 있었다.
“델라일라한테 명물이 나왔다 해서 궁금증을 못 참고 왔는데, 세상에나. 하이 랭커들이 후배들 앞에서 이게 무슨 추태일까요?”
신비 섬 전체를 가득 채우는 화사한 꽃향기와 함께.
창왕의 기세도.
광전사의 기세도.
그 외 모든 랭커들의 기세도 단박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미친?’
심판창은 경악했다.
도대체 누가.
어떤 존재가 이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세계 랭킹 10위와 20위.
그리고 수많은 랭커들을 단숨에 잠재운다고?
스슷!
그 순간.
허공이 갈라지며, 새하얀 피부의 서양 여성이 등장한 것은 그때였다.
‘저분은……?’
[누구지?]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저 멀리 굳은 채 지켜보던 올레나가 입을 벌리고 외쳤으니까.
“마, 마탑주님?! 마탑주님이 어떻게 여기에!”
그렇다.
그 막강하던 랭커들의 기세를 단숨에 잠재운 존재의 존함은.
바로 소피아 실버스톤.
옥스포드의 현자(Oxford's Sage)라 불리는 세계 4위의 랭커.
지구 모든 마법사들의 끝판왕이라 칭송받는 자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