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65화
세계 랭커 발표식 (1)
랭커!
모든 헌터들의 지향이자 우상!
전 세계에 오직 1,000명뿐이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세계 랭킹 게시판」에 이름을 등재하여야 그 가치를 입증할 수 있는 존재.
그리고.
두쿵!
“이햐, 멋들어지네.”
지금 김진아가 보는 TV 화면 속에는 미국 동부의 그 거대한 비석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 자, 자! 다들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곧입니다! 곧 세계 시각으로 00시 00분! 2023년, 계묘년(癸卯年)의 해를 맞이하여, 미국 동부의 게시판이 송출되고 있는데요!
- 아시다시피! 매년 초는 월초와 달리 세계 랭킹 순위가 대거 변동되는 입니다. 기대되지 않습니까?
- 물론입니다! 헌터 강국으로서 어찌 기대되지 않겠습니까, 하하!
또한, 새해 카운트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서.
두 남녀 MC가 마이크를 들고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결국, 혼자 연말이라니.”
김진아는 대충 괜찮아 보이는 채널 하나를 틀어두고 맥주를 벌컥 들이켰다.
꿀꺽, 꿀꺽!
그런 그녀의 손에 들린 휴대폰에는 라이브 채팅이 실시간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 으아아아! 곧이다!
└ 랭킹 변동 완전 기대되는데? 20위권 내는 이번 해에도 변동 없겠지?
└ 그러지 않을까? 뭐, 싸웠다는 소식이나 이런 거 없잖아.
└ ㅇㅇ, 거긴 콘크리트 벽임. 그냥 이제 고정으로 박혔어.
└ 안녕하세요. 저 이번에 성인 되는 헌터 새내기입니다. 혹시 다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실 수 있나요? 제발.
└ 오오, 새내기다! 긴장 오지겠네 ㅋㅋㅋ
└ ㅋㅋ. ㄹㅇ.
└ 인생 수저 결정 날 아님?
└ ……제발 좋은 고유 능력 가지게 빌어주세요.
└ ‘쉿 이터’(Shit eater) 같은 거만 아니면, 감사하게 받아드려라.
└ 그놈의 쉿 이터 떡밥 아직도 도네 ㅋㅋ 그거 구라 아니었음?
└ ……야야, 말조심해. 그거 진짜임.
새해는 세상 모든 헌터들의 축제다.
새로운 헌터가 탄생하고, 랭커 지각변동이 이뤄지는 날.
과거 10년 전 즈음엔.
제야의 종을 치기 전, 가요대제전과 연기대상을 발표했다면.
이제는.
가장 인기 있는 행사가 바로 ‘세계 랭커 발표식’이었다.
전 세계인들에게 랭커의 이명과 이름을 머릿속에 한 번 더 각인시켜 주는 행사인 것이다.
- 우리나라의 현 랭커 수가 어떻게 되죠? 자세한 설명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 예, 알겠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랭커들은 저번 다크 로드(Dark Lord) 김혁선의 합류 이후, 총 37명이 되었는데요. 명단을 보시죠!
마치 월드컵 경기 전 축구선수 명단처럼.
헌터들의 랭킹이 화면에 촤르륵- 정리되었다.
하세라, 장대웅, 기파랑…… 등등.
아직 최신화되기 전의 내용들을 가지고, MC들이 하나씩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지루해. 끅.”
김진아가 딸꾹질하며 코웃음 쳤다.
매년 똑같은 행사에, 매년 똑같은 반응.
요컨대 하세라가 등장하면…….
└ 와! 하세라다!
└ 하세라! 하세라! 하세라!
└ 갓세라! 갓마신교!
└ 15세기엔 세종대왕이 있고, 16세기엔 이순신! 그리고 21세기에는 하세라가 있다!
└ 솔직히 우리가 세계 2위의 헌터 강국인 것도 다 하세라 덕이지. 그저 빛임.
└ ㄹㅇ. 하세라 없으면 우리 바로 20위권 밖으로 밀려남;;
댓글 창이 이런 식으로 폭주한다.
물론, 그들이 국위 선양하고 있는 건 맞지만.
그게 자신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킁.”
본래 이렇게 염세적인 성격은 아니었지만, 장시간 방치된 그녀는 어딘가가 비뚤어져 있었다.
아니면, 취해서 그렇다든가.
하지만, 김진아의 눈은 TV에서 도통 떨어질 줄 몰랐다.
“어차피 할 것 없기도 하고. 암제님도 있으니까.”
암제, 기소율은 이제 「파랑」이 아닌 「드미르 공방」 소속이다.
그렇기에, 부공방주인 자신이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암제님이 곧 우리 공방의 전력이잖아.’
김진아의 목적은 고작 공방을 운영하는 게 아니다.
떡잎부터 남다른 주동훈을 모시고, 세계 최고의 길드를 꾸려 나가는 거다.
‘그 주인이 던전에 미친 던전광이라 몇 달째 안 나타나는 게 문제지만.’
으득.
김진아가 다시 한번 이를 갈았다.
‘두고 보자고.’
어디 랭커가 되어 오거나 하는 게 아닌 이상, 절대 가만두고 넘어가지 않을 거다!
그렇게 속으로 주동훈을 씹고 있을 찰나.
- 이제 새해까지 딱 10초! 10초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 같이 세볼까요? 10! 9! 8!
벌써 시간이 다 흘렀다.
TV 화면에는 거대한 숫자판이 떴고.
- 7!
“칠!”
“치이이일!”
밖에서도 시끌시끌.
함께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 3! 2!
김진아도 한탄을 멈추고 화면을 응시했다.
아무리 씁쓸해도,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그 기대감은 사람의 심장을 떨리게 한다.
- 1!
일과 동시에 시야가 아릿하게 흐려졌다.
이것은.
“과연.”
김진아가 씩 웃었다.
- 0!
2023년의 새해가 시작됨과 동시에.
김진아의.
아니, 전 세계 모든 헌터들의 시야에.
[랭킹이 갱신되었습니다.]
[세계 랭킹 게시판을 참고하세요.]
갱신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리고 주르륵!
화면에 떠오르는 랭킹들.
[랭킹 1위, ???]
[랭킹 2위, 마왕(摩王) 잭 스미스]
[랭킹 3위, 천마(天魔) 하세라]
[랭킹 4위, 옥스포드의 현자(Oxford's Sage) 소피아 실버스톤]
[랭킹 5위, 던전 메이커(Dungeon Maker) 델라일라]
[랭킹 6위, 팔라딘(Paladin) 아리아 유엘]
[랭킹 7위, 세계수의 은총(Grace of Yggdrasil) 니나 크리스틴]
[랭킹 8위, 령제(靈帝) 이치카와 타케루]
[랭킹 9위, 로이더(Roider) 로니 윌리엄스]
[랭킹 10위, 창왕(槍王) 진자의(陈子毅)]
…….
약 2초에 하나씩.
화면에 랭킹이 갱신되기 시작했다.
- 와! 이번에도 우리 하세라! 당당하게 세계 랭킹 3위를 기록합니다!
- 대단합니다! 대단해요!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그에 맞추어 MC들이 흥분해서 외쳐댄다.
그저 직업이기에.
돈을 벌기 위해서 외치는 것도 있겠지만.
그 표정만큼은 진심이었기에, 사람들의 감동이 배가 되었다.
└ 캬, 역시 하세라!
└ 흐아아! 랭킹 4위로 밀렸을까 조마조마했다고. 영국한테 밀릴 순 없지!
└ 진짜 미쳤다. 이 좁디좁은 반도에서 어찌 저런 인재가?
└ 그저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천마(天魔) 하세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그 자체.
실제로 해외에서는 대한민국을 말하면 하세라부터 떠올릴 정도였다.
그리고.
[랭킹 19위, 광전사(狂戰士) 장대웅]
└ 와아아아!
└ 광전사 랭킹이 한 단계 올라섰어!
└ 와, 광전사……. 진짜 무섭다. 거의 최단기간 10위권 진입 아님?
대한민국 랭킹 2위는 여전히 광전사였고.
[랭킹 46위, 명궁(名弓) 기파랑]
3위는 명궁.
58위에서 무려 12단계나 뛰어올랐다.
“캬. 역시 암제님의 오라버니답구나!”
46위가 되었다는 소식에는 무덤덤하던 김진아마저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100위권 내에서의 순위 변동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수준이니까.
저 밖에서도.
“와아아!”
“장하다. 명궁!”
“열심히 노력했구나!”
마시던 맥주를 하늘로 집어 던지며, 환호했다.
자국의 랭커가 좋은 성과를 낸 것을 국민으로서 진심으로 축하하는 것이다.
“……암제님도 많이 올라가셨으려나?”
사실 김진아가 보고 싶은 장면은 오직 기소율뿐이었다.
랭킹 379위.
이번엔 300대 초반으로만 뛰어도 대박이었다.
그만큼 공방의 입지도 더욱 튼튼해질 테니까.
“사실, 떨어지지만 않으면 돼.”
앞선 두 하이 랭커의 성적이 올랐다지만, 오르는 것 이상으로 떨어지는 헌터도 무수하다.
사실, 당연한 소리다.
누군가 오르면 누군가는 떨어져야 하는 제로섬 게임이니까.
그렇게 52위, 53위, 54위, 55위…….
지나가는 타국의 랭커들을 지켜보고 있을 찰나.
“……응?”
무언가 익숙한 글자가 띄어진 것은 그때였다.
익숙하면서도…….
좀…….
말이 안 되는 그런 글자가.
“에엥?”
그녀가 순간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목소리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절로 흘렀다.
비비적, 비비적!
동시에 눈을 비볐다.
“뭐야, 씨발.”
취했나?
뭐지?
아무리 많이 마셨어도 말술로 유명한 자신이 고작 맥주에 취할 리는 없을 텐데?
하지만.
아무리 눈을 비벼도 글자가 뒤바뀌진 않았다.
눈앞에 떠 있는 글자.
[랭킹 78위, 스켈레톤 킹(Skeleton King) 주동훈]
“지랄!”
그녀가 이내 경악했다.
주동훈?
아무리 흔한 이름이라지만, 본인이 알고 있는 주동훈은 한 명뿐이다.
그것도 스켈레톤 관련 이명을 가지고 있는 자라면 더더욱.
“진짜야? 뭐야? 왜 공방주님이 저깄어?”
술이 확- 깨는 느낌이었다.
발가락에서부터 피가 역류했고, 머리가 뜨거워졌다.
소름이 쫙 돋아 털이 곧게 섰다.
“그게 말이 돼?”
한국인이.
새로 100위권 안에 편성된 것도 놀라운데.
“애초에 공방주님은 랭커가 아니었잖아?”
근데 3개월 만에 78위가 말이 되냐고!
“오오오어어?”
“어? 어어어?”
밖에서도 술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동훈? 뭐야?”
“78위? 저거 한국인 이름 아냐? 주동훈? 분명 어디서 들어봤는데? 교포는 아니지?”
“우와! 뭐야아아아아!”
정신이 멍했다.
- ……아! 자, 잠깐만요. 이게 무슨…… 이게 무슨 일이죠? 주동훈이면, 한국인 아닌가요?
- 어어, 잠시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은데. 방송이 매끄럽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신나게 떠들던 두 MC도 버퍼링이 걸려 있었다.
“그치? 나만 이상한 거 아니지?”
김진아의 두 손이 덜덜 떨렸다.
아아.
혹시 말이다.
이게 꿈이 아니라, 진짜라면?
어디 이상한 던전에 가서, 진짜 저 정도의 랭커가 된 거라면?
아니면 모종의 방법으로 숨겨왔던 힘을 개방한 거라면?
‘미친.’
소름이 돋았다.
78위면 대한민국 랭킹 4위다.
하세라, 장대웅, 기파랑에 이어서 네 번째 위치란 말이다.
자신의 꿈.
세계에 영향력 있는 길드를 설립하겠다는 당찬 포부!
그 난이도가 단박에 최하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저 주동훈의 이름만 보고 가입하겠다는 랭커들이 무수할 테니까.
“아아, 아아아.”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바라봤다.
└ ??
└ ???? 주동훈?
역시.
난리 나 있는 채팅창.
댓글들이 쉴 새 없이 올라와, 확인하는 것도 벅찰 정도였다.
└ 주동훈. 그 사람이잖아! 드미르 공방주.
└ 맞네. S급 무기 만드는 사람!
└ 뭐야, 그 사람 대장장이 네크로맨서 아니었어?
└ 스켈레톤 킹이라는데?
└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정보 좀!
└ ㅅㅂ. 정보가 있었으면, 이미 기사에 났겠지.
└ 근데 S급 무기 혼자 만들 수 있는 수준이면, 이미 랭커 아니야? 랭커가 꼭 전투력으로 따지는 건 아니잖아.
└ 그래도 78위는 좀 선 넘음. 그것도 한 번에. 이례적인 일이잖아. 게다가 주동훈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1,000위 밖이었어. ㅅㅂ. 랭커가 아니었다고.
“뭐야, 진짜.”
볼을 꼬집어도 아픈 걸 보면, 꿈은 아닐 테고.
김진아는 정신이 없었다.
그 순간.
부스럭! 투욱!
테라스에서 누군가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신형이 보였다.
“암제님?”
“좀 늦었죠? 누구 좀 데려오느라.”
“예?”
TV와 기소율을 사이에 두고 멍하니 서 있는 그녀의 시야에.
투욱!
또 다른 신형이 떨어져 내렸다.
“아아.”
김진아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동안 자신의 마음을 고생시켰던.
지금은 전 국민이 난리나 찾고 있는 화제의 그 사내 아니던가.
“부공방주님. 많이 기다리셨죠? 아, 그…… 입은 좀 닫으셔야 할 것 같은데. 그러다 턱 빠지시겠어요.”
농담처럼 던지는 말투.
“아아, 공방주님?”
집 나간 공방주가 돌아온 것이었다.
그것도 랭킹 78위가 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