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68화
무릉도원이 따로 없구나
[하세라를 이을 새로운 전설, 탄생하나!]
[1년 전 E급 헌터가 지금은 세계 랭커? 하루아침에 국보가 된 스켈레톤 킹은 누구일까?]
[드미르 공방 측, 모든 인터뷰 거절. ‘스켈레톤 킹은 앞으로도 던전 활동만 지속할 예정’ 입장 발표.]
[일각에선 과한 관심이 영웅에게 부담스러울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와.]
…….
주르륵!
엄지손가락으로 올라온 기사들을 대충 확인하던 내가.
투욱!
휴대폰을 옆에다 던져두었다.
“그래도 하루 만에 깔끔하게 정리된 것 같네.”
김진아의 일 처리는 재빨랐다.
공방에 내가 없다는 말로 몰려드는 기자들을 돌려보냈으며.
직접 기자에게 정보를 넣어, 간결하게 입장 발표했다.
또한, 헌터 게시판의 여론을 움직여, [영웅은 뒤에서 응원해야 도움을 주는 거다!]라는 식의 정보를 뿌린 것도 그녀였다.
‘좋다.’
노인을 만난 것도, 랭커가 된 것도.
전부 다 엄청난 운이지만.
김진아라는 인재가 알아서 내 곁으로 찾아온 것도, 그에 못지않은 대운 아닐까?
나는 슬며시 왼손을 가슴 위에 대었다.
두근, 두근.
어둠이 지나고 새해가 밝은 지금에도 가슴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내가 78위라니…….
랭커에 든 것도 모자라, 두 자릿수의 하이 랭커라니…….
아직도 그 여운이 가시질 않은 탓이다.
“그래서 이런 공터에 와, 청승맞게 앉아 있는 게냐?”
허공에 떠 있는 노인이 중얼거렸다.
그렇다.
나는 어제 기소율에게 양해를 구한 후, 이곳으로 혼자 와 넋 놓고 있었다.
정확히는 해야 할 모든 것을 미룬 채 휴식하고 있었다.
그만큼 힘들었으니까.
고생했으니까.
이번 하루만큼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쉬고 싶었다.
“그래도 그동안 돈도 많이 벌었단 놈이 노상이 뭐냐? 노상이. 네놈이 사는 세계엔 삐까번쩍한 건물들도 많더만. 내가 네 녀석이었다면 인마, 당장 최고급 객잔으로 달려가 푸짐한 음식들을 시켜놓고 뜨끈한 탕에 푸근하게 몸을 담갔을 게다!”
“그냥, 추억이잖아요. 이곳.”
내가 3년간 빠짐없이 나와 훈련했던 뒷산 공터.
자연취락지구 속 잊힌 국유지라 그 누구의 관심도 없는 곳.
“저에겐 이곳이 그 어떤 곳보다 심신이 안정되는 곳이거든요.”
“뭐, 하긴. 네 녀석은 노상이 일상이라, 침대보다 바닥이 편할 수도 있겠구나.”
“웃긴 게 뭔 줄 알아요?”
“뭐냐.”
“제가 E급 헌터로서 이곳에서 수련한 3년보다…… 어르신을 만난 후 현재 랭킹 78위가 될 때까지 수련한 기간이 더 짧다는 거요.”
“끌끌끌. 그야 당연하지.”
노인이 혀를 튕기며 웃었다.
“초짜가 빛 하나 없는 야밤의 산을 혼자 통과하려니, 어찌 헤매지 않을 수 있겠느냐. 누군가가 도우면 쉽게 갈 수 있는 것을 괜히 뺑뺑 돌고 돌았던 게지.”
“그 누군가가 전문가여야겠죠. 그것도 어르신처럼 최고의 전문가.”
“오냐.”
노인이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어르신과도 정이 많이 들었다.
예전에는 티격태격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난제가 있을 때 어르신이 옆에 없으면 심리적으로 불안할 지경에 이르렀다.
스킬, 만술의 가르침(SS급)이야말로 내가 가진 최고의 무기 아닐까?
“아.”
마침, 무언가 생각났다는 표정을 지은 노인이 손뼉을 쳤다.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느니라.”
“궁금한 거요?”
“그 돌 말이다. 빨리 써봐야 하지 않겠느냐?”
“돌…….”
델라일라에게 받은 던전 아티팩트.
정확히는 목걸이형의 장신구인데, 생긴 것만 보면 영락없는 돌덩이다.
“맞죠. 써봐야죠.”
주머니에서 아티팩트를 꺼낸 나는 그것을 조심스레 만지작거렸다.
[아이템 : 델라일라의 던전 아티팩트]
[등급 : SS]
[종류 : 아티팩트]
[설명 : 던전 메이커(Dungeon Maker)가 은하 외곽에서 찾은 ‘빈 세계’를 현실과 연결합니다.]
[효과1 : ‘빈 세계’를 개인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효과2 : 타인과 함께 입장할 수 있습니다. 기력 100을 사용하면 해당 장소에, 24시간 동안 ‘포탈’이 생성됩니다.]
[효과3 : 사용자의 세계와 시공간을 공유합니다.]
“SS급……?”
내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귀한 줄은 알고 있었는데, SS급이었을 줄이야.
문득 마탑주가 했던 말이 스치듯 떠올랐다.
- 그 돌. 받았네?
- 와, 설마 했는데. 저걸 준 거야?
- 델라일라 고것이……!
- 내가 바꿔달라 할 때는 진땀을 흘리며 꼭꼭 숨기더니!
- 아주 그냥. 최상등품을 헤벌쭉 가져다 바쳤네?
- 내 것보다 두 단계는 좋아 보이잖아?”
랭킹 4위라는 헌터가.
도대체 얼마나 좋길래 저렇게 호들갑을 떨었던 걸까?
“보면 볼수록 신기하단 능력이지 않으냐? 그 넓은 우주를 제멋대로 돌아다니고, 그걸 연결까지 시키는 능력이라니. 뭐 하느냐. 어서 써보자꾸나.”
“예.”
나는 돌을 쥔 채, 눈을 감았다.
‘이렇게 쓰면 되는 건가?’
그러고는 슬며시 기운을 흘려보냈다.
주륵!
마치 스킬을 쓰듯 기력이 빠져나간 것은 그때였다.
[‘델라일라의 던전 아티팩트’(SS급)을 사용합니다.]
[기력 100을 사용합니다.]
우우웅!
눈앞에 황금빛 타원형의 문이 생긴 것은 그때였다.
문 내부는 공간이 비틀리기라도 하듯, 이질적으로 구겨지고 있었다.
[해당 자리에 ‘포탈’이 생성됩니다.]
[‘포탈’ 속으로 들어가시면, ‘빈 세계’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해당 ‘포탈’은 24시간 후에 사라집니다.]
‘포탈이라.’
살짝 무섭기도 한데, 설레는 감정이 더 들었다.
저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떤 세계가 있길래, 델라일라가 자신 있게 선물을 준 걸까?
저벅.
나는 과감하게 발을 뻗어, 공간 속으로 들어섰다.
파즛!
동시에 시야가 점멸되었다.
* * *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빈 세계’에 도달합니다.]
[해당 ‘세계’의 이름을 지어주세요.]
“음?”
눈 부신 햇살에 내가 눈을 떴고.
“허어.”
옆에서는 노인이 혀를 내두르며 탄식하고 있었다.
“미쳤구나. 정녕 미쳤어! 말로만 듣던 무릉도원이 이곳에 펼쳐져 있었구나!”
“…….”
해당 공간은 지구와 비슷한 듯했다.
적당한 밝기의 항성이 공간을 내리쬐고 있었고.
공기의 냄새와 중력 또한 지구의 것과 별다른 바 없었다.
또한, 내가 서 있는 곳이 고지였는데.
그 아래로 수없이 넓게 펼쳐진 수 풀림과 하천이 보였고.
저 멀리 광활지에는 하천과 하천이 모여 강을 이루고 있었다.
그뿐이랴?
각종 과일과 약초들.
풀 내음.
지구와 비슷한 종류의 새와 짐승 소리까지.
거기다 온도까지 적당히 선선하니 기분이 좋았다.
“흐으음.”
불어오는 바람을 한껏 만끽하던 내가.
“후, 진짜 어르신 말이 맞네요. 무릉도원이 따로 없습니다.”
하늘을 향해 호흡을 뿜어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해당 ‘세계’의 이름을 ‘무릉도원’으로 하시겠습니까?]
메시지가 떠올랐다.
‘무릉도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 상관없었다.
딱히 지을 것도 없었고.
평소 이름을 그렇게 중요히 여기는 편도 아니었으니까.
[‘빈 세계’의 이름이 ‘무릉도원’으로 바뀝니다.]
[해당 ‘무릉도원’에는 지적 생명체가 없습니다.]
[개인 공간으로 유용하게 활용해 주세요.]
“진짜, 멋지네요.”
그러니까.
이 멋들어진 세계가 다 내 거라는 말이지?
나만의 공간이란 말이지?
“델라일라라는 처자가 네놈이 만날 허접한 뒷산 공터에서 훈련하는 걸 알았던 거 아니냐? 어찌 딱 이런 공간을 선물해 주는 게냐?”
“왜 마탑주가 그렇게 난리 쳤는지 알 것만 같네요.”
앞으로 훈련용 공터로 쓸 수도 있으며.
또한, 이 넓은 곳에 있는 모든 자원이 다 내 거 아니던가!
‘어? 자원?’
그 순간이었다.
[목(木)의 정수가 부드럽게 미소 짓습니다.]
[해당 공간의 나무와 풀들이 더욱 푸르르게 자라납니다.]
[썩은 묘목이 생기를 찾습니다.]
“목의 정수……?”
[금(金)의 정수가 눈을 뜹니다.]
[주변에 광물이 한가득 생성됩니다.]
“허!”
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래, 광물……!’
이 공간을 보자마자 딱 떠올랐던 게 바로 드미르였다.
‘드미르를 불러볼까?’
아니, 그냥 김진아까지 불러보자.
길드를 만들고 싶어 하는 그녀가 이 공간의 존재를 안다면, 더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테니까.
[기력 100을 사용합니다.]
[해당 자리에 ‘포탈’이 생성됩니다.]
나는 다시 포탈을 생성해 공터 밖으로 급히 빠져나왔다.
기력 100씩만 쓰면, 연결된 공간을 왔다 갔다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끌끌, 이 녀석은 무슨…… 광물만 나오면 항상 정신을 잃는다니까.”
옆에서 웃는 노인을 뒤로한 채, 드미르 공방으로 향했다.
“엥? 공방주님? 낮에 웬일이세요?”
“오호, 주인! 왔는가!”
마침, 2층 VIP실에서 얘기하고 있는 드미르와 김진아가 보였다.
“잠시만요.”
[기력 100을 사용합니다.]
[해당 자리에 ‘포탈’이 생성됩니다.]
나는 곧바로 그곳에 포탈을 생성했다.
“가, 갑자기 이게 뭐예요?”
‘포탈’의 이질적인 모습에 그녀가 당황했다.
“음, 설명하기 살짝 복잡한데. 일단, 들어가 보실래요?”
“여길요?”
불안한 표정을 짓는 김진아.
하긴, 나조차 처음엔 공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었으니.
“던전 같은 거라 생각하시면 돼요. 그것도 몬스터 하나 없는 안전한 던전. 불안하시면 제가 먼저 들어갈 테니, 뒤따라오실래요?”
“…….”
말이 없는 그녀를 보며.
나는 결국 그녀가 반응할 만한 떡밥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향후 길드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거든요.”
“진짜요?!”
김진아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 그럼 무섭지만 당장 들어가야죠!”
목표가 확실한 사람을 꼬드기는 건 이처럼 단순하다.
* * *
[‘무릉도원’에 도달합니다.]
“미친! 미친! 미쳤어! 이게 다 진짜 우리 거라고요? 포탈만 있으면 마음껏 드나들 수 있고, 시간도 똑같이 흐르는 또 다른 세상이란 거죠? 그러니까 살아 있는 아공간?”
“대충 잘 이해하셨네요.”
“어떻게 이런 게……? 이거 그거 맞죠? 델라일라 아티팩트!”
오.
그걸 한 번에 유추하다니.
하긴, 예전부터 직관력 하나는 최고였지.
“그건 또 어떻게 아셨대요?”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요! 이야, 진짜 공방주님. 절 얼마나 더 놀래키시려고…….”
“마음에 드세요?”
“마음에 들다마다요! 길드 만드는 데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뭔 줄 알아요? 바로 그 근거지예요. 근거지! 그것도 보안이 철저한 근거지!”
하긴.
보안이라 하면, 이것 이상으로 뛰어날 순 없을 거다.
오직 나만이 출입을 통제할 수 있는 공간.
‘다만, 단점이라면.’
그 포탈을 나밖에 만들 수 없다는 거다.
그것도 24시간뿐이 유지되지 않는 포탈이라, 잘못하다간 그 안에 방치될 수도 있다.
“그런 건 문제없어요. 시간이야 잘 계산해서 빠져나오면 되는 거니까. 사실, 공방주님이 세계적인 랭커가 되고 나서 그만큼 문제점도 많아졌거든요.”
“문제점이요?”
“예, 유명해져서 손님들이 많아진 건 좋은데…… 유명해져도 너무 유명해졌다는 게 문제죠.”
김진아가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공방주님이 78위라지만, 세계의 강자는 많고도 많아요. 또한 공방을 맨날 공방주님이 지킬 수도 없는 노릇이니.”
“테러 위험이 있다는 거군요.”
“예, 물론, 아직 밝혀진 지 하루라 테러는 없다지만…… 저는 거의 100% 확률로 있을 거라 봐요.”
맞는 말이었다.
과거, 암영단(暗影斷)의 주인, 닉 자칸(Nick Jakan)도 세계 랭킹 92위 아니었던가.
또한 신종오의 사주를 받고 침입했던 암살자도 세계 랭커였다.
“하지만, 이런 공간이 있으면 그거에 대비할 수 있겠죠. 아, 혹시 드미르 좀 불러주실 수 있나요?”
“드미르요? 네.”
내가 무기를 지팡이로 바꾸어 휘둘렀다.
[스킬, ‘스켈레톤 로드 소환’(S급)을 사용합니다.]
[기력 10을 사용합니다.]
[‘드미르’가 등장합니다.]
“음, 주인?”
단신 뼈다귀 드미르가 망치를 휘두르던 자세로 나타났다.
“날 직접 부른 건 오랜만이군. 근데 여기는…….”
망치를 내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드미르가 놀랐다.
“허어, 대단한 곳이로군. 내 생에 이렇게 광활하고 아름다운 공간은 처음이야. 광물 냄새 또한 과거 우리 타이탄과 비슷할 정도로 가득하군.”
바위 일족의 숨겨진 도시.
드워프의 성지(聖地)라고도 불렸던 타이탄.
“드미르.”
김진아가 진지한 표정으로 팔을 뻗어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은 바로 저 드넓은 광활지.
“혹시 저기에다 혹시 우리 길드의 근거지가 될 만한 건물과 공방을 지을 수 있나요?”
“저기에다 말인가?”
드미르가 눈을 빛냈다.
“주인의 허가가 있어야 하겠지만, 저런 곳에 무언갈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와 우리 드워프들은 영광일걸세.”
그 눈빛에 담긴 감정을 주인인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흥분.
드미르는 분명 새로운 창작 욕구에 흥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