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71화
보여줄게, 세상아
“강한 길드에서 타국으로 원정 가실 B급 이상 용병 구합니다!”
“가는 길 힐링 포션 하나 챙겨가실 분? 싸다, 싸! A급 연금술사가 직접 제조한 최상품이 이 가격이라니!”
“B급 요리사가 만들어 둔 다양한 던전 도시락의 버프 효과를 누려보세요!”
우글우글.
세상에 던전이 생기고, 모든 인류에게 고유 능력이 생긴 이래로.
인천 국제공항은 항상 북새통을 이루었다.
항공편을 기다리는 수많은 헌터들과 그들을 노리는 노점상.
그리고 용병을 구하는 길드 스카우터들까지.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이 몰리는 이유는 단순했다.
“국내엔 던전이 없으니까.”
주머니에 손을 넣은 헌터 하나가 중얼거렸다.
파란색 명패를 보아하니, B급이었다.
“그쵸.”
맞은편에 있는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B급이었다.
“우라질 상위 길드랑 상위 헌터 놈들…… 걔네들이 거기서 나오는 국내 던전을 다 처먹고 있으니……. 아무래도 비좁은 반도잖아요? 우리 같은 서민들은 어쩔 수 없이 외국으로 파견 나가야죠, 뭐.”
“별수 있냐? 그래도 세계 2위의 헌터 강국이라는 거에 위안 삼아야지. 적어도 우리 가족은 안전하잖냐.”
국력이 강하다는 건, 각각 장단점이 있다.
치안이 안전한 대신 던전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러다 보니, 실력이 없으면 자연스레 국내 던전에서 낙오된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랴?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 국외라도 나가 실력을 키워야지.
실력을 키워야 수준 높은 길드에도 채용되고, 몸값도 올리는 선순환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자연스레 공항에는 항상 헌터들이 가득했다.
“그래서 넌 어디로 갈 거냐?”
“으음, 글쎄요. 요즘은 던전만큼 국가도 잘 선택해야 한다던데……. 최근에 러시아 소식 들었죠?”
“아, 거기 새로 생긴 던전?”
“예, 거기 원정 갔던 사람들 다 못 돌아오고 있다잖아요. 후우, 거긴 마피아 때문에 러시아 정부도 두손 두발 놓았다는데, 쯧쯧, 그래서 그런 곳을 왜 가서는.”
“S급 던전이라잖아. 던전 운 잘 맞아서 기연 얻어 떡상한 사례들 보고 혹해서 가는 거겠지 뭐.”
“에휴, 무슨. 아무리 그래도 목숨이 중하지. 요즘 누가 러시아를……. 어?”
비교적 어린 나이의 B급 헌터가 돌연 눈을 커다랗게 떴다.
“응? 왜 그러냐?”
“저, 저기 보세요. 저기 러시아행 게이트 아니에요?”
“그러네?”
그들이 보는 방향에는 지팡이 든 사내 한 명이 저벅저벅 걷고 있었다.
다부진 체격에 어디선가 본 듯한 외모.
“저 사람 어딘가 익숙한데……?”
“전 모르는 사람인 듯요?”
어디 명패라도 있나 봤는데.
허리춤에 달린 건 없다.
뭐지, 일반인인가?
아니면 드러내기 싫어서 숨긴 건가?
던전에 참가하지 않는 헌터들은 가끔 명패를 빼놓고 다니기도 한다.
“근데 저 사람. 혼자 러시아로 가는 거여? 간도 크게?”
“쯧쯧, 띨띨한 놈인가 보네요. 저렇게 욕심부리다 황천길 건너서 그때 후회하면 무슨 소용이람?”
“난 지금 러시아행 비행기가 뜨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끌끌.”
두 B급 헌터들이 혀를 차며, 지나가는 사내를 비웃었다.
“조만간 또 뉴스에 나오겠구만?”
“제기랄. 이게 무슨 국가 망신이야. 제발 좀 실력이 없으면 알아서 사렸으면 좋…….”
투욱!
그 순간, 어떠한 인영이 그들의 양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뭐야, 씨발! 어떤 새끼냐?”
강한 충격에.
어린 헌터가 습관적으로 인상을 확 쓰며, 욕을 박았다.
“눈깔 똑바로 안 뜨고 다니…….”
하지만.
이내 그의 시야에 드러난 인영을 바라보는 순간.
그의 입은 공손하게 다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미, 미친.”
옆에서 형으로 보이는 자가 기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화, 황금색 명패?”
S급 이상 헌터에게만 주어지는 증표가 허리춤에 달려 있다.
거기다가.
깔끔하게 묶어 올린 흑발을 지닌, 20대로 보이는 여성 S급 헌터라면?
거기에 암살자를 상징하는 단검까지 보인다면?
대한민국에서는 오직 한 명으로 귀결된다.
“아, 암제…… 기소율?”
동생으로 보이는 자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동시에 몸을 덜덜 떨었다.
‘나 지금, 암살자의 제왕이라 불리는 헌터한테 욕을 틀어박은 거야?’
게다가 기소율이면.
매스컴에 나올 때도 웃음기 하나 없던 진지한 캐릭터지 않은가.
랭커들 중에서도 가장 기피해야 할 랭커들 중 하나, 암제(暗帝).
“방금 했던 말. 다시 해보실래요?”
그런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도 싸늘해서.
두 B급 헌터는 온몸에 털이 곧게 솟아오르는 걸 느꼈다.
“죄, 죄송합니다! 제, 제가 감히 암제를 몰라뵙고……!”
“아니, 저 말고요.”
낮은 목소리의 여인이 턱으로 러시아행 게이트 방향을 가리켰다.
“저 남자한테 방금 뭐라 했었죠?”
“예…… 예?”
문득, B급 헌터의 머릿속에 몇몇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암제가 소속되었다고 하는 드미르 공방과.
최근 하이 랭커가 된 공방주 주동훈의 모습이.
‘미, 미친. 설마……?!’
여태껏 띨띨하다고 욕했던 사람이 세계 랭킹 78위의 헌터였단 말인가?
두 B급 헌터는 입을 떡 벌린 채, 너무 놀라서 굳어버렸다.
얼굴을 보긴 봤는데.
랭커가 된 지 너무 단기간이어서 제대로 떠올리지 못했다.
기소율은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항상, 그 입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특히 이런 곳에는 듣는 귀가 많고. 모욕적이라 느끼는 순간,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거니까.”
명백한 협박.
“며, 명심하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두 헌터가 군기가 바짝 든 채로 대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구에게나 목숨은 소중하니까.
* * *
“주동훈 씨?”
들리는 여성의 목소리에 내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기소율이 평소와 같은 차림에 배낭을 멘 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색해서 난 픽 웃었다.
암제가 배낭이라니.
“왜, 웃으세요?”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신기하잖아요.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제가 암제님의 짐꾼으로 던전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E급 헌터 나부랭이였던 내가.
이제는 그녀보다 랭킹이 높다.
나는 78위.
기소율은 151위.
“그러게요.”
기소율 역시 마주 웃으며 말했다.
“사실 그때. 눈빛이 독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빨리 성장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다 암제님이 도와주신 덕이죠.”
내가 랭커가 될 수 있었던 데에.
기소율의 지분이 50% 이상은 될 거다.
그녀가 짐꾼으로 채용하는 바람에 노인을 얻을 수 있었고.
그녀가 델라일라 시련의 후보로 날 추천하는 바람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근데, 언제까지 암제님이라 부르실 거예요?”
기소율이 대뜸 물은 것은 그때였다.
“예?”
내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럼 암제님을 암제님이라 하지, 뭐라 불러?
“저는 드미르 공방에 소속된 직원이고, 동훈 씨는 공방주님인데 암제님 암제님 하면 호칭이 이상하잖아요?”
기소율의 입꼬리가 어색하게 비틀렸다.
‘표정이 없는 사람이라더니.’
왜 내 앞에서는 표정이 다양한 걸까?
뭐, 무표정보단 나으니 상관없지만.
“그럼 뭐라 부르면 되는데요?”
“그냥 제가 동훈 씨 대하는 거처럼 소율 씨라 부르면 되죠. 뭘 그런 걸 묻는담.”
“소율 씨?”
“예. 아, 우선. 곧 출발할 거 같으니, 서둘러 탑승하시죠?”
콩콩콩!
가벼운 발걸음이 무언가 서두르는 것 같다.
‘뭐야?’
혹시나 해서, 시계를 바라봤다.
아직 출발하려면 30분이나 남았는데?
“…….”
부끄러워서 그러는 건가?
하긴, 그럴 수 있겠다.
본래 표현이란 걸 하지 않던 사람이, 표현하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고들 하니까.
그녀를 볼 때면.
세상에 갓 발을 내디디는 히키코모리를 보는 것 같았다.
물론.
세상 그 누구보다 음침하며 강한 히키코모리.
“예예, 그러시죠.”
기소율의 신선한 모습이 마냥 웃긴 나는 천천히 그녀의 뒤를 밟았다.
* * *
우우웅!
거친 소리와 함께 비행기가 이륙했다.
놀랍게도.
러시아행 항공편에 탑승한 자는 나와 기소율이 끝이었다.
우리를 보내기 위해, 협회 측에서 요청했다나?
비행기가 순항고도에 안착했을 때.
촤르륵!
내 옆자리에 앉은 기소율이 무언가를 펼쳐 보였다.
“동훈 씨, 여기 보세요.”
“이게 뭔데요?”
“지금까지 밝혀진 러시아 던전에 대한 정보와 현 러시아 정부의 상황을 자료로 뽑아놨어요.”
“오오.”
내가 이번 원정에 기소율을 추가한 이유였다.
나보다 던전에 대한 지식이 많고, 선발대로 참여까지 해봤던 헌터니까.
‘이제 드미르 공방은 걱정 없기도 하고.’
본진을 옮기는 중이고.
엘드린의 주문 의식을 통해 ‘경보’ 알람까지 설치했다.
이젠 굳이 기소율의 경호가 필요 없었다.
‘또한.’
델라일라의 돌 목걸이도 확인해 봤다.
‘대단했지.’
놀랍게도.
던전 아티팩트는 다른 던전 내부에서도 충분히 사용 가능했다.
즉, 내 기지는.
세상 어느 곳에서 연결할 수 있는 나만의 아공간이 된 셈이다.
“일단 동훈 씨도 아시다시피, 이 던전…… 딱 일주일 전에 세계 협회로부터 S급 판정을 받았어요.”
“그 부분은 협회장한테 들었습니다.”
S급 던전이라는 말은.
A급 헌터 다섯 이상이 모여도 클리어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S급 던전이라고 막연하게 S급이라 생각하면 안 되는 거 아시죠?”
“예. 애초에 등급이란 게 인류가 편의상 측정하는 거뿐이니까요.”
본래 던전에는 등급이 없다.
또한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 등급을 알 수 있는 자가 없다.
누군가는 던전 게이트의 명도로 그 난이도를 파악한다는 자도 있지만.
‘그건 근거 없는 낭설일 뿐이고.’
아직 우리 인류가 던전에 대한 걸 명확히 밝히기엔.
너무도 짧은 시간이 흘렀을 뿐이었다.
“그래서 제 생각엔 바로 던전을 들어가는 것보다 주변에서 정보 좀 주워서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주변이요?”
내가 묻자, 기소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우리가 가는 곳이 마침 시베리아에 위치한 ‘크라스노야르스크’라는 도시거든요?”
“음, 발음하기 빡신데요?”
“일단 그곳에 있는 ‘칸스키’라는 마을로 이동할 거예요.”
“칸스키…….”
협회장과 대화할 때 들어본 적 있다.
미국의 할렘가를 방불케 하는 범죄 도시라나?
‘과연.’
이 여자.
세긴 세구나.
그런 무서운 곳을 마치 여행지 관광하듯이 말하다니.
“동훈 씨. 이건 제 감인데요. 여기 자료 사진 좀 봐보실래요?”
촤륵! 촤르륵!
자료를 유려하게 넘긴 그녀가 이내 사진 하나를 보여줬다.
위성으로 찍은 던전 게이트의 모습.
“보고 느껴지는 거 없으세요?”
“음.”
느껴지는 거라.
“글쎄요. 그냥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게이트인데.”
“정확해요.”
“예?”
“그거라고요. 평범하잖아요.”
“……?”
“원래 명품을 많이 차본 사람이 진퉁과 짝퉁을 잘 구분하는 것처럼, 던전을 많이 다녀보면 보기만 해도 느껴지는 그런 게 있거든요.”
“호오오.”
나는 배우는 자세로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여기 보시면 명도도 옅고, 그 구멍의 크기도 작아요. 물론, 이런 거로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설마. 실상은 고난도의 던전이 아닐 수 있다?”
“그러니까 털어서 확인해 봐야죠. 만약 범죄로 이용되는 던전이라면, 칸스키에 있는 자들이 알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까.”
“그렇군요.”
옆에서 듣고 있자니.
그럴 법하기도 했다.
“우선 동훈 씨도 나름 암술을 익히셨다 했으니까…….”
그녀는 계속해서 본인이 조사해 온 자료들과 준비한 계획들을 종알종알 설명했다.
대충 30분 정도?
나는 적당히 호응하며, 눈을 감았다.
문득, 김진아의 당부가 떠올랐다.
- 공방주님! 가서 화끈하게 조지고 오셔야 해요?
- 아시죠? 지금은 협회 측에서 보안 등급 올려놨다지만, 나중에 결국 소문 다 퍼질 거.
- 공방주님의 활약이 곧 우리 드미르 공방의 활약이 되는 거라구요!
그렇다.
이번 원정이 바로 내 랭커로서의 첫 데뷔.
‘까짓거.’
보여줄게, 세상아.
델라일라의 시련 MVP의 실력이 어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