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79화
모여드는 랭커들 (1)
대한민국 최대의 헌터 커뮤니티.
「헌터 게시판」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BEST★]
[아이디 : A급이라고]
[추천 수 : 1,325,000명]
[제목 : 최근 ‘드미르 공방’ 면접 보고 온 썰]
자유 게시판에 올라온 썰이 하나의 떡밥이 되어, 불이 번졌기 때문.
썰의 내용은 이랬다.
- 나 최근 핫했던 드미르 공방 면접 보고 왔는데 떨어진 듯?
- 근데, ㅅㅂ. 좀 너무하더라.
- 게시판 상주하는 애들은 알다시피 나 보라돌이(A급 명패색)잖아.
- 보라돌이면 그래도 어느 길드든 모셔가는 입장이란 거. 다들 알제?
- 물론, 드미르 공방이 최근 무기 지원이나 업계 최고 대우 등 끌리는 조건들이 많아서 지원한 건 맞는데.
- 아무리 그래도 ㅅㅂ ㅋㅋㅋ
- 면접실에서 나오는 사람마다 다 황금 명패야.
- ㅅㅂ S급 헌터라고.
- 진심 B급은 서류 통과 자체도 안되는 지 한 명도 안 보였고.
- 그 황금 명패들마저 표정 안 좋더라.
- 그때부터 갑자기 개 쫄리더라고.
- 면접실 들어가니까 좀 예쁘장하게 생기신 여성분이 이것저것 질문하는데.
- 경직돼서 제대로 답도 못 하고 나옴.
- 하, ㅅㅂ.
- 설마 길드도 아니고 공방 면접이 이렇게 빡셀 줄은 몰랐다.
다른 길드 면접 장소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광경에, 넋이 나간 A급 헌터의 넋두리.
아니나 다를까, 댓글 창은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ㅋㅋ 공방이긴 한데 그냥 공방은 아니지. 하이 랭커가 마스터인 공방인데.
▶ㅋㅋㅋ 그래도 미쳤네. S급이면 그냥 아무 길드 프리패스 아니냐?
▶난 A급인데 서류 탈락함. 서류 합격한 것만 해도 경쟁력 오지는 거임…….
▶확실히 대우가 사기긴 함. 내가 알기로 동종 업계 평균 10배일걸?
▶ㅇㅇ 소수만 정예로 뽑는 대신, 대우를 올린다 들음.
순수하게 놀라는 사람들과 그럴 만했다는 사람들.
▶근데 글쓴이는 떨어질 만함. 무슨 면접관보고 좀 예쁘장한 여성분 ㅇㅈㄹ. 지원한다는 놈이 공방 조사도 안 해봤냐? 부공방주 김진아잖아.
▶ㅋㅋㅋ ㄹㅇ.
▶떨어질 만했네. 간부 이름도 모르누.
▶A급이라 그런 듯. 사실 A급이면 어딜 가든 조사 그딴 거 안 해도 되잖아.
▶그래도 경쟁률 높은 곳 가려면 기본적인 건 갖춰야지 ㅋㅋ
▶근데 면접 지금도 진행 중인 거?
▶ㅇㅇ, 오늘 거의 종일이라던데.
또 글쓴이를 조롱하는 자들.
가지각색 헌터들이 떡밥을 물고 물어 화제를 만들어냈다.
비단 여기 커뮤니티만 시끄러운 게 아니라.
[드미르 공방, 면접 아직도 순항 중.]
[지원자 대다수가 S급? 항간에는 랭커도 지원했단 소문 돌아.]
[공방이 헌터 모집하는 이유는? 정식 길드라도 창설할 생각인가?]
[다시 복습하는 드미르 부공방주, 김진아에 대하여.]
기자들 역시.
조회 수 좀 올리겠다고, 다양한 파생 기사를 생성했다.
“후우우우.”
그리고.
드미르 공방 2층 VIP실.
탁자 위에 깍지를 끼고 앉은 김진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 옆에는 수많은 지원 서류들이 두께 있게 쌓여 있었다.
“진짜 많기도 하다.”
놀랍게도 저게 다 A급에서 S급 헌터들이다.
또한, 고랭크 헌터 외에도.
기업 전반 업무를 도와줄 인재들이 차고 넘쳤다.
앞으로 지어질 무릉도원 속 도시에 출근해 막대한 양의 업무를 소화할 자들.
“흐흐.”
김진아가 신난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본인의 손으로 무언가 하나하나 갖춰가는 재미를 느낀 탓.
삐걱!
밖에서 스켈레톤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도우미 역할을 수행 중인 엘드린의 수하 중 하나인데.
다음 면접자가 다가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큼큼.”
뽑아놓은 질문 용지를 들고 목소리를 가다듬을 찰나.
웅성웅성!
밖에서 대기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입구 쪽을 응시하자.
세 인물이 동시에 들어섰다.
“호오, 면접 장소가 여기야?”
먼저, 흥미롭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들어오는 새하얀 피부의 독일 여성.
“이야, 이 자식! 제법 잘 꾸며놨잖아?!”
그런 그녀의 뒤에는 신비한 검을 들고 있는 독일 중년과 탐험가 복장의 브라질 청년이 서 있었다.
“큼큼, 당신이 부공방주 김진아겠군. 반갑네, 난 독일의 막시밀리언일세. 부끄럽게도 절대무쌍(絶對無雙)이라는 화려한 이명을 가지고 있지.”
“반갑다. 나는 카푸. 훈의 길드라길래 지원했다.”
어어?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던 김진아가 벌떡 일어섰다.
“세상에나, 세 분 다 직접 오신 거예요? 천천히 오셔도 된다 했는데!”
여태껏 S급 헌터들을 상대로도 갑(甲)의 위치에 있던 그녀가 순식간에 을(乙)이 되는 순간.
랭커란 그런 존재였다.
데리고만 있어도 국력이 되고 길드의 힘이 되는 존재.
그 가치는 절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지원했는데, 당연히 와봐야지.”
파즈즉!
뇌명(雷鳴) 플로아가 주먹에 전류를 튀겼다.
‘세상에.’
꿀꺽.
김진아가 침을 삼켰다.
랭킹 80위의 독일 영웅을 실물로 볼 줄이야.
또한, 그런 자가 친히 우리 길드로 들어오겠다고 할 줄이야.
하지만.
놀라움은 그뿐이다.
자신은 랭킹 78위 주동훈이 세운 공방의 부공방주 위치에 있는 자이며.
현재는 그의 부재를 대리하는 상황.
‘해야 할 건 해야지.’
입술에 힘을 준 김진아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일단, 세 분 모두.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여기 앉으시죠.”
* * *
랭커라고 그냥 막무가내로 받을 수는 없다.
선심이 아닌, 어떤 꿍꿍이가 있어서 접근한 걸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김진아는 저들에게 지원 동기를 하나씩 물었다.
그런데.
“으음, 난 훈을 존경한다. 훈 덕에 랭커가 될 수 있었고, 훈 옆에 있으면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지원했다. 게다가 이번에 새로 개발한 스킬이 있는데. 음, 그건 훈에게 직접 설명하고 싶군.”
랭킹 908위, 인도자(引導者) 카푸.
그는 그냥 공방주님의 빠였으며.
“나도 저기 카푸랑 동일한 이유에서일세. 그는 무모하지만 낭만이 있으며, 냉정하지만 의리가 있는 남자거든. 대우는 어떻게 해줘도 상관없네. 오히려 내가 무언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 그러니까…… 나는 그냥 이 길드. 아니, 공방이라 해야 하나? 이곳이 좋네.”
랭킹 905위, 절대무쌍(絶對無雙) 막시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뭐야.’
김진아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 랭커들이면.
어깨가 빳빳이 올라가서, 어떤 대우를 해줄 수 있는지부터 협상하려 할 텐데.
이들은 뭔가 달랐다.
그냥 진짜, 공방주님이 좋아서 온 느낌?
가관은 플로아였다.
“나?”
동기를 묻는 질문에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키더니.
“주동훈, 그 자식이 내 주인이니까.”
“예…… 에?”
김진아는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뭐? 주인?
내가 아는 그 주인?
‘아니, 공방주님 도대체.’
없어진 기간 동안 무슨 일을 벌이고 다닌 거야?
당황한 김진아가 입을 뻐끔거리고 있자.
플로아가 씩 웃었다.
“그냥, 내가 원래 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거든.”
“약속이요?”
“응, 주인은 생각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야. 어쩌면 네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난 이제부터 그 주인을 모시려 한다. 이왕 줄 탈 거 먼저 타서, 개국공신이라도 되는 게 낫지 않겠어?”
도대체가.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 수 없는 말.
랭커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뭔가가 있는 건가?
나름 판단력이 좋은 그녀로서도 이번 건 도저히 알아채기 힘들었다.
‘어쨌든.’
여기 랭커들은 이미 자신의 손을 넘어섰다.
나중에 공방주님이 보시면 알아서 판단하시겠지.
“후.”
옅은 한숨을 내쉰 김진아가 셋을 바라봤다.
“당연하지만, 일단 세 분은 합격이세요. 대우는 섭섭지 않게 해드릴 거고. 으음, 출근은 언제부터 가능하세요?”
“출근? 그전에. 그 자식, 지금 러시아에 있지?”
“아, 공방주님요?”
언제는 주인.
또 언제는 그 자식.
김진아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응, 주인 자식.”
“……예, 뭐. 기사도 났으니까요.”
“그럼 일단 우리 셋은 먼저 그쪽으로 가 있어도 되나?”
파즉!
플로아가 전기를 튀기며 물었다.
“느낌이 딱 고담이랑 부딪힐 것 같은데, 아무래도 지원 사격 해줘야 할 것 같거든.”
고담이라.
또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긴 하는데.
‘어차피.’
지금 당장은 저 랭커들이 출근해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오히려 암제님처럼 공방주님이랑 같이 있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요.”
김진아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죠, 랭커님들.”
세 랭커가 합류하는 순간이었다.
* * *
그 시각.
러시아 던전 속.
“으음.”
봉재영이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그런 그의 뒤로 누군가가 물어왔다.
“아직 해결책은 없는 겁니까? 이렇게 헤맨 지도 벌써 3일 차입니다.”
생존자 랭커 중 하나.
랭킹 914위, 샤크스킨(sharkskin) 토마스였다.
“기다려 봐라. 지금 찾고 있는 거 안 보이나?”
봉재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콰앙! 콰아앙!
“으아아!”
“끄악!”
자신을 따랐던 생존자들의 끔찍한 비명.
‘제기랄.’
던전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알 수 없는 지형 때문에 자꾸 길을 잃기 일쑤였고.
옥빛 안개 속에서 계속해서 미지의 공격들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 비겁하고 요망한 것들! 더러운 술수 쓰지 말고 나와라! 남자답게 나와서 붙잔 말이다!”
결국, 참지 못한 봉재영이 폭발했다.
아무리 800~900위대 하급이라지만 랭커가 다섯이다.
자신을 포함하면 여섯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력하게 당할 수 있는 걸까?
“새, 생각해 보니까. 상대가 고담일 수도 있잖아. 왜, 그걸 생각 못 했지?”
“고담?”
“고담이면…… 하이 랭커들도 몇 있지 않나?”
“완전 최상위급 하이 랭커는 아니지만, 그래도 하이 랭커 여럿이 촘촘히 박혀 있지. 그래서 더 무서운 거잖아.”
“씨발, 뭐에 홀렸나? 내가 미쳤다고 여길 와서는……!”
결국, 집단의 사기가 급속도로 꺾였다.
특히 몇몇 생존자로부터 「고담」에 대한 악명이 퍼지면서, 그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무서워.”
“젠장, 나가고 싶어. 지금이라도 튈 순 없을까?”
하지만 이곳 지형은 요상했다.
사방이 녹색 구름으로 뒤덮여 있고.
스스슷! 스슷!
펑! 퍼어엉!
지금도 그 사이에서 알 수 없는 공격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미 목숨을 잃은 자들만 20%가 넘어갔다.
으득.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문 봉재영.
그의 마음속에도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살짝 들어섰다.
‘씨발, 고담이 뭔데.’
뭔 마피아 집단 이름인 줄은 알고 있었는데.
그게 왜 이 던전 속에 있단 말인가?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해도 그런 얘기는 없었는데.
‘설마.’
그 녀석은 다 알고 있었던 걸까?
봉재영의 머릿속에 생존자들을 말리던 주동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건방진 새끼.’
왜일까.
이미 본인이 틀렸음을.
실패했음을 알고 있는데도, 그걸 인정하기가 싫었다.
슈우웅! 퍼엉!
어둠 속에서 또 하나의 공격이 날아왔다.
“커, 커헉!”
헌터 하나가 복부를 잡고 쓰러졌다.
바닥에 피가 흩뿌려졌다.
“…….”
이제는 결정해야 했다.
이대로 계속되면 그 결과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
‘전멸.’
그리고 자신의 비참한 죽음이겠지.
‘그건 싫어.’
어떻게 올라온 랭킹 101위던가.
고작 이따위 타국 던전에서 목숨을 잃긴 싫었다.
‘그러려면.’
자신을 따라왔던 헌터들에겐 미안하지만,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우우웅!
봉재영은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어, 기운을 자신 몸에 둘렀다.
그다음.
“씨바아알!”
사방에 보이는 녹색 안개로 무작정 내달리기 시작했다.
방향은 중앙이 아닌, 바깥쪽.
‘무조건 뚫는다.’
그렇다.
결국, 봉재영은 던전 밖으로 혼자 도주할 계획을 세워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