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81화
모여드는 랭커들 (3)
“복덩아.”
후, 하고 한숨을 뱉은 블라디미르가 중얼거렸다.
“예, 형님!”
그러자, 덩어리 하나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리고 금덩아, 은덩아.”
“옙!”
“네, 형님.”
덩어리 뒤에서 각각 금발 사내와 은발 사내가 쏜살같이 뛰어왔다.
“너희 말이다…….”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블라디미르는 잠깐 동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저 셋.’
자신과 함께 온갖 험난한 일들을 겪어왔던 가족 같은 동생들.
공간술을 통해 겨우 찾아냈는데도, 변함없이 ‘형님!’을 외치며 달려오는 저들을…….
‘내가 과연 믿을 수 있을까?’
불과 3일 전.
블라디미르는 끔찍한 참상(慘狀) 속에서 시체를 세었다.
배신자를 찾기 위해.
그는 엄습해 오는 슬픔을 가슴속에 묻어두고, 냉정해지기로 홀로 끝없이 다짐했다.
그 결과.
찾을 수 없었던 시체가 바로 저 셋.
정확히는 복덩이, 금덩이, 은덩이였다.
‘그렇다면 저들이 과연 배신자일까?’
정황상 그럴 수밖에 없긴 하다.
자신이 공간술로 하나하나 옮긴, 입구도 없는 은신처였고.
그 누구에게도 정보를 발설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블라디미르는 저들을 믿고 싶었다.
어렸을 적 마피아에 의해 부모를 잃었던 그가 마음을 다해 동생으로 삼았던 자들이기 때문.
솔직히.
아무리 완벽하게 차단했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정보 누설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니던가?
세상에 워낙 기상천외한 고유 능력들이 많으니 말이지.
“너희는…… 어쩌다 여기 있는 거냐?”
“그, 그게 말입니다, 형님!”
복덩이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시다시피, 저도 형님처럼 공간술을 쓰지 않습니까?”
“음, 그랬지.”
“처음엔 형님 말처럼 그 은신처에 쥐 죽은 듯 숨어 있었는데, 어느 순간 너무 답답한 겁니다. 그래서 동생들이랑 함께 마실 나왔다가 그만, 좌표를 까먹어서…….”
복덩이가 순진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더니, 이내.
“죄송합니다, 형님!”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금덩이, 은덩이와 함께 머리를 숙인다.
“후.”
블라디미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이들이 배신자라고?
아닐 거라 믿고 싶지만, 그냥 편하게 생각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 축축하고 습한 곳에서 죽어 나간 형제들의 억울한 원혼이 아직 그의 곁을 맴돌고 있기에.
“그나저나 형님! 이번에 랭커 되셨다면서요? 축하드립니다!”
“사실, 이곳에 숨어 형님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다시 은신처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게다가 이들.
그 참혹했던 학살 현장도 잘 모르는 눈치다.
그게 연기인지 아닌지도.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운 블라디미르는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여기 대기해라.”
블라디미르가 침착하게 중얼거렸다.
‘아직, 말할 수 없어.’
만약 저들이 정말 「고담」이 심어 둔 첩자라면, 굳이 아는 체해봐야 좋을 거 없다.
‘내가 안다는 사실이 안드레이 그놈 귀에 들어갈 수도 있을 테니까.’
충왕(蟲王) 안드레이.
하이 랭커인 그가 자신을 귀찮아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이담은 점(点)조직이거든.’
수많은 피해 시민들.
억울하게 당한 자들을 하나하나 모아 만든 집단.
그리고 이담이 점조직이라는 사실은 눈앞의 복덩이 형제들은 잘 모른다.
그들은 간부급이 아니었고.
아무리 친하다 한들,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하는 블라디미르의 성격 덕이었다.
‘어찌해야 하나.’
블라디미르의 이맛살에 주름이 잡혔다.
다행히 자신을 델라일라 시련에 추천했던 다섯 랭커는 잘 생존해 있다.
여러 은신처를 돌며 확인했기에 확실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안드레이가 첩자를 심어두었다면, 과연 한 곳에만 심어두었을까?
‘일종의 경고겠지.’
으득.
블라디미르가 이를 갈았다.
아무리 「이담」이 점조직이라 하더라도, 그가 기울인 관심은 제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담」은 러시아 피해 시민들의 주도로 만들어진 거기에, 서로 얼굴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만.’
이곳만큼은.
이번 참상이 일어난 곳만큼은 달랐다.
그곳은 자신이 직접 일으킨 곳이며.
비록 각자의 힘은 약했지만,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투사들이었다.
「이담」의 심장과도 같은 곳.
그래서 더 화가 났다.
그런 곳에 첩자가 있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복덩이, 금덩이, 은덩이.’
너희 셋 중에 누구냐?
도대체 누가 가면을 쓰고 있는 거냐?
의심한 거면 미안하지만, 만약 걸린다면.
으드득!
‘뼛속까지 씹어 먹어주겠노라.’
그렇게 블라디미르가 속으로 결의를 다질 찰나.
[띠링!]
[인도자(引導者)가 ‘채팅창’에 초대합니다.]
[‘채팅창’명 - 드래곤 슬레이어 동기방]
[인원수(5/7)]
‘음?’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 *
[공간술사(Spacian)가 ‘드래곤 슬레이어 동기방’에 입장합니다.]
[심판창(審判槍) : 오, 왔군.]
[봄사도(春使徒) : 블라디미르, 하지메마시테~]
[물의 마녀(Water Witch) : 오오, 다섯 번째는 블라디미르? 반가워요. 이렇게 하나둘 모이는 게 신기하네요.]
[절대무쌍(絶對無雙) : 말하지 않았나. 카푸랑 일정 거리 근처에 있어야 초대장이 보내진다고.]
[절대무쌍(絶對無雙) : 굳이 러시아를 마지막에 간 건, 우리 팀장을 놀라게 하고 싶다는 카푸의 마음인 거지.]
[물의 마녀(Water Witch) : 오오오, 역시! 주인공은 항상 마지막이라는 거죠?]
“…….”
블라디미르가 눈을 깜빡였다.
이게 뭐지?
왜 동기들의 채팅이 상태창화 되어서 눈앞에 떠오르는 거지?
벌떡, 일어선 블라디미르가 건물 밖을 향했다.
“형님?”
“어디 가십니까?”
금덩이와 은덩이가 물어왔으나.
“잠깐 대기하고 있으라고.”
손을 들어 휘적이며, 한적한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어떻게 하는 거지?’
그리고 속으로 말해보았다.
[공간술사(Spacian) : ㅇㅁㅇㅁㅇ]
[물의 마녀(Water Witch) : 오오, 블라디미르 말한다. 좀 어색하죠?]
[공간술사(Spacian) : 음, 아음.]
[물의 마녀(Water Witch) : 처음엔 다 그래요. 여기 있는 사람들도 적응하느라 꽤 걸렸어요.]
‘이거.’
속마음이 각자의 언어로 번역되어 퍼져 나가는 듯한데.
‘어떻게 이런 걸?’
블라디미르는 소름이 돋았다.
어떠한 거리에서도 소통이 된다는 게, 얼마나 사기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
던전 내부에서는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다.
그래서 보통 헌터들이 택하는 게.
기껏해야 무전기나 워키토키(walkie-talkie).
그마저도 일정 거리 이상 벌어지면 무용지물이기에, 소통의 문제는 던전에서 꽤나 중요하다.
‘막말로.’
이런 능력만 있었으면, 「이담」의 결속력이 더 두터워지지 않았을까?
‘능력’으로 인정되어 상태창으로 의사를 전달한다면, 해킹당할 위험도 0에 수렴할 테니까.
[공간술사(Spacian) : 도대체 이런 걸 어떻게……?]
블라디미르의 글에는 놀람의 감정이 가득했다.
[인도자(引導者) : 그건 내가 설명하겠다. 블라디미르.]
카푸의 글이 올라왔다.
[인도자(引導者) : 일단 이건…… 시련에서 테마5 보상으로 얻은 ‘SS급 스킬상자’에서 나온 ‘채팅창 관리자’(SS급) 스킬이다. 처음엔, 스킬 파악 좀 하고 꽁꽁 숨겨두려 했는데…… 애초에 스킬 자체가 숨기면 하등 쓰잘머리 없는 기능이더군?]
그건 맞지.
채팅할 수 있는 스킬이면 많은 사람들이 알수록 유리하니까.
[인도자(引導者) : 그래서 가장 처음으로 만든 게 이 채팅창이다. 나는 관리자로서 여러 채팅창을 만들 수 있지.]
[공간술사(Spacian) : 대단하네.]
[인도자(引導者) : 또한, 나는 관리자로서 채팅 참여자의 글에 묻은 감정도 느낄 수 있다. 블라디미르. 너는 지금 슬프군?]
[공간술사(Spacian) : …….]
아.
‘이런.’
블라디미르의 미간이 좁혀졌다.
저들에게 부담 주는 건 싫었다.
‘이건 내 문제이니까.’
그가 상대해야 할 「고담」은 무서운 자들이다.
아무리 동료들이 믿음직스럽고 의지가 되어도, 그들에게 다시 한번 목숨 걸 것을 강요할 수 없었다.
[봄사도(春使徒) : 음? 블라디미르가요? 슬퍼요?]
[물의 마녀(Water Witch) : 의외네. 블라디미르가 슬프다니, 어울리지 않잖아요.]
[심판창(審判槍) : 친우여, 무슨 일인가.]
[물의 마녀(Water Witch) : 그래, 말해 봐요.]
[절대무쌍(絶對無雙) : 흠, 마침 나도 막 러시아로 도착했는데. 팀장도 러시아에 있고. 설마, 여기 마피아들이랑 무슨 일이 있는 건가?]
“…….”
순간.
블라디미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팀장…….’
주동훈.
자신이 만났던 그 어떤 헌터보다 대단한 자.
그가 여기 있다고?
지금껏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바람에, 그가 왜 러시아에 왔는지까진 파악하지 못했다.
‘주동훈이라면.’
어쩌면 이 사태를 쉽게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커다란 벽처럼 느껴지는 「고담」 따위 웃으면서 부수지 않을까?
눈동자와 같이 마음도 흔들렸다.
솔직한 마음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다.
손을 뻗고 싶었다.
위험한 걸 알면서도.
[봄사도(春使徒) : 왜요, 무슨 일인데요. 누가 우리 블라디미르 슬프게 했어.]
[물의 마녀(Water Witch) : 어이, 블라디미르! 우리가 남이에요? 왜 망설여요!]
[절대무쌍(絶對無雙) : 맞지, 서로 도울 땐 돕는 거지.]
동기들이 저렇게 말하니, 더더욱.
[공간술사(Spacian) : 그게…….]
그렇게 입을 떼려고 할 찰나.
[인도자(引導者) : 잠시만.]
카푸가 말을 끊었고.
약 5초 정도가 더 흘렀을까.
[스켈레톤 킹(Skeleton King)이 ‘드래곤 슬레이어 동기방’에 입장합니다.]
[인원이 가득 찼습니다. (7/7)]
주인공의 등장이었다.
* * *
그 시각.
“호오.”
나는 잠깐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거리를 벌린 상태에서 채팅창을 확인했다.
처음 입장하자마자 쏟아지는 동기들의 메시지와.
카푸가 채팅창을 개설한 사정을 들었을 때.
‘그랬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푸가 대견했다.
그 좋은 걸 우리에게 먼저 공개하려 하다니.
그야말로 참된 동기 아니던가?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어지는 블라디미르의 담담한 고백.
[공간술사(Spacian) : ……고담 녀석들이 그때 말했던 내 형제, 내 가족들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어. 미안하다. 이런 말 하는 거 면목 없는 거 아는데.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 자신이 더 힘든 것 같아서 말했다.]
“…….”
채팅창에는 일순간 침묵이 돌았다.
오직 글임에도, 그의 절절한 감정이 느껴졌기에 섣불리 말을 꺼낼 수가 없었던 탓.
비록 시련에서 돌아온 지 약 일주일 정도밖에 안 된 시간이었지만.
그가 겪었을 상처가 얼마나 클까?
이외에도 배신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블라디미르는 세세한 사정들을 늘어놓았다.
[심판창(審判槍) : 나쁜 자들이군. 당장 가서 심판하고 싶을 정도다.]
[물의 마녀(Water Witch) : 이건 저도 못 참겠는데요? 휴가 써요? 아니면 이거 공론화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마탑주님께 말하면 단번에 정리될 거 같은데.]
[봄사도(春使徒) : 러시아가 조용하다 싶더라니……. 그런 일이 있었군요. 확실히 반인륜적이네요.]
[인도자(引導者) : ……도울 일 있으면 최선을 다해 돕겠다.]
동기들 역시.
그와 하나가 되어 감정을 공유했다.
‘블라디미르, 이 자식.’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문득, 용과의 전투 당시.
그가 자신의 심장을 내어주며, 나를 지켰던 순간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사실.
굳이 충왕이랑 왜 싸워야 하는지.
그 동기가 살짝 약했는데.
‘잘됐네.’
나는 재빨리 채팅 글을 올렸다.
[스켈레톤 킹(Skeleton King) : 고담이면 안드레이랑 지마죠? 잘됐네요. 곧 싸우려 하는데, 여기로 지원 올래요?]
내 갑작스러운 선포에 이어지는 정적.
약 10초 정도가 흘렀을까.
[공간술사(Spacian) : 그게…… 무슨……? 지금 고담이랑 싸우려 한다고……?]
[물의 마녀(Water Witch) : 이야, 진짜예요? 훈? 이미 알고 가 있었던 거예요? 역시 팀장의 클래스는……. 이거 안 되겠네. 저도 갈게요.]
[절대무쌍(絶對無雙) : 나야 어차피 팀장과 합류할 것이니, 같이 돕겠네.]
[봄사도(春使徒) : 저도 지금 짐 챙겨서 나왔어요. 동기가 힘들다는데,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겠네요.]
[심판창(審判槍) : 다들 참여하는가? 그렇다면 나 역시 빠질 수 없지. 그 무엇보다, 악자를 심판하는 일 아니던가!]
단순하면서도 적극적인 참여.
동기들 답도 시원시원했다.
[공간술사(Spacian) : …….]
[공간술사(Spacian) : 다들…….]
[인도자(引導者) : 블라디미르가 놀라서 말을 잘 못 하고 있군.]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그의 심정이 나에게도 전달되고 있으니까.
‘고담 이 자식들.’
우리 블라디미르를 건들다니.
녀석들을 쳐 죽일 제대로 된 명분이 생겨버린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