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83화
고담 (1)
“그러고 보니, 그랬어! 쟤가 들어오고 나서부터 뭔가 정보가 새는 느낌이었지!”
“우리도 최근 막내만 실종된 적 있었죠? 그때 이상하게 저놈만 살아 돌아왔었잖아요! 하! 이제야 딱 그림이 맞춰지네!”
“고담의 끄나풀이었던 거냐?”
“저 많은 인원이 다 첩자라는 거지……?”
술렁술렁.
복덩이, 금덩이, 은덩이를 포함한.
50명의 헌터를 둘러싸며, 이담의 멤버들이 떠들었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누군가는 욕을 했고 또 누군가는 그간 있었던 이상한 점들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저벅.
그런 그들의 중앙에 블라디미르가 위치했다.
「이담」의 대표이자.
세상 그 누구보다 마피아를 멸하길 바랐던 그.
마피아를 죽이기 위해, 마피아가 되기를 선택했던 그.
울컥!
블라디미르는 속에서 무언가 치솟는 걸 삼키며.
“…….”
꾸벅.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부족하지만 이담 조직의 수장이었던 제 불찰입니다.”
“…….”
랭커가 되느라 그랬다.
좋은 기회로 추천을 받았고.
더 나은 상황을 위해 노력하다 보니 그랬다.
너무 짧은 시간 만에 많은 조직이 모이다 보니 관리가 어려웠다.
등등.
변명거리는 많았지만, 굳이 여기서 늘어놓을 필요는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할 여력이 없었다는 게 맞겠다.
으드득!
그 역시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분노하고 있었기 때문.
“형님! 아닙니다!”
“……그게 사실, 고담 랭커 중 하나가 협박했습니다. 흐흑! 제 하나뿐인 동생을 죽인다고 했단 말입니다!”
“저, 저도입니다! 그놈들이 나쁜 놈들입니다! 저희도 피해자란 말입니다!”
어쩔 수 없다는 걸 파악했음일까?
복, 금, 은.
‘덩이’ 형제들이 결국 첩자임을 시인했다.
‘형제라…….’
피식.
블라디미르가 실소를 지었다.
애초에 저들에게 형제가 있었나?
그런 말은 금시초문이었다.
조직에 들어올 당시엔.
모든 가족들이 마피아에게 당했다고 했었으니까.
그걸 분노 삼아 복수하고 싶다고 했었으니까.
‘뭐.’
애초에 스파이가 목적이었다면.
그것 역시 만들어낸 사정일 수도 있겠지.
“저, 저도 사정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랬겠습니까?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러시아에서 고담을 어기면 어찌 되는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하나둘.
첩자들이 자신만의 변호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
블라디미르가 주먹을 쥐었다.
문득.
그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저들이 하는 말이 진짜라면?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자신의 욕심이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한 행동이라면 어떨까.
그래도 저들을 증오해야 할까?
아니.
애초에 저들을 심판할 자격이 자신에게 있을까?
“다 거짓말이다.”
후우웅!
심판창이 창을 늘어뜨리며 나선 것은 그때였다.
“블라디미르. 애초에 그런 의도로 변절했던 자들은 여기 뽑지도 않았어.”
“……!”
그 말은.
다른 변절자들도 있다는 말인가?
심판창이 본인의 기준으로 그걸 알아서 판별해 놓은 거란 말인가?
장웨이가 고개를 돌려 저들을 바라보았다.
“내 눈에는 너희들의 변절 의도가 명확히 보인다. 사사로운 욕심부터, 방화, 마약, 도박, 살인, 유기, 감금, 추행 등의 탐욕과 범죄 의도까지…….”
장웨이가 단호하게 읊조렸다.
“여기 모아놓은 사람은 모두 심판당해야 할 인간쓰레기가 맞다. 도저히 사람으로 봐줄 수 없는 의도를 가진 자만 뽑아놨거든.”
“웃기지 마!”
“네가 뭔데!”
“맞아! 네가 무슨 신이라도 된다는 말이냐?”
당연히 반발은 강력했다.
하긴.
갑자기 나타난 창잡이가 하나하나 집어내더니, 인간쓰레기라 확정하는데.
그 누가 반발하지 않을까.
“신은 아니지만, 나는 심판창(審判槍)이다. 그리고 내 사전에 내가 고른 상대를 심판해 보지 않은 적이 없다.”
“……!”
심판창이라는 말에 놀란 것은 「이담」의 멤버들이었다.
“……심판창?”
“그 악당들만 골라잡는다는 헌터 맞지? 심판창 때문에 중국 범죄율이 다소 감소했다나?”
“맞아! 이번에 랭커 됐다고 그랬었어! 잠깐만…… 맞네! 654위!”
먼저,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 상기했고.
“랭커면……. 그것도 그냥 랭커도 아니고 심판창이면 믿을 만하지.”
“게다가 창왕의 제자잖아?”
“맞아, 창왕의 제자가 여기까지 와서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어.”
“후, 그나저나. 그 능력이 신통하긴 한가 보네? 어떻게 저렇게 잘 맞추지?”
이미 분위기는 바꿀 수 없었다.
여기 있는 모두.
심지어 변절자 당사자마저도 시인하지 않았는가.
저벅.
앞으로 나선 블라디미르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왜 그랬나?”
그의 시선은 복덩이를 향하고 있었다.
“…….”
이미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고 있는 복덩이.
블라디미르가 말을 이었다.
“너희 때문에 소중한 가족들이 비참하게 죽었다. 아무렴 너희도 사람일진대…… 그냥 정보를 팔아넘겼다고? 그것도 흉악한 의도로?”
“…….”
복덩이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반복적으로 위, 아래로 흔들렸다.
울기라도 하는 걸까?
“큭, 크크큭, 끅.”
아니.
오히려 복덩이는 웃고 있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뭐?”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처억!
복덩이가 실성한 듯, 허리춤의 지팡이를 쥐었다.
“세상에 다 너희 같은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아? 싸우고 싶은 사람들만 있는 줄 아냐고!”
“…….”
“우리는 그저 적응했을 뿐이야. 14년 전부터, 세상은 힘의 논리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더 강한 힘에 따랐을 뿐이라고! 도덕? 까라 해!”
복덩이가 지팡이를 바닥에 내려치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헌터들을 향해 외쳤다.
“니들이 부르짖는 범죄가 이미 도덕이 되어버린 세상인데! 생존하기 위해 적응하는 게 그렇게 나쁜 거냐? 씨발, 나보고 어쩌라고!”
“어쩌긴 뭘 어쩌냐.”
블라디미르가 즉각 대꾸했다.
이미 그의 눈빛엔 분노나 슬픔의 감정조차 없어 보였다.
진짜 벌레를 보는 느낌.
조금이나마 잔존했던 감정을 방금 다 털어버린 것이다.
“적이 첩자질 하다 걸렸으면 죽는 거지, 뭐.”
후웅! 탁!
복덩이가 열려고 하던 공간의 문이 그의 간단한 손짓에 닫혀 버렸다.
같은 공간술사지만.
그 수준 차이가 극명한 것.
“제기랄!”
“네 말이 맞고 틀리고, 또는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진 중요하지 않다. 우리 「이담」은 「고담」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고. 지금 우리가 하려는 것은 주적을 상대하는 것.”
블라디미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는 우리의 주적. 그뿐이야.”
그의 전투 신호에.
「이담」의 간부들이 무기를 뽑고 달려들었다.
* * *
“와, 잔인하네요.”
아수라(Asura) 임수진이 질린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 외 동기들과 기소율, 권소예는 각자 자리를 잡고 전투를 준비하는 중.
“어쩔 수 없지요. 전쟁이니까요.”
내가 중얼거렸다.
블라디미르는 변절자들을 꽤나 잔인하게 다루었다.
심하게 반발하는 자들은 끔찍한 방법으로 죽였으며.
나머지 생존자들은 시간을 들여 고문해 정보를 뽑아냈다.
다들 말단이었는지.
아니면, 안드레이가 정말 정보를 차단했는지.
쓸 만한 내용을 뱉어내는 자는 없었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독단을 깨물어 죽고.
또, 누군가는 고문 과정 속에서 죽어 나갔다.
블라디미르는 굳이 변절자들을 살려두지 않았다.
[공간술사(Spacian) : 시간을 줘서 고맙다.]
[공간술사(Spacian) : 이제 준비하면 되겠나?]
어차피.
내가 다 부숴 버릴 거라 선포했으니까.
그 과정에 정보 따위, 상관없다 했었으니까.
저들의 말보다.
내 곁을 지켜주는 노인의 한마디가 더욱 값지고 소중한 정보였다.
[공간술사(Spacian) : 알겠다.]
[공간술사(Spacian) : 그럼 곧바로 정비하겠다.]
두두…….
두두두!
꽤나 많은 인원이 움직이자 땅이 흔들렸다.
나는 어림잡아 「이담」의 전투 요원들을 세어보았다.
‘대략 7,000 정도면…….’
내 스켈레톤 군단과 거의 엇비슷한 수준이네.
블라디미르는 각 조직의 리더들을 통제해, 일사불란하게 병력을 정비했다.
“우와아아아!”
“고담 새끼들 다 씹어 먹어주겠다! 억울하게 죽은 시민들의 한을 풀어주자!”
“싸워라. 싸워야 우리 가족을 지키는 거다!”
“으아! 으아아아아아!”
그 과정에서 연설을 통해 사기를 북돋기도 했고.
어떤 랭커들이 도와줄 건지 정보도 설파했다.
[공간술사(Spacian) : 이제 어떡하면 되는 거야?]
[공간술사(Spacian) : 바로 쳐들어가나?]
[스켈레톤 킹(Skeleton King) : 예, 그래야지요.]
씨익.
내가 웃었다.
저들이 끝났으니 이제 내 차례인가?
‘원래.’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는 쇼란 게 있어줘야 한다.
뼈다귀는 몰라도.
사람은 이런 거에 투지가 꽤나 올라가거든.
투욱!
나는 지팡이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동시에 사용하는 뼈다귀 소환 스킬!
“뼈일, 태양, 카덴, 뼈오, 다나, 뼈팔. 나와라.”
후두두둑!
피어오르는 먼지와 함께 솟아오른 든든한 여섯 뼈다귀들이.
“주군.”
“명 받들겠습니다.”
“마스터시여…….”
마치 입을 맞추기라도 하듯, 바로 무기를 땅에 내려찍었다.
후둑! 후두두둑!
동시에.
수하들의 수하들이 연계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S급이 A급을.
A급이 B급을.
총 6,666마리의 스켈레톤 군단.
[절대무쌍(絶對無雙) : 캬, 나왔는가?]
[봄사도(春使徒) : 이건 진짜 볼 때마다 소름 돋네요. 스켈레톤 군단이라니.]
[물의 마녀(Water Witch) : 심지어 스켈레톤도 아니에요. 무슨 한 마리 한 마리가 보스급이라구요.]
[절대무쌍(絶對無雙) : 제일 웃긴 건, 그걸 소환한 소환사가 제일 세다는 거지.]
동기들이 채팅창으로 감탄했고.
“헐.”
“……미친.”
권소예와 임수진이 질린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으며.
“오오오오!”
“미, 미친? 저게 다 뭐야?”
“스켈레톤 킹이라는 사람의 스킬이래!”
“와아아아! 병력이 거의 두 배로 늘었다!”
“저거 근데 그냥 스켈레톤 아냐? 그렇게 도움이 될까?”
“미친, 보고도 모르냐? 웅장한 게 저게 일반 스켈레톤으로 보여? 게다가 저 대장들 봐. 포스가 줄줄 흐르잖아!”
“……맞아. 그리고 우리 중 가장 하이 랭커인데. 감사를 표할망정 의심하진 말자고.”
예상대로.
이담의 멤버들이 열렬히 환호했다.
나는 그런 그들의 반응을 즐기며, 옆에 노인을 소환했다.
[스킬, ‘만술의 가르침’(SS급)을 사용합니다.]
[기력 20을 사용합니다.]
[‘만술의 달인’이 등장합니다.]
“끌끌, 준비됐느냐?”
굳이 지금 소환한 건, 어르신의 부탁 때문이다.
충왕이란 자랑 전쟁하는 건 최대한 오래 보고 싶다나?
“예, 어르신.”
“그럼 뭣 하느냐? 빨리 보러 가야지, 끌끌.”
어째 어르신.
조금 기대하시는 눈치였다.
* * *
던전 중앙.
안드레이가 펼친 진법 속, 어느 구석에.
포악자, 지마가 안드레이를 찾아왔다.
“안드레이.”
“응, 쇠주먹은 어때?”
“그놈? 이제 거의 의지가 꺾였어. 조만간 걸려들 것 같아.”
“꺾일 수밖에 없지. 3일간 쉬지 않고 전투 중인데.”
안드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애들은?”
“그 대거 들어온 놈들? 거의 50%는 죽어 나갔지 뭐. 도망치다 산성 독에 녹아버린 놈도 있고, 자살한 놈도 있고. 큭큭, 머저리들.”
쇠주먹이란 자가 끌고 온 생존자들.
그들을 전멸시키지 않는 이유는 단순했다.
뿌려놓은 악독고(惡毒蠱)로 저들을 완전하게 통제하기 위해서.
“그럼 걔들도 곧이겠네.”
악독고가 통하려면, 전투 의지를 완벽히 꺾어야 한다.
독고는 인내나 투지보다는.
공포, 좌절,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을 먹이 삼아 움직이니까.
“크크큭.”
포악자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그래도 이번엔 좀 많이 수확했어. 랭커도 몇 보이더라고. 아, 그리고 그 스켈레톤 킹, 그놈 있잖아. 다른 랭커들도 더 모아온 것 같던데? 골치 아파지는 거 아냐?”
“……괜찮아. 진법 밖으로만 안 나가면 돼.”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응. 걱정하지 말고, 애들이랑 병력만 잘 준비시켜. 쇠주먹도 먹혔으면 병력에 넣고.”
쇠주먹은 랭커다.
그리고 랭커에 악독고를 뿌리면, 진짜 말도 안 되는 괴물이 만들어진다.
“……응, 그건 문제없는데.”
“그럼 끝이야. 밖에 있는 놈들? 별거 없다니까? 평소 하던 대로 하면 돼.”
안드레이가 걱정 없다는 듯,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어차피 저들이 누구든, 독고 밥이 될 테니까…….”
허공에 떠 가부좌를 틀고 있는 노인.
안드레이가 슬며시 그를 흘겼다.
‘당휘평.’
그는.
‘정말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괴물 중 괴물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