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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189화 (189/368)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89화

지금부터 내가 인도하겠다

“으음.”

화살을 쏘아낸 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대상이 약 300m 정도 되는 거리에 있는 것처럼 보여도.

맞으면 맞았다는 감각이 느껴져야 하는데.

그런 게 없었기 때문.

‘안 통한 건가?’

내가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다시 시위를 당기자.

“이놈아, 좋은 기술이라고 그렇게 막 쓰면 되겠느냐?”

노인이 입을 열었다.

“아무리 좋은 배도 썰물에는 못 뜨는 법이거늘. 화살에 독섬을 담는다는 발상은 좋았으나, 딱 거기까지였느니라. 방법이 틀렸어.”

‘음, 그렇습니까?’

“독섬은 강한 힘을 좁은 공간에 응집시키는 기술이지 않더냐.”

광역기가 아닌 단일 대상 타격기라는 뜻.

‘아.’

나는 순간 문제점을 깨달았다.

상대가 멀리 있는 만큼, 정확도가 떨어지는 기술이 되겠구나.

요컨대 이런 느낌이다.

골프공 정도 크기의 구(球)를.

빠르게 움직이는 상대에게 정확히 맞춰야 하는데.

그 대상이 멀리 있기까지 하다면?

“이제 이해했느냐? 어디 저 엘드린처럼 멀리서 독섬만 날려서 날로 먹는 전투 방식을 원한 것 같은데…….”

‘그건 좀 찔리네요.’

“세상에 어디 그리 쉽게 얻어지는 게 있는 줄 아느냐? 내가 알려준 그 비기는 명백한 근접 기술이니라.”

‘그렇군요.’

뭐, 300m라고 꼭 못 맞출 건 아니겠지만.

그리하려면 궁술이 극(極)에 달해야 한다.

또한, 그래도 비효율적인 건 마찬가지다.

일단 한 방 한 방에 기력 300씩 소모되니.

근접에서 정확히 타격할 수 있을 때 사용하는 게 맞겠지.

기력이 무한한 게 아니니까.

픽.

내가 웃었다.

요즘 들어 타율이 좋다 보니 잘될 줄 알았는데.

사실 노인의 말이 맞다.

세상에 쉬운 것은 없거든.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군요.”

그렇게 다시 자세를 잡을 때.

슷, 스스슷!

저 멀리, 안드레이가 꿈틀거린 것은 그때였다.

“응?”

내가 멈칫했다.

팔방(八方).

어느덧 나를 기준으로 정확히 여덟 방위에 전부 안드레이가 존재했기 때문.

뭐야?

갑자기 뭔 짓을 한 거지?

아무런 기척도 예고도 없이.

갑자기 여덟 명의 안드레이가 나타나다니.

환각인가?

“끌끌, 저놈의 비기이니라. 진법을 활용한 건데, 사방(四方)과 사우(四隅)에 자신과 똑같은 분신을 일곱 개 늘리는 기술이지.”

본신 하나에.

분신 일곱.

“저 기술이 까다로운 게 뭔 줄 아느냐? 멀리 있어서 본신이랑 분신을 구분하기 쉽지 않다는 거다. 또 찾았다 하면 그 위치를 바꿔 버릴 수도 있기에, 쉽지만은 않을 것이야.”

‘확실히 까다롭긴 하겠네요.’

충왕(蟲王) 안드레이는 랭킹 69위의 하이 랭커다.

그런 하이 랭커와 비슷한 자가 일곱이 늘어나는 거면…….

빡세겠는데?

“암, 어렵지.”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우니까 저 벌레 놈이 세상을 제패할 뻔하지 않았겠느냐. 다만, 저 진법은 부작용이 너무 커.”

‘부작용이요?’

“네놈도 알다시피, 강한 힘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른다. 네놈이 사람 구실을 하기 위해 그 끔찍한 고통을 참아왔던 것처럼.”

‘…….’

비유가 와닿는다.

노인과의 훈련부터, 델라일라의 시련까지.

겪었던 그 고통들이 일반적이라 할 순 없었으니까.

“저 진법의 대가는 바로 죽음. 10분 동안 자신의 생명력을 재물 삼아 발하는 진법이라. 보통은 제 수하들에게 사용하게끔 했는데……. 뭐, 제 버릇 못 고친 게지.”

‘죽음이라.’

“아니면, 10분 안에 네 녀석을 처리할 자신이 있다든가.”

콰가가가!

그 순간.

안드레이의 주먹이 내 얼굴을 향해 쇄도했다.

문제는 그게 하나가 아닌 여덟이라는 것.

‘신기하네.’

분명 여덟 명 전부 300m 바깥에 있는데.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주먹이 날아오다니.

하지만.

꾸욱.

나는 무기를 잡은 오른 주먹에 힘을 꽉 주었다.

‘고작 이런 거로는.’

나에게 위기감을 줄 수 없다.

내 말초신경을 자극해 공포감을 뽑아내려면.

거대마룡(巨大魔龍)이나 아란발론 급은 되어야지.

“조심하거라!”

‘예, 어르신!’

화르륵!

다가오는 공격을 감각으로 느낀 내가 무기를 뒤바꾸었다.

활에서 방패로.

단순한 발상이었다.

‘10분 후 죽는 거면, 무작정 버티면 되는 거잖아?’

내 전방을 가득 메운 커다란 방패로, 안드레이의 주먹이 그대로 쏟아졌다.

하지만.

방패 하나로 전방위로 날아오는 공격을 막기엔 요원한 일.

“끄윽.”

방패가 아닌 몸에도.

그의 주먹이 날카롭게 박혔다.

“흐읍!”

맞는 순간 숨이 턱 막히고 입에 침이 튀어 나왔지만.

내 고통 내성은 S급.

이 정도야 버틸 수 있다고.

“이 무식한 놈이…….”

내 모습을 지켜보던 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설마 10분 동안 처맞기만 할 생각이냐?”

‘이거 말고 다른 방법 있어요?’

“뭐, 나였다면 활로 여덟 방위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을 정확히 맞췄겠지만……. 네놈이라면, 방법이 없긴 하지. 진법을 해제하지 않는 이상.”

‘거봐요.’

노인은 노인의 방법이 있다면.

난 나만의 방법이 있는 거다.

내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아직 많다.

카덴을 부를 수도 있고.

다나를 통해 ‘리커버리’를 사용해도 된다.

또한.

맞는 거 하면 또 나 아니겠는가?

‘그거 알아요?’

“뭐냐.”

‘지금 이거. 어르신이 때리는 것보다는 견딜 만하다는 거요.’

“……이런 괘씸한! 감히 저런 벌레랑 나를 비교하느냐? 내가 더 잘 치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느냐!”

안드레이는 애초에 전투력에 특화된 랭커가 아니다.

진법이나 독고에 특화되어 있기에, 버티는 것 정도야 해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니, 한번 견뎌보겠습니다.’

콰가가가!

방패 속에 몸을 웅크린 내가 견뎌내자 안드레이의 몸놀림이 더욱 재빨라졌다.

좌측, 우측, 전방, 후방.

정신없이 주먹이 몰아쳤다.

‘믿는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선택한 방법을 믿고 견디는 것.

“흐아아압!”

기합을 지르며 차력 쇼를 펼치고 있을 찰나.

[인도자(引導者) : 훈.]

카푸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인도자(引導者) : 좌측이 진짜다. 지금!]

‘뭐?’

나도 모르게 몸을 좌측으로 틀었다.

그러니까 본래 옆구리 쪽에 방패의 정면이 오도록.

콰아아앙!

굉음의 고막을 울렸다.

“흐읍!”

방패에서 호흡이 잠깐 막힐 정도의 충격이 느껴졌다.

“호오.”

노인이 흥미 돋는 얼굴로 날 바라봤다.

“그 공격 속에서도 진짜가 있었는데, 그걸 감각으로만 찾아낸 게냐?”

맞다.

여덟이 다 비슷한 힘을 가졌어도.

분명 ‘진짜’인 하나는 존재했다.

방금 공격은 그 진짜의 회심의 일격!

평소보다 훨씬 증폭된 힘인 것 보니, 안드레이만의 필살기임이 분명했다.

‘이 정도 파워라면…….’

생각보다 어려울 수도 있겠는데?

[인도자(引導者) : 훈.]

[인도자(引導者) : 대답하지 말고 들어라!]

[인도자(引導者) : 내 인공 렌즈에는 안개 속 상황이 투영되어 보인다.]

인공 렌즈라면…….

‘아.’

문득 그가 했던 말이 뇌리에 떠올랐다.

- 훈, 나는 전용 인공 렌즈를 삽입했다. 신기한 렌즈야. 어떤 사물이든, 그 정보나 약점 같은 걸 알려줘. 탐험가로서 굉장히 마음에 드는 아이템이지.

시련에서 얻었던 그 아이템 말하는 건가?

[인도자(引導者) : 안개 속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훈과 안드레이 둘뿐이다.]

[인도자(引導者) : 녀석은 훈의 바로 앞에 근접해 있어.]

[인도자(引導者) : 그런데도 공격하지 못하고 막고만 있는 것 보면 일종의 착시에 빠진 모양이로군?]

과연 베테랑 탐험가일까?

카푸는 보이는 것만으로도 내 상태를 직감했다.

[인도자(引導者) : 어떤가. 내 도움이 필요한가?]

끄덕.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진짜를 잡자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그게 더 낫겠어.’

방금 그 한 방.

진짜의 한 방은 좀 묵직했다.

어떻게 견디려면 견디겠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아픈 것보다는 시원하게 때려잡는 게 더 끌렸다.

’가짜 공격은 그냥 무시하고 진짜만 찾아보자.’

가짜의 공격들은 그냥 아플 뿐.

견딜 만하다.

다친 건 나중에 다나를 통해서 다 치료하면 된다.

화르륵!

나는 방어를 포기하고 검을 들었다.

웅크렸던 허리를 펴고, 한껏 낮췄던 자세를 다시 올렸다.

“호오, 설마 진짜를 찾아낼 생각인 게냐?”

‘예, 보여드릴게요, 어르신. 아, 저 당휘평이라는 노인네. 인사 안 하고 없애버려도 되는 거죠?’

“아무리 외지라 해도 그딴 놈이랑은 대화조차 섞기 싫다.”

’예, 알겠습니다.’

내가 웃었다.

생각해 보니.

어르신에겐 없지만, 나에겐 있는 것이 있다.

능력 있는 동료.

[인도자(引導者) : 좋다, 훈.]

[인도자(引導者) : 지금부터 내가 훈을 인도(引導)하겠다.]

바로 든든한 동료였다.

* * *

카푸의 안내가 시작되었다.

비록 진법이라는 요상한 공간에 빠졌지만,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인도자(引導者) : 좌로 1보, 우로 2보 틀었다! 훈을 기준으로 반시계방향으로 돌고 있어!]

오케이.

나는 검을 들고 눈을 감았다.

쾅! 콰가가강!

주먹이 가슴에, 팔에, 허벅지에 무차별적으로 쏟아졌지만.

그냥 맞으면서 버텼다.

어차피 다 분신의 공격이니까.

‘때릴 수 있을 때 마음껏 때려라, 안드레이.’

곧 있으면.

큰 거 한 방 먹여줄 테니.

[인도자(引導者) : 좌측 45도 왼 주먹을 내민다. 지금!]

그 방향으로 정확히 고개를 틀었다.

비록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었지만.

멈칫!

300m 바깥, 내 시야에 위치한 존재가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진짜구나.’

어금니를 꽉 문 내가 발을 내디뎠다.

[인도자(引導者) : 주먹을 거두었다!]

[인도자(引導者) : 우측으로 빼는 중! 우측 38도, 거리는 5보(步)다!]

오케이.

그에 맞추어 몸을 틀었다.

동시에 속으로 노인이 가르쳐 준 비기를 떠올렸다.

「집중한다.」

우우웅!

동시에 칼날에 기운을 끌어모았다.

내 몸을 고통에 빠뜨릴 비기의 기운을.

「뽑아낸 기력을 점 하나에 밀집시킨다, 최대한 응축시킨다.」

그거 아는가?

이열치열(以熱治熱).

몸이 아플 때, 오히려 몸을 혹사시키면 덜 아프다는 걸.

이미 지속되는 안드레이의 공격으로 넝마가 되어가는 몸이니.

한계치까지.

있는 힘껏 기운을 끌어모았다.

「그다음 독무의 도움을 받는다.」

내 기운에 더하여.

독의 기운도 첨가했다.

[기력 350을 사용합니다.]

어?

늘었다.

원래 300이었던 기력이 50 더 늘어버렸다.

집중한 만큼, 참을 수 있는 만큼.

기력이 는다는 것은.

자꾸 연습하고, 버티고, 발전할수록 더욱 성장할 여지가 있다는 것.

[인도자(引導者) : 상대가 당황했다!

[인도자(引導者) : 빼는 것을 멈추고, 자세를 잡는군! 오른 주먹! 정면으로 내지른다! 거리는 1보!]

1보면.

바로 한 걸음 차이라는 거지?

후우우웅!

나는 바로 코앞에 느껴지는 풍압을 느꼈다.

눈을 감으니, 상대의 자세와 주먹이 상세하게 보였다.

시련에서 수없이 연습했던 그것.

나는 녀석의 주먹을 직시했다.

가슴이 살짝 철렁했다.

’이거, 맞으면 최소한 골절이다.’

느껴졌다.

당황한 안드레이 역시 본인이 낼 수 있는 가장 강한 카드를 꺼냈음을.

하지만.

나는 피하지 않는다.

내 손아귀에 끓어오르는 미증유의 기운이 나에게 말했으니까.

네가 이긴다고.

저딴 거에 지지 말라고.

네 자신을 믿으라고.

「흩어졌던 독무의 기운과 내 기운이.」

「하나의 점(占)으로 융합했을 때」

「그제야 비로소 탄생한 독의 섬광이 모든 것을 녹인다!」

이윽고 왼쪽 사선으로 피하는 동시에.

그대로 허리를 튕긴 반동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가슴 정중앙에.

모아놓은 기운을 단박에 폭발시키듯이.

만술(萬術).

비기(祕技).

독섬(毒閃).

검에서 녹색 빛이 번쩍였다.

안드레이의 주먹 또한 내 뺨을 스쳐, 피가 터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직 내 손에 떨어 울리는 강대한 기운을 녀석에게 박아 넣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두쿵!

세상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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