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91화
러시아 원정 종료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고담」의 범죄자들을 남김없이 목숨을 잃었으며.
괴물의 사체가 되어버린 희생자들은 땅 깊은 곳에 고이 묻었다.
“…….”
타악, 타악!
숙연한 표정으로 시체를 묻은 채 땅을 다지는 전 병력.
전부 다 조국으로 회수하는 건 어떨까 생각해 봤지만, 그러기엔 너무 많은 숫자였다.
“잘 가라…….”
“좋은 곳에서 좋은 것만 먹고 보면서 살길.”
“그래, 혹여 가서 고담 새끼들 보이면 죽빵 한 대 갈겨주고.”
그들은 우스개로 덕담 한마디씩 던지며, 쓰라린 마음을 다스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침묵하며 바라보는 블라디미르.
이내 그가 고개를 털고, 나를 향해 다가왔다.
“……팀장.”
몰랐는데, 녀석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져 있다.
‘그럴 수밖에.’
애초에 마피아들에게 가족을 잃은 그다.
그런 그가 마음을 다해 사귀었던 형제들이.
또다시 변사체로 발견되었는데, 어찌 슬프지 않을까.
이제 그의 주변에 남은 가족은 없다.
하지만 그런데도.
블라디미르는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고맙다. 팀장이 아니었다면, 복수가 많이 늦어질 뻔했어.”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목소리까지 쉬어 있다.
“당연히 도왔어야 할 일인걸요.”
솔직히.
뭐라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리 100% 공감해 보려 노력한다 한들.
그 당사자의 아픔을 내가 어찌 알까.
“아니, 당연히 도와야 하는 건 없어, 팀장.”
블라디미르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옥 같은 3년 동안 안드레이보다 강한 헌터들은 세계에 무수히 많았지. 하나, 그들 중 누구도 고담을 처리하지 못했어. 몰랐거나, 무서웠거나, 귀찮았거나……. 그 어떤 이유를 들이밀든, 그건 변함없는 사실이야.”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낙천적이지 않았다.
무거우면서도 진중했다.
“오직 팀장만이…….”
그래서 더 진심이 느껴졌다.
“……할 수 있었던 일이야.”
“…….”
블라디미르의 울림을 들었을까?
「이담」의 헌터들이 하나둘 그의 옆으로 섰다.
“블라디미르의 말이 옳습니다! 스켈레톤 킹은 우리의 구세줍니다.”
“맞아요! 당신이 없었다면, 우린 아직도 쥐새끼처럼 지하 속에 숨어 살아야 했을 거예요!”
“고맙습니다!”
“당신도 고맙고, 끝까지 싸워준 블라디미르도 고맙습니다!”
나와 블라디미르에게 한마디씩 던지며 에워싸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은인이라느니, 영웅이라느니.
환호하며, 나와 블라디미르를 치켜세웠다.
‘으음.’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나는 이런 게 참 부담스럽다.
난 그저 협회와의 거래로 왔고.
온 김에 69위라는 악당이 있기에 랭킹도 올릴 겸 싸운 것뿐인데.
물론, 블라디미르를 돕겠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내 행동 하나에 여러 사람이 희망을 되찾고, 웃음꽃을 피운다.
나는 미소 지었다.
‘그래.’
위선이고, 명분이고.
그런 걸 따지고 재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기분이 좋은데.
애초에 랭커가 되고 싶었던 것도.
나라는 존재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고, 영웅 취급받고 싶어서가 아니었던가?
“녀석.”
노인이 미소 지었다.
“지금 느끼는 그 마음. 잊지 말아라. 강한 힘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힘을 옳게 쓰는 것 또한 하나의 술(術)일지니…….”
그 순간.
허공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목(木)의 정수가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목(木)의 정수가 관심을 가지고 그대를 지켜봅니다.]
화, 수, 목, 금.
네 가지 정수 중 목(木)의 정수가 반응했다.
아무래도 선행을 좋아하는 정수인가 보다.
‘그나저나.’
내가 노인을 바라봤다.
‘어르신은 괜찮으십니까?’
“나?”
멈칫.
노인이 미세하게 몸을 움찔했다.
그러더니, 이내 다시 나를 바라봤다.
“뭐, 당휘평 그놈 말이냐?”
‘…….’
당휘평은 노인이 살던 세계의 파편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 법.
비록 정신없는 와중에 그냥 죽여도 되냐 묻긴 했지만, 마음에 살짝 걸리는 건 사실이었다.
“이놈아.”
‘예?’
“혹여 네가 착각할까 하는 말인데. 그놈이 잠깐 천하제일을 노리긴 했다만, 그게 나랑 호적수란 뜻은 아니었어.”
‘……?’
“허어? 그 표정은 뭐더냐. 내 나이가 500이 넘었다. 그사이에 얼마나 많은 악당들이 내 손을 지나친 줄 아느냐? 설마 고작 저런 벌레가 나랑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그게 아니라요.’
당휘평은 죽었다.
안드레이의 죽음과 함께 소멸했다.
망자를 다루는 직업이라 그럴까?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게 있었다.
그렇다면.
노인 역시, 내가 사라지면 그냥 소멸하는 걸까?
“끌끌, 보아하니, 또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나 보구나.”
‘예?’
“이놈아. 나는 이미 망자다. 애초에 유령의 몸으로 네 녀석이 불러야만 나올 수 있는 몸인데, 그 정도 객관화가 안 되어 있는 줄 알았느냐?”
‘…….’
“나는 죽기 전에 ‘한’을 가졌고, 그 ‘한’을 풀기 위해 네놈과 약속했다. 만술(萬術)을 드넓은 세상에 알리는 것.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오직 그뿐이야. 지난 삶에 미련 같은 거, 없다.”
당휘평이나.
이 세상의 비밀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 말.
“끌끌, 그래도 많이 컸구나. 이제 이 스승 생각도 다 하고! 으하하핫!”
노인이 흐뭇하게 웃었다.
지금껏 웃었던 것 중, 가장 호탕한 웃음.
‘그러셨구나.’
하지만 왜일까.
노인과 시선을 마주친 나는 생각했다.
‘뼈다귀들에게도, 어르신에게도…… 언젠가는 다시 삶이란 걸 선물해 주고 싶다. 혹여 그런 게 가능하다면…….’
우주처럼 넓은 세상.
망자가 있고 생자가 있는 세상.
또한 용이 있는 세상인데.
부활도 없으리란 법은 없지 않은가.
세상 어느 매체를 봐도.
삶에 대한 욕구가 없는 망자는 없다.
삶이란 그런 거니까.
물론.
지금 당장에는 오만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원래 발전은 무모한 상상에서 일어난다고 하지 않던가?
지금은 그저.
나만의 작은 욕망일 뿐이었다.
* * *
시간이 흘렀다.
블라디미르는 무너진 러시아를 되살리겠다며 나갔고.
이담의 병력도 그런 그의 뒤를 따랐다.
[심판창(審判槍) : 고생했다. 나도 이만 복귀해보도록 하지.]
[봄사도(春使徒) : 잘 해결되어서 다행이에요.]
[물의 마녀(Water Witch) : 다음에 또 봐요.]
날 도왔던 동기들도.
하나둘, 던전을 나가 조국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
던전에 남아 있는 것은 나를 포함해서 총 8명.
먼저 드미르 공방의 새로운 멤버인 플로아, 막시, 카푸. 그다음 나와 함께 왔던 기소율.
마지막으로.
“후우, 이 사람. 그래도 데려가야겠죠?”
“뭐, 어쩌겠어요. 협회에서 온 건데.”
“아이고, 무거워라. 이 사람 진짜 몸이 쇳덩이잖아? 녹여서 써도 될 정돈데요?”
기절한 봉재영을 둘러메고 있는 권소예와 임수진이었다.
내가 미소 지었다.
“우리는 좀 특별한 방법으로 돌아갈 겁니다.”
동시에 목에 걸린 돌덩이를 만지작거렸다.
델라일라가 선물해 줬던 아티팩트.
무릉도원.
‘이게 개꿀이지.’
어디론가 떠날 때는 사용하기 힘들지만.
그 어딘가에서 복귀할 때는 굉장히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포탈을 열어 무릉도원에 들어가고.
또 거기 있는 포탈로 대한민국에 가면 되는 거니까.
복귀 한정으로,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는 최고의 이동 수단이었다.
주르륵!
나는 쥐고 있는 돌에 슬며시 기운을 흘려 넣었다.
[‘델라일라의 던전 아티팩트’(SS급)을 사용합니다.]
[기력 100을 사용합니다.]
우우웅.
이윽고 생겨나는 황금빛 타원형의 문.
[해당 자리에 ‘포탈’이 생성됩니다.]
[‘포탈’ 속으로 들어가시면, ‘무릉도원’으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해당 ‘포탈’은 24시간 후에 사라집니다.]
“자, 다들 따라 들어오시고.”
저벅.
내가 걸으며 말했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러시아 원정의 종료였다.
* * *
복귀 후,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내가 벌였던 원정이 기사화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역대급 범죄 집단 고담의 행패. 수면 위로 드러나, 국제 사회 충격!]
[3년간 공포에 떨어야만 했던 러시아 시민들, 마침내 거리를 거닐다!]
[러시아 시민들 온종일 스켈레톤 킹을 목놓아 외쳐대.]
[대한민국 헌터 협회장, “러시아 사태를 해결한 주인공은 바로 스켈레톤 킹.” 랭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감사의 말씀 올려.]
[별들의 전쟁? 간밤에 대거 랭킹 변동되다.]
[대한민국 랭커, 스켈레톤 킹의 새로운 랭킹은 69위!]
…….
처음엔 전 세계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고.
그 덕에 나는 온종일 무릉도원에 숨어 있어야 했다.
‘어휴, 그냥 훈련이나 해야지.’
이제는.
밖에 나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든다.
핸드폰을 들이밀고, 사인펜을 들이밀고…….
심지어 공방 곳곳에는 기자들이 암살자처럼 깔려 있다.
‘확실히 유명해지긴 했어.’
왜 밖에서 하세라를 본 사람이 없다고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아.
밖에 나갈 수 있어야 말이지.
가면 같은 거라도 구해봐야 하나?
연예인이 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지, 이번 기회에 확실히 느꼈다.
‘일단은 여기서 버티자.’
아직 무릉도원의 공사는 진행 중이었다.
얼마나 큰 도시를 만들려는 건지.
아직도 골조를 쌓는 데 여념이 없다.
‘아.’
그리고 일주일 동안.
또 하나 엄청난 소식이 들려왔었다.
[러시아의 착한 쿠데타? 기존 대통령 물러나고, 새로운 대통령 취임.]
[러시아 5대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로디긴’, 랭커로 알려져!]
…….
바로.
블라디미르가 러시아 대통령으로 올라선 것.
당연히 정당은 무소속이었고, 시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올라섰다.
기존 꼭두각시였던 대통령과의 마찰조차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진 결과.
[물의 마녀(Water Witch) : 우와아, 블라디미르가 대통령이라니. 실화에요?]
[심판창(審判槍) : 이건 나도 조금 놀랍군.]
[절대무쌍(絶對無雙) : 허허, 내 지인이 국가 원수라니.]
채팅창도 놀랐고, 나도 놀랐다.
설마 그런 선택을 할 줄은 몰랐는데.
‘하긴.’
그게 나을 수도 있을 듯싶었다.
지킬 자 없이 외롭게 있는 것보다는, 힘내서 뭐라도 하는 게 맞지.
[공간술사(Spacian) : 여어, 남자로 태어났으면 대통령 정도는 해봐야 하는 거 아냐? 특히 팀장! 기대해라! 우리 러시아는 팀장을 국가 은인으로 삼고, 팍팍 밀어줄 생각이야. 일단 러시아 모든 도시에 드미르 공방부터 입점시켜야겠군.]
[물의 마녀(Water Witch) : 켁, 무슨 취임 하자마자 비리예요?]
[공간술사(Spacian) : 그게 무슨 비리냐? 드미르 공방 입점이면 국가 이득이지 뭘. 그리고. 대통령이 그것도 못 해? 내가 하고 싶다 한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하랬거든?]
블라디미르는 다시 예전 쾌활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국가 원수의 말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어쨌든, 잘됐어.’
내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릴 때였나?
“헥, 헥헥! 공방주님! 어디 갔나 했더니 여깄었어요?”
오랜만에 김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러고 보니.
여기는 옆 산, 산봉우리.
부는 바람이 선선해서 잠깐 올라온 건데.
“여기까지 직접 온 거예요?”
“그럼 폰도 안 터지는데 여기까지 와야죠. 어떡해요! 아니면, 그 채팅창인가 뭔가 저도 끼워주든가요!”
아.
그 부분도 생각해야겠네.
아예 공방 전용 채팅창도 파달라 해야겠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후우, 지금 밖에. 협회장 찾아왔어요. 나가 보셔요.”
“……협회장이요?”
내가 눈을 빛냈다.
고대 마법의 파편(SS급).
마침내 그 흔적을 찾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