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92화
당돌한 제안
「세계 헌터 협회」는 주요 아홉 국의 정보 동맹체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 영국,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인도, 독일.
그리고 대한민국.
헌터 강대국끼리 모인 해당 동맹체제는 굳건히 유지되고 있으며, 서로 원활하게 기밀들을 공유한다.
물론, 이외에도 수많은 국가가 참여하고 있긴 하지만.
그들은 참여국일 뿐 완전한 동맹체제는 아니었다.
“그 덕에 동맹국과는 원활한 의사소통이 된답니다. 자, 어디 있더라……. 아, 여기 있네요!”
“음……?”
귀빈실에 앉아서 커피잔을 빙글 돌리고 있던 내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맞은편에 앉은 협회장, 최태승이 고급스러운 봉투 하나를 내밀었기 때문.
“이게 뭡니까?”
“랭커님이 부탁하신 후 협회 기밀이란 기밀을 다 뒤져봤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고대 마법의 파편’에 대한 정보는 없더군요. 그래서 반 포기하고 있던 찰나, 어떻게 알았는지…… 한번 보세요. 보시면 압니다.”
도대체 뭘까?
딸칵!
봉투에 걸려 있는 끈을 풀자, 검은색의 카드가 나타났다.
카드 위에는 황금색 필기체로 「Oxford」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건?”
“예, 마탑에서 보낸 겁니다.”
“마탑이라.”
지상 최강의 마법사들 집단.
세계 랭킹 4위이자, 옥스퍼드의 현자라 불리는.
소피아 실버스톤이 탑주로 있는 곳.
“흐음?”
호기심이 생긴 나는 볼을 긁적이며, 카드를 뒤집었다.
적힌 내용은 심플했다.
- 고대 마법에 대한 정보는 마탑의 1급 기밀입니다.
- 괜히 애먼 협회 파지 마시고, 마탑으로 오십시오.
- 자세한 이야기는 거기서 나눕시다.
“제 생각엔 일종의 경고장인 것 같습니다. 마탑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기밀을 제가 파헤치고 다녔으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최태승이 죄송한 표정을 지었다.
“러시아 국민도 무사 복귀시켜 주시고, 러시아 마피아 소탕까지……. 세계적인 업적을 이루셨는데, 제가 이 정도밖에 못 해드려 죄송한 마음입니다.”
“아뇨, 아닙니다. 하하.”
내가 빙긋 웃었다.
고대 마법 = 마탑.
어찌 보면 살짝 뻔한 정보긴 했지만, 그게 어딜까.
먼 길 돌지 않고.
100% 확신을 두고 갈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시간 절약이었다.
“어차피 한번 가봤어야 하는 곳이긴 하거든요.”
문득, 마탑주의 모습이 떠올랐다.
- 주동훈이라 했지?
- 지금은 그냥 가지만, 나중에 한번 마탑으로 놀러 오렴.
- 응. 델라일라가 도움을 줬던 만큼, 나도 어떤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초면에 호감을 보이며, 초대까지 했었던 소피아.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걸까?
“아.”
최태승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 보니, 랭커님께서는 마탑주와도 인연이 있으셨지요?”
이미 나와 마탑주의 관계는 유명하다.
세계 랭커 발표식 날 공식적으로 침 발라놨다 발표했으니, 안 유명하면 그게 이상하지.
누군가는 내가 마탑주의 숨겨둔 애인이라 추측했고.
또 누군가는 내가 마탑주의 실험체라 주장하는 자도 있었다.
그래야 1,000위 밖에서 단박에 하이 랭커가 된 게 설명된다나?
“…….”
최태승의 표정을 보아하니.
저 사람도 살짝 의심하나?
에이, 아니겠지……?
“어쨌든, 감사합니다.”
스슥.
나는 카드를 다시 봉투에 집어넣고 일어섰다.
목적지가 정해졌으니, 더 할 말은 없었다.
“아, 이제 해결된 겁니까?”
벌떡!
최태승도 마주 일어섰다.
“예, 이제 슬슬 준비해 봐야지요. 다만, 제가 들어준 부탁에 비해 얻은 게 살짝…….”
나는 러시아에 가서 생고생했는데.
받은 게 고작 마탑에서 보낸 카드 한 장이라니.
무언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느낌이라 말한 건데.
“아.”
최태승이 빙그레 웃으며 손뼉을 쳤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도 사람인데, 설마 이거로 입 싹 닦겠습니까?”
“그렇지요?”
나도 마주 미소 지었다.
그래, 이게 맞지.
“언제든 도움 필요하시면 협회에 연락해 주십시오. 이 몸 닳는 데까지 돕겠습니다. 이번엔 아쉽게도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세계 협회 정보는 방대하답니다.”
어찌 보면 기분 나쁠 수도 있는 발언이었는데.
그런 기색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과연 대단한 사람.
그러니까 한 집단의 장이라는 직책을 맡은 거겠지.
“말만 들어도 든든하네요. 감사합니다, 협회장님.”
씩 웃으며 답한 나는 최태승을 공방 1층까지 마중해 보냈다.
* * *
그로부터 약 30분 정도가 흘렀을까?
허공에 메시지가 떠 올랐다.
[인도자(引導者)가 ‘채팅창’에 초대합니다.]
[‘채팅창’ 이름 - 드미르 공방]
[인원수(5/50)]
‘오.’
새로운 채팅창이었다.
저번에 일러두었는데, 이제 만든 건가?
길드 전용이라 인원수도 넉넉히 50으로 만들었나 보다.
나는 시선을 움직여 초대장을 받았다.
[스켈레톤 킹(Skeleton King)이 ‘드미르 공방’에 입장합니다.]
[인원수(6/50)]
인원수가 한 칸 늘어났고.
[김진아 : 와.]
[김진아 : 오셨어요, 공방주님?]
[김진아 : 이야, 그나저나.]
[김진아 : 이거 진짜 신기한데요?]
[김진아 : 생각하는 대로 글이 써지잖아?]
들어가자마자.
흥분한 듯 채팅을 연발하고 있는 우리 부공방주.
[인도자(引導者) : 훈, 저번에 일러둔 거다. 정원은 언제든지 늘릴 수 있고, 새로 추가하고 싶은 인원 있으면 나에게 말하면 된다.]
[암제(暗帝) : ???]
[뇌명(雷鳴) : 이게 뭐야?]
[절대무쌍(絶對無雙) : 허허, 졸지에 채팅창이 벌써 두 개로군.]
채팅창의 멤버는 나를 포함해서 총 여섯이었다.
[김진아]
[암제(暗帝)]
[뇌명(雷鳴)]
[절대무쌍(絶對無雙)]
[인도자(引導者)]
[스켈레톤 킹(Skeleton King)]
이렇게.
김진아의 경우, 이명이 없기에 본명으로 표시되는 것 같았다.
‘좋네.’
아직 설립한 지 얼마 안 된 길드이긴 하지만, 벌써 간부 명단이 짱짱했다.
[김진아 : 제가 뽑은 직원들도 몇몇 있긴 한데, 그분들은 아직 초대하지 마세요.]
[김진아 : 여기는 딱 믿을 수 있는 사람만요.]
[김진아 : 아시겠죠?]
[인도자(引導者) : 알겠다, 부공방주.]
호오.
그러고 보니, 날 가장 마지막에 초대한 걸 보면.
김진아가 따로 컨트롤하는 모양인데.
‘확실히 대단하긴 하네.’
랭커도 아닌 자가 랭커를 컨트롤한다?
과거의 나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김진아 : 아, 그리고, 공방주님?]
김진아가 날 불렀다.
[스켈레톤 킹(Skeleton King) : 예?]
[김진아 : 지금 무릉도원 입구로 와보세요.]
무릉도원 입구?
[김진아 : 빨리요, 빨리!]
뭐야.
공방의 도리가 바닥에 떨어졌나.
이제 나까지 컨트롤하려 하네?
* * *
가는 건 쉬웠다.
어차피 포탈을 내가 만들 수 있기도 했고.
일단 나 역시 공방에 있었으니까.
“무슨 일이에…… 엥?”
도착하자마자 나는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입구의 광경이 평소 보던 것과 달랐으니까.
무릉도원 입구는 고지다.
그것도 이곳 일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그러다 보니, 절경이 멋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데.
그 절경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고급스러운 정자가 절벽 위에 설치되어 있었다.
“이게 다 뭡니까? 언제 이런 걸?”
“헤헤, 죽이죠? 드미르한테 따로 부탁했죠.”
김진아가 깍지를 끼고 하늘로 기지개를 켜며 답했다.
“여기 와보세요. 여기 딱 서면, 드미르가 만들고 있는 도시의 경치가 한눈에 보이거든요.”
정말 그랬다.
탁 트인 수풀과 광활한 지대는 바라보기만 해도 시원했고.
절벽 양옆으로 간간이 나 있는 기암괴석은 세상만사를 잊게 했다.
단언컨대.
지구 어느 곳을 데려다 놔도, 이것만 한 자연 광경이 있을까?
“앞으로 여기가 우리 공방의 특별 VIP실이 될 거예요. 주문하는 고객들이나 공방을 찾아온 손님들은 이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겠죠. 때에 따라선 주눅도 들 거고요.”
“……멋지긴 하네요.”
이런 곳이 이제.
내 집이 된다.
평생 어느 구역에서나 올 수 있는 나만의 집이자 커뮤니티.
왜일까.
맨날 보던 광경인데도, 여기 서 있으니 더욱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 맞다. 그리고 공방주님.”
“예?”
“그 봉재영인가 그 사람이요. 양아치 랭커였다는데 도대체 어떻게 구워삶으신 거예요?”
“음?”
봉재영?
잠깐 잊고 있었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
“얼마 전에 공방 쪽으로 가입 신청 넣었더라고요. 받아달라고.”
“봉재영이요?”
“예, 쇠주먹 봉재영이야 워낙 이 바닥에서 양아치로 유명했어서 잠깐 보류하고 있긴 한데, 생각보다 간절한가 봐요. 벌써 서류만 세 번째 넣었어요.”
“…….”
“게다가 이것 좀 보실래요?”
그녀가 다가와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화면 안에는 김진아가 정리해 둔 여러 기사가 떠올라 있었다.
나는 그중 하나를 클릭했다.
[이번에 하이 랭커에 편입한 랭킹 99위 쇠주먹, “이건 내 실력 아냐, 월초에 제대로 반영될 것.”]
봉재영의 랭킹은 99위다.
원래 101위였는데, 안드레이와 지마가 죽어서 그렇다.
랭킹 게시판은 누군가 죽었을 때만 즉각 반영되어 갱신되고.
월초나 연초에는 실력적인 부분까지 포함하여 재산정된다.
즉, 지금은 랭킹 99위지만.
월초에 갱신되면 다시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소리.
‘당연히 밀리긴 하겠지.’
그는 악독고 때문에, 꽤나 많은 생명력을 소진했다.
그 힘은 다시 채워지는 것이 아닌, 완전히 소멸한 것.
‘아마.’
500위~800위 사이로 떨어지지 않을까?
그 정도로 추측하고 있긴 했다.
주르륵!
나는 다른 기사들도 쭉 확인했다.
[쇠주먹, 지난 과오 사과 “상처받은 사람 있다면 모두 내 잘못. 항상 겸손하고 반성하는 사람 될 것.”]
[러시아 사태, 봉재영 “스켈레톤 킹은 내 생명의 은인.”]
[콧대 높던 쇠주먹, “스켈레톤 킹은 신이야. 그는 진짜.” 압도적 찬양.]
“……이게 뭡니까?”
내가 입을 떡 벌렸다.
이 사람.
나 모르게 무슨 짓을 벌이고 다니는 거야?
“제가 묻고 싶은 말이에요.”
김진아가 뾰로통하게 날 쳐다보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처음부터 알아보긴 했지만…… 도대체 얼마나 많은 걸 숨기고 계시는 건지…….”
아.
델라일라의 시련에 대해 말하지 않은 거 때문에 아직도 삐쳐 있었지?
“그리고, 별개로 드루이드랑 아수라한테도 가입 신청 들어왔어요.”
“그분들이요?”
“예, 공방주님의 선한 인성에 반했다나……? 그래서 셋 다 받으려고 하는데, 괜찮죠? 아무렴 길드에 랭커는 다다익선이라고요.”
“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사 권한은 부공방주 권한이니까요.”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난 공방 운영에 손 뗀다.
지금까지의 내 목표는 오직 랭킹 1위.
그거에만 신경 써도 할 게 태산이니까.
“후, 역시 우리 공방주님. 시크하면서도 깔끔해서 좋다니까.”
김진아가 엄지를 세우며 웃고 있을 때.
스슥! 저벅.
입구에서 누군가가 등장했다.
“여, 부공방주. 왜 불렀어?”
“저도 왔어요.”
함께 걸어 나오는 플로아와 기소율.
“허허, 여기 절경은 언제봐도 죽여주는구먼?”
“나도 불러서 왔다.”
그 뒤를 잇는 막시와 카푸까지.
채팅창 멤버 여섯이 다 모였다.
갑자기 왜?
김진아가 무슨 일로 부른 거지?
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바라보자.
짝짝!
그녀가 당당하게 손뼉을 두 번 쳤다.
“공방주님도 계시겠다, 간부들 얼굴 보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하고 싶은 말?”
“제가 여기 공방에 가입하면서 했던 말 기억나세요, 공방주님?”
“갑자기 찾아와서 당돌하게 받아달라고 했던 날 했던 말이라면…… 당연히 기억나죠.”
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 당시 김진아가 했던 말.
- 동훈 씨가 발돋움하려는 그 드미르 공방 있잖아요? 저랑 같이 키워요! 제가 기업, 아니, 길드 그 이상으로 만들어드릴게요!
공방을 대형 길드로 키우겠다는 포부 섞인 선언.
“예, 맞아요. 제 꿈이자 목표죠. 평범한 대형 길드를 만들고자 하는 게 아니에요.”
김진아가 우리의 눈을 보며 말했다.
목소리에는 무의식적인 의지가 가득 담겨 있었다.
“적어도 미국의 마왕군(魔王君)이나 영국의 옥스퍼드(Oxford), 우리나라의 천마신교(天魔神敎)…….”
거의 국가 이상의 전력이라 불리는.
지구 최강의 단체들.
“저는 그들과 동급인, 아니, 그들을 넘어서는 최고의 집단을 만들고 싶어요.”
그들과 마주하는, 아니, 그 위에 오롯이 선 집단.
“그래서 말인데요.”
그녀가 소맷자락을 다듬었다.
그러고 보니, 미리 준비한 걸까.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는 김진아였다.
“이번 러시아 원정으로 어그로도 좀 끌렸겠다……. 이 기회에 드미르라는 이름도 버리고, 새로운 단체로 출범하는 건 어떻습니까? 공방주님?”
언제나 그렇듯.
당돌한 제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