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96화
마탑 (2)
옥스퍼드시 위에 홀로 부유하는 거대 탑.
영국의 자랑, 「마탑」이 생긴 지는 크게 오래되지 않았다.
대충 5년 정도?
그렇다면 이 말도 안 되는 신비한 건축물을 도대체 누가 지었을까?
아무리 마법을 상징하는 탑이라 해도, 저 거대한 덩어리가 허공에 떠 있을 수 있는 걸까?
많은 사람이 궁금해했지만, 알 수 있는 거라곤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마탑을 세운 자.
- 맞아, 마탑은 내가 혼자 지었어.
놀랍게도 마탑은 단 한 사람의 손에서 탄생했다.
바로 세계 랭킹 4위.
옥스퍼드의 현자(Oxford's Sage) 소피아 실버스톤의 손에서.
- 어떻게 지을 수 있었는지는 밝히지 않겠어.
- 하지만, 이는 영국 협회 및 옥스퍼드와 합의된 내용이며.
- 우리는 명문(名門) 옥스퍼드의 역사를 새로 쓸 거야.
- 그러니, 관심 있는 자들은 지원해.
- ‘마법’에 관련해서.
- 그 어떤 곳보다 뛰어난 인재를 양성해 낼 수 있다고 자부하니까.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는 탑.
“휘유우.”
숙소를 나선 나는 팸플릿을 읽으며, 탑의 구조를 눈에 익혔다.
[1층 : 입구]
[1~10층 : 숙소]
[11~15층 : 강의실]
[16~20층 : 커뮤니티 센터]
[21~22층 : 마법 서고]
[23~24층 : 훈련장]
…….
[36~40층 : 교수 연구실]
딱 손님용으로 제공된 정보.
올레나의 말처럼 딱 40층까지만 쓰여 있었다.
“끌끌, 어디부터 가볼 생각이더냐?”
노인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네놈 시선이 딱 23층에 꽂혀 있는 거 보니, 훈련장부터 가겠구나.”
‘귀신이세요?’
사실 거기 말고는 가볼 곳이 없기도 했다.
커뮤니티 센터는 말 그대로 생활 편의를 위한 카페나 음식점, 목욕탕 등의 위락 시설이었고.
나머지는 다 마탑의 학생과 교수들을 위한 시설이었다.
보아하니, 학파가 다섯 개 정도 있고.
그에 따라 세분화시켜 놓은 것 같긴 한데.
모두 내 관심사 밖이었다.
‘마탑의 마법사들은 어떤 방식으로 훈련하려나?’
만약 정말 참신한 방법이라면.
곧 무릉도원에 만들어질 뼈오 훈련장에 적극적으로 반영해야지.
“나도 궁금하니라. 이 스승의 만술(萬術)에는 마법이란 게 없어서 말이지.”
‘그러니까요.’
모든 걸 알려줄 것만 같았던 노인도.
뼈오만큼은 알려주지 못했다.
잘 모르시니까.
“…….”
나는 다시 1층 입구로 내려갔다.
정확히는 1층 엘리베이터 마법진 위로.
“몇 층으로 올라가시겠습니까?”
가까이 가니 유니폼 입은 안내원이 공손하게 인사한다.
저 사람은 마탑 내부에 어떻게 고용되어 일하는 걸까?
알바일까?
아니면, 마탑의 구성원일까?
“23층으로 올려주세요.”
“23층, 훈련장. 안내받았습니다.”
안내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빛나는 마법진.
파즛!
소리와 함께, 내가 눈을 떴다.
시끌벅적했던 광장이 사라지고, 조용하면서도 넓은 홀이 등장했다.
“이거, 어마어마하게 편리한데요?”
내가 감탄했다.
도입할 방법만 있다면, 진짜 뺏어오고 싶을 정도.
‘게다가.’
훈련장의 모습도 장난이 아니었다.
“과연, 기대 이상이로구나.”
노인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사방을 살폈다.
나 역시 갓 도시에 도착한 시골뜨기처럼, 눈알을 쉴 새 없이 굴렸다.
“제가 알던 현대 건축물과는 격을 달리하네요.”
층 하나하나가 마법과 같은 공간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천장에 끝이 보이지 않았고, 원래 계단으로 둘러싸여 있던 벽면 역시 이젠 보이지 않는다.
약 천 미터는 훌쩍 넘길 넓이에, 끝없이 박힌 대리석 바닥.
그리고 사이사이 설치되어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돔 형의 방들이 놓여 있었다.
쾅! 콰아앙! 화르르륵!
불이 들어와 있는 몇몇 방에서는 기괴한 폭음이 들려왔다.
훈련하고 있는 마법사들일까?
나 역시 비어 있는 방 하나를 골라, 그 앞에 섰다.
[마법 훈련장]
이게 뭐지?
요 안에 들어가면 되는 건가?
“그나저나 어떻게 들어가죠?”
툭툭.
문을 두들겨 보기도 하고.
스위치나 손잡이 같은 게 있나 살펴보기도 했다.
그런데도 사용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뭔데, 이거?
“쯧쯧, 젊은 놈이. 그거 하나 못 하고 얼을 타느냐?”
“아니, 진짜 모르겠는 걸 어떡해요.”
이게 그런 기분일까?
인류 사회가 격변하고, 세월이 빠르게 흘러감에 따라.
현대 기기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르신들의 기분.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단계를 너무 빠르게 뛰어버린 느낌이잖아?
“흥, 이놈아.”
노인이 코웃음 치며 입을 열었다.
“모름지기 사용법을 모를 때는 어떻게 하면 되는 줄 아느냐?”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부수면 되느니라. 모름지기 사람이든 기구든 맞으면 말을 듣는 게야.”
“…….”
혹시나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여기 있는 훈련장이 내 거도 아니고, 손님일 뿐인 내가 저걸 부수라고?
내가 개념이 살짝 부족할지 몰라도, 그 정도로 경우 없지는 않다.
‘아니, 그전에.’
저거.
부술 수나 있을까?
단단해 보이는데.
투웅! 투웅!
내가 주먹으로 훈련장을 쳐봤다.
딱딱한 게, 웬만큼 강한 힘으로 치지 않는 이상 힘들겠는데…….
조금 더 세게 쳐볼까?
스윽.
내가 주먹을 더 높은 각도로 들어 올렸을 때였나?
“어어?”
누군가가 다가온 것은 그때였다.
“저기요!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마침 방에서 훈련을 끝내고 나왔는지,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여성 마법사였는데.
교수급은 아니고, 학생으로 보였다.
“끌끌, 거보거라. 패니까 뭐든 해결되지 않느냐?”
재밌다는 듯 웃는 노인을 무시한 내가 마법사를 바라봤다.
아직 흑여우 가면을 벗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게 때리면 어떡해요! 그게 얼마나 비싼 건데!”
“아, 죄송합니다. 제가 사용 방법을 잘 몰라서…….”
허허.
이거 난처하게 됐네.
내가 즉각 사과하자, 한풀 수그러든 마법사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초객이세요?”
“아, 옙.”
“매번 이곳에 오시는 손님마다 기계에 손대는 바람에 우리가 얼마나 불편한 줄 알아요? 그래서 원래는 초대자가 잘 안내하도록 지시 떨어진 거로 알고 있었는데……. 설명 못 들으셨어요?”
내 초대자라면…….
올레나?
아니면, 마탑주?
“그 친구가…… 조금 바빠서요.”
일단 올레나로 치자.
배지를 준 건 그녀니까.
“진짜, 이거 보기보다 예민한 기구라고요. 파괴력, 응용력, 기술, 속도 등등 복합적으로 계산해서 컨설팅까지 해주는 마법 기계라, 함부로 다루다가 마탑주님한테 쫓겨난 손님들이 얼마나 많은데……. 손님이시면, 어디 배지 함 줘봐요.”
“배지요?”
내가 주머니에 넣어둔 배지를 꺼내 들이밀었다.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색 배지.
“어머낫!”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VIP이시네……? 교수님 손님이셨어요?”
그러고는.
이내 반짝이는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뭐야, 갑자기?
“끌끌, 머리를 굴리는 거겠지.”
노인이 웃었다.
“딱 봐도 네놈이 교수 손님이니까, 예의 있게 대하다 보면 뭐라도 콩고물이 떨어질 줄 알고.”
요컨대.
신입사원이 길 가다 무거운 짐을 들고 이동하는 회장님의 모친을 만난 느낌이랄까?
왠지 눈빛이 그러했다.
“정식으로 인사드릴게요. 저는 마탑 화(火) 속성 마법사! 써니라고 합니다!”
“아니, 정식으로 인사하실 것까지야…….”
“으하하핫! 마탑의 귀한 손님이신데, 당연히 인사드려야죠! 어디 보자……! 저 훈련장을 사용하고 싶어서 그러신 거예요?”
세상 퉁명스럽던 그녀의 목소리가, 이제는 굉장히 사근사근하다.
이게 바로 배지의 힘……?
“하긴, 생각해 보면 그래요! 기계가 자주 고장이 나면, 친절하게 사용법을 앞에 붙여두든가! 당연히 초객분들이 모르시니 이렇게 퉁퉁 쳐보고 그러는 거죠. 하하하.”
“……그렇군요.”
이분.
태세 전환이 굉장히 빠르신 분이구나?
“사실, 요 입구가요. 보세요.”
그녀가 돔 형 기계에 손을 가져다 대자.
쿠르릉!
얼마 지나지 않아, 허무하게 문이 열렸다.
“마법만 운용할 줄 알면 손쉽게 열리거든요. 혹시 마법 고유 능력은 가지고 계세요?”
“그런 건 없지만.”
화르륵!
나는 지팡이로 바뀐 무기를 투욱! 땅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후드드득!
대리석 바닥에서 하얀 뼈가 솟구쳐 모습을 형성한다.
[스킬, ‘스켈레톤 로드 소환’(S급)을 사용합니다.]
[기력 10을 사용합니다.]
[‘뼈다귀5’가 등장합니다.]
내가 지닌 유일한 마법사, 뼈오의 등장.
“스, 스켈레톤?!”
써니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아, 네크로맨서셨구나! 그거 완전 초 희귀 직업 아녜요?”
“예, 뭐. 그렇죠. 마법은 이놈이 할 겁니다.”
“으잉? 그게 무슨……?”
내가 뼈오를 가리키자, 그녀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스켈레톤이 마법을 한다고요?”
“막말하지 마십쇼. 이놈들. 감수성이 풍부하니까요.”
“아……. 죄, 죄송합니다. 그런데요.”
이윽고.
써니가 내 뼈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쟤. 어디로 보내고 있는 거예요?”
‘응?’
어디로?
내가 고개를 돌리자.
삐걱, 삐그덕!
이동하고 있는 뼈오가 보였다.
“어라?”
저놈이.
별 지시도 안 했는데, 어디로 가는 거지?
“……?”
* * *
뭔가 감정이 묘했다.
전에도 말했다시피, 나는 스켈레톤과 어느 정도의 감정을 공유한다.
녀석들의 희로애락이 느껴지고.
녀석들 역시 내 감정을 읽고 행동하곤 했다.
‘근데, 저 녀석.’
뭔가.
아련해하고 있다.
마치 익숙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고향에라도 온 것처럼.
‘설마…….’
마탑을 알고 있기라도 한 걸까?
“자, 잠깐만요! 어디 가시는 거예요! 그쪽으로 가면 안 되는데……!”
나도 모르게 뼈오를 따라 걷고 있자, 써니가 황급히 따라와서 조잘댔다.
“마탑은 넓고 복잡해요! 아무리 층이 허용되어 있다 해도, 그 부분만 이용해야지 멀리 이동하면 안 된다고요!”
“그래요?”
“네! 걱정돼서 그래요! 그거 알아요? 마탑에서 실종된 사람도 있다는 거. 괜히 무턱대고 멀리 갔다가는…… 으아악?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음?”
삐걱!
구석에 이동한 뼈오가.
툭! 투욱! 툭!
지팡이 끝으로 대리석 틈을 찔러 넣고 있었다.
“호오?”
그 광경을 본 노인이 흥미로운 미소를 지었다.
“저 아래 공기의 흐름이 느껴지는구나.”
‘공기의 흐름이요?’
“그래, 빈틈이 있다는 소리지.”
‘빈틈…….’
내가 눈을 부릅떴다.
‘이건.’
100%다.
뼈오 저 녀석.
이 마탑의 구조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어쩌면, 내 옆에서 조잘거리는 마탑의 학생보다도 더.
“네, 네크로맨서가 마탑을 부순다! 마탑을 부수고 있다!”
“후우…….”
한숨을 내쉰 내가 가볍게 손을 떨쳤다.
후두두둑!
그러자 등장한 나의 든든한 수하.
“주군.”
태양이는 내 의도를 알아챈 후, 곧바로 써니의 입을 틀어막았다.
냉기 가득한 태양이의 손바닥이 그녀의 입술에 닿는다.
“끄으읍! 끄읍, 으읍!”
그녀가 토끼 눈을 한 채 발버둥 쳤다.
하지만, 미동조차 없는 태양이의 악력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으으…… 읍!”
힘을 빼고, 포기하는 것뿐.
“일단, 시끄럽게 굴지 말아봐요. 악감정도 없고 헤칠 생각도 없으니까.”
나는 다만 궁금할 뿐이다.
또한.
무언가 알고 있는 것 같은 뼈오의 행보를 막고 싶지 않을 뿐이다.
어쩌면, 마탑주도 궁금해하지 않을까?
“끄읍!”
“다만, 계속 그렇게 협조 안 해주면, 악감정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도 불완전한 사람이라 가끔 비인간적인 행동을 저지를 수도 있잖아요?”
“끄읍, 끄읍!”
“협조, 콜?”
“끄으읍!”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진즉에 그럴 것이지.
내가 눈짓하자, 태양이가 포박을 풀었다.
“후악, 후악!”
호흡을 거칠게 몰아쉰 써니가 이내 입술을 손등으로 벅벅 닦았다.
“으아악, 징그러! 뼈다귀 손 징그러! 으으으으!”
“…….”
뭐야.
내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발버둥 쳤던 이유가 뼈오 때문이 아니라, 태양이 때문이었어?
왠지.
이 학생도 정상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