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98화
마탑 (4)
마도세계(魔道世界).
제4대 마탑주, 엘로이즈.
역대 최악의 마탑주의 방.
그리고.
그 방을 제집이라도 되듯 찾아온 뼈오.
“답은 정해졌구나.”
지켜보던 노인이 중얼거렸다.
“이번엔 좀 어려울 수도 있겠어. 끌끌, 뼈오의 정체가 마탑주였다니.”
그것도.
그냥 마탑주가 아닌.
좀 빡센 마탑주 같은데…….
그나저나 마탑은 다른 세계의 마탑과 공유라도 하는 걸까?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다.
마도세계라는 세계의 이름이 괜히 적혀 있는 게 아닐뿐더러.
서고에도 정체 모를 책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쌓여 있었으니까.
“……으아아.”
써니가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부여잡았다.
“4대 마탑주? 마도세계? 이게 다 뭘까요? 제가 아는 마탑주님은 단 한 명뿐인데 말이죠.”
아.
저 여자는 우주에 이곳 말고 수많은 세상이 널려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겠구나.
“게다가 관리 대상 1호에…… 주의 요망? 이거 근데 영어잖아요?! 왜 영어가 있는 거지?”
그러게.
[마도세계(魔道世界).]
[제4대 마탑주, ‘엘로이즈’의 흔적.]
[관리 대상 1호.]
[역대 전설이자 최악의 마탑주의 방으로 주의 요망.]
이 글자 빼고 다른 것들은 다 정체불명의 상형문자인데 말이다.
펄럭!
써니가 신경질적으로 양피지를 넘겼다.
그러던 순간.
“끼이약!”
괴상한 소리와 함께 양피지를 쳐내며 주저앉았다.
누가 봐도 화들짝 놀란 모습.
“왜요? 뭔데요?”
고개를 갸웃한 내가 가서 양피지를 넘기자.
그 뒷장에 적힌 영어가 번역되어 보였다.
[-소피아 실버스톤-]
헉.
나 역시 몸이 굳었다.
소피아 실버스톤이라면 마탑주의 이름인데?
“……?”
문득, 소름이 쫙 끼쳤다.
그럼 저 글자는 마탑주가 적어놨다는 말?
그뿐이 아니다.
적혀 있는 마탑주의 이름에서 신묘한 색의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 제기랄! 어떡해요, 우리!”
주저앉은 써니가 울먹였다.
“망했어요, 망했다고요!”
“뭐가 망해요?”
“저기 빛나는 글자! 기초적인 알람 마법이라구요!”
“알람 마법……?”
“예,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 있다는 사실이 이미 마탑주님의 귀로 들어갔다는 말이죠. 으아아아, 그냥 따라오지 말걸……. 난 이제 죽음이다.”
콩, 콩!
자신의 머리에 꿀밤을 먹이며 자학하는 써니.
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죽을 정도예요?”
“이봐요! 저만 망한 줄 알아요? 당신도 망했어요! 마탑의 규율은 엄격하다고요! 당신을 초대한 교수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교수도 책임을 면치 못할걸요? 아무리 교수라 해도 마탑주님 앞에서는……. 후, 더 설명해서 뭐 하겠어요. 제기랄.”
“…….”
그게 사실이라면.
올레나에게 살짝 미안했다.
‘하지만.’
뼈오의 전생이 제4대 마탑주, ‘엘로이즈’라면?
그건 또 말이 달라진다.
아무리 마탑주가 세계 랭킹 4위의 초 하이퍼 랭커라지만.
각성한 뼈오.
즉, 전직 마탑주를 수하로 둘 수만 있다면, 쥘 수 있는 패가 많아지니까.
힘을 떠나서.
마탑이 한 단계 진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지금껏 해석하지 못하는 저 방대한 서적의 정보도 얻을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물론.
써니는 그런 것 따위 안중에도 없겠지만.
“제기랄, 어떡하지? 젠장, 머리를 굴려봐요! 도망갈까요? 낙하산 없이 떨어져도 정신만 차리면…… 그래도 죽잖아?!”
“……흠, 도망이라.”
내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이미 늦은 것 같은데요……?”
그 순간.
덜컹!
저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끄흡!”
써니가 제자리에서 굳은 채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고.
“…….”
나 역시 심장이 철렁했다.
등골이 서늘해졌고, 온몸에 털이 솟았다.
바깥에 누가 온 지,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 엄청난 기운에 압도된 탓이다.
‘마탑주…….’
그렇다.
이 건물의 주인이자.
세계 랭킹 4위의 헌터.
소피아 실버스톤이 저 바깥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 * *
마탑주의 모습은 달라진 게 없었다.
백금발 머리.
새하얀 피부.
바다처럼 푸르른 눈.
그리고 전신의 털이 곤두설 만큼의 막강한 기운.
“마, 마, 마탑주님……!”
털썩!
다리가 풀린 써니가 주저앉았다.
“죄, 죄송합니다! 다…… 저 흑여우 가면이 겁박해서……는 아니고…… 사실 저 역시 호기심에 잠깐 정신을 놓은 것 같습니다. 흑! 죄송해요.”
저벅, 저벅.
천천히 걸어오는 마탑주의 시선은 써니에게 향해 있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안녕, 오랜만이네?”
그러고는 싱긋 웃었다.
입가에 지어지는 부드러운 미소.
하지만, 그녀의 눈은 웃고 있지 않다.
궁금한 표정이었다.
내가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는지.
숨겨져 있던 마탑의 비밀 통로를 어찌 알았는지.
“…….”
나는 일단 강자에 대한 예우를 갖추어, 가면을 벗었다.
“오랜만이네요, 마탑주님.”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본의 아니게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어?”
주저앉아 있던 써니가 어벙한 표정으로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두 분이 아는 사이……?”
“아이야.”
빙긋 웃은 소피아가 써니를 바라본 것은 그때였다.
“잠깐 서고 밖으로 나가 있으렴. 이번 사건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자꾸나.”
“예……?”
넋을 놓고 있던 써니의 얼굴이 금세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 예! 아, 알겠습니다!”
그녀가 서둘러 바깥으로 이동했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고소공포증인 것도 잊고 기존 천장으로 아등바등 기어 올라갔다.
우우웅!
동시에, 소피아의 손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방음 마법을 설치했어. 여기서 하는 말이 밖에 들릴 일은 없을 거야, 주동훈.”
마탑주가 나를 응시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써니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써니?”
잠깐 멈칫한 소피아가,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아이는 마탑의 규율을 어겼어. 징계를 받겠지.”
“…….”
“이건 아무리 네가 부탁한다 해도 어쩔 수 없어. 마탑의 규율은 엄하거든. 다만, 뭐. 다른 공로가 인정되면 또 그만큼의 보상도 받지 않을까?”
“다른 공로라면…….”
“그전에.”
소피아가 내 말을 끊었다.
“나는 궁금해.”
“…….”
“솔직히 당황스럽거든. 이 공간을 알고 있는 것도, 대한민국 협회를 통해 고대 마법에 대해 파고 다니는 것도.”
소피아가 도도하게 팔짱을 꼈다.
그래.
그녀 입장에서 당황스러울 법도 하다.
내 말 돌리기를 무시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
하지만.
그녀만큼 나 역시 당황스럽다.
“그건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마탑주님.”
뼈오의 밀실.
그 좁은 공간에 내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렸다.
“마탑주님이 어떻게 이 공간을 알고 있는지. 또한 어떻게 고대 마법의 존재를 알고 있는지……. 저 역시 궁금합니다.”
소피아의 표정이 굳었다.
내가 말장난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마탑주가 지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동시에 끓어오르는 강대한 마력.
“델라일라가 좋게 말해줘서 나 역시 널 좋게 보고 있었어. 하지만, 그 입으로 날 농락하려는 셈이라면…….”
쿠구구구…….
그녀의 몸에서 기세가 피어올랐다.
‘큭.’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거센 기운이 공간을 압박했다.
“더는 좋게만 볼 수는 없을 거야.”
“…….”
소피아의 진심이 느껴졌다.
‘진짜다.’
그녀는 필요 여하에 따라 날 죽일 수도 있었다.
그래.
상대는 세계 랭킹 4위.
힘이 곧 법인 세상이라면.
내가 고개를 숙이는 게 맞겠지.
특히나, 먼저 실례한 것도 맞으니까.
“후, 좋아요. 솔직히 말씀드리죠. 재지 않고 말하겠습니다. 저는…… 다른 세계의 절대자들을 수하로 부리고 있어요.”
내가 입을 열자, 그녀가 나를 쳐다봤다.
“……다른 세계?”
“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델라일라께 들어서 알고 계시겠지요? 아마 제 스켈레톤 중 하나가 마탑주님이 적어놓았던 제4대 마탑주, 엘로이즈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게 무슨?”
소피아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스켈레톤이 엘로이즈라고?”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럴 확률이 높다고 했습니다. 물론, 믿고 말고는 마탑주님의 자유예요. 근데…… 제가 이 공간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증거가 되진 않을까요? 보아하니, 엄청 꼬불꼬불 숨겨져 있던데.”
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고대 마법의 파편이 필요했던 것도 다 이 스켈레톤의 각성을 풀기 위해서고요.”
“…….”
“그게 답니다. 끝! 더 이상 밝힐 것도 말할 것도 없어요. 생각보다 단순해서 놀랍죠?”
내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잠깐의 침묵.
휘우우웅!
그녀의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뭐야, 진짜네? 눈에 거짓이 없어.”
목소리 또한 이전보다는 부드러워졌다.
내가 물었다.
“……눈만 봐도 그런 걸 알아요?”
“이 나이 먹어보렴. 자연스럽게 알게 되어 있단다.”
“…….”
맞다.
마탑주가 20대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해도.
실제로는 80대 할머니였지?
장대웅이 부르는 별명이 ‘영국 할망구’였나?
“하아.”
소피아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어쩔 수 없네. 네가 먼저 진실을 말했으니, 나 역시 말해줘야겠는걸. 그래야 서로 대화라는 게 될 것 같으니.”
그녀가 다시 빙그레 미소 지었다.
“대신 약속해.”
“약속이요?”
“내가 전부 말해주는 만큼, 너 역시 네가 앞으로 얻을 정보들을 빠짐없이 나에게 알려줘야 해. 특히 고대 마법에 관한 것이라면.”
이야.
역시 연륜은 못 속인다는 건가?
보통내기가 아니시다.
“좋아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호 정보 교류 협정 체결입니다.”
* * *
[스킬 : 마탑주]
[등급 : SS]
[효과1 : 허공에 마탑을 세웁니다.]
[효과2 : 해당 스킬은 한 세계에 오직 한 명만 얻을 수 있습니다.]
[효과3 : 기력 1,000을 사용합니다.]
“오직 마법만을 위해 살아왔고, 마법에 푹 빠져서 지내던 5년. 운 좋게 얻은 스킬이 바로 이거야. 바로 마탑주. 세상에 마탑을 지을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능력이었지. 그뿐만이 아니었어.”
[스킬 : 마탑의 역사]
[등급 : S]
[효과1 :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마탑주들의 정보와 역사를 확인합니다.]
[효과2 : 기력 500을 사용합니다.]
“이런 것도 생겼고.”
[스킬 : 고대마법의 추종자]
[등급 : SS]
[효과1 : ‘고대 마법’(SSS급)이 남긴 자취를 탐구하세요.]
[효과2 : 마법에 대한 이해력이 높아집니다.]
[효과3 : 연구 결과에 따라 스킬을 복합적으로 응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도 생겼지. 네가 재지 않고 공개했으니, 나도 터놓고 말하는 거야. 참고로 이건 델라일라도 몰라.”
소피아의 설명은 심플하면서도 함축적이었다.
자신의 스킬 중 일부를 개방하는 걸로 모든 설명을 끝내버렸으니까.
“신기하지 않아? 저 때부터였어. ‘마탑의 역사’ 스킬로 마탑 내부를 탐구했고, 고대 마법의 자취를 찾으려 애썼지. 물론, 지금도 진행 중이고. 그러던 와중에 네 소식을 듣게 된 거야.”
“그랬군요.”
설마.
마탑주 정도 되는 랭커가 이 정도로 디테일하게 공개할 줄은 몰랐다.
그만큼 고대 마법에 대한 정보가 간절한 것일까?
“고대 마법의 파편을 찾고 있다 했지?”
“예.”
뒤적뒤적.
내가 주머니에서 일기장 하나를 꺼냈다.
[아이템 : 마법 낙제생의 일기]
[등급 : S]
[종류 : 매개체]
[설명 : 숨겨진 유적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는 뿌리입니다.]
[효과1 : 던전, ‘마법 낙제생’을 개방할 수 있습니다.]
[효과2 : 헌터, ‘주동훈’에게 귀속된 아이템입니다.]
[효과3 : 해당 아이템은 헌터 등급 S 이상부터 활성화 가능합니다.]
[효과3 : 해당 아이템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고대 마법의 파편’(SS급)이 필요합니다.]
뼈오를 각성시키기 위한 매개체 던전을.
“정확히 SS급 고대 마법의 파편이 필요해요. 이 던전을 개방해야 하거든요.”
“그럼 되었네.”
마탑주가 씩 웃었다.
“이 탑.”
투웅!
그녀가 지팡이를 바닥에 내려쳤다.
“이 탑 자체가 바로 그 파편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