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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201화 (201/368)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01화

마탑 입성을 위하여 (2)

“음, 이놈 패가 네놈 것보다 훨씬 좋다. 죽거라.”

“다이.”

터억!

노인의 말에 따라 패를 미련 없이 내려놓았다.

“여어. 뭐야? 왜 이렇게 빨리 죽어?”

“클클, 이거 보수적인 친구로구만?”

촤르르륵, 촥촥촥!

탁자 위에 칩이 굴러다닌다.

깔끔한 셔플 소리가 귀를 울린다.

“으음, 이번에도 네놈 패가 똥패이니라. 어어? 근데, 다른 놈들 패도 다 똥이로구나. 이번 건 질러볼 만한데?”

“좋아요, 콜.”

이번엔 칩을 던졌다.

상대의 심리를 읽는 것?

내 패를 보고 확률을 계산하는 것?

그런 것 따위 하등 필요 없다.

“끌끌, 저놈 표정 보거라. 미세하게 일그러지는 거 느껴지느냐? 둘 다 똥 페어인데 네놈이 한 끗발 더 높아. 쫄리는 게지.”

그냥.

노인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되니까.

세상에 이렇게 편한 돈놀이가 있을까?

“올인!”

스윽!

내가 실실 웃으며, 칩 전부를 들이밀었다.

어차피 상대가 죽을 거 안다.

하지만, 초반에는 이런 식으로 칠 때 치는 사람인 걸 인식시켜 놔야 한다.

그래야 서로 좋은 패가 나왔을 때, 피 터지게 싸울 수 있거든.

“오오오오오!”

“이런, 씨부랄. 올인?”

“보수적인 친구인 줄 알았는데, 화끈한데? 난 죽겠어.”

“나도 다이. 도대체 무슨 패를 들고 있는 거야?”

아저씨들이 카드를 내려놓으며 궁금해하면.

“글쎄요. 궁금하면 돈 내고 확인하시든가요.”

이렇게 슬슬 약 올려주면 된다.

그와 동시에.

“아이쿠.”

실수로 카드를 놓친 척, 까버린다면?

“이런…… 미친?! 설마 저 똥 패로?”

“세 끗에 올인을 때린 거야? 이 새끼 뭐 하는 새끼야?”

“……블러핑이 제법인걸?”

더욱더 확실히 인식시킬 수 있다.

내가 뻥카도 치는 사람이라는 걸.

“아이코, 죄송합니다아~ 똥 패로 땄으니까 서비스로 학교는 보내드릴게요.”

스으윽!

조금 쌓여 있는 칩들을 모두 수거해 가면서, 초반에 걸어야 할 칩만 남겨둔다.

이런 식이었다.

약 한 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었으며, 화끈하게 붙을 때는 꼭 적은 끗발 차이로 이기곤 했다.

“…….”

처음엔 환호했던 아저씨들도.

“…….”

점점 흥분했는지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얼굴색도 이전과 달리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이게 말이 돼?”

“어떻게 한 판도 안 질 수가 있어?”

“뭐야, 귀신이라도 되는 거야……?”

어느덧 꾼들이 가져온 칩들이 전부 털렸다.

그에 비해 내 주변에는 칩 뭉치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마법을 쓴 건, 아닐 텐데?”

“그치, 탐지기가 있잖아.”

과연 마도세계(魔道世界)라는 걸까?

이곳 도박장에는 천장마다 마법 탐지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기운을 끌어올리거나, 마력이 움직이면 감지하는 장치인 듯했다.

‘어쨌든.’

예상대로 두둑이 벌었다.

“더 하실 분 없으신 거죠?”

씩 웃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저씨들. 여기 밥값.”

투욱!

내가 손을 튕기자 은화 1개짜리 검은 칩이 날아가 그들 앞에 투욱! 떨어졌다.

* * *

“저놈. 뭐야?”

순찰하던 도박장의 주인, 대도(大盜)가 미간을 찌푸렸다.

“왜 이렇게 칩을 많이 바꿔가?”

그의 물음에, 질겅질겅 껌을 씹던 마담이 답했다.

“아까 언뜻 봤는데, 제법 치는 것 같던데요?”

“제법 쳐?”

“예, 거의 한 판도 안 지던데요?”

“……그으래?”

그가 사라져 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몇 년간 노름판을 구르던 대도다.

그뿐이랴?

이제는 이 도박장의 주인이기도 하다.

그런 그도.

승률 100%의 꾼은 처음 봤다.

만약 그런 게 가능하다면 둘 중 하나.

사기꾼 또는 타짜.

“저 새끼가…….”

감히 내 도박장에서 손을 써?

“여어.”

대도가 손을 올리자.

스슷!

어둠 속에서 검은 두건 쓴 수하들이 여럿 나타났다.

“저놈 추적해서 누군지, 어디서 온 놈인지 샅샅이 알아봐. 섣불리 건들진 말고.”

한 번이라도 도박장에 들어온 돈은 다시 나가지 못한다.

그게 대도(大盜)가 도박장을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 * *

하루가 지나고.

또 이틀이 지나고도.

노름은 계속됐다.

나는 아예 주변에 장기 숙박을 잡아 놓고, 밤마다 도박장을 출근했다.

“끌끌, 이놈아.”

노인이 씩 웃었다.

“드디어 네놈이 원하던 순간이 왔나 보다.”

‘그래요?’

“그래, 지금 붙은 놈들, 다 한통속이니라. 얼씨구, 네놈이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패까지 교환하는구나. 아주 대놓고 노렸어.”

‘그렇군요.’

나 역시 속으로 웃었다.

사실, 주변에 그림자 몇 마리를 붙였을 때부터 예상했다.

언제 한 번 이렇게 작업이 들어오겠구나.

‘그럴 수밖에 없겠지.’

내가 이곳 도박장에서 벌어들인 금화만 작은 방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이니까.

“어이, 친구. 네가 요즘 그렇게 잘한다며?”

“그 실력. 우리한테도 좀 보여주라고.”

촤르르륵!

탁, 탁, 탁!

대머리 아저씨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나도 환하게 마주 웃으며 벌떡 일어섰다.

“응? 왜 일어서?”

“그냥. 갑자기 도박이 재미없어져서요.”

“……뭐?”

웃던 아저씨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황당하겠지.

물어 놓은 호구가 말 같지도 않은 이유를 대며 도망치려 하니까.

“생각해 보니, 젊은 나이에 이런 메케한 골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인생의 낭비 같잖아요?”

“아니, 지금껏 잘 놀아 놓고 갑자기?”

“원래 깨달음이란 불시에 찾아오는 법이죠.”

“엥? 어이, 어이! 잠깐!”

대머리의 눈빛이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그럴 수밖에.

내가 이대로 나가면, 이곳 주인장에게 탈곡기처럼 탈탈 털릴 테니까.

하지만, 그런 건 내 알 바 아니다.

촤르륵!

바꿨던 칩을 다시 정산받은 내가 여유롭게 밖을 나섰다.

“룰루.”

어두운 골목길.

깍지를 낀 채 기지개를 켜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었다.

본래 자리 잡아 놓은 숙소로 가지 않고.

더욱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설 찰나.

스윽, 스윽!

사방에서 검은 복면 열댓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에 노인이 옳다구나 손뼉을 쳤다.

“허허허, 어째 네놈의 세상이나 우리 세상이나 이곳이나 똑같더냐. 정말 네놈이 말한 대로 그대로 이루어지는구나.”

‘이런 걸, 우리 세계에선 클리셰라 하죠.’

클리셰(Cliché).

판에 박은 듯한, 어디서 본 것 같은 진부한 상황을 뜻하는 말.

진부하게 생긴 녀석들이 나와서, 진부한 목소리를 낸다.

“어이, 멈춰라!”

녀석의 말대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그들 무리 중 가장 은밀해 보이는 놈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저놈이네.’

성벽 위에서 허세 가득한 동작으로 그림자를 밟았던 친구.

“어이.”

녀석이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그동안 어떤 술수로 우리 도박장의 돈을 털어갔는진 모르겠지만, 그거 아나?”

촤르륵!

검은 두건이 손아귀에 있는 단검을 유려하게 돌렸다.

“장난질을 할 거면, 적어도 손모가지 하나 잘릴 각오로 해야 한다는 거.”

“글쎄요. 제 손모가지는 소중한데.”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녀석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했다.

“어쭈, 여유로워? 상황 파악이 잘 안 되는 놈인가?”

“상황 파악이 안 되긴요.”

투욱!

내가 등에 메고 있던 배낭을 바닥에 내려두었다.

그러고는 손목과 발목을 풀었다.

“이틀 전부터 제 뒷조사한답시고 이리저리 쑤시고 다니다, 답 안 나오니까 직접 이렇게 행차하신 상황 아니었나요?”

“……그걸 어떻게!?”

뒷조사해 봐도 어디 나올 데가 있을 리 없다.

난 말 그대로 다른 세상에서 뚝 하고 떨어졌거든.

“오히려 제가 역제안해 드리죠.”

뚜둑, 뚝!

목 관절이 시원하게 풀렸다.

“도박장에서 얻은 금화의 절반 정도는 떼어드릴 테니, 제게 신분을 만들어주세요.”

“신분……?”

“예, 마탑에 들어갈 수 있는 신분이요.”

내가 시원하게 본론을 말했다.

굳이 이곳 도박장을 털었던 이유도.

범죄자인 녀석을 미행했던 것도.

결국은 다 마탑에 들어가기 위해서였으니까.

“좋게좋게 평화적으로 넘어갈 수 있다면, 저 역시 그게 깔끔하고 편하거든요.”

“하? 이놈 봐라. 웃기는 놈일세?”

하지만.

검은 복면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노름에서 블러핑 좀 친다고 그게 현실에서도 먹힐 거라 생각하나 본데.”

“…….”

“네놈이 평화적으로 넘어갈 수 있는지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 있다.”

스스스스!

녀석이 기운을 끌어올렸다.

이건 입장 차이였다.

서로가 서로를 갑(甲)이라고 생각하는 상황.

“후회할 텐데요?”

“그 여유, 언제까지 이어지나 두고 보자고.”

검은 복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대기하던 열댓 명의 사내가 무기를 꺼낸 채, 자세를 낮췄다.

“후.”

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폭력이라는 좋은 수단이 있는데.

굳이 멀리 돌아가려 한 내 잘못이었다.

* * *

화르륵!

신살(神殺)급 무기가 튼실한 몽둥이로 변했다.

“호오, 몽둥이는 또 처음인데.”

‘저런 놈들 상대하는데 굳이 검이나 창을 들 필요는 없죠.’

검술이나.

몽둥이술이나.

결국 긴 막대기로 누군가를 타격하는 기술이란 건 똑같다.

“죽어!”

후우웅!

누군가가 은밀하게 다가와 단검을 휘둘렀다.

나는 허리를 꺾어 여유롭게 흘려보낸 뒤.

퍼억!

몽둥이를 그대로 녀석의 아래턱을 향해 올려쳤다.

빠각!

“커허억?!”

뼈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몸이 붕 떴다.

휘리릭!

나는 그대로 몸을 한 바퀴 돌려, 녀석의 복부를 향해 발을 꽂아 넣었다.

콰아앙!

그대로 날아가 담장에 박히는 놈.

“한 마리.”

자세를 잡으니, 이번엔 둘이 달려온다.

왼쪽에 하나, 오른쪽에 하나.

스슷!

나는 백스텝을 밟아 녀석들끼리 부딪히게 만든 후.

퍼억! 퍼어어억!

둘의 뒤통수를 몽둥이로 가볍게 까버렸다.

“꺽!”

“켁!”

둘 다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기절했다.

“둘, 세 마리~”

이곳 세계의 수준이 낮은 걸까?

아니면, 이놈들만 그런 걸까?

이런 놈들을 상대로는 내 뼈다귀들을 꺼낼 필요조차 없었다.

“끌끌. 델라일라, 그 처자가 말하지 않았느냐.”

내 생각을 읽은 노인이 웃었다.

“강한 세상. 즉, 선택받은 세상에만 세계 랭킹 게시판이란 게 생겼다고. 이곳 또한 그저 그런 세상일 거다. 딱 강한 놈 한둘 정도 있는 세상.”

노인과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곳 세상엔.

세계 랭킹 게시판이 없다는 것을.

게시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특유의 기운이 온 세상을 덮어야 하는데, 이곳엔 그런 게 없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우리 지구가 세긴 세지.

마왕(摩王) 잭 스미스.

천마(天魔) 하세라.

옥스포드의 현자(Oxford's Sage) 소피아 실버스톤.

이런 애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까.

“이, 이런! 보통 놈이 아니다! 한꺼번에 공격해!”

검은 복면이 외쳤다.

“뭐, 여태까진 따로따로 공격하셨고?”

언제는 정당하게 공격했다는 듯이 말하는 녀석.

그 녀석이 있는 곳을 향해 번개처럼 내달렸다.

쐐애애액!

퍼억! 퍼버버벅!

달려 나가면서 보이는 부하들은.

뒤통수든, 복부든, 다리든, 허리든.

그냥 보이는 대로 후려치며 달렸다.

“으, 으아아악!”

“끄악! 아파, 아프다고!”

한 대씩 맞은 녀석들은 그 부위를 부여잡고 눈물을 뚝뚝 흘려댔다.

아프지?

아플 수밖에 없다.

“녀석. 이런 건 또 언제 배웠느냐? 놀랍도록 아픈 급소만 골라 패는구나.”

‘……다 어르신께 배웠지요.’

얼마나 아팠던가.

얼마나 괴로웠던가.

맞아본 놈이 더 잘 팬다고.

노인의 마사지를 통해 배운 것을 녀석들에게 그대로 적용했다.

그리고.

“끄윽.”

“끄어억, 끄윽.”

으슥한 골목.

열댓 명의 사내가 전부 다 나자빠진 채로 괴로운 신음을 내는 중.

“……이런 미친?”

당황한 검은 복면이 중얼거렸다.

그거 봐, 자슥아.

후회한다고 했지?

씩 웃은 내가 무심하게 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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