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03화
마탑의 신임 교수가 되었다
화르륵!
내 손바닥 위에 마침내 불이 타올랐다.
스킬이 아닌.
오직 내 기운으로 만들어낸 현상.
[주술(呪術) 스킬을 획득합니다.]
[‘주술(呪術)’(B급)이 ‘만술(萬術)’(A급)에 흡수됩니다.]
[주술(呪術) 스킬이 사라집니다.]
“그렇지. 그거다, 이놈아.”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이나 주술이나 그 본질은 똑같으니라. 네놈이 가진 기운을 응용하여 초자연적인 힘을 내는 것.”
그 말이 맞다.
결국, 엘드린의 주문 의식도.
올레나의 물 마법이나, 다나의 힐링도.
본인이 가진 기운을 어떻게 응용하냐에 따라 나온 결과의 값.
그것이 바로.
노인이 말하는 만술의 요체지 않던가.
“녀석아, 이제 네가 할 일은 숙련도를 기르는 거다.”
노인이 두둥실 날아 내 옆에 붙었다.
“그리고 그 숙련도를 기르는 데 있어, 누군가가 열심히 이룩해 놓은 것을 흡수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지. 마탑에 가거라. 마탑에 가서, 오랜 기간 쌓아 놓은 마법이라는 술(術)을 깔끔하게 흡수하는 게다. 알겠느냐?”
마탑에 지원서를 내고 훈련을 시작한 지 어느덧 일 주차.
나는 이제 기초적인 주술을 할 줄 알았다.
노인과 함께하는 12시간은 온전히 수련으로만 시간을 보냈고.
나머지 시간엔 휴식 및 대도를 통해 이곳의 문화와 역사를 배웠다.
‘마탑주가 지배하는 세상.’
그리고.
‘뼈오’가 갔던 마탑의 밀실에는 분명.
[마도세계(魔道世界).]
[제4대 마탑주, ‘엘로이즈’의 흔적.]
[관리 대상 1호.]
[역대 전설이자 최악의 마탑주의 방으로 주의 요망.]
이런 흔적이 있었다.
3대 마탑주와 4대 마탑주.
그게 의미하는 바가 뭘까?
‘완전 노골적이잖아.’
나름 매개체 던전을 다녀본 나는.
던전이 원하는 바를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내가 활성화하는 매개체 던전은 한 세계의 절대자의 ‘한’을 풀어준다.
태양이.
드미르와 엘드린.
카덴과 다나.
전부 다 똑같았다.
‘그 말은.’
이곳이 아직 ‘엘로이즈’라는 마탑주가 등장하기 전 세상이라는 거겠지.
그리고.
[스테이지 : 마법 낙제생]
[마탑에 입성하여 마법 낙제생을 찾으세요.]
임무가 가리키는 ‘마법 낙제생’이 ‘뼈오’임과 동시에 추후 최악의 마탑주가 될 ‘엘로이즈’ 아닐까?
일단 추측은 그랬다.
또한.
[스킬, ‘스켈레톤 로드 소환’(S급)을 사용합니다.]
[기력 10을 사용합니다.]
[삐빅!]
[오류입니다!]
[기력 10이 회복됩니다.]
[‘뼈다귀5’는 해당 던전에 등장할 수 없습니다.]
이번 던전에서 아예 뼈오를 배제시키는 것 보면, 더더욱 확신이 들었다.
‘뼈오의 과거를 찾아 그 한을 풀어줘야 한다.’
그 한이 무엇일지는.
직접 가서 확인해야겠지.
* * *
“합격!”
눈앞의 노인.
알펜이라는 자가 흡족한 표정으로 웃었다.
“……예?”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손에서 불을 내뿜었을 뿐인데, 그냥 합격이라고?
정말 대도, 고 녀석 말이 맞잖아?
“허허, 이름이 훈이라 했나?”
“그렇습니다.”
“혹여 걱정했는데, 스펠도 없이 불을 만들 정도면 아~주 대단한 실력자로구먼! 으하하핫!”
“…….”
이 사람한테.
무언가 장대웅 형님의 냄새가 난다.
오직 또라이만이 풍길 수 있는 그 특유의 향.
게다가.
‘이 사람. 엄청난 실력자야.’
마탑은 과연 마탑이라는 걸까?
대도(大盜)가 동네 잡 양아치 수준일 정도로.
강대한 기운을 품고 있는 자들이 즐비했다.
당장 여기 알펜만 해도.
내가 직접 상대하기 까다로울 정도였으니까.
“끌끌, 자네는 F 클래스 담당 교수로 배정될걸세. 거기, 실비아 있나?”
“예, 장로님.”
“새로 온 일손…… 아니, 교수이니. 친절하게 설명해 주게. 마탑에 대한 설명도 잘해주고.”
“알겠습니다!”
* * *
실비아는 마탑의 마법사이자 교수였다.
그녀가 담당하는 클래스는 D.
마탑의 클래스는 S부터 F까지, 총 7개의 단계가 존재했다.
처음 입학할 때, C급부터 시작하고.
거의 졸업 단계에 이른 고수들이 S클래스.
낙제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F 클래스로 떨어진다.
“훈 교수님?”
“예.”
“교수님의 숙소는 10층이에요. 연구실은 40층이고요. 더 자세한 구조는 여기 설명서 있으니까 참고하세요.”
그녀가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냉큼 받았다.
“적응 기간 동안 마탑 구조 잘 파악하시고요. 수업은 내일부터 들어가시면 됩니다.”
마탑의 구조는 옥스퍼드의 것과 비슷했다.
아니, 솔직히 판박이로 박아 놓은 듯 똑같았다.
하긴, 그러니까 뼈오가 비밀 통로도 알고 있었던 거겠지?
‘아, 뼈오.’
일단 뼈오부터 찾긴 해야 하는데.
“아, 실비아 교수님!”
“말씀하세요.”
그녀가 대꾸했다.
“혹시 마탑에 엘로이즈라는 학생이 있나요?”
“엘로이즈요?”
그녀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뭔가 아는 게 있나?
“지금 초면에 말장난부터 하시는 건가요?”
“예?”
내가 눈을 크게 떴다.
이 여자.
갑자기 왜 이래?
“마법 교수라는 분이 엘로이즈 공작가를 모르실 리는 없고. 아무리 교수가 귀하다지만, 저는 업계 선배입니다. 예를 갖춰주세요.”
“아.”
엘로이즈가 이름이 아니라 가문이었어?
그것도 공작가?
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이해해 주세요. 제가 시골 출신이다 보니, 모르는 게 많습니다.”
이곳 문화를 배운답시고 배웠는데.
일주일로는 짧은 시간이었나보다.
“……정말 엘로이즈 가문을 몰랐다고요?”
“네,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밑에서 산에서만 살았다 보니.”
“으음. 귀족이 산에서……?”
실비아가 설마 하는 눈빛을 지었다.
그러더니, 이내 후- 하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엘로이즈 가문의 학생이 몇이냐 묻는 거라면, 정확히 13명 있어요.”
“13명이요……?”
그 가문.
애도 참 많이 낳았나 보다.
“예, 공작가 자제분들이라 전부 특별 관리 대상이거든요. 각 클래스에 흩어져 있어요.”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13명.
그중에 뼈오가 있다.
그리고 분명 낙제생이라 했으니.
내가 맡은 F 클래스에 있을 확률이 높겠지.
“후.”
차라리 잘되었어.
뼈오는 내일 강의 들어가면서 찾아보자.
‘근데.’
강의는 뭘 가르쳐야 하지?
“무슨 생각 하는지 눈에 훤히 보이시는데, 그냥 마음 편히 먹으세요.”
실비아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
“F 클래스시면, 무얼 가르칠 것도 없어요. 그냥 애들 관리만 잘해주시면 됩니다.”
“예?”
“내일 가보시면 알 거예요.”
* * *
다음 날.
“후우.”
마탑 15층 F 클래스 강의실 앞에 선 내가 심호흡을 했다.
“끌끌, 떨리더냐?”
노인이 물었다.
‘누굴 가르쳐 줘봤어야지요.’
“그 여자가 말하지 않았더냐. 그냥 관리만 잘하면 된다고.”
‘그게 더 빡센 거 모르세요? 그것도 낙제생들만 모아놨다잖아요.’
즉.
마탑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꼴통을 이곳에 모아놨다고 보면 된다.
‘뭐, 근데.’
사실, 상관없잖아?
누가 보면 진짜 가르치는 데 목적이 있는 줄 알겠네.
덜컹!
시원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웅성웅성.
약 30명 정도의 학생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왔다.”
“누구야? 저 사람은?”
“이번에 들어온 신임 교수래.”
“그래? 조만간 또 나가겠네.”
“아이고, 마탑 교수진들. 또 애꿎은 마법사 하나 찾아서 짬 때렸나 보네.”
“크크, 불쌍해서 어쩌냐.”
교실은 떠들썩했다.
분명 책상과 의자라는 도구가 있음에도.
누군가는 교실 뒤 탁자에서 드르렁- 잠을 청하고 있었고.
또 내가 들어오든 말든.
책상 위에 불량한 자세로 걸터앉아 있는 친구도 있었다.
그야말로.
“개판이 따로 없구나. 쯧쯧.”
개판.
노인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게다가 놀라운 것은.
실비아가 말해준 F 클래스 정원이 100명이라 했으니.
나머지 70은 아예 수업을 쨌다는 말이 된다.
‘이야.’
과연, 이런 게 낙제생들이구나.
문득, 실비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 한 달 후, 진급 평가가 있어요.
- 교수님이 해야 할 일은 저들을 가르쳐 E클래스로 올려보내는 건데…….
- 사실,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고 있으니.
- 그냥 사고만 치지 않으시면 됩니다.
- 그래도 저들 중엔 꽤 높은 가문의 귀족들도 있거든요.
‘이런 애들을 진급시키라고?’
내가 왜?
굳이 그럴 필요 없다.
오직 내 목표는.
탁탁!
“주목!”
내가 탁자를 치자, 대략 1/3 정도의 학생이 날 바라봐 주었다.
아아, 감개무량하다.
그래도 한 10명 정도는 집중해 주는구나?
하지만, 그 시선에 호의가 담겨 있는 건 아니었다.
귀족의 자제로서.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지켜보겠다는 권위적인 눈빛.
“반갑다. 나는 훈 남작.”
우선, 내 소개부터 해주고.
“앞으로 너희들을 담당하게 된 교수인데.”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학생들의 눈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엘로이즈, 엘로이즈, 엘로이즈…….
정확히는 뼈오를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곳에 뼈오는 없었다.
나는 뼈오의 주인으로서.
그 용태(容態)만 보고도, 그게 뼈오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스테이지 : 마법 낙제생]
[마탑에 입성하여 마법 낙제생을 찾으세요.]
아직.
임무 달성 메시지도 뜨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이곳에 볼일도 없는 거지.
“앞으로 모든 수업은 자율 학습이다. 놀고 싶은 사람은 놀아도 좋고, 자고 싶은 사람은 자도 좋다. 물론, 궁금한 게 있거나 배움을 원하는 학도들은 언제든 연구실로 찾아와도 좋다.”
“……?”
학생들의 얼굴에 의문의 표시가 떠올랐다.
왜.
쿨하게 포기하니까 이젠 좀 아쉽냐?
씨익.
웃은 내가 그대로 교실 밖을 나섰다.
“뭐야.”
“그냥 가는 거야? 진짜로?”
“……?”
술렁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걸음을 지속했다.
‘일단.’
뼈오를 먼저 찾아야 하는데.
생각나는 장소가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서고.’
[역대 전설이자 최악의 마탑주의 방으로 주의 요망.]
그 책장 꼭대기에 숨겨져 있던 밀실.
나는 그곳부터 뒤져볼 생각이었다.
* * *
F 클래스.
교수가 나간 교실.
“…….”
한 학생이 싸늘한 눈빛으로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짙푸른 머리와 날카로운 뱀눈은 그의 인상을 더욱 음침하게 만들었다.
남학생의 이름은 앤드루.
패트릭 공작가의 자제이며, 마탑의 이단아로 불리는 자였다.
“대장, 대장!”
그의 옆으로 학생들이 다가왔다.
하나같이 날 티 나는 학생들이었다.
“저 교수 어떡할 거야? 좀 재수 없는 것 같지 않아?”
“맞아! 아무리 우리가 개무시한다고 해도 그냥 저렇게 나가는 게 어딨어?”
“보아하니 어디 지방 가문인 거 같은데, 우리가 우습게 보이나?”
앤드루 패트릭은 사실 F 클래스의 실력자가 아니다.
당장에라도 S급에 올라설 수 있는 마법 능력을 지녔다.
하지만.
마탑 교육에 협조적이지 않았던 그는 각종 징계 때문에 낙제생이 된 케이스였다.
“앤드루, 솔직히 저 교수, 너보다 실력 아래지 않아?”
“참교육 한번 해줘야지!”
“…….”
앤드루는 계속해서 침묵을 지켰다.
그의 시선은 아직도 문에서 떨어지지 않는 중.
‘그 교수.’
무언가 달랐다.
지금껏 만났던 교수들은 다 얼뜨기에.
할 줄 아는 게 허둥거리는 것뿐이었는데.
‘제법 여유가 있네?’
궁금했다.
과연.
그 여유가 센 척일까, 아니면 진짜 센 걸까.
과연.
이번 교수도 자신의 괴롭힘을 견딜 수 있을까?
‘재밌겠네.’
앤드루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