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06화
엘로이즈 아린 (3)
제4대 마탑주.
한때는 둔재라 불렸으나.
그 어느 순간부터 재능이 폭주해.
구스펠하임조차 발아래 둘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희대의 마법사.
그리고.
최연소 마탑주가 될 자.
그 이름하여, 엘로이즈 아린.
그녀의 즉위식은 탑 밖에서 행해졌다.
탑 내부의 모든 존재와 4대 가문, 탑 밖의 시민들이 그녀를 기리기 위해 모였다.
매시간 화려한 마법 축포가 터지고.
온 시민들이 다 함께 축제를 즐기며, 술판을 벌이고 있을 그때.
스윽!
탑 아래 공중에 떠 있는 새하얀 피부를 가진 여인의 손이 올라갔다.
후우우웅!
그러자 광풍이 세차게 불었다.
“어어!”
“이거, 바람이 너무 심한데요?”
“꺄아악!”
바람이 얼마나 센지.
축하하겠다고 차려놓은 음식들과 장식들이 부서져 날아갈 정도였다.
‘드디어, 이 순간이 왔구나.’
아린이 마력을 운용했다.
그러자.
화륵!
엘로이즈 가문의 상징인 불꽃이 가녀린 손끝에서 피어올랐다.
쿠구구구!
불씨가 광풍에 올라탔다.
화륵, 화르륵!
타오르는 불꽃은 더욱 진해지고 강해져, 어느덧 탑을 둘렀다.
태초의 ‘고대 마법’이 세웠다는 그 마탑이 불에 타기 시작한 것이다.
“뭐, 뭐 하는 것이오! 마탑주?!”
“탑이! 탑이 불타오른다!”
“다, 당장 멈추시오!”
어쩔 줄 모르는 귀족들.
그중에는 4대 가문의 가주들도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요. 엘로이즈! 그쪽 가문의 자제 아니오? 어떻게든 수를 써 보시오!”
“……사실, 저 아이와 인연을 끊은 지 좀 되어서.”
“그게 무슨 말이오! 그런데도 마탑주로 추천했단 말이오?”
“실력 하나는 일품 아닌가.”
“이런 미친!”
아린이 성인이 되었을 때.
마침내 그 재능이 화려하게 개화(開花)했다.
당연히 재능이 곧 권력인 엘로이즈는 그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그게 이러한 꼴이 된 것이다.
“당장 멈추시오! 마탑주!”
가주 중 하나가 눈에 핏발을 드리우며 공격했지만.
화르륵!
아린의 손길 한 번에 무력화되었다.
무엇을 날리던, 그녀가 일으킨 불꽃 아래에 재가 될 뿐.
그 누구도 성장한 아린을 막을 수 없었다.
“패트릭, 패트릭 가문은 뭐하시오! 수(水)는 화(火)에 강하니, 어서 나서보시오!”
“아니, 그게. 아무리 우리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것. 알지 않은가! 저 기술들. 다 금서(禁書)에 적혀 있는 마법들일세! 구스펠하임께서도 처음 보는 마법들이라 했단 말이네!”
“젠장…….”
마도 세계의 상징인 탑이 불타고 있다.
그뿐이 아니라.
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귀족의 집이 불타고 있다.
그야말로 화마(火魔)의 강림.
“막아라!”
“마탑주가 저주에 걸렸다!”
“마탑주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마탑주를 말살하라!”
“…….”
아린은 발악하는 가주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참 웃기지 않은가?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이제는 마탑주 자리에 오르란다.
자신이 강하고 재능이 있어, 너무 행복하고 축하한단다.
“…….”
솔직히.
그때만 생각하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었다.
“아린은 우리 엘로이즈 가문의 보배야!”
가문의 혈육들이 앞다투어 다가와 술을 권하고, 춤을 요청했으며.
“아이고, 이 어미가 그동안 서운하게 했지? 우리 아가.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 했을꼬.”
다시는 찾지 말라며 매정하게 굴었던 사람이.
이제는 엄마를 자처했다.
“안녕, 나 기억해? 우리 동기였잖아. 네 옆자리.”
“아, 안녕하세요. 저. 서고 사서예요. 기억하시죠? 지나가다 몇 번 마주쳤는데.”
“허허. 아린아. 이 가주가 생각이 짧았다. 그동안 챙겨주지 못했던 용돈, 수십 배로 돌려주마.”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재능이 뭐라고.
그게 삶에 있어서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이렇게 달라진단 말인가.
‘하지만.’
이미 자신의 심장은 까맣게 물들었다.
마치 재처럼.
다 타버리고 남은 게 없었다.
“…….”
화륵!
아린이 마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자신의 마음을 버리며, 모든 것을 불태우는 ‘고대 마법’의 금지된 기술.
[‘헬 시티’(SS급)가 작동합니다.]
콰가가강!
불꽃이 귀족들의 집을 녹였다.
튼튼한 마력으로 뒤덮여 있는 마탑을 두들겼다.
[해당 지역의 ‘도시’를 불태웁니다.]
[불길은 생명을 앗아가지 않습니다.]
건물이 무너지고, 마법사들이 쏘아대는 공격들이 타올라도.
아린은 멈추지 않았다.
잔해밖에 남지 않은 수도가 잿더미로 내려앉을 때까지.
그녀는 마음껏 불줄기를 뿜어댔다.
“이 망할 년아!”
“악마 같은 년!”
아린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고는 다시 손을 올렸다.
[‘마력 폭파’(SS급)가 작동합니다.]
우우웅!
그녀의 손에서 분출된 새하얀 기운이 갈라져 마법사들의 심장을 뚫었다.
[해당 존재의 마력을 봉인합니다.]
[봉인이 풀릴 때까지 마법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재능이 세상을 불행하게 만든다면?
모든 게 공평해지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만! 그만해!”
“마법이 사용이 안 됩니다!”
“끄아악, 내 몸에,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야!”
평생을 마법만을 바라보고 살아왔던 자들에게서.
마법을 앗아가면 어떻게 되는 걸까?
‘당신들도 알아야 해요.’
아린이 걸었다.
‘재능이 없는 삶을.’
파바바밧!
그녀가 지나가는 자리에서는 계속해서 하얀빛이 번뜩였다.
빛은 거미줄처럼 퍼져, 마법사들의 심장을 건드렸다.
‘제가 만들어드릴게요.’
서고에서 읽은 적 있다.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는 분명.
‘재능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존재했거든요.’
그냥 있는 게 아니라, 즐비했다.
밤하늘에 펼쳐진 별보다 더 많았다.
‘당신들도.’
불꽃이 피어올랐다.
‘이해해 보세요.’
저주라고 생각해도 좋다.
역사가 자신을 역대 최악이라 칭해도 좋다.
다만.
아린은 마도 세계의 귀족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는.
‘마법’에 재능이 없는 자들에게도, 기회라는 걸 주고 싶었다.
‘그런데요.’
문득, 아린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공허한 하늘이 아닌, 그곳에 있을 어떤 존재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어요.’
또한, 놀랍게도.
그녀에게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마탑주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흘리지 않았던 그 눈물이.
주륵.
뺨을 타고 내려앉았다.
‘누군가가, 단 한 명이라도 제게 손을 내밀어줬다면…….’
아린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비명을 지르며.
모두가 슬퍼하고 있었다.
그들의 모든 것을 앗아간 그녀, 아린을 저주하고 있었다.
‘제가 이렇게까지 했을까요?’
공허한 하늘을 바라보며 입을 여는 그녀.
‘저는.’
그 목소리가.
왜 이렇게.
‘그저 외로웠던 것 같아요.’
슬프게 느껴지는 걸까.
‘누군가 손 내밀길 바랐던 것일지도 몰라요.’
마치.
나를 향해 말하는 것 같은 아린…….
아니, 내 소환수 뼈오의 목소리에.
정신 차린 나는 화들짝 눈을 떴다.
[스킬, ‘기억 재현’(S급)을 종료합니다.]
그녀와 잠깐 부딪혔을 때.
발현한 기억이 종료된 것이다.
* * *
[띠링!]
[마법 낙제생을 찾으셨습니다.]
[스테이지를 클리어합니다.]
멍하니 그녀의 기억을 읽던 내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지나가는 아린의 손목을 잡은 게 지금 이 상황이다.
나를 신임 교수라 밝혔고.
면담하자고 했었지.
“면담이요……?”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본 그녀가.
투욱!
있는 힘껏 손을 뿌리치더니, 다시 걸어갔다.
명백한 적의.
“…….”
그런 그녀의 등을 나는 물끄러미 쳐다봤다.
분명히 봤다.
마탑 자체를 화려하게 불태우는 그녀의 압도적인 재능을.
그런 그녀가.
왜 지금은 저렇게 쭈글쭈글한 걸까?
“막혀 있는 게다.”
노인이 중얼거렸다.
‘예?’
“심리적 요인이든 뭐든, 본인의 잠재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게야. 예전의 네놈처럼.”
‘아.’
“쯧쯧, 저 마른 몸뚱어리를 보거라. 얼마나 못 먹었으면 저렇게 됐을꼬. 게다가 심리 또한 불안하다.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았어.”
‘그렇겠지요.’
기억 재현에서도 말하지 않았던가.
누군가 한 명이라도 손을 내밀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어린 시절.
무시당하던 이 삶이 그녀의 ‘한’이었을 테고.
결국, 그 ‘한’을 풀어주는 게 이 던전의 목표겠지.
[띠링!]
[새로운 스테이지가 도착합니다.]
‘새로운 스테이지.’
[스테이지 : 엘로이즈 아린의 한]
[난이도 : 측정불가]
[아린은 어렸을 적 경험을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뼈다귀5’의 진정한 각성을 이뤄내세요.]
[TIP / 아린을 도와, 마탑을 무사히 졸업시키는 것은 어떨까요?]
‘허어.’
이번에도 측정 불가다.
S급 던전 안에서의 측정 불가 스테이지라.
과거 태양이 각성 때도 측정 불가였는데.
그때보다 난이도가 더 어려우려나?
“이놈아, 뭣하느냐.”
‘예?’
“뼈오 녀석, 저렇게 그냥 가지 않느냐. 빨리 잡아서 뭐라도 해야지! 저 안타까운 아이를 그냥 보낼 셈이냐?”
손을 벅벅 비비며, 기대하시는 어르신.
아무래도 그냥 드라마 보듯 즐기시는 것 같은데…….
스슷!
우선, 바로 내달렸다.
“왜, 면담은 어감이 좀 별로였지? 아니면, 이야기 좀 나눌까?”
“전 할 말 없어요.”
“잠깐이라도 안 돼?”
그녀의 길을 가로막자, 아린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굉장히 냉소적인 시선이다.
‘하지만, 난 알지.’
저 차가운 시선 속에 여린 마음이 숨겨져 있다는 걸.
분명히 외로울 거라는 걸.
“당신이 아무리 교수고 제가 학생이라 해도, 저에게 이렇게 무례하게 대할 순 없어요.”
“알지, 엘로이즈 가문이니까.”
내 당당한 말에, 아린이 입술을 오므렸다.
저게 뼈오란 걸 알아서 그런 걸까?
왜 이리 귀여워 보이는 거지?
마치 길가에 버려진 새끼 고양이를 보는 것 같았다.
낯선 인간을 경계하는 아깽이.
그래, 넌 이제부터 아린이 아니라 아깽이다.
“후.”
이윽고 아린이 한숨을 내뱉었다.
“제게 사기 치려 해봐야 소용없어요. 저, 빈털터리거든요.”
엥?
갑자기 사기?
“엘로이즈 가문이라고 돈 많을 줄 아셨겠죠? 천만에요. 제 몸 안 보여요? 돈이 많았으면 이렇게 말랐을까요?”
“……잠깐, 그게 무슨 소리야?”
“당신 같은 사람이 지금껏 한둘이었는 줄 알아요? 새로운 마법 가르쳐주겠다는 사람들. 밥 사주겠다면서 으슥한 곳으로 데려가는 사람들. 아, 저주를 풀어 재능을 올려주겠다는 자들까지 있었죠. 거액의 돈을 요구하면서요. 이상한 약을 파는 자들도 있었고요. 자, 당신은 제게 원하는 게 뭘까요? 설마, 식상하게. 앞서 말했던 것 중에 있는 건 아니겠죠?”
허어.
뼈오 이거.
생각보다 더 상처를 많이 받아왔는걸?
이 정도면 상처가 곪다 못해 썩은 수준이었다.
“당신도 솔직히 알고 있잖아요? 제가 엘로이즈 가문의 골칫덩이라는 거. 신임 교수라고요? 저를 어떻게 갱생시켜서 한 자리라도 꿰찰 생각이신가요? 아니면, 패트릭 그 자식이 시켰어요? 괜히 희망 줘놓고 쪽이라도 주라고?”
“…….”
열변을 토하던 아린이 이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지금 내가 누구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람]이라는 표정으로.
“다시 말하지만, 저는 재능이 없어요. 또한 당신에게 줄 것도 없죠. 그러니, 제발.”
많이 참은 걸까?
냉소적인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제발 그냥 괜히 실낱같은 희망 주지 말고…… 가던 길 가주세요. 부탁할게요.”
스윽.
다시 고개를 돌려 걸음을 지속하는 그녀.
‘일단은…….’
당장 무리하는 것보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