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12화
결투 신청
“…….”
“…….”
앤드루가 나타나자, 교실에 적막이 흘렀다.
조금이나마 시끌시끌하던 잡음도 완전히 사라졌다.
왜냐.
앞으로 있을 앤드루의 행보에 집중하는 것이기도 했고.
괜한 시비에 휘말리기 싫은 것도 있을 터.
“오오, 대장!”
“왔어?”
물론, 반갑게 맞이하는 학우들도 있었다.
적어도 후작가 이상의 귀족 자제들.
그 미만은 감히 앤드루의 눈을 마주치지조차 못했다.
저벅저벅.
앤드루는 그 시선을 즐기며 눈앞의 떨고 있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엘로이즈 아린.
고귀한 공작가의 피를 타고나, 마법 하나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아이.
겁 많은 인생의 낙오자.
앤드루는 그런 아린이 참으로 고까웠다.
너같이 멍청한 애가 감히 4대 가문의 이름을 써?
웃기지도 않았다.
그래서 처음엔 몇 번 괴롭혔었다.
가문끼리 삐끗할 것도 각오하고 찔러봤었는데.
얼씨구?
그녀를 괴롭혀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오히려 엘로이즈 가문의 선배 중 하나가 부추기기까지 했다.
그래.
사람 생각하는 게 다 똑같지.
정상적인 공작가의 사람이라면, 저런 낙오자를 좋아할 수 없는 거다.
“왜.”
앤드루가 아린을 내려다봤다.
덜덜 떨고 있는 모습에서는 우아한 귀족의 자태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설마 아직 희망이라도 품고 있는 거냐? 마탑에 계속 붙어 있는 거 보면?”
스윽!
허리춤의 지팡이를 풀은 앤드루가 아린의 턱에 지팡이 끝부분을 가져다 대며 중얼거렸다.
“거기다 수업까지 참여했네? 뭐, 졸업하려고? 네가?”
“……저리 가.”
눈을 꾹 감으며 듣고 있던 소녀가 조용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뭐?”
패트릭이 흥미롭다는 듯 혀를 핥았다.
“저리 가라고? 나보고? 이년이.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촤르륵!
그의 지팡이 위로 물줄기가 뱀처럼 휘감겼다.
“옛 기억 다시 한번 끄집어내 줘? 어때, 애들아.”
허리를 쭉 편 앤드루가 사방을 둘러봤다.
“뭐부터 할까? 저 며칠째 세탁조차 안 한 더러운 옷부터 한번 헹궈줄까?”
“크크큭, 그거 재밌겠는데?”
“너무 자비로운 거 아냐, 대장?”
양아치들이 하나둘 앤드루의 주변으로 모였다.
“…….”
나머지 학우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그 모습을 힐긋 쳐다봤다.
“물론.”
앤드루가 픽 웃었다.
“엘로이즈니까 옷을 말리는 건 네가 해야겠지, 아린? 그 유명한 불꽃의 가문이잖아?”
“…….”
질겅.
입술을 오물거린 채.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그녀, 아린은 슬슬 정신이 어지러웠다.
‘역시.’
나오지 않는 게 맞았나?
밀실 밖은 과연 야생이었고.
자신은 먹이사슬 최하층의 먹잇감이었다.
그것도 달콤한 먹잇감.
앤드루가 무슨 짓을 하든, 아린에겐 저항할 힘이 없었다.
마법 실력도 안 되고, 가문의 보호도 없었으니까.
주변 학우도.
교수도.
그 누구도 자신을 도와줄 수 없었다.
마탑에서의 4대 가문은 그런 위치였다.
‘역겨워.’
역시나 세상은 썩었다.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겪으면서도, 할 수 있는 게 몸을 떨며 순응하는 것뿐이라니.
하지만.
오늘은 왜일까.
맞서 싸우고 싶었다.
힘이 없어도, 대항하고 싶었다.
‘그래도 내 곁엔.’
자신을 응원하는 후원자가 있으니까.
그 후원자가 자신의 이런 약한 모습을 싫어할 것만 같았으니까.
“그만하라고!”
아린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하?”
앤드루가 [이게 무슨 상황이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년이 미쳤나.”
발끈한 그의 손이 하늘 높이 솟구칠 찰나.
드르르륵!
교실의 문이 열린 것은 그때였다.
멈칫!
아린의 뺨을 갈기려던 앤드루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
신임 교수.
흑발의 사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하나, 수업 시간인데.”
교수가 한심하다는 듯 목소리를 깔았다.
그 목소리가 어쩐지 평소보다 더욱 낮고 스산했다.
“소란 그만 피우고, 다들 자리에 앉도록.”
“…….”
하지만, 앤드루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정확히는 무시했다.
왜냐.
교수의 말을 듣기엔, 이미 자신의 기분이 너무 더러워졌기 때문.
조금 전.
‘감히.’
더러운 낙오자 따위가 자신에게 대항했다.
그것도 수많은 학우들이 보는 앞에서.
앤드루 패트릭은 무조건 그 대가를 치르게 해주고 싶었다.
“혹시 학생, 귀에 문제가 있나?”
재촉하는 교수의 말에도.
“교수님.”
앤드루의 시선은 아직 아린을 향하고 있었다.
“아직 제가 할 일이 있어서요. 부탁인데, 잠깐만 나가 있어주세요. 20분이면 됩니다.”
“…….”
학생이 교수에게 하는 명령.
“오오오.”
“역시, 대장. 세다. 완전 돌직구잖아.”
“교수님~ 그냥 가시는 게 좋을걸요? 그 실비아 교수 아시죠? 그 교수님도 여기 앤드루한테 한번 털렸거든요.”
앤드루가 강하게 나가자.
그의 주변 양아치들도 어깨를 쫙 폈다.
목소리를 더욱 크게 냈다.
“…….”
저벅.
신임 교수, 아니, 주동훈이 싸늘한 표정으로 걸었다.
그 짧은 한 걸음이 순식간에 아린과 앤드루의 사이로 도착했다.
‘뭐야.’
앤드루가 눈살을 찌푸렸다.
‘언제 기척도 없이 여기까지……?’
살짝 당황스러웠다.
“자리로 돌아가라 했다.”
훈.
어설프다고 생각했던 신임 교수가 자신을 바라봤다.
예상하던 것보다 그 기세가 강했다.
원래 같았으면, 패트릭의 이름만 듣고도 쩔쩔맸어야 정상인데.
어쩐지 그 움직임과 표정에 자신감이 넘친다.
“당신.”
하지만, 앤드루는 지지 않았다.
“착각하지 마.”
시선을 교수에게로 돌리며, 으르렁거렸다.
“신임 교수 타이틀이 뭐 대단한 건 줄 아나 본데……. 내 입김 한 방이면 바로 마탑에서 쫓겨날 수도 있어. 알아?”
“……떼쓰는 게, 전형적인 애새끼로군.”
“뭐?”
순간, 앤드루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떼?
애새끼?
“훈 교수. 당신 아무래도 안 되겠다.”
모욕적이었다.
오히려 아린이 반항하는 것보다 더 기분 나쁠 정도로.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기분 나빠지는 말.
앤드루가 주먹을 아득 쥐었다.
“당신에게 패트릭 가문의 이름을 걸고 결투를 신청하겠어.”
* * *
“결투?”
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뭔데?
뭐, 중세 기사들이 명예를 걸고 하는 그런 건가?
“클클클, 흥미롭구나.”
그리고 아까부터.
노인이 자꾸 재밌다는 듯 앤드루와 그 주변 양아치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마치 재미있는 실험체를 발견했다는 듯이.
“이 하룻강아지들이 범 무서운 줄도 모르고 사방에서 짖어대는 꼴이 너무도 한심하고 기가 막혀 웃기느니라. 끌끌, 어째 어느 세상이든 이런 놈들이 꼭 하나씩 있단 말이냐. 우주의 신비로다!”
동감이었다.
또한.
왜인지 몰라도 이 동네는.
교권이 땅에 떨어지다 못해 지하까지 뚫고 들어간 느낌이랄까?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다 쓸어버리고 싶었다.
어디 하늘 같은 교수한테 대들어?
또.
어디 신성한 교정에서 학교 폭력 비스름한 걸 저질러?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나에겐.
덜덜.
눈을 질끈 감은 채, 떨고 있는 아린이 최우선이니까.
딱 보니 공황발작 초입부 같은데.
이런 경우, 그 원인이 되는 놈을 빨리 주변에서 치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심할 경우 심정지에 이를 수도 있다.
“결투든 뭐든, 알아서 하고. 이제 그만 꺼져라.”
결투가 어떤 방식이든.
난 꿇릴 거 없었다.
오히려 저 자식을 합법적으로 조질 수 있는 거잖아?
“그 말은…… 결투를 받아들인다는 거냐?”
“그렇다니까.”
내 답에.
“우와아아아!”
“와아아!”
학생들이 갑작스레 환호를 내질렀다.
뭐야.
얘네들은 또 왜 이래?
내가 미간을 찌푸렸다.
“빅 뉴스다, 빅 뉴스!”
“신임 교수, 평범한 사람은 아닌 줄 알았는데 이거 완전 또라이였잖아?”
“캬, 패트릭 가문의 결투를 받아들였다고? 이거 기세 하나는 인정이다!”
웅성거리는 학우들.
아무래도 그 결투란 게 생각보다 더 큰 것 같은 느낌인데.
오히려 앤드루도 놀랐는지, 눈동자를 커다랗게 뜬 채 물어왔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뇌까렸다.
“처음엔 그저 그런 교수라 그냥 놀려주려 하긴 했었다. 교수 길들이기야 뭐, 마탑의 유구한 전통 중 하나니까.”
미친.
교수 길들이기는 또 뭐야?
그게 유구한 전통이라고?
이거 웃긴 놈들일세.
“…….”
난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왜긴 왜야.
학생이 버릇없이 말을 안 들으면 그냥 처맞을 수도 있는 거지.
너희 세계는 어떨지 몰라도.
우린 그렇게 자랐거든.
스윽.
그저 교수용 마법 망토를 벗어 아린의 몸에 둘렀다.
그리고 그 주변 머저리 낙제생들을 바라봤다.
연구실에 찾아올 의지도, 나아질 의지도 없는 놈들.
“오늘은 휴강이다. 알아서 자율학습하도록.”
동시에.
후웅!
나는 아린을 들쳐메고 교실을 떴다.
* * *
쿵쿵거리던 심장이 가라앉는다.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올라오던 공포감이 사라지고, 점차 안정되기 시작한다.
“…….”
아린은 지금 이 상황이 낯설었다.
걸음마를 뗀 이후로.
누군가의 등에 업혀본 적이 있던가?
검은 신임 교수의 등은 굉장히 넓고도 아늑했다.
‘그리고.’
따듯했다.
심장이 울컥하여, 눈물이 맺힐 정도로.
아린은 방금 구원받았다.
아무도 구해주지 않을 것 같은 상황 속에서.
결국, 이 신임 교수가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것도.
앤드루와 결투까지 응해가면서.
‘아…….’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리자, 환각처럼 몽롱하던 정신이 확 깼다.
아린의 동공이 커다래졌다.
‘미쳤어……!’
「결투」가 무엇이던가.
신청 후, 일주일 후에 벌어지는 귀족들의 1:1 문화 아니던가.
장소는 합의하에 정해야 하며, 결투인은 각각 세 명의 참관인을 구해야 한다.
결투 종목은 오직 마법.
문제는.
승부의 대가가 바로 목숨이라는 것이다.
결투에 참여하는 둘 중 하나가 무조건 죽어야 끝나는 게임.
그래서 보통 결투를 제의하는 것만으로도 치킨 게임(chicken game)이라 불린다.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둘 중 누군가는 죽어야 하니까.
“저, 저기요!”
사내의 등 뒤에서 아린이 중얼거렸다.
“어?”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신임 교수가 걸음을 멈췄다.
“이제 정신 좀 차렸구나.”
어느덧 연구실에 도착했는지.
주변에는 테이블과 소파가 보였다.
“……내려주세요, 교수님!”
아린이 맺혀 있는 눈물을 로브로 확 닦으며 말했다.
바닥에 내린 아린이 곧바로 따졌다.
“도대체 왜 그러셨어요? 그냥 넘어갔어도 됐을 텐데……! 상대는 4대 가문 중 하나인 물의 패트릭이라구요!”
그러나 그는.
“암, 알지.”
별다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놀랍도록 태연했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보네? 저번에 광장 근처에서 보고 처음이지?”
교수가 소파에 앉으며 아린을 맞은편으로 안내했다.
“여기 앉아라.”
“…….”
“이번에 수업에 나온 걸 보면, 이제 면담할 마음이 좀 생긴 거겠지?”
아린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크나큰 일을 저질러 놓고, 한다는 말이 고작 면담?
“교수님. 4대 가문은 자존심이 강해요! 말이 결투지. 절대 자기 가문이 지는 꼴을 용납하지 않을 거라구요. 그 어떤 비열한 수를 저지르더라도 말이에요!”
엘로이즈의 일원으로서.
엘로이즈를 겪어봐서 알았다.
마탑의 가문들은.
상상 이상으로 더럽고 치사했다.
“하하, 그래?”
“웃을 상황이 아니라니까요?”
아린이 답답한 듯 가슴을 두들겼다.
도대체 이 사람은 뭘까?
여유로운 건지, 심각성을 모르는 건지!
“목청 큰 것 보니, 패닉은 좀 돌아온 모양이네.”
하.
아린의 머릿속이 복잡해져 왔다.
뒤엉킨 퍼즐처럼 뒤죽박죽 섞였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까.’
지금 나만 걱정되는 건가?
“자, 빨리 앉아라. 할 말이 많다.”
풀석.
아린은 헛웃음을 지으며,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그래.’
일단 면담부터 해보고 생각하자.
그것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나온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