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16화
마법 결투 (2)
아린의 심장이 가쁘게 뛰었다.
머리에는 열기가 차올랐으며, 입에서는 과열된 숨결이 새어 나왔다.
그녀는 바보가 아니다.
비록 15년밖에 살지 않았지만, 그중 대부분을 밀실에 틀어박혀 지냈지만.
‘다 알아, 나도 다 안다고.’
그 기간 내내 책을 읽었다.
서고를 노닐며 우주 속 다양한 세계를 탐험하고 경험했다.
그녀의 판단력은 어리되 절대 어리다 할 수 없었다.
“실비아 교수님.”
D 클래스 교수.
그녀는 과거 미약하게나마 앤드루에게 대항했던 자이기에.
아린의 기억 속에 악감정은 없었다.
“당신도 다 아시잖아요. 훈 교수님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저를 이곳에 가둬두었는지.”
“…….”
아린의 뇌리에 덤덤하게 웃는 검은 머리의 남자, 훈 교수의 외형이 떠올랐다.
힘들었던 나날에 내려온 한 줄기 빛 같은 존재.
그 빛이 지금 꺼지려 한다는 생각에, 심장이 짜르르 저렸다.
‘고작 나를 위해서. 담당 교수라는 본인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4대 가문에 맞선 남자.
아린은 그를 잃기 싫었다.
“말려야 해요. 제가 가지 않으면 교수님은 반드시 죽을 거예요.”
아린이 진지한 표정으로 실비아를 응시했다.
고작 15살짜리 아이의 기세에, 성인인 실비아가 움찔 떨었다.
“패트릭 가문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은 4대 가문의 사람뿐이 없어요.”
화르륵!
아린의 새하얀 손바닥에 불줄기가 다시 솟아났다.
“비록 미약하지만…… 저는 이제 마법을 사용할 수 있고, 우리 가문,엘로이즈의 가주는 대외적인 평판을 몹시 신경 쓰는 사람이에요.”
버려진 가문의 자제였지만.
정기 모임에 꼭 초대해 굳이 ‘패’까지 건네주는 건.
분명 주변의 시선을 과하게 인식하는 엘로이즈 공작의 성격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제가 나서서 막으면…… 교수님을 구할 수 있을지 몰라요.”
혹여 실패하더라도.
혹여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그래.’
솔직히 마탑을 태우고 싶었다.
혼자 서고의 지박령이 되어, 금서를 연구하고.
그 금서의 마법을 토대로, 이 더러운 마도세계(魔道世界)를 멸망시키고 싶었다.
실력이 곧 권력이 되는 세상이 아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 따위 상관없었다.
자신에게 다가온 훈 교수 같은 사람.
그러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 세상이라면.
‘굳이 멸망시킬 필요 없어.’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아린은 자신의 모든 걸 바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신은 진정 교수님이 죽기를 바라는 건가요?”
“…….”
침묵이 감돌았다.
실비아의 입이 꼬물거렸다.
당돌한 아린의 말에 딱히 반박할 수 있는 거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난.’
실비아가 인상을 찡그렸다.
‘훈 교수가 죽는 걸 원하지 않아.’
날마다 자신의 연구실로 찾아와 라면을 건네준 사람.
아니, 그걸 다 떠나서.
약자를 위해 강자에게 당당히 맞설 수 있는 사람.
비록 자신은 꺾였지만.
너무도 단단해서 부러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
‘잠깐.’
문득, 실비아는 이 상황이 묘하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왜 아린이를 막고 있지?’
어차피 훈 교수는 곧 죽는다.
곧 죽을 사람인데, 부탁 따위 안 들어줘도 되는 거잖아?
“교수님 시간이 없어요.”
실비아의 변화를 알아챈 아린이 다급하게 재촉했다.
실비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마탑 20층이었나?”
“예, 빨리 가요!”
“알겠어.”
실랑이를 벌이던 두 여성이 간단하게 합심하는 순간이었다.
* * *
- 수, 순식간입니다!
- 훈 교수의 줄기가 앤드루 패트릭의 모든 공격을 무력화하고 포박까지 합니다!
- 아, 설마! 이렇게 ‘항복’ 선언이 나오는 걸까요?
‘누구 마음대로.’
결투를 시작한 이상.
또한 ‘결투’가 서로의 목숨을 걸고 행하는 거였다는 것을 내가 안 이상.
이렇게 쉽게 넘어갈 순 없었다.
‘4대 가문이든, 4대 가문 할애비든.’
나는 내 목숨을 노린 자에게 언제나 그 대가를 치르게 해주었다.
그것이 나의 신조.
[‘봉인된 일곱 정수의 영령(4/7)’이 가동됩니다.]
[화(火)의 정수, 효과를 얻습니다.]
[불의 기운이 강해집니다.]
화륵, 화르륵!
응축된 파이어 볼에서 이번엔 줄기가 채찍처럼 뻗어 나왔다.
‘마법’이란 게, 술식대로 틀에 박혀 있다면.
‘주술’은 그 기운을 응용하여 변형할 수 있는 것.
물론 그냥은 안 된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신살(神殺)급 무기의 도움이 있어야만 그 변형이 가능했다.
- 이, 이건 또 뭔가요! 또 무슨 마법이죠?
- 훈 교수의 중앙에서 뿜어져 나온 수십 가닥의 불줄기가 앤드루 패트릭을 타격합니다!
- 이거 정말 신임 교수가 맞나요?!
대롱대롱 매달려 발버둥 치던 앤드루의 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치익, 치이익!
넘실거리는 불줄기가 그의 몸을 옅게 지지며 불태우는 순간.
“끄악, 끄아아악!”
열기 가득한 연기와 함께 앤드루가 발광했다.
“이 개새끼가! 내려놔, 날 당장 내려놓으라고! 죽고 싶어?!”
“내려놔? 그래, 내려줄게.”
기운을 움직인 내가, 그로우 홀드의 포박을 풀었다.
후웅!
그러자 중심을 잃고 떨어지는 앤드루.
투욱.
나는 그런 그의 안면에 「에너지 볼트」를 던졌다.
이것 역시 아린에게 배웠던 기초 마법 중 하나.
이건 무(無) 속성이라 딱히 변형할 수는 없다.
퍼억!
간결하게 날아간 에너지 볼트가 앤드루의 안면 정중앙에 꽂혔다.
떨어지는 가속 그대로 뒷목이 꺾인 그가.
우당탕탕!
바닥에 자빠져 나뒹굴었다.
툭.
다시 한번 지팡이를 두들기자.
이번엔 「에너지 볼트」 열 개가 허공에 떠올랐다.
“클클, 네 녀석. 설마. 몽둥이를 못 쓰니, 그걸로 대신하려는 게냐?”
지켜보던 노인이 웃었다.
‘예, 특히나 쟤는 좀 많이 맞아야 하거든요.’
슝! 슈슈슈슝!
내 컨트롤에 맞춰 날아간 「에너지 볼트」가 이번엔 자빠져 있는 앤드루의 혈도에 연달아 꽂혔다.
노인이 맨날 두들기는 가장 고통스러운 혈도들이었다.
“끄, 끄아악! 끄아아악!”
반항조차 못 하고 비명 지르며 당하는 앤드루.
- 이, 이럴 수가!
- 압도적입니다! 압도적이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 저건. 기초 마법 중에 기초 마법…… 에너지 볼트 맞나요?
- 아무래도, 이거…… 훈 교수.
- 미스매치인 것 같을 정도의 무서운 실력 차인데요……?
흥분하던 사회자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술렁술렁.
아래층에서 구경하던 관중들도 슬슬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좀 세긴 한데. 이거 걱정된다. 패트릭 가문이 가만있을 리 없잖아.”
“앤드루 패트릭도 학생치고는 대단한 실력자이긴 한데……. 마탑에 저런 교수가 있었어?”
“저 정도면 신임 교수가 아니라 거의 중견이나 장로급 아냐?”
“장로급까지는 아니고 중견 정도는 될 법한데.”
사람들이 뭐라 하든.
누가 중얼거리든.
내 손속엔 변화가 없었다.
투욱, 툭!
오히려 에너지 볼트를 늘려가며 앤드루의 구타를 지속했다.
그렇게 1분 정도가 흘렀을까.
“이놈아.”
흥미롭게 보던 노인의 눈빛이 가라앉은 것은 그때였다.
“조심해라.”
스읏!
불현듯 사뭇 음산한 기운이 멀리서 날아오는 게 느껴졌다.
노인이 말하지 않았다면, 절대 알아차릴 수 없었을 정도로 은밀한 기운이었다.
“……!”
방향은 관중석 상층부.
그것도 패트릭 가문의 귀족들이 있는 곳.
스슷!
나는 본능적으로 그림자를 밟아 피했다.
‘마법’만 사용하는 게임이었지만, 저 공격엔 어쩔 수 없었다.
‘드디어 시작된 건가요?’
“저놈들 중 하나가 수작을 부리고 있느니라.”
‘……진짜 관상은 과학이네요.’
저들이 개입할 거란 건 애초부터 예상했던바.
“만만치 않은 상황이 될 건데, 자신 있느냐?”
‘자신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죠.’
이건 전쟁이었다.
그리고.
상대가 먼저 규칙을 어긴 이상.
나 역시 마냥 규칙을 지켜줄 생각은 없었다.
* * *
“끄흐윽!”
앤드루는 당황스러웠다.
수많은 관중 앞에서 당연히 이겼어야 할 신임 교수가.
생각 이상으로 강했기 때문.
수치스러웠다.
분했다.
지방 귀족 출신 따위의 교수가.
자신을 ‘애송이’라 칭하며, 짙은 모멸의 눈빛을 한다.
원래 같았으면 워터 스피어로 심장을 뚫어버려야 했을 텐데.
쾅! 콰가강! 쾅!
끊임없이 틀어박히는 마력의 위압은 움직임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끄악, 끄아아악!”
뿐만 아니라, 아팠다.
아파도 너무 아팠다.
마치 누군가를 고문하려고 만든 마법이라 칭해도 부족할 정도였다.
“그, 그마…… 앍!”
도저히 참지 못하고 ‘항복’을 외치려 해도.
그의 입을 두들기는 에너지 볼트 때문에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애송이.”
신임 교수의 목소리엔 위압이 가득했다.
“눈빛을 보아하니, 아직도 네 잘못을 모르는 것 같구나.”
“…….”
“학생이면 학생의 본분을 다해야지. 교수에게 대들기나 하고. 아, 패트릭이면 원래 양아치 가문이라 그런가?”
“……!”
마법으로 폭행하면서 속삭이는 말들은.
앤드루의 심장을 미친 듯 요동치게 했다.
화나도 욕할 수 없고.
상대하고 싶어도, 몸이 통제되질 않는 답답한 상황.
그 순간.
- 못난 녀석.
“……!”
앤드루의 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틀어 관중석 상층부를 바라보자.
분명히 보였다.
싸늘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철혈 가주.
마고르 패트릭이.
- 결투하는 건 좋으나,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하라고 하지 않았더냐.
‘하지만……!’
앤드루는 억울했다.
지방 신임 교수가 실력이 저렇게 좋을지, 누가 알았냐고.
- 내가 어떻게든 도와줄 테니, 지지 말거라.
- 기억하거라. 우리 무패의 패트릭은 마탑 역사상 져본 적이 없다는 것을.
“……!”
그 순간.
엄청난 마력의 파동이 쓰나미 치듯 그의 몸속으로 들어왔다.
막대한 수(水) 속성 기운이 그의 활력을 돋구어주었고, 상처 입은 피부를 맑게 하기 시작했다.
또한.
퉁! 투두둥!
신임 교수가 쏘아내는 마법을 간단하게 튕겨내기 시작했다.
‘좋아.’
앤드루가 속으로 환호를 내질렀다.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자신의 가주, 마고르 공작이 마탑주 구스펠하임을 제외하고 현 마탑의 이인자라는 사실을.
가주님의 도움이 있는 이상.
이제 저 오만한 신임 교수도 끝장이었다.
‘자, 끝내주마.’
황급히 중심을 잡고 일어선 앤드루가 지팡이를 들었다.
그리고 막대하고 차오른 기운을 활용해.
하늘에 워터 스피어를 띄웠다.
촤륵, 촤르르륵!
영롱한 물소리와 함께 떠오르는 워터 스피어의 개수는 이번엔 무려 14개.
이전보다 두 배나 많은 수량이었다.
“교수 새끼야. 어디 한번 또 지껄여…… 얽?”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공격을 가하려던 앤드루가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스슷!
거의 순간이동과 같은 속도로 날아온 교수의 모습은 둘째 치고.
그가 들고 있는 무기가 지팡이가 아닌 웬 시뻘건 몽둥이였기 때문.
“어, 어? 뭐, 뭐야아앍!”
교수는 앤드루가 당황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후웅!
눈 깜짝할 사이에 몽둥이가 휘둘러졌고.
퍼어어어어억!
엄청난 타구음과 함께 앤드루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그렇게까지 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초.
“커, 커헉?!”
몸이 붕 떠오른 앤드루는 숨이 턱 막힘을 느꼈다.
내부 장기가 다 망가져 눈앞이 새하얘지고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는 느낌.
눈에선 물이 절로 흐르고, 입에서 침이 줄줄 나왔다.
그런 그의 귀로 교수의 근엄한 목소리가 틀어박혔다.
“교수 새끼? 그래, 좋구나. 오늘 정신 차릴 때까지 한번 처맞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