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18화
여기부터는 내 싸움이다
마탑 20층, 경기장.
실비아를 설득해 간신히 도착한 아린은 심장이 덜컹! 떨어지는 줄 알았다.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과.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든 채로 쓰러져 빌빌거리는 앤드루의 모습.
그리고.
살벌한 기세를 뿜어내는 패트릭의 수많은 마법사와.
반대편에 대치하고 있는 교수님의 모습까지…….
“아아.”
아린의 작은 입술이 벌어졌다.
시끄러운 관중들의 목소리보다 본인의 심장 뛰는 소리가 더 가깝게 들려왔다.
과연.
훈 교수님의 실력이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다.
거의 S 클래스에 달한다는 앤드루를 저렇게 개박살을 내놓은 데다가.
저 수많은 마법사를 홀로 대척하고 있다니.
그뿐이랴?
그 사이에는 장로급으로 보이는 마법사도 있었다.
‘그건 안 돼.’
아린이 고개를 털었다.
아무리 훈이 대단한 마법사여도.
패트릭 가문 전체가 나서면 홀로 당해낼 수 없다.
가문 하나를 홀로 맞상대하는 것은 마탑주, 구스펠하임이라 해도 무리일 터.
‘어떻게 해야 할까?’
비겁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 두 가지의 선택지가 떠올랐다.
1. 어떻게든 막아보기.
2. 나중에 복수하기.
첫째, [어떻게든 막아보기]는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방법이었다.
지금 당장 잃기 싫은 사람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아보려 애쓰는 것.
하지만 아린은 첫 번째 방법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다.
죽음.
훈 교수도.
자신도.
패트릭 가문의 마법에 잔인하게 찢겨 나갈 거다.
엘로이즈 가주가 한낱 자신을 위해 자존심을 굽혀가며 변호하진 않을 테니까.
둘째, [나중에 복수하기].
사실, 이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다시 서고에 박혀서 금서를 익히는 것.
금서를 완벽하게 익혔을 때, 마탑과 함께 패트릭 가문의 족속들을 다 불태워 버리는 것.
자신 때문에 죽어간 교수님을 위해 목숨을 담보로 저들을 불사르는 것.
하지만.
푸슈슛!
장로급 마법사의 손짓 한 번에 교수님이 피를 흘렸을 때.
‘안 돼.’
그녀는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대체 복수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금 당장 저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본다면.
복수해도 평생 후회로 남을 텐데.
죽어서 영혼이 되어도 ‘한’으로 남을 텐데.
“잠깐만요!”
아린은 그래서 나섰다.
“그만두세요!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감히 F 클래스의 학생이었지만.
뒤에서 실비아 교수가 뜯어말리려 했지만.
지금 그녀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타다닷!
실비아의 손길을 뿌리친 아린은 재빨리 뛰어나가 양팔을 벌리고 교수님의 앞에 당당하게 섰다.
“먼저 결투를 벌여놓고 졌다고 이렇게 단체로 핍박하는 말도 안 되는 문화가 어딨어요?”
평소에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나오지 않았던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게 자랑스러운 4대 가문이고, 물의 패트릭인가요? 쪽팔린 줄 아세요!”
“너는…… 엘로이즈 아린?”
눈살을 찌푸린 장로급 마법사가 앞으로 나섰다.
“엘로이즈 가문의 자제가 우리 패트릭의 행사를 막는 것인가?”
아무리 장로급 마법사라 해도.
아린이 엘로이즈에서 거의 버린 자식이라는 걸 알아도.
4대 가문의 자제를 멋대로 건들 순 없었다.
자칫하단 자존심 문제로 갈등이 생길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스슷!
그런 아린의 앞으로 신형 하나가 생겨났다.
“아린! 뭐 하는 짓이냐.”
다름 아닌 엘로이즈의 가주였다.
“이리 오거라. 네가 끼어들 곳이 아니다.”
쿵쿵.
심장이 뛰었다.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것 같은 표정.
가주의 살기(殺氣)가 느껴졌기 때문.
‘하지만, 가주는 날 못 죽여. 적어도 여기서는.’
수만의 관중이 지켜보고 있다.
유난히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그는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자신에게 모질게 대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는 말했다.
“싫어요.”
“뭐라?”
“싫다고 했어요.”
아린은 오늘.
처음으로 가주에게 반항했다.
“부당해요. 교수님은 앤드루가 제시한 결투에 정당하게 응했을 뿐이고, 이겼어요. 그런데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거죠? 합리적이지 않잖아요.”
또한 평소의 아린답지 않게.
떨림 없이 올곧은 발음으로 정확하게 말했다.
“그리고 가주님도 아시잖아요. 앤드루가 평소 절 심하게 괴롭혀왔다는 걸요. 교수님이 그걸 막기 위해 패트릭의 결투에 응했다는 걸요. 그런데 왜. 왜 엘로이즈는 패트릭 편에 서는 거죠? 우리 가문이 이토록 자존심도 없는 가문이었나요?”
“너 지금…….”
정적 속에서.
모든 관중이 들으라는 듯 읊조렸다.
“아니면, 제가 마법조차 못 쓰는 낙제생이라서 그런 거예요? 버린 자식이라?”
스윽.
아린이 천천히 손바닥을 내밀어 벌렸다.
‘……교수님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해.’
그 첫걸음이 바로.
마법을 보여주는 것.
화르륵!
그녀의 손끝에 불줄기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음.”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가주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눈을 치켜떴다.
아린은 그런 가주를 또렷하게 응시했다.
“오직 교수님만이 저를 응원해 주었어요. 마탑의 교수가 마탑의 학생을 응원하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거예요? 목숨을 내놓을 만큼?”
“…….”
침묵하는 가주.
그런 가주의 뒤에서 기다리는 패트릭 가문의 마법사들.
이윽고.
가주의 입이 열렸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것이냐?”
“……?”
“네가 그 불 쪼가리를 피울 수 있는 게 뭐 대단한 능력이라도 되는 줄 아는 게냐? 결투는 4대 가문의 위엄을 넘보려 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이자 행사다. 공작가에 거스르는 것은 곧 죽음과도 같지.”
그게 마탑의 권력이고.
마탑의 공작가였다.
마탑주가 세 번이나 바뀔 동안.
가문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이것은 그걸 보여주기 위한 쇼일 뿐. 여기 있는 관중들 중 그걸 모르는 이는 없다. 당장 비키지 않으면…… 대외 시선을 무릅쓰고 널 파문토록 하겠다.”
“……역겨워.”
“뭐라?”
“당신 역겹다고요!”
아린이 붉어진 얼굴로 가주를 노려봤다.
“차라리 그냥 버리지 그랬어요? 왜 그냥 남들처럼 탑에 보내지 말고 바깥 농촌에 가져다 놓지 그랬어! 왜 니들 멋대로 세상에 태어나게 해놓고, 니들 멋대로 기대해 놓고, 니들 멋대로 못살게 구는 건데요?!”
표독스러운 아린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감정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그런 그녀의 뒤에서.
“괜찮다, 아린아.”
교수님의 따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패트릭에 엘로이즈라. 쌍으로 엿 같은 놈들이었는데 차라리 잘됐어.”
“예? 교, 교수님?”
아린이 뒤를 돌아보았다.
말투와는 다른 차가운 눈빛의 교수가 가주를 노려보고 있었다.
“네가 저놈들에게 빌 필요 없다. 넌 그러지 않아도 될 존재야.”
“그게 무슨……. 아니, 그전에. 괜찮으세요? 피…… 나시는데.”
“뒤로 가거라.”
쿠웅!
그가 아까 내려치다 멈추었던 지팡이를 마저 내려찍으며 말했다.
“여기부터는 내 싸움이다.”
후우웅!
교수님의 주변으로 바람이 일었다.
서늘한 바람이었다.
* * *
고오오오…….
내 주변으로 기력의 파동이 몰아쳤다.
동시에.
[스킬, ‘스켈레톤 로드 소환’(S급)을 사용합니다.]
[기력 10을 사용합니다.]
…….
[스킬, ‘스켈레톤 로드 소환’(S급)을 사용합니다.]
[기력 10을 사용합니다.]
…….
스슷!
후드드득!
뼈오와 드미르, 엘드린을 제외한 나의 수하들.
뼈일이, 태양이, 카덴, 다나, 뼈팔이.
총 다섯의 스켈레톤 로드가 차례로 등장했다.
뼈다귀임에도.
하나같이 화난 표정을 짓는 스켈레톤들.
그렇다.
그들 역시 주인의 감정에 동요하고 있었다.
“괴로워하지 말거라, 아린아.”
자신의 동료이자 전우, 뼈오의 슬픔과 한에 공감하고 있었다.
“널 괴롭혔던 세상들. 우리가 대신 싸워줄 테니까.”
패트릭.
그리고 엘로이즈.
감히 내 수하, 아린이를 못살게 굴었던 자들.
임무를 떠나서.
나는 이들을 용서하기 싫었다.
신살(神殺)급 무기.
즉, 정수들에게 영혼이라도 팔아 이들 모두를 말살해 버리고 싶었다.
아무리 장로급들이 강하다 해도.
막강한 정수의 힘 앞에서는 한낱 먼지일 뿐일 테니.
“…….”
끄덕.
내가 고개를 까닥이는 순간.
쿠웅!
스켈레톤 로드들이 일제히 바닥에 땅을 굴렀다.
그러자.
쿠과가가가가!
수천의 스켈레톤이 무대에서 일어섰다.
지금부터 행해질 싸움은 결투가 아니다.
전쟁이다.
패배할 전쟁이지만, 절대 쉽게 지지는 않을 전쟁.
- 아아,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게 뭐죠? 웬 뼈다귀? 이건…… 처음 보는…… 예, 처음 보는 종류의 마법입니다! 아니, 이런 걸 마법이라 불러도 되는 걸까요!
나는 먼저.
눈앞에 가장 재수 없는 놈, 엘로이즈의 가주를 향해.
후웅!
만술(萬術).
비기(祕技).
독섬(毒閃).
독섬을 선물했다.
동시에 전쟁이 시작되었다.
* * *
아린은 정신이 없었다.
눈앞을 뒤덮은 뼈다귀들은 다 무엇이며.
‘왜.’
뼈다귀들 하나하나가 정감이 가는 걸까?
그들은 분명 감정이 있었다.
그녀의 심장이 말해줬다.
저들이 화를 내고 있다고.
자신의 슬픔에 동조하고 공감하고 있다고.
‘어째서?’
끄으.
머리가 아팠다.
교수님.
교수님은 누굴까?
지옥 같은 세상에 마치 ‘빛’처럼 나타나 자신을 구원해 준 존재.
이제는 목숨 걸고 싸워주기까지 하는 이 존재는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콰아아아앙!
무대가 뒤집혔다.
“꺄아아악!”
“도, 도망가!”
“사악한 힘이다! 마물이야!”
관중들은 도망가고 있었으며, 4대 가문의 귀족들은 지팡이를 들고 뛰어오고 있었다.
물, 불, 생명, 땅.
여러 속성의 마법들이 하늘을 가르고 땅을 부쉈다.
단단해 보이던 뼈다귀들이 폭발했으며.
창을 든 교수님이 푸확! 입에서 피를 쏟아냈다.
“교수님!”
아린이 황급하게 다가섰다.
그런 교수의 가슴 위로.
우우웅!
한 뼈다귀가 생명의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힐링.
“마스터, 괜찮으십니까?”
“크으윽!”
교수님이 아무리 신비롭고 강하다 할지언정.
마탑의 4대 가문에게는 안 되었다.
마고르가 지팡이를 휘두를 때면, 세상이 갈라지는 듯했고.
역겹지만 엘로이즈의 가주 또한 인간을 초월한 존재였다.
푸확! 파각! 파드득!
“안 돼…….”
뼈다귀들 대다수가 사방에 틀어박혀 있었고.
교수님은 온몸에 피 칠갑했다.
“그만해요! 제발!”
그런데도.
눈은 죽지 않았다.
그림자를 밟고, 창을 휘두르며 끝까지 싸웠다.
쿵쿵쿵쿵!
아린의 심장이 뛰었다.
이 상황이 현실 같지 않았다.
마치 예전 일처럼, 향수마저 느껴졌다.
“그만 뒈지거라. 사악한 힘을 가진 이여.”
마고르 패트릭의 웅장한 중얼거림과 함께.
쐐애애액!
물로 이루어진 창이 교수님의 가슴을 향해 쏘아졌다.
반면, 교수님에겐 그 간단한 마법조차 막을 힘이 없어 보였다.
아린은 이 상황이 싫었다.
“안 돼!”
그래.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
아린은 분명 이런 결말을 원하지 않았다.
‘결말?’
문득, 그녀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결말을 원했다 함은.’
이미 겪었던 사실을 대할 때나 할 수 있는 말인데?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지?
‘아아아아.’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뭐지?
이 상황은 뭐지?
나는 누구지?
도대체 이게 무슨……?
푸욱!
창이 교수님의 폐를 꿰뚫은 것은 그때였다.
교수님의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크르륵!
안 돼.
이건 아니야.
‘뭐가 되었든……!’
제발.
누가 도와줘요.
내가 죽어도 좋으니까.
내 영혼을 팔아도 좋으니까.
내 ‘한’을 풀지 않아도 좋으니까.
또르륵.
그녀의 눈에서 방울이 떨어졌다.
‘제발.’
저 사람을 살려주세요.
파스슥!
그 순간이었다.
[히든 조건 클리어!]
[4대 마탑주, 엘로이즈 아린의 기억이 되돌아옵니다.]
[한때 마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최악의 4대 마탑주가 ‘과거’에 피어납니다.]
쿠구궁!
세상이 뒤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