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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228화 (228/368)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28화

헝가리 (3)

접경국 회의의 요지는 단순했다.

힘을 합쳐 보상을 산정하고, 검은 괴수에 현상금을 걸자!

각국이 반대할 수 있겠지만, 어차피 갑(甲)은 하이 랭커.

하이 랭커가 직접 승낙하면 국가로서는 반대할 명분이 거의 없으니.

혹할 만한 보상을 내놓자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딱히 가진 게…….”

“우리 국가도 마찬가집니다.”

“달러라면 어느 정도 내놓을 순 있지만…… 알다시피 우리도 국가부채가 한가득이라……. 뭐, 필요하면 빚을 더 내서라도 내야겠지만요.”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각국의 대통령들은 상황을 회피하기 바빴다.

확실한 기준이 없는 마당에 누가 손해를 보고 싶겠는가.

“제가 듣기로는 말입니다.”

세르비아의 원수 부치치 대통령이 안경을 매만졌다.

“루마니아 국고에 SS급 아이템이 있다는 얘기가…….”

“너, 이 새끼! 처음부터 이러려고!”

콰앙!

루마니아 대통령, 클라우스가 탁자를 치며 벌떡 일어섰다.

그로서는 황당했다.

도대체 저자가 국고에 존재하는 아이템을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게다가 ‘SS급’ 자체는 아직 대중들에게 극비와 다름없다.

“그건 안 되오! 어찌 우리 국민의 허락도 없이 국보를 채가려고!”

SS급 아이템, 「라파엘의 서」.

약 3년 전 루마니아 헌터 협회가 운 좋게 공수한 아이템으로.

사용 시, 약 1분 동안 무적 상태가 되는 일회용 아이템이었다.

“라파엘의 서? 어허, 그런 게 있었으면 말을 하셨어야지.”

“확실히 랭커들에게는 매력을 어필할 수 있겠는데요?”

“오오, 클라우스 대통령께선 방법이 없다고 하시더니, 그런 물품을 품에 감추고 계셨다?”

접경국의 원수들이 눈을 반짝였다.

마치 칼만 안 들었지, 생 강도나 다름없는 표정이었다.

마치 누구 하나 일점 사격할 표적이 생기길 기다린 눈치?

“자, 그럼 루마니아에선 그 아이템을 준비하시기로 하고. 나머지 국가는 어떻게든 1,000만 불씩만 마련해 봅시다. SS급 아이템이면 보통 1,000만 불 정도의 가치는 하잖아요?”

“그럼 총 6,000만 불에 라파엘의 서 하나?”

“큼큼. 예, 그렇게 되겠네요.”

“오오, 깔끔한데요?”

“저는 찬성입니다.”

루마니아를 제외한 여섯 국이 지지고 볶고 하는 모습에 클라우스는 미칠 지경이었다.

‘저 빌어먹을 놈들이.’

SS급 아이템이 고작 1,000만 불이라고?

아직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등급인데?

1분의 소중함을 아는 하이 랭커 급들은 이 정도 가치의 아이템이면 그 따따블을 주고서라도 살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큰 소리를 낼 수도 없다.

여섯 개국이 다 찬성하는 마당에 혼자 다른 소리를 내면.

앞으로 외교에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

“…….”

클라우스가 손을 부들부들 떨며 앉아 있자.

“루마니아 측에서는 이보다 더 나은 방안이 있으면 말해보세요. 한번 들어보리다.”

안경 쓴 부치치가 얄밉게 대꾸했다.

으드득!

클라우스가 이를 갈았다.

다른 방법이 있었으면 애초에 회의했겠는가?

이 더러운 외교.

‘다 두고 보자고.’

언젠가는.

다 박살 내버리는 순간이 올 거다.

* * *

압구정동.

「드미르 공방」.

2층 접대실.

“으음.”

다리를 꼬고 앉은 김진아가 팔짱을 꼈다.

“그러니까 헝가리 접경국의 사절단이라는 거죠?”

“예, 그렇습니다. 여기 받으십시오.”

깔끔한 정장 사내가 상자 박스를 내밀었다.

박스 안에는 고급스러운 모양의 차 키 두 개가 가지런히 나열되어 있었다.

“……이게 뭐죠?”

“한정판 하이퍼 카 ‘부가티 랭커’입니다. 전 세계 100대! 오직 하이 랭커분들을 위해 생산했으며, 언제나 세계 평화를 위해 힘써주시는 하이 랭커분들을 위한 감사의 표시입니다. 차는 일주일 내 출고 가능할 겁니다.”

“아, 부가티면…… 최근 크로아티아 쪽에 인수된 기업 맞죠?”

“그렇습니다, 하하.”

남자가 사람 좋은 모습으로 시원하게 웃었다.

선물을 받아 든 김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주신다니 감사히 받겠습니다만.”

어차피 본인 게 아니다.

차 키가 두 개인 것은 ‘뇌명’과 ‘스켈레톤 엠페러’의 것일 터.

“무슨 용건으로 오신 거죠?”

상자를 탁자 구석에 밀어 넣은 김진아가 다시 턱을 올렸다.

사절단 사내가 쓴웃음을 지었다.

“예상하셨겠지만, 별천지 내 하이 랭커분들께 도움을 요청하고자…….”

“아뇨.”

김진아가 단호하게 사절단의 말을 잘랐다.

차갑고 엄중한 표정으로.

“우리 길드 마스터님은 절대 내어줄 수 없습니다. 직접 들러주신 것은 고마우나, 이는 이미 내부적으로 확정된 사안입니다.”

확고한 거절.

사내가 머뭇거렸다.

본래라면 여기서 물러나는 게 도리이나.

그는 일곱 개국에서 엄선한 사절단의 대표.

“보상이라도 들어봐 주십시오. 저희가 이번에 공수한 ‘라파엘의 서’는 무려 SS급으로…….”

각종 혜택.

보상.

돈.

명예.

아이템 등등.

사절단의 입에서 많은 것들이 나열되었지만.

“…….”

김진아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사내가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안 되시겠습니까?”

“으음, 솔직히 말씀드릴까요?”

김진아가 정말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예?”

“SS급이라 했죠? 뭐, 라파엘의 서? 진짜 그런 거로 하이 랭커를 꼬드길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물론 SS급은 희귀한 것이 맞다.

엄청난 가치를 지닌 것도 맞다.

‘하지만 하이 랭커라면.’

SS급 정도는 한 번쯤은 쥐어봤을뿐더러.

대외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이상의 아이템을 사용하는 자들도 있다고 하셨다.

물론, 길드 마스터님 말씀이시다.

“게다가 6,000만 불이요? 대충 800억 원 정도라는 말인데……. 후, 어제 저희 하루 매출의 반도 안 되는 수준이네요.”

“…….”

“우리야 신생이라 그렇지, 아마 하이 랭커 끼고 있는 길드들은 다 최소 어느 정도 벌이가 될 텐데……. 그냥 진심으로 걱정되어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김진아가 하는 말은 단순하다.

너희가 정말 간절한 게 맞냐.

정말 접경국 대표 일곱이 모여 도출한 결과가 이게 맞냐.

“…….”

사절단은 할 말이 없었다.

왜냐.

본인도 그렇게 느끼고 있거든.

‘후우, 이게 무슨 쪽이람.’

식은땀을 한번 닦아낸 사내가 이번엔 방향을 비틀었다.

눈앞의 여성은 절대 보상에 넘어갈 자가 아니다.

“후, 그게 보상 문제만 보면 그렇지만…… 힘없는 약자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죄 없는 인간들이 도륙당하고 있어요.”

“그건 우리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아니, 전 세계가 인지하고 있지요.”

“하지만 왜…….”

“그 말은 힘없는 약자가 죽어가니, 힘 있는 우리가 희생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희생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도와달라는 말입니다.”

“사실 이쯤에서 궁금한 게 있는데요.”

지금까지 꼰 다리를 펴지 않은 김진아가 빙긋 웃었다.

“일곱 접경국은 정말 궤멸한 헝가리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나요?”

랭커 몇을 고용해 파견한 건 그녀도 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일곱 국가는 힘을 합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견제만 하며,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그러한 분위기가 여기까지 느껴지는데.

정말 그들은 간절한 게 맞는가?

평소 통찰력 깊던 김진아가 생각하기엔 아니올시다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이미 내부적으로 결정 지었어요.”

“……그렇습니까?”

직접 부딪히고 싸워서 안 되었을 때 도움을 요청하는 거면 몰라도.

마찬가지로 한 발짝 발 빼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길드 마스터님을 요구하는 거라면…….

‘절대, 네버.’

안 된다.

별천지의 가치를 제 발로 떨어뜨릴 수 없는 법.

“예, 죄송하지만…… 돌아가 주세요. 필요하시면 숙박이나 음식 정도는 대접하겠습니다.”

그녀가 단호히 말했다.

* * *

무릉도원, 훈련장.

“그런데요, 교수님.”

내 옆에서 필사한 서적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던 아린이 문득 물었다.

“응?”

“저번에 봤던 그 영상 있잖아요.”

“영상?”

“예, 영상 그거. 다시 한번 볼 수 있을까요?”

못 보여줄 거야 있냐?

우리 아린이가 보여달라면 다 보여줘야지.

“잠시만 기다려 봐.”

나는 근처 프로젝트 빔을 건드렸다.

그러자 다시 한번 도시를 궤멸시키고 있는 그 검은 괴수들이 화면에 등장한다.

내 앞에 쪼그려 앉은 아린이 그 화면을 집중해서 쳐다봤다.

“근데 갑자기 이건 왜?”

저번에 한 번 보고 끝.

그리고 흥미 잃은 거 아니었나?

“최근에 제가 또 책을 하나 읽었거든요.”

아린이 입을 오물거렸다.

“그 책에서 SSS급 존재에 대해 얘기를 하더라고요? 교수님은 ‘고대 마법’이라는 존재를 만나보셨다고 했었죠?”

오, 책에서 그런 얘기를?

흥미가 좀 돋는데?

“그치. 뭐, 정확히 말하자면 만난 건 아니고 그냥 소통했다 정도?”

고대 마법의 실체를 확인한 적은 없었다.

그저 상태창으로 그러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느꼈을 뿐.

“그리고 투신의 파편도 찾고 계시고요. 맞죠?”

“그렇지.”

‘투신의 파편’(SS급).

마탑이 ‘고대 마법의 파편’(SS급)이었던 것처럼.

저걸 찾아야, 다시 매개체 던전을 개방시킬 수 있었다.

물론, 그 사실을 내 수하들에게 전부 공유한 상태였다.

“책에서 말하더라고요. 우주에서는 그런 SSS급 존재들을 ‘성좌’라 표현한대요.”

“……성좌?”

눈을 번뜩인 내가 귀를 집중했다.

이는 처음 듣는 정보다.

지구에서도, 델라일라에게서도 들을 수 없었던 새삥 중 새삥!

“예, 성좌요. 책은 성좌를 [각 세계마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우주적 존재]라 했어요.”

허어.

역시 그 넓은 우주에.

세계만 있을 리 없었다.

과거 ‘섀도우 셰퍼드’도 ‘빛’이라는 존재를 섬겼었지.

그렇다면, 그 ‘빛’도 성좌이려나?

“근데요. 성좌는 간혹가다 자신의 파편을 각종 세계에 뿌린대요. 마도 세계의 마탑이나, 지구의 마탑처럼요.”

“아아.”

그런 거였나?

그렇다면 델라일라는 세상 여행을 통해 다른 세계의 마탑도 확인했었겠네?

“교수님, 저기 보세요.”

아린이 여윈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킨 것은 그때였다.

“저기 검은 괴수들 뒤에 회색 존재 보이세요?”

“……회색 존재?”

그런 게 있었나?

내가 눈을 좁혔다.

영상을 그래도 두어 번 돌려본 것 같은데.

분명 발견하지 못했었다.

“예, 잘 안 보일 거예요. 살짝 투명하거든요.”

“오오? 잠깐만!”

보인다.

분명 보였다.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주변 환경과 보호색을 띠고 있는 어렴풋한 존재가.

약 5m 크기에다가.

검은 괴수랑 생김새는 비슷한데…….

와, 저런 게 있었다고?

“보이시죠?”

“응, 완전 잘 보이는데?”

“그래도 제가 파편을 다스렸던 마탑주로서, 느껴지는 게 있거든요? 저 존재 분명 성좌의 파편이에요.”

“……!”

내가 눈을 부릅떴다.

파편이라면…….

“만약 교수님께서 투신의 파편을 찾으신다고 하신다면…… 저것부터 확인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물론, 저게 투신의 파편일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요.”

“그으래에?”

이건 살짝 구미가.

아니, 구미가 많이 당긴다.

아린이는 노인이 인정한 천재.

틀린 말을 할 리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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