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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235화 (235/368)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35화

미친놈들의 세계

부다페스트 일대를 방사능 낙진(Fallout)이 뒤덮었다.

일명, ‘죽음의 재’.

노출되는 순간 탈모, 구역질, 구토, 설사, 암 등등.

온갖 부정적인 증상이 나타나며.

치사량 이상일 경우, 기형이 되거나 사망까지 이를 수 있는 무서운 놈이었다.

그 낙진 위에서.

방사능 옷을 입은 마법사가 중얼거렸다.

“여기서 여기까지. 대지 마법으로 기억을 읽어봐.”

“옙!”

그 마법사 뒤로는 수십 명의 인물이 존재했다.

“번역된 책에 과거 추적 마법은 없나?”

“지금 찾아보고 있대요!”

“하나라도 걸리는 거 있으면 다 가져오라 해. 거의 5년 만에 마탑주님이 분노하여 내리신 명이다. 다들 집중하자고.”

그들은 마탑의 마법사들.

미군으로부터 받은 핵탄두 발사 궤도를 따라 하나하나 과거를 추적하고 있었고.

또한 부다페스트 일대 전역을 뒤져, 과거를 복구해 나갔다.

굳이 왜 부다페스트를 뒤지는가.

마탑 교수들은 생각했다.

‘핵을 쏘아서 이득을 볼 자가 누구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뜬금없이 날아온 핵탄두.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아예 명분이 없잖아.’

괴수들을 잡기 위해서라기엔 이미 스켈레톤 엠페러가 나선 상황이었고.

헝가리에게 원수를 졌다기엔, 이미 부다페스트는 궤멸한 상태였다.

‘그럼 둘 중 하나겠지.’

1. 스켈레톤 엠페러에게 원수를 진 자가 있다거나.

2. 아니면, 부다페스트에 무언가 숨기고 싶은 게 있다거나.

마탑 교수진들은 두 번째에 가능성을 더 두었다.

첫 번째라기엔, 굳이 핵폭탄 말고 방법은 많았으니까.

“다들 움직여! 이 기회에 대지 마법 훈련한다고 생각하자고!”

“예, 교수님!”

우웅! 우우웅!

부다페스트 곳곳에서 하얀 기운이 번쩍였다.

* * *

헝가리 접경국 회의실.

험악했던 말다툼이 끝난 잠깐의 소강상태.

각국 대통령 옆에는 그들을 호위하는 헌터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

입술을 오물거리며 각을 보던 클라우스가 일어섰다.

“우리 루마니아는 접경국 회의에서 빠지겠소. 아무래도 안 되겠어.”

“어딜 가시는 거요? 세계가 다 우리를 의심하는데, 혼자 도망치겠다는 거요?”

누군가가 물었지만.

“여기서 버티고 있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니지 않소? 게다가 여기 있는 사람들 어차피, 다 날 의심하고 있는 거 아니오?”

“큼, 크흠.”

“그런 건 아니네만…….”

“어쨌든. 난 가겠소.”

혼자 자리에서 일어선 클라우스가 문밖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어딜 가요?”

스읏!

그의 목에 묵빛 단검 하나가 드리워졌다.

“흐읍!”

클라우스가 눈을 부릅떴다.

“어업!”

옆에 호위하던 경호 헌터도 당황했고.

나머지 여섯 국의 대통령들도 벙찐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 헌터가 있었는데.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니?

“죄송하지만, 지금부터 여기 계신 모든 분은 어디로도 나가실 수 없습니다.”

스스슷!

미약한 바람과 함께 등장한 사람은 묶은 포니테일의 여성.

그녀의 허리춤에는 눈부신 황금 명패가 매달려 있었다.

S급을 상징하는 황금색!

그렇다.

그녀는 바로 암제(暗帝) 기소율.

세계 랭킹 146위, 대한민국 최고의 암살자였다.

“아, 암제?”

“지, 지금 뭐 하는 거요?!”

“아무리 랭커라 한들! 이렇게 무례하게 굴어도 된다는 말이오?”

“아무리 강국이라 해도 대한민국이 우리에게 이럴 순 없습니다. 아직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암제를 알아본 각국의 총수들이 벌떡 일어나 따지고 들었다.

차릉! 스릉!

호위 헌터들도 각자 무기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콰아앙!

회의실 대문이 폭발한 것은 그때였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먼지 속에서.

스으으…….

주먹을 뻗은 자세 그대로 나타난 그림자의 정체는.

바로 세계 랭킹 600위, 쇠주먹.

한때 하이 랭커에 잠깐이나마 발을 걸쳤던 남자.

“저, 저자는!”

“미스터 봉?!”

일부 헌터들이 그를 알아봤다.

그 역시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꽤 오랜 시간 랭커를 유지했었기에.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옆으로 눈빛에 살기를 드리운 아수라(Asura) 임수진과 드루이드(The Druid) 권소예가 나타났으며.

파즉, 파즈즉!

그 뒤에서 전기를 튀기며 천천히 걸어 나오는 인영이 보였다.

“그래, 무례하게 굴었다, 새끼들아. 그래서 어쩔 건데?”

하이 랭커.

세계 랭킹 78위.

뇌명(雷鳴) 플로아의 모습!

그리고.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으니 이러는 걸세. 그대들이 이해해 주길 바라네.”

그 뒤를 따르는 똑같은 국적의 남자.

절대무쌍(絶對無雙) 막시도 보였다.

신생 집단, 별천지의 랭커들.

“…….”

“…….”

일곱 개의 국가가 고작 대한민국 변방 하나의 집단에 꼼짝을 못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전부다 랭커이니까.

애초에 랭커가 없어 약소국이었던 이들로선 저기 있는 멤버 하나만 상대하기에도 벅찬 실정이었다.

적막에 찬 회의실 안.

무기를 꺼낸 경호 헌터들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고.

그들에 비해 여유로운 별천지의 랭커들도 딱히 말을 하지 않고 있을 때.

저 먼 곳에서.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

다짐한 듯 깔끔한 정장을 입은 여성은 바로 김진아.

“들으셨겠지만, 다시 한번 말할게요.”

어느덧 회의실 중앙으로 다가온 그녀가 표정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별천지의 인도자가 상황을 파악 중입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별천지가 지정한 용의자시며,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가 통제할 겁니다.”

살벌한 목소리에는 카리스마가 가득했다.

고작 하나의 단체가.

심증만으로 일곱 개국 전부를 구속하는 순간이었지만.

그 누구도 반발하지 못했다.

왜냐.

여기 있는 모두가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세가 정말 국가라도 멸망시킬 기세라는 걸.

* * *

후웅! 후우웅!

달려든 사내가 주먹을 두 번 휘둘렀다.

“허어?”

단순히 내지르는 주먹에 담긴 투기(鬪氣)가 내 뺨을 스쳤다.

녀석이 나를 왜 공격하는지 모른다.

왜 싸우고 싶어 하는지 모른다.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없다.

그런 건.

저놈을 때려눕히고 나서 해도 된다.

스읏!

나는 무릎을 굽혀, 녀석의 주먹을 흘렸다.

화르륵!

동시에 허리를 돌려 피한 후, 신살(神殺)창을 꺼내 늘어뜨렸다.

흠칫!

녀석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비겁한 놈이로군. 무기를 쓰다니.”

“그게 뭐가 비겁하다는 거지?”

“한낱 도구의 힘을 빌리는 것 자체가 인자약임을 증명하는 꼴 아니겠느냐!”

인자약?

인간 자체가 약하다고?

“개뿔!”

내가 픽 웃었다.

“그딴 걸 따지는 거 자체가 약한 거다.”

암.

진정한 강자라면.

누가 무슨 무기를 사용하든 다 박살 내야 하는 법이지.

후우웅!

녀석을 무시한 내가 창을 휘두르려는 순간.

[‘투신’(SSS급)이 개입합니다.]

[‘투신’(SSS급)의 세계에서는 무기를 사용이 제한됩니다.]

[무기가 사라집니다.]

화륵!

신살(神殺)창, 즉 정수의 영령이 꺼졌다.

“뭐?”

투신의 개입?

하여튼, 갑자기 창이 사라진 지금 나는 어정쩡한 자세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안면으로 녀석의 주먹이 쏟아지려 할 찰나였다.

“이놈아, 보법을 밟아라!”

지켜보던 노인이 일갈했다.

동시에 본능적으로 그림자를 밟아 녀석의 뒤를 점유했다.

“그다음 주먹을 내밀어! 묘리는 똑같다. 창이나, 칼이나, 몽둥이나. 네가 가장 편한 자세로 상대에게 타격을 가하는 거야!”

예.

나는 보이는 녀석의 뒤통수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퍼어억!

손에 타격감을 느끼며 다시 한번 녀석을 쌔렸다.

퍼어어억!

중심을 잃은 녀석이 주저앉았다.

뭐야, 주먹질도 할 만한데?

하긴.

항상 노인이 날 팰 때 주먹질로 팼구나?

씩.

웃은 내가 엎어진 녀석의 후면을 마구잡이로 두들겨 팼다.

아예 허리를 다리로 잡아두고 마음껏 파운딩 했다.

처음에 살짝 긴장했었는데.

이제 그런 긴장감 따위 저 멀리 집어던졌다.

“끌끌, 미친놈. 아주 신나게 패는구나.”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싸우자고 덤벼드는 미친놈을 상대하려면 저도 미쳐야지요.’

퍼억! 퍼어억! 퍼억!

주먹을 내려칠 때마다 녀석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고.

뒤통수가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투기 넘치는 놈이었는데 적당히 하면 예의가 아닌 거겠죠?’

한 방.

두 방.

온 힘을 다해서 내려치기를 몇 분.

“그, 그만.”

꿈틀거리던 녀석이 항복 표시를 보내왔다.

이야.

그래도 대단한데?

이만큼이나 버티다니.

“이, 인정한다. 그만해! 넌 나보다 세다!”

정체 모를 사내의 입에서 항복 선언이 튀어나왔다.

퍼어억!

나는 마무리로 한 대 더 틀어박고 주먹질을 멈추었다.

* * *

“내 이름은 구락사르. 나는 너를 인정한다.”

무릎 꿇은 녀석이 얼굴이 퉁퉁 부은 채로 중얼거렸다.

이미 코뼈가 다 부러졌는지, 코에서는 피가 주륵 흘렀다.

“지금부터 너의 명을 따를 것이며, 투신께 향하는 너의 수행 길에 무운을 빌겠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다만, 기억해라. 네가 나보다 약해지는 순간 나는 다시 도전할 거다.”

그렇게 처맞고도.

아직까지 투기가 잔존해 있는 걸 보면.

과연 투신의 세계는 투신의 세계인가 보다.

“내 말을 따른다고?”

“그렇다. 그대는 승자. 원래 패자는 말이 없다.”

“호오?”

신기했다.

만나면 일단 싸워보고, 지면 수하로 들어가는 그런 개념인 건가?

“그럼 설명해 봐.”

“설명?”

“여기는 어딘지. 이곳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너는 왜 나랑 싸우려 했는지.”

“……?”

녀석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

하지만 이미 나는 명을 내렸다.

녀석은 졌으니 따라야 한다.

“……이곳에 이미 들어와 놓고 뭘 묻는 건진 모르겠다만…… 설명하라면 하겠다.”

구락사르가 입을 열었다.

약 30분 동안.

녀석은 이곳 세상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내가 묻는 말에도 성실하게 응해줬다.

요약하자면.

이곳은 싸우고 싶어서 안달 난 존재들이 소환된 세계였다.

우주 각 곳에서 투기(鬪氣) 넘치는 놈들만이 소환된 세상.

그야말로 싸움에 미친 세계.

구락사르의 말마따나, 처음 보는 존재를 만나면? 일단 싸운다.

싸워서 이기는 사람이? 그자를 소유한다.

또한 패자는 승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줌으로써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다.

모든 것이 승패로 돌아가는.

깔끔하다면 깔끔한 세상이었다.

물론.

그런 그들에게도 목표가 있었다.

바로 이 세계 중앙에 다다르는 것.

중심에는 바로 성좌 ‘투신’(SSS급)이 있고.

그의 인정을 받아 ‘투신의 사도’가 되는 것만이 그들의 유일한 목표라 했다.

그들은 그것을 ‘수행’이라 불렀다.

“투신의 사도가 되면 뭐가 좋은데?”

“……?”

구락사르가 눈을 찌푸렸다.

“투신은 싸움의 신이다. 그분과 가까워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강하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지 않겠나?”

“……그렇구나.”

일단, 강해지는 거면.

내 목표와도 일치하긴 하는데.

“참.”

구락사르가 손뼉을 쳤다.

“참고로 이곳에 나를 이긴 상관이 있다.”

“상관?”

“네가 이곳에 들어온 순간, 곧 만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나 역시 정해지겠지.”

“뭘?”

“누구를 따르게 될지.”

아.

그러니까 또 다른 네 주인이 있다는 말이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부스럭!

또 다른 존재가 눈앞에 나타났다.

“뭐냐, 너는.”

구락사르가 처음에 했던 말을 그대로 던지는 존재는.

또 다르게 생긴 근육질의 남자였다.

신기하게 이번 놈에게는 뿔도 하나 나 있었다.

인간이 아닌 건가?

어쨌든.

스윽.

녀석이 나를 바라보며 자세를 낮췄다.

그의 뒤에는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내들이 보였다.

“저놈이 구락사르가 말한 그 상관이란 자로구나.”

노인이 끌끌거렸다.

그 순간.

남자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만났으니, 싸우자!”

와.

진짜.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웃기는 세계네?

나 역시 주먹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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