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38화
무각 (1)
“주인, 내 이름은 무각이다.”
무각.
뼈팔이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왔을 때.
“……?”
“무각?”
“잠깐만, 무각이라고?”
멈칫!
신나서 방방 뛰던 미친놈들이 환호성을 멈추었다.
텀블링하던 놈은 중심을 잃고 머리를 땅에 박았으며.
입을 크게 벌리고 신나게 포효하던 놈은 입 벌린 그대로 망부석처럼 굳어버렸다.
“무각? 무각과 진권의 그 무각?”
“맞는 것 같은데? 여기서 중복된 이름은 못 쓰잖아?”
“그, 그럼 대장이 그 무각을 이긴 거라고? 전설의 무각을?”
환호가 경악으로.
경악이 불신으로.
미친놈들의 표정이 수시로 뒤바뀌었다.
‘쟤들 왜 저래?’
당장에라도 쓰러지고 싶은 걸 정신력으로 버티던 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각이 뭔데?
무각과 진권?
진권이란 놈은 또 뭐고.
이곳 세계에서 유명한 놈들인가?
“잠깐! 근데 무각은 발로 유명하잖아? 쟤는 주먹만 사용했는걸?”
“너 모르냐?”
“뭘?”
“하긴, 너 여기 소환된 지 1년도 채 안 됐지? 무각, 쟤 발 안 쓴 지 벌써 100년이 넘었다더라.”
“……100년? 그럼 1세대야?”
“그래서 별명이 썩은 물이잖아. 발만 쓰면 투신의 사도로 인정받을 수 있는데, 굳이 주먹만 고집하는 자. 이곳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1세대 최강자 중 하나.”
“…….”
“근데, 그런 무각이 어떻게 이런 변방에 나타난 거지? 최근 10년간은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들었는데.”
웅성웅성.
미친놈들이 제멋대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저희끼리만 아는 내용으로 무각에 대한 정보를 늘어놓았다.
“…….”
한두 명이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100명이 넘는 놈들이 그러니 북새통이 따로 없었다.
위이잉!
현기증이 일고 있는 상태에서 시끄럽기까지 하니, 점점 더 속이 울렁거렸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일은 내가 왼쪽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미친놈들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됐다.
일단.
나는 저들의 이름을 들었고, 내 명령이면 저들은 뭐든 해야 하는 거 맞지?
“다들 물러나라.”
“……?”
내 명령에 녀석들이 고개를 갸웃하며 날 바라봤다.
“물러나라고?”
“물러나서 뭘 해? 그리고 어디로 물러나?”
“명령을 정확히 내려라, 대장!”
다시 숙덕이는 녀석들.
“제기랄. 가서 밥을 해오든, 집을 짓든, 쌈박질하든, 피곤하니까 다 내 시야에서 사라지라고!”
“아, 알겠다! 대장!”
“그럼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으니, 이 자리로 내일까지 모이겠다!”
눈치를 보던 녀석들이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내 기준 세상 미친놈들이었지만, 명령 하나만큼은 똑 부러지게 듣는 놈들.
후우웅!
미약한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
어느새 흐른 정적에.
나는 이제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후하, 후아.”
오직 들리는 건 시원한 바람 소리와 녀석과 나의 호흡 소리.
“주인.”
이윽고 누워 있는 무각이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주인은 망자의 한을 들어준다지?”
“…….”
무언가 지금까지의 매개체 던전과는 결이 다른 느낌.
이전까지는 과거의 ‘한’을 풀어주었다면.
뼈팔이는 누가 봐도 현재의 모습 그대로인 것 같았다.
“그런 표정 짓지 마라, 주인. 무슨 생각하는지 눈에 훤히 보이니까.”
“내가 무슨 생각 하는데?”
“놀라고 있지 않나. 망자인 내가 주인을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 느끼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맞아.”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식, 역시 감정이 연결되어 있어서 그런지.
정확하게 알고 있구나.
내가 궁금한 것은 그거였다.
어떻게 망자인데.
이미 스켈레톤화 되어서 내 소환수로 쓰이던 녀석인데.
여기에 저런 건장한 모습으로 현존(現存)할 수 있는 거지?
어떻게 아직도 이곳 세계에 살아 있는 썩은 물일 수 있는 거지?
“궁금한가, 주인?”
“알면서 뭘 묻냐?”
“크흐흐, 왜. 그냥 그런 거 있잖아. 나도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주인이랑 똑같은 감정이었거든.”
“…….”
무각의 눈빛에 그리움의 감정이 담겼다.
“주인, 이곳은 망자(亡者)들의 세계다.”
“망자?”
“그래, 정확히 말하자면 온갖 세계에서 싸움으로 이름을 날리던 자들의 영혼이 투신의 이름 아래 모인 세계지.”
아아.
그러니까.
저기 싸움에 미친 놈들도 다 이미 죽었던 놈들이란 거지?
“후.”
털썩!
나는 숨을 뱉어내며 제자리에 앉았다.
생각해 보니까, 이미 이긴 마당에 쉬어도 되는 거잖아?
동시에.
우우웅!
기운을 끌어올려 ‘다나’를 소환했다.
“마스터, 부르셨나요?”
이곳의 제약은 ‘무기를 사용하는 것’만 금지되어 있다.
그러므로 ‘힐링’은 가능했다.
“둘 다 치료하면 될까요?”
“그래.”
파아앗!
그녀의 손에서 튀어나온 빛이 우리 둘을 감쌌다.
욱신거리던 통증이 살짝 완화되었다.
‘망자라…….’
그렇다면 조금 이해가 됐다.
내가 소환하던 뼈다귀의 몸은 무각의 전생이었을 테고.
현재 내 눈앞의 무각은 그저 ‘영혼’의 모습이라는 거겠지.
그러면 언뜻 말이 될 수도 있겠다.
뭐, 자세한 건 생각하기 복잡하니 넘기고.
“그나저나 왜 봐줬지?”
내가 물었다.
녀석이 굳이 어설픈 주먹을 쓴 이유를.
“봐준 게 아니다.”
“봐줬잖아. 아까 다 들었어. 원래 발을 썼다며?”
“말 그대로다. 과거에 발을 썼을 뿐. 지금은 아니야. 그러니, 봐준 것도 아니지. 내 앞에 주인이 아닌 다른 강자가 있었어도 나는 똑같이 주먹을 썼을 거다.”
“…….”
“하지만, 그 때문에 투신의 사도가 되지 못한 것도 맞지.”
그가 자조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순간이었다.
[띠링!]
[새로운 임무가 도착합니다!]
허공에 메시지가 떴다.
[스테이지 : 권각대립.]
[무각(武脚)은 오직 주먹만으로 투신(SSS급)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를 도와 ‘투신 세계’의 중앙으로 나아가세요.]
아아.
딱, 감이 왔다.
원래 발만으로 절대자에 올라갔던 이 녀석을.
이제 주먹만으로 절대자에 올려야 한다.
* * *
다음 날.
우리는 회복을 마치고 마을 광장에 모였다.
나와 무각이 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고.
그 주변으로.
약 100여 명의 미친놈들이 둥글게 펴 앉아 있었다.
“…….”
그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상태.
오자마자 너무 시끄럽길래 다 닥치라 해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내가 무각을 바라봤다.
“그 투신의 인정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저 하늘을 보아라, 주인.”
무각의 말에 따라 고개를 젖혔다.
푸르른 하늘.
화창이 떠 있는 해와 하얗고 예쁜 구름들.
“아니, 거기 말고 조금 더 왼쪽으로.”
“어.”
“흐린 빛기둥이 보이는가?”
무각이 말한 방향에는 하늘을 꿰뚫고 있는 빛이 보였다.
“저기가 ‘중앙’이야?”
“그렇다, 주인.”
무각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앙에는 수많은 강자가 산다. 그 강자들을 뚫고 중앙에 다다르는 순간, 투신의 인정을 받을 수 있지.”
“강자라면…… 너보다 센 강자야?”
“물론이다.”
무각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발을 쓰는 너보다 세다고?”
“그건 싸워봐야 알겠지만, 강자가 많은 건 확실하다. 왜냐, 난 1세대의 강자일 뿐이고. 이 세상은 세월이 수도 없이 흘러, 이미 10세대라 불리는 이들까지 들어왔기 때문이지.”
“10세대……?”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미친놈 중 하나가 답했다.
“대장! 우리가 10세대다. 보통 이곳 세계는 10년 단위로 세대를 나누는 걸로 알고 있다. 투신께서는 세대별로 온 우주의 강자들을 이곳으로 소환하시지!”
“…….”
그러니까.
100년에 걸쳐 온 우주에서 모아놓은 강자들을 꺾고 중앙에 올라가야 한단 말이지?
“근데.”
궁금한 것이 있었다.
“발은 왜 안 쓰는 건데?”
“…….”
내 물음에 표정이 살짝 침울해지는 무각.
아, 오케이.
저건 민감한 부분인 것 같으니, 굳이 지금 건들지 말자.
어차피 묻지 않아도 나중에 ‘기억 재현’(S급)을 사용하면 될 테니.
“됐고.”
어차피 임무는 떨어졌다.
녀석의 ‘한’은 주먹을 통해 투신의 인정을 받는 것.
그런 녀석에게 발을 쓰게 해봐야 무슨 소용이랴.
그게 ‘한’을 푸는 건 아닐 텐데.
“지금 주먹을 쓰는 네 실력으로 투신의 인정은커녕, 이곳에 남아 있는 강자도 처리 못 한다는 거지?”
“객관적으로 보면 그럴 거다, 주인.”
“후우, 좋아.”
가부좌를 틀고 앉았던 내가 벌떡 일어섰다.
다음,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입을 열었다.
“그럼 거래하자.”
“……거래?”
“넌 발을 쓸 수 없다고 했어, 맞지?”
“그렇다, 주인.”
“발을 쓸 수 없는 것일 뿐이지, 발 쓰는 법을 가르치지 말라는 제한은 없잖아? 그렇지?”
내 물음을 잠깐 이해하려는 듯 음미하던 무각이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근데, 그건 왜 묻는 건가.”
“애들한테 들어보니, 너 발 좀 쓴다며? 그 기술을 내게 알려줘. 그럼 내가 네게 주먹을 알려주지.”
후웅!
내가 짧게 스트레이트를 치며 말했다.
“주인이 주먹을……?”
녀석이 [그게 맞나?]라는 표정을 짓는다.
하, 이 자식이?
‘어르신.’
다음, 나는 노인을 속으로 불렀다.
“왜 그러느냐?”
‘어르신 주먹 좀 쓰십니까?’
“나보고 주먹 좀 쓰냐고?”
‘예.’
“크하하, 이놈아. 이 스승의 과거에 뭐라 불린 줄 아느냐? 바로 권신(拳神)이었다, 권신. 어찌 권신 앞에서 주먹을 논하느냐.”
“…….”
직접 보지 못해 믿을 순 없지만.
아까 힘들 때 조언해 주던 걸 봤을 땐, 분명 주먹에 관해 나보다 훨씬 잘 알 게 분명했다.
내가 다시 뼈팔이, 아니, 무각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다 방법이 있으니까, 인마. 걱정하지 말고. 너.”
“……엉?”
“나한테 졌지?”
“그, 그렇지. 주인?”
“근데 뭘 말이 많아, 확!”
내가 손을 위로 들어 올리는 모션을 취하며 말했다.
생각해 보니, 거래할 필요도 없었다.
강자가 곧 진리인 세계.
무각도 이런 세계가 마음에 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잔말 말고 가르쳐. 나도 네게 주먹을 가르친다. 그거로 끝. 과정은 중앙으로 이동하면서. 오케이?”
“……오케이.”
무각이 답했다.
* * *
저벅, 저벅.
그렇게 대이동이 시작됐다.
나와 무각이 최선두에 섰고.
그 뒤로 100여 명의 미친놈이 따라왔다.
저들을 놓고 가도 되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 없었다.
명령만 시키면 착착, 밥도 구해오고 집도 지어주는 노예들을 굳이 버리고 갈 필요 없지 않은가.
“대장!”
한창 걷고 있을 때, 저들 중 하나가 와서 말했다.
“저길 봐라. 조금 더 큰 마을이 보인다.”
“음.”
나 역시 시야에 그 모습을 담은 상태였다.
근데.
무언가 이상했다.
익숙한 마력이 휘몰아치고 있는 느낌.
“주인.”
무각이 걸음을 멈춘 것은 그때였다.
“조심해라, 망령이다.”
“……망령?”
내가 눈을 좁게 뜬 상태로 저 멀리 마을을 바라보고 있을 때.
- 크큭….
- 싸우자…!
기괴한 소리가 내 귀를 긁었다.
‘어?’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
‘설마.’
부다페스트에서 봤었던 그 검은 괴수?
스슷! 스스슷!
마을에서 활개 치던 녀석들이 이내 우리를 인식했다.
그러고는.
쐐애애액!
우리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후, 또 싸움이야?
내가 주먹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