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41화
무각 (4)
중앙으로 향한 지, 어느덧 3개월 차.
“혹자는 말하지.”
무각이 말했다.
“나보고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고, 거기에 더하여 좋은 스승까지 가졌다고.”
후웅!
퍼버버버벅!
그의 힘 있고, 자신감 넘치는 주먹에.
“끄악!”
“으아악!”
도전하던 싸움귀들이 맥을 못 추고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크나큰 착각이다. 주인도 알지 않은가?”
높은 실력에는, 그만큼의 노력이 따른다.
어떠한 것이든 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다.
“맞지, 맞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이 자리까지 오르기 위해, 수많은 시련을 겪었으니까.”
콰가가가!
나 역시 녀석의 옆에 서서 발을 수십 번 뻗었다.
그냥 막무가내로 뻗는 게 아니었다.
이건 다가오는 싸움귀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맞추는 작업이요, 노동이었다.
“가, 강하다!”
“내 이름은 크리스요!”
“대장으로 모시겠다!”
과거엔 촌 동네의 마을만 보였다면, 이제는 제법 크나큰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보이는 도시마다 다 접수했고, 어느덧 뒤를 따르는 수하들도 수만 명에 달했다.
“으음, 주인?”
무각이 주먹을 호쾌하게 털며 씩 웃었다.
“내 말에 오해가 좀 있었나 본데.”
“음?”
“그 말이 아니라, 고작 나 따위를 보고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 하면, 그건 좀 억울하다는 뜻이었다. 왜냐, 진짜는 주인이니까.”
“……에?”
발을 휘두르던 내가 벙찐 표정으로 무각을 바라봤다.
“주인은 신기하다. 내 각술이 얼마나 심오한 무술인데, 그걸 3개월 만에 그렇게 익힐 수 있나? 세상은 참 불공평해. 진권이 알았다면 땅을 치고 울었을지도 모른다.”
“…….”
“게다가, 주인은 뭐냐. 그 권신(拳神)이라는 자의 무술도 함께 익히고 있지 않나?”
과연.
태청공재만성대법은 월클, 아니, 유니버스 클래스였다.
투신 세계의 1세대 절대자였던 무각이 인정하는 재능이라니.
“아직, 멀었어. 인마.”
노인은 말한다.
아직 내가 이룬 것은 만술의 초입일 뿐이며.
본인 또한 끝을 본 건 아니라고.
항상 겸손하라고.
‘그래도.’
만날 몸을 쓰다 보니.
예전과 비교해 확실히 체격이 남달라졌다.
몸에 지방이 거의 남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살짝만 몸을 쓸어도 잔근육들이 곳곳에 느껴졌다.
체력 또한 이전과 달랐다.
아무리 뛰어다녀도 호흡이 안 차는 느낌?
폐가 성장해 버렸다.
“내 목적은 발 쓰는 너와 한판 뜰 수 있을 때까지 강해지는 거야.”
“그런가……? 그때가 기대되는군.”
무각이 싱그럽게 웃었다.
녀석과도 이제는 정이 많이 든 느낌이었다.
* * *
그로부터 또 3개월 후.
투신 세계 중앙, 하늘 높이 솟은 빛기둥 끝에.
스윽.
정갈한 도복의 사내가 구름 지대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도복 사이로 언뜻 비치는 사내의 몸에는 근육이 자글자글했고.
주변으로 풍기는 그 기세는 세상 전체가 덤벼도 물러서지 않을 만큼 강렬해 보였다.
“흐음.”
무언가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웃는 그 존재의 정체는 바로 투신(SSS급).
“성좌가 여기엔 어인 일인가?”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시커먼 두건을 쓴 정체 모를 존재가 있었다.
“왜, 우리 초면도 아닌데, 잠깐 놀러 올 수도 있잖아?”
“별로 반갑지는 않군. 자연을 역행하는 존재는 내 취향이 아니라.”
“뭐래. 만날 때마다 싸우려 드는 미친 성좌가.”
“그래서.”
투욱!
투신이 구름 위 식탁에 술잔을 내려두었다.
“나랑 싸우고 싶어서 찾아온 건가, 고대 마법?”
그랬다.
놀랍게도, 두건 쓴 성좌의 이름은 고대 마법(SSS급).
우주에서 가장 오래된 성좌.
다른 이름으로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s)라 불리는 자였다.
“그건 아니고. 경고하러 왔다.”
“경고? 이 나에게?”
피식.
투신이 웃었다.
이 우주에서 자신을 건들 수 있는 것은 오직 일곱 신(神)뿐.
감히 누가 자신에게 경고하는가!
쿠구구구…….
투신에 몸에서 거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쯧쯧, 이런 단순한 미친놈.”
고대 마법이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병신은 놔두고 그냥 돌아갈까? 라고도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곳에는 자신과 요즘 재밌게 소통하고 있는 파편의 아이가 있었으니까.
‘엘로이즈 아린.’
고대 마법은 어느덧 그녀에게 정이 들어 있었다.
다른 파편들과 다르게, 그녀는 서고를 통해 자신에게 질문할 줄 알았다.
‘마탑주란 본래 고대 마법을 탐구하는 자.’
그 의미를 진정으로 실현하는 아이는 오직 엘로이즈 아린뿐이라 생각했다.
또한.
자신이 아끼는 아린과 잠깐이나 마주했던 주동훈이 이런 식으로 연결될 줄은 그도 예측하지 못했다.
“이 봐.”
그래서 입을 열기로 했다.
우주의 기록에 따르면, 지금 입을 열어야 주동훈이 성장하고.
그래야 아린이가 기뻐할 테니까.
“네놈 세계에 구신(舊神)의 파편이 들었다.”
“……?”
멈칫!
기세를 뿜어내던 투신이 움직임을 멈췄다.
“구신(舊神)? 그게 뭔데.”
역시, 투신은 멍청했다.
하긴, 자신을 제외한 대다수 성좌가 다 저런 식이었다.
어딘가 비틀려 있거나, 한 가지에 미친 자들.
그러다 보니, 다른 것에 아예 무지한 자들.
“뭐긴. 네놈이 건드려 봐야 좋을 것 없는 존재지. 어쨌든. 난 경고했으니, 처신 잘해라. 웬만하면 그냥 여기 구름에 박혀서. 그 고상한 사도 모으는 취미나 즐기는 게 좋을 거야.”
스스슷!
할 말을 마친 고대 마법이 사라졌다.
“……무슨.”
그 자리에서 투신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건들지 말라고?’
?
??
???
‘웃기는 소리!’
자신이 왜 투신이던가.
싸우기 위해서라면 벌집을 건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게 바로 본인.
구신(舊神)이든.
고대 마법의 경고든, 뭐든.
자신의 알 바가 아니었다.
“모여라, 나의 사도들이여!”
스슷!
스스슷!
투신의 명령에 구름 속에 잠들어 있던 영혼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심심하지 않았더냐? 지상 세계로 내려가 방금 저 늙다리가 말한 자를 찾아보아라!”
싸움의 끝자락에 올라.
성좌의 권속이 된 자들.
회색 괴수.
스사사사삿!
그들이 구름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 * *
중앙으로 향한 지, 어느덧 반년 차.
“주인.”
어느 날.
무각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왜.”
“느낌이 이상하지 않나?”
“너도 느꼈어?”
태청심법의 감각에 걸린 것은.
무각과 내 주변으로 몰려오는 엄청난 기운의 존재들이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바스러지듯 쥐었다.
“……뭐지?”
무각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지금 몰려오는 자들의 기세는 최소…… 나와 비슷한 수준이다. 아니, 그보다 더해.”
중얼거리는 무각.
그 뒤에서 툭툭 노인이 내 어깨를 쳤다.
‘예?’
“조심해라, 이놈아. 방금 이곳 반경 10㎞ 이내에 모든 생명체가 사라졌다.”
‘……?’
“정확히는 간혹 보이던 검은 망령이 되어버렸어.”
술렁술렁.
당황한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뒤따르던 싸움귀들도 오싹한 기운에 몸을 떨었다.
싸움에 미쳐 버린 녀석들을 떨게 할 만큼 공포스러운 존재.
꼴깍.
나는 침을 삼켰다.
그렇게 잠깐을 대기하고 있자.
스사사삿!
요사스러운 소리를 내며 질주하는 회색 괴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건.’
그래, 투신의 파편!
부다페스트에서 봤던 그놈.
그들의 숫자는 제법 많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단 보이는 것은 여섯 마리.
그들을 마주하고 서 있을 찰나.
[주의! 주의! 주의!]
[투신(SSS급)이 그대를 인지합니다.]
……투신?
내가 눈을 깜빡였다.
지금 성좌가 나를 보고 있다는 소리지?
제기랄.
어쩐지 시선이 따갑더라니.
그 순간.
허공에 또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자고 있던 화(火)의 정수가 눈을 뜹니다.]
[수(水)의 정수가 쟤는 또 뭐냐며, 신경질과 동시에 눈을 비빕니다.]
[목(木)의 정수가 진정하라 말합니다.]
[금(金)의 정수가 상황을 파악합니다.]
“어?”
내가 놀랐다.
그동안 불러도 개무시하던 정수들이 무슨 일로 잠에서 깨?
‘역시.’
용족이나 성좌급은 되어야 개입할 거라는 내 가설이 맞았던 건가?
이유가 어쨌든.
나는 저 메시지가 너무도 반가웠다.
이게 얼마 만이야?
“저기요, 정수님들. 반갑습니다……?”
[화(火)의 정수가 나를 보고 반갑다며 손을 흔듭니다.]
오오.
화(火)의 정수는 항상 그렇다.
다른 존재들한텐 굉장히 무섭거나 시크한데.
이상하게 나한테만은 호의였다.
[화(火)의 정수가 잠깐 기다리고 있으라 말합니다.]
[금(金)의 정수가 어쩔 거냐고 묻습니다.]
[목(木)의 정수가 판단하길, 저 투신이라는 성좌는 ‘아카식 레코드’처럼 우릴 알아보지 못할 거라 말합니다.]
[목(木)의 정수는 스켈레톤 엠페러를 도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수(水)의 정수가 비웃습니다.]
[수(水)의 정수가 굳이 먼지만도 못한 놈 도와서 뭣하냐 묻습니다.]
[금(金)의 정수 역시 개입을 원치 않습니다. 저번 용족을 태운 이후, 우리의 존재를 의심하는 성좌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
순식간에 시야를 가득 메우는 상태창들.
“…….”
어이, 정수님들?
갑자기 깨어나서 나는 놔두고 무슨 심각한 회의 중이십니까?
아무래도 상황은 내 쪽이 더 심각한 거 같은데.
“주인, 뭐 하는가! 정신 차려라! 놈들이 온다!”
무각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보고 있어!”
무각은 정수의 존재를 모른다.
본인이 과거에 추앙하던 투신(SSS급)이란 자보다 훨씬 위 등급의 존재들.
그런 존재 여럿이 지금 머리 위에서 심각한 목소리로 떠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과연 믿기나 할까?
스사사사!
어쨌든.
여섯 마리의 회색 괴수들이 맹렬한 기세로 질주했다.
- 크크….
- 저놈인가…? 투신께서 점찍은 놈이?
- 싸워보자…!
- 크하하하! 이 얼마 만의 싸움인가…!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면서.
“하아.”
한숨이 나왔다.
이게 어떤 상황인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싸워야 한다는 것.
“무각.”
“응, 주인.”
“아무래도 너. 발 써야 할 것 같은데?”
무각도 그랬지만, 나 역시 본능적으로 느꼈다.
저들과의 싸움에서 이길 확률이 채 1할이 되지 않는다는 걸.
지구에서도 싸워봤지만, 정말 지독히도 강한 존재들이었다.
“후우.”
잠깐 고민하던 무각이 한숨과 함께 올렸던 주먹을 내렸다.
그리고 짧게 호흡하며, 입을 열었다.
“주인.”
“앙.”
“내가 말했었나? 발을 썼을 때만큼은 단 한 번도 져본 적 없다고.”
“그랬었지?”
“……보여주겠다.”
무각이 발을 올렸다.
“이 무각의 각술을.”
* * *
그 시각.
대한민국 압구정동.
휘이잉! 휘잉!
어느덧 늦가을이 지나고 초겨울이 찾아오는 11월의 바람은 차디찼다.
「드미르 공방」.
그곳 옥상에서 코트 입은 여성이 바람을 쐬었다.
‘벌써 반년 하고도 15일이 흘렀군요.’
길마가 사라진 이후, 김진아는 무언가 가슴이 텅 비어 있는 것만 같았다.
고독(孤獨).
열심히 일해도 즐겁지 않고.
길드를 성장시켜도, 성장한 것 같지 않은 기분.
그녀는 길마의 빈자리를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었다.
이미 공방의 재고는 다 소진되었으며.
기회 될 때마다 대화 한마디라도 나눠보겠다고 찾아오던 주변 길마들도 발걸음이 뜸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
받아들였던 직원 중 몇몇은 길드를 나가기까지 했다.
물론, 그녀는 그런 것에 하등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별천지의 가치는 그녀가 제일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도대체 언제 올 건데요?’
물론, 그 가치는 길마인 주동훈이 살아 있을 때 더욱 빛이 날 거다.
“후.”
그녀가 부는 입김이 마치 담배 연기처럼 스산하게 뿜어졌다.
문득, 김진아는 이 상황이 익숙하다고 느꼈다.
그때도 그랬나?
길마가 처음 나가서 한참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날.
그때도 추운 겨울이었는데.
‘맞네, 맞아.’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말이었지.’
세계 최대의 축제, 「세계 랭커 발표식」 바로 전에 도착했었던 주동훈.
오자마자 하이 랭커 이름을 올리면서 세상을 뒤집어 놨었지.
‘설마, 이번에도 그때 맞춰서 오시려고 그러는 거예요?’
[이 재미없는 사람아] 투덜거리며 미소 짓는 김진아.
그녀의 미소는 그 어느 때보다 쓸쓸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