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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247화 (247/368)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47화

서고의 향

2023년 12월.

계묘년(癸卯年)의 끝을 앞두고.

드미르 공방 건물에 별천지의 랭커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부길마?”

파즈즉!

플로아가 몸에 전류를 한가득 튀기며 들어왔고.

“급하게 모집하셔서 위약금까지 물어주고 왔소. 뭐, 그리 부담되는 액수는 아니었지만.”

그 뒤로 절대무쌍(絶對無雙) 막시 아재가 뒤따라 들어왔다.

또한.

암제(暗帝), 인도자(引導者), 쇠주먹, 드루이드(The Druid), 아수라(Asura).

별천지를 이루는 일곱의 랭커가 하나씩 들어왔다.

자존심 센 랭커들이 비랭커의 명령에 협조적인 것은 평소 김진아가 열심히 관리해왔음을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다들 오셨군요.”

회의실에는 인원수에 맞게 따듯한 커피가 세팅되어 있었다.

“뭐, 블랙리스트 건이라며?”

플로아의 질문에 답한 것은 카푸였다.

“정확히는 헬 하운드. 과거 훈을 공격했던 하이 랭커다. 그런 자가 굳이 대한민국에 재입국한다? 불안할 만하지.”

“호오, 확실히 그렇겠네.”

“게다가 칼리페나까지 딸려온 상황이야.”

“칼리페나라면…….”

뇌명의 눈동자가 커졌다.

“미친! 개 초비상 아냐? 길드 털이범이잖아, 걔!”

“그렇게 정보가 느려서야 되겠나. 이미 천마신교를 제외한 모든 한국 길드에 비상이 떨어진 상태다.”

“허어.”

하긴.

칼리페나의 뇌에 금이라도 가지 않는 이상, 하세라를 건들 리 없으니.

“그럼.”

“뭐, 우리 길드도 마냥 마음을 놓고 있을 순 없는 거지.”

“그렇겠네.”

플로아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놓여 있던 커피잔을 들어 후루룩 마셨다.

“크, 이거 원두 뭐야? 향이 오지는데? 달짝지근하면서도 고소해.”

“아마 선물 받은 원두일 거예요.”

김진아가 답했다.

“선물?”

“예, 연말이라 이것저것 많이 쌓이거든요.”

별천지가 유명해진 이후.

연말이 되면 각종 기업, 국회의원, 길드, 사회단체, 심지어 팬카페에서까지 선물이 들어온다.

특히, 김진아 같은 경우는 능력도 능력이지만, 미모도 꽤 수려한 편이라 기소율과 함께 팬클럽이 상당한 상황.

“어쨌든, 칼리페나까지 들어온 마당에 어쩌려고 그래?”

칼리페나는 랭킹 12위.

이곳에 있는 모든 랭커가 합심해도 감당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마탑주를 부를 수도 없는 상황이지 않던가.

아무리 길드 마스터가 마탑주랑 친하다지만, 확실한 정황도 없이 세계 랭킹 4위를 이곳에 행차시킨다?

부탁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실례였다.

“으음.”

파즉, 파즈즉!

플로아의 머리칼에 튀기는 전류가 심해졌다.

머리가 복잡하다는 뜻.

톡톡.

플로아가 손가락을 탁자에 두들기며 생각했다.

‘만약, 놈들이 정말 우릴 노리는 거라면, 이 공방을 노릴 텐데.’

주동훈이 없는 마당에, 노릴 수 있는 거라곤 별천지의 재산과 김진아일 테니까.

“…….”

솔직히 이 자리에 있는 랭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들이 지켜야 할 대상이 김진아라는 걸.

그리고.

‘당연히 지켜야지.’

‘암, 우리 부길마인데.’

‘솔직히 부길마가 없으면 이 집단은 해산이거든.’

‘우리 연봉 챙기는 것도 결국 부길마잖아?’

별천지의 모든 랭커들은 그 사실에 불만이 없었다.

솔직히 던전보다 김진아가 사업 수단으로 벌어오는 돈과 아이템이 더 많고.

집단 발전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

솔직히, 모두가 동의할 거다.

여기 있는 그 누구를 데려다 놔도, 복잡한 길드 관리를 김진아처럼 깔끔하게 해낼 수 없다는 것을.

또, 그게 아니더라도.

주동훈이 사라진 지 벌써 반년 이상이었다.

이익 여부를 떠나, 김진아와는 이미 정이 많이 들었다.

집단은 곧 또 하나의 가족 공동체.

“오랜만에 전쟁 준비로군. 우리 길드를 침범하는 적이 있다면, 그게 하이 랭커가 아닌 용족이라 해도 난 막을 거다.”

인도자가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고.

“반년간 앞만 보고 훈련했어요. 아무리 상위 랭커라 해도 쉽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기소율이 손수건으로 단검을 닦았다.

주동훈이 선물했던 묵빛, 그 묵빛 단검을.

* * *

시간이 흘렀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12월 31일.

연말이 다가올 때까지, 드미르 공방은 평화로웠다.

“뭐야, 괜히 걱정한 거 아냐? 뭐,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휴식인 거 같아서 좋긴 하지만.”

공방 건물 옥상에서 플로아가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어차피 드미르가 사라진 이후, 공방 판매는 임시 중단되었다.

건물에 사람들이 모일 일도 없었고.

또한 김진아는 랭커들과 그 가족들 전부 압구정 근처에 집을 구해다 줬다.

그것도 프리미엄 라인으로.

별천지 랭커만의 특전이라면 특전인데…….

그러다 보니, 날마다 공방 건물에 나와 연말 파티를 벌이게 됐다.

별천지라는 공동체 아래에서.

모두가 화목한 연말을 보낸 것이다.

함께 밥을 먹고, 같이 훈련하고, 토의하고 등등.

“여기에 주인, 그놈도 있었으면 딱 좋았을 텐데.”

후루룹!

플로아가 콜라에 빨대를 꽂아 쭉쭉 빨았다.

지금도 2층 대기실에는 각종 바비큐와 음료가 가득했고.

대형 프로젝트 빔을 통해, 「세계 랭킹 발표식」 행사를 시청할 준비 중.

물론, 이번 파티에는 가족들이 참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협회에 부탁해, 지하 벙커 깊숙한 곳으로 보내둔 상태였다.

“아시죠? 방심하면 안 돼요.”

플로아 곁으로 다가온 김진아가 난간에 걸터앉았다.

“칼리페나는 국제적인 테러범이에요. 모든 협회와 기관들이 주시하고 있는 터라 아무리 하이 랭커라 해도 함부로 움직일 순 없을 거예요.”

굳이 움직여야 한다면.

세계적인 행사가 있을 때 움직이겠지.

이를테면 세계 랭킹 발표식 같은.

“알지, 걱정하지 마라. 누가 오든 다 전기 통구이로 만들어줄 테니까.”

파즈즉!

플로아가 반대쪽 손으로 전기 공을 만들었다.

허세지만, 밉지 않은 허세.

김진아가 미소 지었다.

사실.

그녀는 이곳에 트랩 하나를 더 깔아두었다.

바로 연말 행사 기념으로 이곳에 서울 오성(五星)을 초대한 것.

백돈과 명궁은 각 집단 때문에 오지 못했지만.

[랭킹 19위, 광전사(狂戰士) 장대웅]

[랭킹 400위, 흑검(黑劍) 이선아]

이 둘은 초대에 응했다.

특히 광전사의 경우, 사정을 설명하니.

랭킹 12위든, 그 위든 다 데려오라고 박살 내주겠다며 흥분까지 했다.

‘좋은 사람들.’

김진아는 문득 주동훈이 옆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가 좋은 사람이기에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남는 것.

“이제 다섯 시간 정도 남았나요?”

그녀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국제 시간 : 19시 02분]

2024년, 갑진년(甲辰年)까지 이제 다섯 시간.

김진아가 주먹을 꽉 쥐었다.

* * *

텅 빈 것만 같은 우주의 공간.

세상 그 무엇보다도 광활한 공간에.

두둥실.

누군가가 떠내려가고 있었다.

일곱의 스켈레톤과 한 명의 인간.

우우웅!

그중 하나.

엘로이즈 아린의 지팡이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체온 보호 마법과 압력 유지 마법.

후우웅!

엘드린의 손에서도 미약한 바람이 불었다.

주문 의식을 통해, 주동훈의 코로 대기를 불어 넣는 것.

아무것도 없는 우주 속에서.

일곱 수하는 주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모든 힘을 합치고 있었다.

별 근처를 제외한 우주의 평균 온도는 3K다.

섭씨로 따지면 –270.15℃.

거의 절대영도에 근접한 온도였다.

하지만, 이들은 스켈레톤.

그것도 용의 뼈로 이루어진 존재.

지내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다들 저와 엘드린에게 남은 기력을 전달해 주세요.”

아린이 부탁했다.

“이제 기력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빨리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데.”

기력은 무한하지 않다.

기력을 채우려면 주인이 다시 재소환해 주든가 해야 한다.

하지만, 주인인 주동훈은 의식을 잃은 채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누가 보면 거의 죽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다들 기력 한 톨까지 최대한 아껴주셔야 해요.”

그녀는 이미 예전부터 폴리모프도 해제한 상황.

아린은 차디찬 뼈다귀의 모습으로 어떻게든 주인을 지키려 했다.

“흐음.”

소행성 조각에 앉아 있던 무각이 침음을 흘렸다.

“여기가 어딘지 아무도 모르는데, 확실한 건 주인이 일어나야 해결될 것 같다.”

“맞지.”

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터는 매개체를 통해 세상 어디든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으니까.”

“그럼 그냥 주인을 깨우는 데 집중하는 건 어떤가?”

“글쎄.”

카덴이 고개를 저었다.

“깨울 수 있었으면 진즉 깨우지 않았을까? 이건 육체적인 회복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예, 맞아요.”

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다나의 힐링으로 육체는 거의 다 회복한 상태거든요. 하아.”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뼈다귀라 공기가 나오진 않았지만.

“제발 일어나 주세요, 교수님. 후우, 제발요.”

우우웅!

계속해서 마법을 불어넣으며, 극진하게 보살피고 있던 찰나.

“음?”

아린의 시야에 무언가가 잡힌 것은 그때였다.

시커먼 두건을 쓴 정체 모를 존재.

굉장히 수상해 보였지만, 사실.

이 아무것도 없는 우주에 저런 모습이 생겨난다는 것 자체가 수상했다.

“……당신은.”

아린이 중얼거렸지만, 다른 스켈레톤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니, 없었다기보단.

‘시간의 흐름이 멈추었어?’

모든 스켈레톤이 같은 자세로 미동을 멈췄다.

날아가던 소행성도 움직임을 멈췄고.

뛰고 있던 교수님의 심장 박동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반갑구나, 아이야.”

두건 속에서 굉장히 다정해 보이는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은 그때였다.

“원래는 중립을 지키고자 했는데, 너는 나의 사도이자 파편. 나는 네 교수님을 돕는 게 아니라, 너를 돕는 게다. 이자가 없으면 너도 없는 거니까…….”

“아아.”

그 순간.

아린은 짜릿한 감각을 느꼈다.

그래.

이 두건에서 익숙한 냄새가 났다.

‘서고의 냄새.’

궁금할 때마다.

지식이 고플 때마다.

귀신처럼 알려주던 서적의 향이 물씬 풍겼다.

“당신은 고대 마법인가요……?”

우주의 모든 마탑주는 고대 마법을 추종하는 사도다.

비록, 아린은 교수님을 모시고 있지만.

그런데도 고대 마법을 마주함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어렸을 적.

힘들 때마다 자신이 의지했던 건.

부모도, 가문의 형제도 아닌 책이었으니까.

고대 마법이었으니까.

“쯧쯧, 선천진기를 많이도 태워 먹었구나.”

두건이 교수님의 신체를 살피며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체형이 많이 뒤바뀌어 있어서 견딜 수 있었던 거지, 이건 거의 죽은 상태라 해도 무방해.”

마치 전문가처럼.

지팡이를 휘적이며, 허공에 무언가를 연산하던 두건의 안쪽에서 눈빛이 번뜩였다.

“하지만 아이야.”

그러고는 아린에게 말했다.

“우주는 광활하다. 얼마나 광활하냐면, 방금 너희가 싸웠던 그 성좌 같은 존재가 무한하게 있을 만큼 거대하지. 그런 우주이기에, 치료 방법 또한 광활하다.”

“그 말은…….”

방법이 있다는 말?

스슷!

두건의 지팡이가 천천히 들어 올려졌다.

아린은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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