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48화
플레쉬 리포메이션
문득, 어느 날의 장면이 떠올랐다.
어느 지하철역 대피소.
“흐흑, 엄마, 엄마아! 흐어어엉!”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목놓아 울고 있었다.
자리에 주저앉아서, 목소리가 다 쉴 때까지 우는 아이.
나는 그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매월, 아니……. 날마다 나오는 고아.’
멸망해 버린 세계에 한 달 정도만 있어보면, 저런 애들은 길가에 널브러진 돌멩이처럼 흔했다.
그나마.
저 애는 대피소에 올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운이 좋은 거다.
“흐어어엉! 엄마 어딨어!”
그때의 나는 꽤 철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울 때마다, 공수해 온 통조림 하나를 건넸고.
울다 지쳐 쓰러질 때까지 내버려 두었다.
경험상, 무슨 말을 해도 말을 듣지 않는 애들이 태반이었으니까.
그다음 정신 좀 차렸을 때.
그러니까 입에 음식이 들어갈 정도의 본능이 이성을 지배할 때.
그때, 생존 수칙을 알려주면 된다.
이곳, 대피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네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이곳에 어른들은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싸우러 갔든가.
아니면 고유 능력을 개방한답시고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이들이 태반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대피소에서의 생존은 생각보다 더욱 가혹했다.
- 동훈아.
문득, 아버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대피소에 근접한 몬스터와 싸우러 떠나시던 마지막 밤에 하셨던 말씀.
- 걱정하지 마라. 약속하마.
- 무조건 돌아온다고.
- 그러니까, 씩씩하게. 알지? 아빠는 널 믿는다.
개뿔.
무조건 돌아오긴.
한 달이 지나고, 반년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도.
아버지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다른 아저씨나 형들이 수색해 봐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아마 처음엔 나도 많이 힘들어했었던 거로 기억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날 선 반응을 했으며, 눈에는 원망이 가득 차 있었다.
그 당시 내 나이가 10살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지.
어쨌든.
난 적응이 꽤나 빨랐던 걸로 기억한다.
같은 처지의 형, 누나들, 동생들을 전부 챙겼고.
내 나름대로 생존 방법을 모사했었다.
‘물론, 그 짓도 금방 끝났지만.’
생각보다 사회는 빠르게 정상화되었고.
고유 능력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을 「헌터」라 부르며, 각 세계 정부들도 체계적인 던전 탐험 시스템을 구축해 갔다.
솔직히 이런 생각도 든다.
아버지가 그날.
밖에 나가지 않고 같이 숨어 있었다면.
지금도 같이 잘 살아계시지 않았을까? 하는.
“후우.”
밀려오는 안타까움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그 입김이 굉장히 차갑다.
‘응?’
차갑다는 감각을 느끼는 순간.
번쩍!
눈이 떠졌다.
* * *
“커허어억!”
눈을 뜨자마자, 엄청난 통증이 몰려왔다.
온몸에 감각이 없는 이질적인 상황에서도, 산소가 부족한지 가슴이 답답해져 왔고.
나는 뻐끔거리는 금붕어처럼 입을 벌렁거리며 공기를 찾았다.
“교, 교수님?!”
“주인!”
“마스터, 정신이 드세요?”
스흐으으읍!
숨을 들이마시고.
후우우우우!
뱉어내고.
“엘드린! 공기요! 공기를 좀 더 공급해 줘요!”
“하고 있어요. 기력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아서!”
“한 톨이라도 더 뽑아내야 해요!”
어지러웠다.
눈 앞에 펼쳐진 검은 배경에, 내 시야를 가득 채우는 뼈다귀의 두개골들.
시야가 흐릿해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를 들어보니 아린이랑 엘드린이다.
그렇다는 건.
‘산 건가……?’
나는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흐릿한 시야를 보고 있으면 괜히 멀미 나고 울렁거려서, 그냥 안정화될 때까지 안 보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교수님! 그거 아세요? 고대 마법이 왔다 갔어요! 정말 다행이에요.”
고대 마법?
그 SSS급 존재?
그 존재가 찾아왔다고?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지금은 좀 어지러울 수 있지만, 안정만 좀 취하면 무리 없이 나을 거래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
그렇기에, 나는 감각을 통해 내 몸을 관조했다.
마치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것처럼,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기분.
근육 한 줌 움직이는 것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어?’
무언가 다른 점이 있었다.
‘기존보다 기운이 빨리 돌아.’
일주천이라고 하던가?
배꼽 쪽으로 해서 앞으로 흐르는 혈을 임맥이라 하면, 엉덩이, 척추를 타고 오르는 혈을 독맥이라 한다.
마치 혈관이 확장되기라도 하듯, 태청심법의 기운이 임맥과 동맥을 빠르게 돌았다.
기존이 시냇물이었다면, 지금은 강물처럼 속도감 있게.
“교수님의 몸을 좀 바꿔놓았다고 했어요. 인간은 우주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합한 몸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어떤 세계에서는 몸의 구성을 바꾸어 진화시킬 수 있다면서…….”
바뀐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뼈의 구성이나, 형태가 기존의 것과는 달라진 느낌?
“끄으으…….”
비명과 함께 눈을 뜬 내가 아린을 바라보았다.
“교수님, 말하지 마세요! 아직 좀 더 안정을 취하셔야 해요!”
궁금했다.
자꾸 ‘고대 마법’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된 건지.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그런 내 마음을 알았을까?
“별거 없었어요.”
아린이 입을 열었다.
“갑자기 나타난 고대 마법이 지팡이를 들고 이것저것 휙휙 하더니, 교수님이 윽윽거리면서 꿈틀거리고. 그래도 그 이후에 교수님의 표정이 편해지긴 했어요.”
그러니까.
그 존재가 아무런 대가 없이 날 도와주었다는 거지?
델라일라의 시련에서 잠깐 만났던 게, 인연이라도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어쨌든, 운이 좋았다.
“흐욱, 후욱!”
가쁘게 내쉬던 호흡도 점점 안정을 찾았으며.
눈을 감았음에도 빙글빙글 어지럽게 도는 시야가 점차 속도를 줄였다.
“흐우우우.”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간신히 눈을 뜬 나는 엄청난 수량의 상태창을 발견할 수 있었다.
[‘투신’을 처리합니다.]
[성좌를 잡았습니다.]
[위대한 업적을 달성합니다.]
[축하합니다!]
[보상이 도착합니다!]
[당신의 만술(萬術) 등급이 S급으로 상승합니다.]
[당신의 고통 내성 등급이 SS급으로 상승합니다.]
[당신의 독섬(毒閃) 등급이 SS급으로 상승합니다.]
[당신의 무진(武進) 등급이 SS급으로 상승합니다.]
[SSS급 랜덤 박스를 획득합니다.]
우선, 성좌를 잡았다는 내용.
그리고 그 보상.
정수의 힘을 빌렸기에, 온전한 내 힘으로 잡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잡은 건 잡은 거였다.
‘고통스러웠으니까.’
나름 보상 얻을 자격 있다고.
눈을 좁힌 내가 다음 상태창을 읽었다.
[‘고대 마법’(SSS급)이 경이로운 존재에게 다시금 인사 올립니다.]
[‘고대 마법’(SSS급)이 경배합니다.]
[‘고대 마법’(SSS급)이 ‘고대 서약’은 아니지만, 힘을 사용해도 되냐 묻습니다.]
[‘화(火)의 정수’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화(火)의 정수’가 마음을 놓고 눈을 감습니다.]
[‘수(水)의 정수’가 눈을 감습니다.]
[‘목(木)의 정수’가 눈을 감습니다.]
[‘금(金)의 정수’가 눈을 감습니다.]
…….
고대 마법과 정수들의 기록이 남아 있었다.
다음은.
[‘고대 마법’(SSS급)이 당신의 육체를 파악합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선천지기의 회복과 골격의 변화.]
[‘고대 마법’(SSS급)이 해당하는 마법을 찾습니다.]
[‘고대 마법’(SSS급)이 ‘플레쉬 리포메이션’(SSS급)을 사용합니다.]
[경고! 경고! 경고!]
[페널티가 존재합니다.]
[‘고대 마법’(SSS급)이 무시하고 속행합니다.]
[기력이 영구적으로 1,000 감소합니다.]
[육체와 신경을 재구성합니다.]
[‘고통 내성’(SS급) 스킬이 ‘고통 내성’(A급)으로 하향됩니다.]
[골격이 변합니다.]
[당신은 좀 더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당신은 좀 더 효율적으로 기운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아아.
어쩐지 엄청나게 아프더라니.
기껏 SS급으로 올랐던 고통 내성 스킬이 오히려 한 단계 더 밑으로 하락했다.
성좌 조우 보상으로 얻었던 기력 1,000도 다시 반납해야 했고.
‘흠.’
그래도 나쁘진 않다.
없어졌던 선천지기를 되살린 데다가.
성좌를 잡아서 얻은 이득이 더 컸으니까.
게다가 몸도 이전과 달라졌다고도 하고.
“아린아…….”
상태창을 읽던 내가 조용히 아린을 불렀다.
아직까지 골골거리는 목소리였지만, 그래도 이제 좀 살 것 같은 느낌이었다.
“교수님!”
“내가 얼마나 누워 있었지?”
“……모르겠어요. 꽤 오래 누워계셨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죠. 그냥 깨어나신 것만 해도 다행이라구요.”
그녀의 감정이 느껴졌다.
뼈다귀만 아니었으면 눈물이라도 주르륵 흘렸을 것만 같은 느낌.
“네가 고생이 많았구나.”
내가 미소 지었다.
“아린이도 그렇고, 너희들 모두 다.”
나의 수하들.
의식 잃을 동안.
한 세계의 절대자급이었던 자들이 뭉쳐서 나 하나 살리겠다고 발을 동동 굴렀을 걸 생각하니, 웃기면서도 가슴이 따듯해진다.
“이제 돌아가야지.”
이번 던전은 진짜 역대급이었다.
예전 아란발론과 싸울 때보다 더 힘들었던 느낌.
빨리 돌아가서 쉬고 싶었다.
“…….”
둥실둥실 날아가는 소행성 위에서.
드넓은 우주를 보고 있을 때였을까.
우우웅!
허공에 무언가 생겼다.
붉은색, 푸른색, 녹색, 황금색이 뒤섞인 투명한 빚덩이였다.
[보상이 도착합니다!]
[축하합니다!]
[아이템, ‘정령왕의 의지’(SS급)를 획득합니다.]
[띠링!]
[해당 아이템은 직업 연관성이 있는 아이템입니다.]
“매개체구나.”
매개체 던전은 클리어할 때마다 상황에 맞추어 변형한다.
역시 이번에도, 새로운 것으로 변했고.
정령왕의 의지면…….
이번에 봉인 푼 뼈구의 것임이 분명했다.
‘다만.’
SS급이다.
이번 ‘무투가의 영혼’이 S급인데, 다음 건 SS급이다.
‘얼마나 어려워지려고.’
이번 던전이 말도 안 돼서였을까?
본성이 무모하고, 도전적인 나임에도.
솔직히 떨릴 수밖에 없었다.
‘뭐.’
그래도 일단은 받아야겠지.
고개를 끄덕인 내가 빛무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우우웅!
그러자 빛이 뭉치더니 자그마한 구슬로 변해 내 손바닥에 투욱! 떨어졌다.
[아이템 : ‘정령왕의 의지’(SS급)]
[등급 : SS]
[종류 : 매개체]
[설명 : 숨겨진 유적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는 구슬입니다.]
[효과1 : 던전, ‘정령계’를 개방할 수 있습니다.]
[효과2 : 헌터, ‘주동훈’에게 귀속된 아이템입니다.]
[효과3 : 해당 아이템은 헌터 등급 SS 이상부터 활성화 가능합니다.]
SS등급.
“후.”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S등급이니 열 수조차 없다는 게 왜 이리 다행인지 모르겠다.
지금껏 너무 빡세게 달려왔다.
당분간은 이 생각 저 생각 없이 푹 쉬고 싶었다.
‘이제.’
매개체 던전을 받았으니, 곧 있으면 시야가 흐릿해질 거다.
던전이 클리어됐으니, 본래 들어갔던 게이트로 돌아나가는 과정.
내가 다시 눈을 감았고.
몸 전체를 휘감는 기묘한 기분을 느끼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아이고.”
후우웅!
뺨 끝에 스치는 바람과 흙먼지.
입에 씹히는 모래알과 퀴퀴한 냄새.
내 시야에 보이는 광경은 핵폭탄에 휩쓸려 버린 부다페스트의 참혹한 모습이었다.
* * *
그 시각.
“와아아아아!”
“우와아아!”
지구, 그러니까 전 세계는 온 인류의 환호로 시끌벅적했다.
왜냐.
지금으로부터 약 30분 후!
전 세계인들의 축제이자.
지구 최대의 파티.
「세계 랭커 발표식」이 있는 날이기 때문!
두두두둥!
2023년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2024년의 새해를 맞이하는 그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