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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257화 (257/368)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57화

과유불급

“흐응.”

가만히 듣고 있던 김진아는 황당했다.

분명 처음엔 본인이 국유지 매입을 도와줄 수 있다며 살살 꼬시더니…….

이제 와서 다리를 꼰 다음 다른 곳을 알아봐라?

‘옛날 같았으면 비위를 맞췄을지도 몰라.’

김진아는 영리하다.

주동훈과의 첫 만남에서도.

그가 하위급 헌터가 아니라는 걸, 단숨에 알아챌 정도로 직관력이 뛰어났다.

그런 그녀가 시장, 신주혁이 무얼 원하는지 모를 리 있을까?

“아시다시피, 요구하신 그 국유지에 호수가 하나 껴 있습니다. 뷰가 쥑이는 호수라 이미 수많은 투자자가 눈독을 들이는 상황이라. 하하하.”

협조하라는 거다.

별천지가 원하는 땅을 얻기 위해서, 제 뜻에 따르라는 거다.

‘하지만.’

굳이?

김진아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졌다.

부드러운 미소가 아닌 싸늘한 미소가.

그녀는 집단 별천지(別天地)의 부길마다.

국가의 원수들조차 그녀가 온다고 하면 VIP 대접을 하며, 굽신거린다.

그럴 만한 위치에 있으니까.

‘힘’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이 늙은 정치인은 급변하는 시대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있잖아요, 시장님?”

“하하, 예. 말씀하시죠.”

“시장님은 제가 우습게 보이시나요?”

“……예?”

김진아의 직설적인 어투에 신주혁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어찌 실질적으로 별천지를 이끄는 분을 우습게 여기겠습니까. 하하.”

“그런데요.”

김진아가 손바닥을 쓱쓱 비비더니, 그사이에 바람을 후- 불었다.

마치 맷돌 손잡이인 ‘어처구니’가 상실했다는 듯한 제스처.

“왜 시장님의 그 더러운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저를 이용하려 하시는 거죠?”

“…….”

신주혁의 눈빛이 흔들렸다.

“뭐, 좋아요. 시장님이 도와줄 수도 있는 거고, 그 도움에 대한 대가를 줄 수도 있는 거죠. 비리나 청탁 같은 거? 솔직히 말하면,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싫어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그녀는 사업가.

길드이자 기업을 꾸려가는 자.

이득이 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그게 뭐 그리 어려운 거라고요.”

그런데.

그녀가 지적하는 것은 상대의 태도였다.

“설마 시장님께서는 제가 시장님의 허락을 받으러 이 자리에 온 거라 생각하셨나요?”

별천지의 재력은 이미 국가급이다.

의왕시 부지가 아니라, 의왕시 자체를 시세의 열 배 넘게 주고 살 수 있는 돈이 있다.

그런 자신에게 어설픈 갑질을 시도한다?

자존심을 세우려 한다?

별천지를 얼마나 만만하게 봤으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이건 나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우리 길마님을 무시하는 거야.’

세계의 영웅.

대한민국의 자랑.

김진아는 그것을 참을 수 없었다.

굳이 참지 않았다.

드르륵!

그녀는 다 마신 커피잔을 신주혁의 앞으로 밀었다.

“다시 한 잔 타 오세요, 시장님.”

그녀의 전신에서 맹렬한 기운이 주룩주룩 피어올랐다.

랭커가 아님에도, 랭커급 이상의 카리스마를 지닌 기세에.

“…….”

신주혁이 꼬았던 다리를 슬며시 풀었다.

‘미친.’

보이진 않았지만, 신주혁의 목덜미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허벅지는 저릿저릿했으며,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긴장한 것이다.

애송이라 생각했던 여자애한테.

신주혁이 비워진 커피잔을 힐끗 쳐다봤다.

저걸 타 오라는 말의 진의(眞意).

김진아는 다시 묻는 거다.

시청에서 시장에게 잡무를 시키는 것으로 묻는 거다.

자신에게 자존심 세울 거냐고.

그냥 굽히면 적당히 넘어가겠다고.

“지금…….”

신주혁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성은 안다.

김진아에게 덤벼봐야 자신에게 득 될 게 없다는 것을.

하지만.

갑질 정치인으로 살아온 그 세월이 참지 말란다.

자존심을 굽히지 말란다.

“나한테 협박하는 겁니까?”

신주혁은 커피 타는 법을 잊었다.

“자신감과 오만함은 한 끗 차입니다. 젊은 부길마님.”

벌떡 일어선 그가 김진아를 노려봤다.

대중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C급 헌터였다.

10년간 자잘하게 던전밥을 먹은 이력이 있었다.

온실 속 화초처럼 평탄하게 자라온 것은 아니란 말씀!

“어려서 잘 모를 수도 있는데, 아무리 잘나가는 집단이라 해도 이런 식의 협박은 화를 부를 수도 있는 법을 모르십니까.”

“글쎄요.”

빙긋 웃은 김진아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휴대폰을 꺼냈다.

“시장님이야말로, 절 무시하셔도 너무 무시하시는데요?”

그러고는 스윽.

화면의 파일 앱을 켠 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잘나가는 집단의 책임자가 이 정도 준비성도 없을 줄 알았나요?”

“그, 그건?”

신주혁의 동공이 확대됐다.

자글자글하게 적혀 있는 파일들.

- 포일동 개발비리 의혹 정리.

- 민간사업자 선정 금품 로비 의혹 정리.

- 인사특혜 및 채용 비리 의혹 정리.

- 선거 운동,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정리.

…….

‘어떻게 저런 걸……?!’

신주혁이 경악했다.

세상이 절대 알아서는 안 될, 묻어두었던 비밀들이 왜 저기 있을까?

‘그렇다는 건.’

으드득!

신주혁이 이를 갈았다.

‘이미 다 알고 온 거야?’

어쩐지.

혹여 녹음기라도 켜두었을까 봐 에둘러 말했음에도, 듣는 자세가 삐딱하긴 했다.

‘저 망할 년이…….’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수십 번 속으로 되뇌어도, 결국 그 화가 식도를 거쳐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이 개 같은 년이…….”

별천지 부길마, 김진아?

능력은 뛰어날지 몰라도, 헌터 등급을 따져봤을 때 E급도 안 된다고 들었다.

그런 게 겁도 없이 혼자 다닌다면?

“새파랗게 어린 게 아주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

신주혁이 외치며 덤벼들었다.

아무리 저게 의혹일지라도.

김진아 정도의 영향력 있는 자가 제보하면, 순식간에 검찰이 들이닥칠 거다.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도 죄를 만들어 뒤집어씌울 수 있는 게 검찰의 압수 수색인데.

죄가 많은 자신은 빠져나갈 틈조차 없을 터.

“아주 그냥 같이 죽자!”

신주혁은 이 기회에 알려주고자 했다.

잃을 게 없는 자가 가장 무서운 것임을.

부길마가 실종됐다 하더라도.

증거만 잘 인멸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살다 보니, 세상에 돈으로 안 될 게 없거든.

후우웅!

C급 헌터의 단단한 손아귀가 김진아의 목을 향해 뻗어 나가려 할 찰나.

스스슷!

미약하게 불어오는 바람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등장한 것은 그때였다.

등장함과 동시에, 무형의 기운이 신주혁의 몸을 꽁꽁 묶어버렸고.

그런 그의 목에 차가운 날붙이가 닿았다.

‘허억.’

신주혁이 속으로 경악했다.

옆에 나타난 자의 외형.

가죽 재질 옷에 단검.

깔끔하게 묶어 올린 흑발과 그 수려한 외모.

거기에 허리춤에 달린 황금색 명패까지.

‘제기랄.’

그녀를 모르는 자가 대한민국에 있을까?

암제(暗帝) 기소율.

세계 랭킹 95위로, 하이 랭커에 합류한 괴물.

그녀가 나타난 이상, 끝이다.

자신이 무슨 수를 써도 벗어날 방도가 없었다.

털썩!

다리가 풀린 신주혁이 바닥에 주저앉은 순간!

“신주혁! 신주혁! 거기 있는가?! 별천지 쪽에서 찾아왔다며!”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벌컥!

문이 열림과 동시에.

“아, 아니, 이게 무슨……?”

“도, 도지사님?”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경기도지사였다.

* * *

정적이 흐르는 시장실.

그곳에 온 인물은 도지사뿐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자랑, 별천지의 부길마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꾸벅.

인사하며 인사하는 단아한 여성은 바로 국토교통부 장관 곽연정이었고.

“안녕하십니까, 기재부 장관 성덕철입니다. 도지사에게 소식 듣고 모든 일정 뺀 채 달려왔습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다음 서열이라는 권력의 중심,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다.

‘켁.’

신주혁은 정신이 없었다.

갑자기 찾아온 세 거물이 김진아에게 고개를 숙이는 상황이라니.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이란 말인가?

“자네! 이런 중대한 사항이 있었으면 바로 보고했어야지!”

자신을 향해 호통치고 있는 도지사의 모습이 둘로 보였다.

어질어질했다.

“하아아, 이제야 말이 좀 통할 것 같네요. 괜히 지형 조사차 여기부터 왔다가 얼마나 답답했는지 몰라요.”

스슷!

기소율이 조용히 사라졌고.

자리에서 일어선 김진아가 옅은 숨을 내쉬며 웃었다.

그러고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세 분, 저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우해 주는 자에게만 대우해 준다.

그것이 별천지를 만든 후 정한 김진아만의 철칙이었다.

그렇게 다시 회담이 시작됐다.

김진아가 소파 한가운데 앉아 있고.

나머지 세 명이 자리에 앉은 채 의견을 조율하는 상황.

구석에 털썩 주저앉은 신주혁은 그제야 깨달았다.

- 설마 시장님께서는 제가 시장님의 허락을 받으러 이 자리에 온 거라 생각하셨나요?

이 말의 의미를.

이미 사전에 다 결정된 얘기였다.

그 정보가 자신에게 전달되기 전에, 김진아의 연락이 먼저 닿았던 거고.

“우리 국토부는 사실상 별천지가 원하는 어떤 지역의 땅이든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 천마신교의 뒤를 잇는 집단이니만큼, 차후 대한민국의 상징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기재부도 동의합니다. 국유지도 무상으로 지원 가능하다는 대통령님의 확답도 받아두었습니다.”

곽연정과 성덕철은 이미 오면서 얘기를 끝낸 상태였다.

별천지(別天地)는 대한민국에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집단이었다.

‘국가에서 랭커 하나를 귀화시키기 위해 들이는 돈이 얼만데.’

‘게다가 이번에 주동훈이 하이퍼 랭커를 달성하면서 브랜드 가치는 더 올랐어. 수많은 랭커들이 별천지 하나만 보고 귀화할지도 모르는 일이야.’

실제로.

집단이 강하면 해외 랭커들이 많이 편입된다.

마탑에 영국 마법사만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이미 별천지에 존재하는 해외 랭커만 셋이지 않던가.

1. 뇌명(雷鳴) 플로아.

2. 절대무쌍(絶對無雙) 막시밀리언.

3. 인도자(引導者) 카푸.

게다가 뇌명 같은 경우에는 이번에 세계 랭킹 74위에 오른 하이 랭커다.

국가급 인재.

대한민국에서는 아예 웃돈을 줘서라도 묶어놔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하하, 무료라니, 시원시원하시네요.”

김진아가 빙긋 웃었다.

“하지만, 어찌 제가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무료로 땅을 받아 가겠어요? 세금 혜택 등 여러 가지 대우받는 것도 많은데. 마음만 받을게요.”

“그러시다면?”

국토부 장관, 곽연정이 고개를 살짝 갸웃하자.

“3,000억.”

김진아가 대답했다.

“시원하게 나라에 기부하겠습니다. 매끄럽게 협조해 주심에 따른 가벼운 선물이라 생각하시면 돼요.”

“3, 3,000억이요?”

성덕철의 눈동자가 커졌다.

의왕시 50만 평 부지면, 대충 평당 30만이다.

아니, 지목이 대(垈)가 아닌, 임야(林野)이므로 가격은 평당 15만으로 떨어진다.

그렇게 하면, 750억 정도의 가격이 형성될 텐데.

3,000억이라니.

딱 4배 더 얹어서 사겠다는 말 아니던가!

과연, 별천지의 클라스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저희야 감사하지만…….”

“대신.”

김진아가 힐끗 옆을 바라봤다.

넋 빠진 신주혁이 있는 방향이었다.

“제가 청렴결백한 정치인을 좋아해서요. 앞으로 이곳에 터 잡으면서 많은 협조를 요구해야 할 텐데……. 흐음, 무슨 뜻인지는 알아들었을 거로 생각할게요?”

“아무렴요.”

성덕철이 단호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역시 느낀 게 많습니다. 과이불개(過而不改)라 하죠. 잘못을 알았으면 고치는 게 정치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 빠른 시일 내에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일벌백계하도록 하겠습니다.”

털썩!

힘 빠진 신주혁의 팔이 툭 떨어졌다.

과유불급.

지나친 욕심이 부른 화였다.

* * *

“후아암.”

광전사를 별천지 소속으로 받아들인 나는 공터 구석으로 이동했다.

복귀 후.

대부분의 정리가 끝났다.

이제 마탑주랑 연락해서, 서고의 책을 받아 번역하는 작업을 해야 하지만.

그전에.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후우.”

내가 옅은 숨을 내쉬며 손바닥을 비볐다.

눈앞에 놓인 빛나는 상자.

[아이템 : SSS급 랜덤 박스]

[등급 : SSS]

[종류 : 박스]

[설명 : 무작위로 SSS급 아이템이 등장하는 상자.]

[효과1 : 종류 불문 SSS급 아이템이 등장한다.]

이걸 열어봐야 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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