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68화
귀여워룡
쩌적!
나는 오늘 처음 알았다.
알 깨지는 소리가 이렇게 황홀하고 아름답게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드디어.’
그간 무수하게 기력을 쏟아부은 노력의 산물이 나타나는 걸까?
감회가 새로웠다.
저 안에 살아 숨 쉬는 생명이 내 기운으로 인해 태어난 거라니.
모성애까지는 아니겠지만, 무언가 특별한 감정이 내 가슴속에 싹 트는 기분이었다.
쩌저적!
“으음.”
알이 기력을 급속도로 빨아들이는 바람에 피로감이 몰려왔다.
눈을 감으면 그대로 푹- 잠에 빠져들 것 같은 느낌?
쩌적!
그래도 눈을 부릅뜬 채, 알의 부화 과정을 지켜봤다.
이윽고.
쩌어억!
신묘하게 생긴 알이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날개 달린 검은 생명체.
“아아.”
마침내 등장한 용의 현신에, 내가 옅게 탄성을 내뱉었다.
용족 중 최상위 포식자라는 파괴룡.
펄럭!
대략 건장한 사내 네 명 정도의 크기를 가진 비나사가 허공에 솟구쳐 날개를 펼쳤다.
- 키엑! 키에에엑!
후웅! 후우웅!
갓 태어나 힘겹다는 듯 날개를 펄럭거리는 녀석이 입을 벌리고 포효했다.
그 모습을 보며 드는 감정은.
‘아름다워.’
지금껏 거대한 용들을 보고 느꼈던 것들은 [무섭다], [간지난다], [위대하다] 등등의 감정이었는데.
비나사는 달랐다.
매끈한 가죽, 날카로운 발톱, 세련된 눈매까지.
다른 용들이 보세 옷을 걸쳤다면, 비나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떡칠한 느낌이었다.
덩치도 다른 놈들보다 작고.
기세도 미약하지만, 태생부터가 다른 느낌!
“세, 세상에…….”
옆에서 아린이 두 손을 꼭 모은 채 중얼거렸다.
“용의 탄생 과정이라니! 너무 아름답잖아요!”
그녀는 감명을 받았다.
마도세계(魔道世界)에는 용이 없다.
알에서 깨어난 생명체임에도 성좌와 동급의 격을 지닌 위대한 종족, 용족.
서고에서만 확인할 수 있었던 그 존재를 직접 눈에 담았는데, 어찌 영광스럽지 않으랴.
“아아, 저 영롱하고 찬란한 때깔 좀 봐요. 저게 가죽이야, 보석이야……?!”
아린이 홀린 표정으로 어린 용을 쳐다봤다.
- 크롸라라라라!
하늘을 향해 힘차게 포효하는 용족, 비나사를.
이윽고.
녀석이 100일 동안 자신이 품었던 것과 가장 비슷한 기운을 가진 존재, 즉 나를 응시했다.
콩닥, 콩닥.
그 시선을 느낀 내 심장이 미약하게 뛸 찰나.
[파괴룡 비나사가 당신을 응시합니다!]
[파괴룡 비나사가 당신을 부모로 인식합니다!]
- 끼악! 끼아아악!
쿠웅!
바닥에 내려앉은 녀석이 나에게 다가와 머리를 들이밀었다.
“어어?”
코를 들이대 킁킁대기도 하고, 복부에 머리를 비벼대기도 했다.
마치 어미를 만난 새끼 새처럼.
근데, 얘 용 아닌가?
왜 새처럼 울어?
“그래, 그래. 녀석아.”
꼬리를 흔들며, 그르렁거리는 녀석.
그게 너무 귀여워, 양손으로 머리를 마구마구 쓰다듬자.
- 그르러러러렁!
내 행동에 답하기라도 하듯 거칠게 콧김을 뿜어댔다.
기분 좋은 그루밍을 토해내면서.
그 모습을 넋 놓고 지켜보던 아린이.
“귀, 귀여워……!”
그 흉포한 귀여움을 참지 못하고 뒤로 발라당 넘어져 버렸다.
* * *
파괴룡?
무언가 잘못된 느낌이다.
이렇게 귀여운 녀석에게 파괴룡이라는 무시무시한 수식어를 붙이다니.
이번만큼은 시스템이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닐까?
[파괴룡 비나사를 길들입니다.]
[주의하세요!]
[파괴룡은 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극악무도한 존재입니다.]
[파괴룡 비나사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그르릉! 그르릉!
무릉도원 내, 산 정상.
아름드리나무 아래에 똬리를 틀고 그르렁거리는 녀석을 쓰다듬으며, 나는 녀석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 비나사]
[기력 : 9,999/9,999]
[고유 능력 : 파괴룡의 힘]
[종족 : 용족]
[등급 : SSS]
[성장 단계 : 초룡]
[힘 : ??] [민첩 : ??] [체력 : ??] [마력 : ??] [기술 : ??]
[보유 스킬]
-‘초룡의 육체’(Lv.Max)
-‘드래곤 피어’(Lv.Max)
-‘뉴클리어 브레스’(Lv.Max)
-‘초룡언’(Lv.Max)
“허어.”
감탄이 절로 나왔다.
기력부터 그냥 끝내준다.
‘9,999?’
내가 신살(神殺)급 아이템빨로 겨우 4,220을 달성했는데.
이놈의 용은 태어나자마자 내 2배를 넘어서 버렸다.
그뿐이랴?
등급도 시작하자마자 SSS급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성좌급 힘을 가지고 있다는 아린의 말이 딱 맞았던 것이다.
다만.
“초룡?”
초룡이 뭘까?
성장 단계라 쓰여 있는 것 보니, 초급 할 때 초(初)인 것 같은데.
보유 스킬도 봐보니.
초룡의 육체, 초룡언이란다.
- 키아아악!
내 궁금증을 인식했을까?
녀석이 고개를 들어 긁는 소리를 냈다.
동시에.
“아.”
이해됐다.
그냥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정보가 들어왔다.
녀석이 의지를 보내, 궁금증을 풀어준 거다.
- 용의 성장 단계는 총 3가지다. 첫째는 초룡, 둘째는 성룡, 셋째는 고룡. 다른 용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성장하는데, 파괴룡은 다르다. 파괴룡. 말 그대로 파괴를 위한 용이기에, 무언갈 많이 파괴할수록 빨리 성장하게 된다. 즉, 조건만 맞으면 지금 당장에라도 고룡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거다.
“대단하네.”
대충 게임이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경험치가 쌓이면 레벨이 오르는 것처럼, 충분한 만큼 ‘파괴 행위’를 하면 성장하는 것이다.
물론, 그 파괴하는 양이 상상을 초월할 것 같았지만.
‘어쨌든.’
개 사기 SSS급 용을 얻은 것 같다.
비나사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내 스킬.
[스킬 : 본 드래곤 스켈레톤]
[등급 : S]
[효과1 : ‘저주받은 네크로맨서’만 획득할 수 있는 스킬입니다.]
[효과2 : 기력 100을 사용하여, 용의 뼈를 흡수합니다.]
[효과3 : 소환 가능한 모든 스켈레톤의 뼈가 흡수된 용의 뼈로 치환됩니다.]
[효과4 : 용의 크기와 수량, 그리고 소환 가능한 스켈레톤의 수에 따라 해당 스켈레톤의 골밀도가 결정됩니다.]
이걸 쓸까도 언뜻 생각해 봤지만.
‘개소리고.’
지금 드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명품 스포츠카를 구매하면 곧바로 달려보고 싶은 것처럼.
저 비나사가 얼마나 센지 확인해 보는 것.
‘이제 쉴 만큼 쉬었잖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내가 찌뿌둥한 몸을 풀었다.
[헌터 : 주동훈]
[이명 : 스켈레톤 엠페러]
[기력 : 0/4,220]
비록, 기력이 단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이건 못 참지.’
어차피 용의 기력은 9,999 아니던가.
그렇다.
나는 당장 던전에 한번 놀러 가볼 생각이었다.
그것도 어느 정도 높은 수준의 던전으로.
* * *
그 시각.
멕시코 남동부 쪽의 작은 연방국 벨리즈, 그곳에.
쿠구구구……!
진동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어?”
“뭐, 뭐야!”
“지, 지진인가?!”
건물에 거주하던 벨리즈 국민들이 건물 밖으로 튀어나왔다.
얼마나 땅이 심하게 흔들리는지, 달리던 사람이 넘어졌고.
끼이이익! 콰앙!
달리던 차량이 건물 벽면에 부딪혔다.
적어도 수정 메르칼리(MMI) 진도 7 이상은 되어 보이는 지진.
벨리즈의 총리 조니 브리세뇨에게 급한 보고들이 쏟아졌다.
- 큰일이 벌어졌습니다!
- 지진인데, 평범한 지진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대피소로 피한 조니가 미간을 찌푸리며 설명을 요구했다.
“한두 번 있던 지진도 아닌데, 평범한 지진이 아니란 말에 다른 의미라도 있는가?”
- 그렇습니다!
- 본래 지진이란 게 맨틀끼리의 충돌, 즉 지각 변동 때문에 이루어지곤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대부분 진원이 바다 근처에 있었지요. 하지만 이번 지진은 진원의 위치가 좀 수상합니다!
총리라고 다 지구과학에 해박한 건 아니다.
하지만, 보고하는 내용이 심각하다는 것 정도는 인지했다.
“더 자세히 설명해 보게!”
- 그게……! 이번 진앙의 위치가 유카탄반도 위입니다! 그리고 그 규모가 점점 더 거세지고 있습니다. 예…… 그러니까, 마치 어떤 생물체가 꿈틀거리고 있는 것처럼요! 자세한 건 직접 가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러하니, 총리께선 영연방에 빠른 지원 요청을……!
쿠르르르릉!
점점 더 심해지는 진동에 전화 보고가 끊겼다.
“제길.”
총리가 이를 아득 갈았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일까?
눈을 부릅뜬 그의 손놀림이 분주해졌다.
* * *
한편.
“룰루.”
가면을 하나 쓴 채.
주변 S급 던전에 들어온 내가 속으로 미약하게 흥얼거렸다.
‘혼자 들어오고 싶었는데.’
협회로부터 S급 판정을 받은 던전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공정성 문제 때문에 각 길드에 입찰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 외 복잡한 절차들이 있기 때문.
물론, 별천지도 정당하게 S급 던전을 요구할 수 있지만.
이미 소속 랭커들이 퍼져서 들어간 바람에, 곧바로 갈 던전을 찾지 못했다.
‘다만.’
김진아가 협회장에게 잘 말해서 하나 얻은 곳이 바로 이 던전.
[던전에 입장합니다.]
[채팅창 - ‘드미르 공방’의 수신이 차단됩니다.]
[채팅창 - ‘드래곤 슬레이어 동기방’의 수신이 차단됩니다.]
황금 명패도 신원도 가린 채, 어느 한 길드에 끼어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다 김진아 덕이다.
그녀가 협회장을 잘 구슬려 협회 소속 헌터라는 명목으로 끼워주었기 때문.
- 마침 S급 던전 처음 뚫어보는 길드 있다고, 잘 노시면서 안전 좀 잘 부탁한다네요.
- 경험 쌓아야 하니까, 혼자서 막 휩쓸지도 말아달래요.
- 아, 그리고 그쪽 대장한텐 잘 말해뒀으니, 신원은 밝히지 않아도 된대요.
- 남 시선 싫어하는 길마님 성격 배려한 거죠. 헤헤.
김진아가 장소를 안내해 주면서 했던 말.
‘그래.’
어차피 용만 실험할 텐데.
지금 당장은 내가 누군지 모르겠지.
괜히 남이 입찰한 던전의 보상도 채가기 싫었고.
또한 하이퍼 랭커라는 이유로 헌터들에게 꺼드럭거리는 것도 싫었다.
내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실전 몬스터를 대상으로 한 파괴룡의 위력일 뿐.
차라리 모르는 헌터인 게 편했다.
그냥 때를 봐서 몰래몰래 확인해 봐야지.
“자자, 다들 정신 차리자고! 첫 S급 던전이야! 소중한 기연을 맞이할 수 있는 만큼 위험도 크다 이 말이야!”
짝짝!
리더로 보이는 자가 손뼉을 쳤다.
나름 중견 길드인 「바다」의 S급 헌터.
그의 앞에는 또 다른 일곱 명의 S급 헌터가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연속적인 지진으로.
멕시코, 과테말라, 온두라스 등의 벨리즈 주변국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급히 소집했다.
특히 과테말라와 벨리즈는 영토 문제로 분쟁이 있었으나.
-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오!
- 지진이 이렇게 계속되면 카리브해 주변국들은 다 망하고 말 거요!
- 상황이 심각하니 일단 손잡으시오!
주변국 원수들의 호통으로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회의실에서 한 해양 전문가가 급하게 브리핑했다.
- 진원 근처를 스캔해 보니, 확실히 거대한 생명체가 있었습니다!
- 아직 정체를 파악할 순 없지만, 던전에 살고 있을 법만 몬스터가 분명합니다!
- 지표 밑에 던전 브레이크 현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추측입니다!
괴수의 등장.
그로 인한 카리브 주변국들의 위험.
“제기랄.”
국가 원수들이 신음을 흘렸다.
“어찌 또 이런 일이……!”
“그러게 말이오. 헝가리 괴수 사건이 끝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이걸 어쩐단 말이오!”
헝가리에 출현한 괴수.
그리고 그 위에 쏘아졌던 핵.
한 국가가 멸망 가까이 간 사건이 발생한 지 고작 반년이 안 되었는데, 또 비슷한 위기가 펼쳐진 것이다.
쿠구구구……!
지진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거세졌다.
규모 7에서 8, 종국에는 메르칼리(MMI) 기준 대지진 단계에 들어서는 9까지.
- 이대로 두면 안 됩니다!
- 진도 10을 넘어 11, 아니면 12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되면 정말 전 세계에 대재앙이 들이닥치는 겁니다!
- 주동훈! 스켈레톤 엠페러 주동훈을 불러야 합니다! 그는 영웅이잖아요! 이번에도 도와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변국뿐만 아니라, 세계 정부들이 발칵 뒤집혔다.
상황이 심각해지면, 카리브해가 아니라 지구 전체가 재앙을 맞이할 수 있겠다는 일부 전문가의 연구 결과 때문이었다.
게다가.
몇몇 지원 간 S급 헌터들의 증언으로 인해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 과거 헝가리에 참가했던 S급 헌터입니다……. 지금 느껴지는 기운은 그 당시 검은 괴수보다 훨씬 막강합니다!
- 가까이 가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힘이었습니다……! 저, 절망적입니다! 혹시 세계 종말이 오는 걸지도……!
- 랭커, 세계 랭커들을 전부 소집해야 합니다! 하이퍼 랭커들까지요!
결국, 세계 헌터 협회 역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각국 협회장들과 랭커들은 모두 미국으로 모여주세요.”
세계 헌터 협회, 총수이자 하이 랭커.
랭킹 20위, 명월여신(冥月女神) 아이라.
그녀가 전 세계 랭커들에게 명을 내렸다.
“전 지구적인 자연재해입니다. 지금부터 헌터 협회에 소속된 각국 랭커들은 세계 헌터 협회의 통제를 따라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