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278화 (278/368)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78화

같은 방법으로 죽이면 되는 거잖아

콰가가가가가가!

휘몰아치는 용의 브레스 소리가 귀를 긁었다.

비록 우리를 향하지 않은, 허공에 쏘아진 브레스였지만.

그 위력만큼은 미친 수준이었다.

“끄, 끄아아악!”

“뜨거워! 아파!”

“막아! 실드, 실드 좀 더 보충해 줘!”

발사된 것, 그 자체만으로도 랭커들은 크나큰 충격을 받아야 했다.

그뿐이랴?

“요, 용의 머리가 내려오고 있다!”

“막아!”

“아니, 뭘 막아, 미친놈아! 그냥 공격을 계속 퍼부어라! 목을 내리지 못하게 해!”

쿠콰가가가가!

랭커들이 본능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알았다.

‘저게 내려오는 순간, 다 끝장이야.’

‘모두가 녹아내릴 거야……. 우리한텐 저 잔 숨결마저도 버겁다고……!’

‘공격해야 해. 살라면 밀어내야 해!’

생명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자기보존의 본능이 일어났다.

각자 자신이 끌어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비장의 무기를 용의 목을 향해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용에게 위대한 스미스 왕가의 위력을 보여주거라!”

마왕의 외침과 함께.

[중급 마왕 ‘잭 스미스’가 마왕의 힘을 개방합니다!]

[휘하의 고대 마물들과 마계 귀족들이 일정 시간 소환됩니다!]

쩌어어억!

허공이 기괴하게 갈라 벌어졌다.

마치 괴수가 입을 벌리듯, 벌어진 공간에서 마물들과 마족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키에에엑!

키아아아!

흉측하고 우스꽝스럽게 생긴 괴수들이 나타나 용에게 돌진하는 광경이란.

누가 선(善)이고 누가 악(惡)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유연하게 낭창거리며 용의 몸에 칭칭 감기는 마물들과.

각종 마계의 기술들을 퍼붓는 수십 마리의 마족들.

- 캬아아악! 이 버러지 같은 놈들이……!

애꿎은 하늘에 브레스를 뿜어낸 용이 울분을 터뜨렸다.

자신이 가진 최강의 무기를 타이밍 좋게 뺏겼다.

그게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어도, 상황이 아니꼬운 건 사실이다.

- 고작 머리 한번 젖혔다고 이겼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크롸라라라라라!

용이 엄청난 기세로 포효했다.

그 포효에 담긴 드래곤 피어는 이곳 모두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동물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본능적인 공포.

하지만.

저 허공에서.

하세라의 발이 움직인 것은 그때였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보법(天魔步法).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쾅! 쾅! 쾅! 쾅! 콰앙!

마치 하늘에 연달아 천둥이라도 치듯, 무수한 발걸음이 온 지상을 압도했다.

갈라진 땅이 흔들리고, 지진이 일어났다.

아아.

보법(步法).

이런 걸 보법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내면의 공포를 자아내게끔 하는 드래곤 피어를 그냥 기세로 찍어 누른다.

만약 저 보법의 기세가 랭커들에게로 향했다면?

하이퍼 랭커 미만의 모든 랭커들이 그대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렸을지도 모르는 위압감이었다.

“미친, 역시 하세란가?”

“……고작 발걸음으로 용의 기세를 상쇄한다고?”

“후, 덕분에 숨쉬기 편해졌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총 8,888마리 스켈레톤 군단의 집중포화와.

도망치지 않고 남은 200여 명의 랭커들까지.

“이거…….”

“해볼 만하겠는데?”

“흐아아아앗! 그래, 해보자! 그깟 용! 우리도 잡아보는 거야!”

랭커들의 가슴속에 희망의 싹이 피어올랐다.

답도 없는 상황에서 나름 반전된 상황에 무언가 심장이 들끓었다.

몸이 뜨거워졌고,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었다.

“그래, 우리 랭커잖아? 남들과는 다르잖아?”

“맞아! 세상에 보여주자고! 지구를 수호하는 건 지수룡이 아닌, 우리 랭커라는 걸!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라는 걸!”

공포가 용기로 바뀌고, 좌절이 희망으로 바뀌었다.

그래.

아무리 용이 강력하다고 해도.

마계의 마왕이 돕는데.

저 강인한 천마가 돕는데.

스켈레톤 엠페러가 돕는데.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 클클. 가소롭구나.

물론.

콰가가가가가가!

용의 힘은 저들의 희망을 단숨에 뭉개버렸다.

- 그래, 정했노라. 내 이 세상에서 너희 종족의 씨를 말려주마!

용언(龍言).

인간들의 마법과 달리 어떠한 주문이나 마력의 준비 없이 그저 말로 행해지는 언령 마법이 펼쳐졌다.

하나만 펼쳐져도 도시가 붕괴될 법한 고위급 마법들이 무수히 떨어졌다.

쿠우우우우우우!

요동치는 대지가 쩍쩍 찢어졌고, 그 바닥에서는 세찬 용암 기둥이 우수수 솟구쳤다.

랭커들을 무섭게 감싸 안는 용암과 허공을 물드는 아름다운 마법은 그야말로 장관에 가까웠다.

‘이건…….’

창을 들고 공격을 퍼붓던 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끔찍했다.

정말 끔찍할 정도로 강했다.

아무리 마왕이 강하고, 천마가 미쳤더라도.

고룡급 용에게는 안 된다.

저 봐라.

마물들도 그냥 닭가슴살 찢기듯 부스러지고 있지 않던가!

‘하지만.’

분명히 희망은 있다.

그때와 상황이 비슷하지 않던가?

나는 즉시 시야를 돌려 채팅창을 펼쳤다.

[‘채팅창’ 이름 - 드래곤 슬레이어 동기방]

[인원수(7/7)]

용을 잡은 경험이 있는 자들이 모인 곳.

[스켈레톤 엠페러(Skeleton Emperor) : 다들 가능하시면 제가 있는 곳으로 모여주세요.]

곧바로 채팅을 쳤고, 몇 초가 지나지 않아서 답변이 왔다.

[공간술사(Spacian) : 저쪽에 보이네. 기다려, 바로 간다. 다른 애들도 다 데려가면 되는 거지?]

[물의 마녀(Water Witch) : 저는 마탑주님이랑 같이 있는데……! 무슨 일이에요?]

[절대무쌍(絶對無雙) : 자네, 설마……?]

예, 맞아요.

그때도, 지금도 같은 고룡급인데.

똑같은 방법으로 죽이면 되는 거잖아요?

[공간술사(Spacian) : 맞아, 지금으로선 그것밖에 답이 없어.]

[물의 마녀(Water Witch) : 알겠어요. 마탑주님도 이해해 줄 거예요. 그나저나, 왠지 이번 용은 그때보다 더 미친 것 같지 않아요?]

[공간술사(Spacian) : 인마, 그때랑은 다르지. 그때는 두 놈끼리 붙어서 거의 죽음까지 갔던 놈들이잖아?]

[물의 마녀(Water Witch) : 그건, 그렇네요.]

과거 팀원들이 내 옆으로 이동한 것은 10초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지잉! 지이잉!

블라디미르가 공간을 열어 모두를 이동시켰기 때문.

“이렇게 다시 모인 건 오랜만이네, 팀장?”

여유롭게 나타난 공간술사가 씩 웃었다.

그 뒤를 따라 나온 올레나는 긴장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때랑 똑같이 하면 되는 거죠?”

“예.”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뽀르르륵!

청량한 물줄기가 내 몸을 감쌌다.

올레나의 수(水) 속성 보호막이었다.

용의 몸에 침투하는 걸 막아주는 데다, 산소까지 공급해 주는 특별한 마법.

“근데 이번엔 그때와 다를 수 있어요. 그 당시 아란발론은 훈이 들어갈 것 자체를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지금 저놈 보세요.”

올레나가 울부짖고 있는 용을 가리켰다.

용은 마법을 펼칠 뿐만 아니라, 마탑의 마법들을 동시에 디스펠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속도의 멀티태스킹이에요. 괜히 마법의 종주가 아닌가 봐요. 준비하는 즉시 다 취소된다니까요? 그때보다 오히려 마법을 쓰는 자들이 많아서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좀 애매해지는데?”

블라디미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까지 디스펠 당해본 적은 없지만, 이동 중에 취소라도 된다면…… 으으, 끔찍하잖아?”

몸통이 분해되는 걸 상상했는지, 블라디미르가 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뇨.”

내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 위험 요소를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누군가의 안전을 따지기엔 시간이 너무도 촉박할뿐더러, 여기에 위험하지 않은 랭커는 단 한 명도 없다.

“그건 그렇지만…….”

“알잖아요. 제가 무슨 말 할지.”

최악의 경우, 죽기밖에 더하겠느냐는 말.

역시 무모(無謀)는 내 삶이요, 트레이드마크였다.

내가 다시 용을 바라보았다.

마왕과 천마, 그리고 마탑주가 힘쓰고 있지만.

인류의 종말은 시간문제였다.

“제가 들어가서 내부를 뒤흔들어놔야, 다른 하이퍼 랭커분들도 제대로 타격을 넣을 거예요.”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흔드는 것 하나는 자신 있었다.

스켈레톤을 소환해도 되고, 독무(毒霧)를 풀어도 되는 거니까.

“젠장, 좋다고! 카푸, 브리핑!”

블라디미르의 외침에 카푸가 답했다.

“천리안으로 본 좌표는 중심부 좌측 아래, 직경 10m 쪽이다.”

“그때랑 똑같구만? 그래, 드래곤 슬레이어도 해본 놈이 하는 거지!”

중얼중얼.

블라디미르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주문을 외웠다.

화르륵!

나 역시 신살(神殺) 창을 부여잡고 준비했다.

잠깐의 시간이 흘렀을까.

“팀장, 무운을 빈다.”

후웅!

휘둘러지는 그의 지팡이가 어딘지 저번과 오버랩된다고 느껴지는 그 순간.

번쩍!

시야에 빛이 튀었다.

* * *

- 크크크, 벌레들. 그렇게 기어오르고 발악해 보아라. 결국, 너희들이 맞이할 것은 죽음이니.

지수룡이 웃었다.

그래, 사실 마음속으로 조금은 인정했다.

설마 자신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일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차원을 연결해 이계의 생물들을 쏟아내는 능력은 확실히 놀라웠고.

저런 열등한 생명체의 작은 몸뚱어리에서 성좌와 견줄 법한 기세가 뿜어져 나올 때도 신기하긴 했다.

하지만.

놀아주는 것도 여기까지다.

- 안 된 일이지만, 이제 그만 다들 뒈지거라.

쿠과가가가가!

용의 말이 끝나는 순간, 온갖 마물들이 폭죽처럼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작은 놈도, 커다란 놈도.

예외는 없었다.

- 너도.

콰드득!

허공에 날던 용이 발톱을 살짝 움켜쥐자.

“……!”

콰가가가가!

하세라와 마탑주의 방향으로 칼날 바람이 쏟아졌다.

그냥 바람이 아닌, 본인의 발톱처럼 날카롭고, 본인의 무게처럼 무거운 바람이었다.

- 막을 수 있으면, 막아보거라.

브리아스는 확신했다.

개미를 하나하나 찍어 눌러 죽이듯.

광역기가 아닌, 한 놈 한 놈 조지다 보면 무조건 자신이 이길 거라는 점을.

하지만.

- 음?

그 순간,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본능처럼 찾아오는 이질감과 위화감.

- 설마.

우우웅!

집중한 용이 순간적으로 마력을 펼쳐, 주변을 탐색했다.

그 순간, 절대 있을 수 없는 곳에서 막대한 기력의 파동이 느껴졌다.

그곳은 다름 아닌 자신의 몸속.

- 크롸라라라라라!

분노한 지수룡이 포효했다.

감히.

하등한 종족이 자신의 몸속에 기어들어 와?

용은 용납할 수 없었다.

- 무언가 수를 써보려 한 것은 가상하나, 미안하군. 그 수는 네게 악수가 될 것이니.

마법의 종주인 용은.

보이지 않는 상대를 대상으로도 스킬을 날릴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에 용이 준비한 마법은 바로.

‘파워 워드 킬’(SSS급).

근거리의 살아 있는 생명체 하나를 이유 불문 즉사시키는 고대 마법.

그 용마저도 1년에 한 번밖에 쓰지 못하는 희대의 사기급 마법이었다.

고작 저런 종족에게 사용하기엔 살짝 아쉽지만, 용은 용 나름대로 다급했다.

그 위치가 하필 자신의 심장 부근이고.

기운의 양을 파악건대, 꽤나 큰 데미지를 입힐 수도 있을 것 같기에 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 기생충 같은 것. 잘 가라.

브리아스가 자신의 몸속을 향해 주저 없이 마법을 날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