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79화
파워 워드 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야.
쿠구구구! 쿠르릉!
용의 장기가 꿀렁이는 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블라디미르의 공간술이 성공했다는 것.
“좋아.”
후웅!
신살(神殺) 창을 휘두르며 자세를 잡은 내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바로 절대자들을 소환하는 일이었다.
후드드득! 후두둑!
제법 넓은 공간이었기에, 녀석들이 무리 없이 소환되었다.
물론 주변에 빛이 없어 그 모습이 보이진 않았지만, 다 느껴졌다.
섀도우 셰퍼드와 했던 혹독한 훈련이 어디 간 게 아니거든.
“주군. 저곳에다 태양연격을 사용하면 되겠습니까?”
쿠구구구……!
엄청난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는 곳을, 태양이가 창으로 가리켰다.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뜻하시는 대로 길을 낼게요, 주인님.”
먼저.
창을 든 태양이와 활을 든 엘드린이 내 의지를 따랐다.
태양창의 ‘태양연격’(太陽連擊).
그리고 엘드린의 ‘월광낙하’(月光落下)는 한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스킬 자체에서 ‘빛’을 생성한다는 것.
아무리 내 감각이 극도로 발달했다 한들, 시야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파바바바밧!
태양이의 창이 번쩍였고.
슈슈슈슝!
엘드린이 쏜 화살이 빛과 함께 포물선을 그렸다.
시뻘건 용의 피와 꿀렁이는 장기가 보였다.
역시 기존에 해본 녀석들이라, 별다른 조정 없어도 잘한다.
다음은.
“아린아.”
“예, 교수님.”
“여기서 저 심장에 가장 효과적으로 닿을 수 있는 좋은 마법이 뭘까?”
마도세계 4대 마탑주, 엘로이즈 아린의 지혜를 빌린다.
“아니, 잠깐만요……. 교수님.”
아린이 심각한 표정으로 손을 올린 것은 그때였다.
응? 갑자기?
“이건…… 용언 마법이 아닌, 고대 마법의 냄새인데……. 이런! 다, 다나!”
“예?”
옆에 있던 다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빨리! 교수님께 광휘를 둘러요! 어서!”
‘광휘’(Lv.5)는 약 5초 동안 대상을 ‘무적’ 상태로 만들어주는 다나의 사기 스킬.
갑자기, 그걸 왜……?
“빨리요!”
다나가 나와 눈을 마주쳤지만, 내가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아린이가 그렇다면…….
뭐, 이유가 있겠지.
* * *
엘로이즈 아린.
전 우주 마탑 역사상 최악으로 평가받는 마탑주였던 존재이자.
고대 마법(SSS급)에 가장 근접한 추종자.
스스스스…….
그렇기에 그녀는 분명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분명…….’
후각으로 느껴지는 향기가 아니다.
고대 마법의 추종자로서 느끼는 그분의 존재감이다.
서고의 냄새.
그것이 주는 편안함이 과연 용의 내부에서 느껴질 수 있는 부류의 것일까?
‘아니, 절대.’
아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수룡 브리아스의 마법은 지금껏 지켜봤다.
그것은 용언마법.
고대 마법과는 결이 달랐다.
오랑우탄과 고릴라가 다른 것처럼.
같은 마법임에도 종이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
시전하기 전부터 주변의 공기를 꽁꽁 얼어붙게 할 정도로 숨 막히는 마법.
게다가 보랏빛 마나가 기류를 맴도는 마법이라면…….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은 딱 하나였다.
‘파워 워드 킬.’
실제로 본 적은 당연히 없고, 서고에서만 읽었던 마법.
- 단일 대상을 죽이는 마법.
- 제대로 맞으면 성좌마저 소멸시킬 수 있는 즉사기의 최고봉.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아린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제야 만족스러운 생활을 보내고 있는데.
그게 다 교수님 덕인데.
‘교수님이 죽는다고?’
아린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생각이 빨라졌지만, 극도의 집중상태로 들어가면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침착해야 한다. 침착해야 해.’
일단은 다나의 광휘로 5초라는 시간을 벌어뒀으니.
그 시간 안에 뭘 어떻게든 해야 한다.
교수님 곁에 다나라는 절대자가 있다는 게 천운이었지만.
‘고작 광휘로 파워 워드 킬을 벗어날 순 없어……!’
벌써 보라색 마나가 벌써 교수님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교수님 곁을 지키는 하얀 광휘가 사라지면 급속도로 침투할 테고, 그리하면…….
즉사(卽死).
그 자리에서 바로 죽는다.
똑딱, 똑딱!
초 단위의 시간이 흘렀다.
5초라는 여분의 시간이 4초가 되고, 그다음은 3초가 되었다.
‘파워 워드 킬’(SSS급)이 무서운 게 그거다.
아무리 ‘무적’ 상태라 한들, 한 번 지정하는 순간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않는다.
회피기? 반사기? 무적기?
다 필요 없다.
그 모든 것을 부수고 들어가는 스킬이 바로 파워 워드 킬인 것이다.
즉, 광휘도 5초의 시간을 벌어줄 뿐, 그 이상의 무언가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런…….’
아린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제 2초가 남았는데, 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방법은.
포기할 수밖에 없는 걸까?
아무리 그녀가 고대 마법의 추종자라 한들, 용이 펼치는 SSS급의 마법을 막을 순 없다.
‘다만.’
아린의 시선이 보라색 마법 ‘파워 워드 킬’에 닿았다.
그 냄새.
저번에 우주에서 잠깐 마주했던.
시커먼 두건을 쓴 자의 향이 느껴졌다.
- 반갑구나, 아이야.
다정한 목소리로 자신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그 냄새가.
‘제발.’
이제 1초뿐이 남지 않았다.
‘고대 마법이시여.’
움직여 줘.
저 파워 워드 킬의 대상을.
교수님이 아닌 내게로 바꿔줘.
아린은 파워 워드 킬의 위험성을 잘 알았다.
그게 자신에게 향한다면 언데드(Undead)라 할지라도 죽는다.
죽지 않는 종족이라는 공식마저 무효화하는 마법.
그게 유형화되어 있는 육체이든, 무형화된 영혼이든, 닿으면 소멸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교수님이 없으면 자신은 죽은 몸.
이미 교수님은 죽어버린 자신의 삶을 다시 되살려 준 생명의 은인이었다.
‘제발, 고대 마법님……!’
아린이 이를 악물고 외쳤다.
‘저 아시잖아요. 저 좋아하시잖아요. 저는 알아요. 느껴진다고요. 제발 제 부탁을 들어주세요.’
모든 고대 마법은 ‘고대 마법’(SSS급)의 의지를 담는다.
용언 마법을 쓰는 용.
충실한 고대 마법의 추종자인 자신.
‘둘 중의 하나. 선택하란 말이에요……!’
다나가 된 것처럼, 두 손을 부여잡고 비는 순간.
스르릇!
사라져 가는 광휘를 뒤덮고 있던 보라색 기운이, 아린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시전 대상이 자신으로 바뀐 것이다.
“커헉!”
아린이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교, 교수님……!”
동시에 용의 뼈임에도 무너져가는 육체.
파스스슥!
뼈가 가루가 되어 스러져 가면서도.
아린은 감사했다.
‘고마워요. 고대 마법이시여…….’
어린 시절.
서고를 통해 자신에게 우주의 신비를 알려준 존재.
그렇다.
아린에게 고대 마법은 아비였다, 어미였다.
부모였다.
‘저는 당신을 존경했어요.’
아린의 의식이 멀어져 가는 그 순간.
그녀는 미처 알지 못했다.
보라색 기운이 꿈틀거리며, 변형되는 것을.
* * *
“아린……?”
광휘가 지나간 5초라는 짧은 시간.
그 시간 동안 나는 아린의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나의 스켈레톤.
영혼과 감정을 공유하니까.
“안 돼!”
내가 큰소리로 외쳤다.
교수님을 외치며 스러져 가는 그 모습.
아린은 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영혼을 바쳐가면서까지 날 구하길 원했다.
그 말은.
내가 이곳에 들어오는 바람에, 나 대신 아린이 죽었다.
‘피워 워드 킬……?’
용이 쓴 이상한 마법 때문에, 나의 아린이가 바스러진 것이다.
으드득!
이가 씹혔다.
눈이 천천히 실그러졌다.
콰드드드드……!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내 몸 밖으로 분출되었다.
열이 뻗쳤다.
침착해야 하는 순간임을 알면서도, 이 분노를 해결하기가 싫었다.
그래도 괜찮다.
분노란.
인류가 가진 최고의 부스터 중 하나이니까.
“넌…… 뒤졌어.”
화르륵!
내가 창을 휘두르며 미친 듯이 달려 나갔다.
원래는 격투가가 써야 할 스킬을 창으로 휘둘렀다.
만술(萬術).
비기(祕技).
무진(武進).
콰가가가강!
신살(神殺) 창의 예리함은 태양이와 엘드린이 어렵게 부숴놓았던 게 무색할 만큼, 시원하게 용의 내부를 갈라버렸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순간적으로 거기에 독섬을 섞고 싶단 생각을 했다.
어떻게든 저 빌어먹을 용 새끼한테 최대의 고통을 선사해 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일까?
만술의 비기를 연격 하나하나마다 담는 것.
내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만술(萬術).
비기(祕技).
융합(融合).
독섬무진(毒閃武進).
다섯 연타음이 끝난 이후.
제대로 헤집어져서 난장판이 되어 있는 용의 내부 속, 심장에다가.
쑤아아아아아아!
미친 듯한 독섬 폭격을 쏟아냈다.
콰가가가가가!
분노하고 있지만, 찌르기마다 간결하면서도 정확하게.
모든 독섬(毒閃)의 에너지가 손실 없이 전부 다 들어가도록.
끓어오르는 분노를 모조리 쏟아부었다.
* * *
지수룡(地守龍).
브리아스가 당황했다.
- 뭐지?
자기 내부에 들어온 망측한 자를 처단하기 위해 ‘파워 워드 킬’(SSS급)까지 꺼내 들었다.
SSS급, 그것도 고대 마법은 용이라 할지라도 꽤나 마력을 소모해야 하기에.
나름의 출혈을 감수하고 쓴 것인데.
- 통제를 벗어났어?
마력에 민감한 종족답게, 용은 바로 느낄 수 있었다.
분명 대상이 바뀌었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파워 워드 킬’이라 부를 수도 없는 미묘한 마법으로 변질되었다.
- 어떻게……!
브리아스는 믿을 수 없었다.
고작 인간 따위가 용조차 버거워하는 고대 마법을 변형시킬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쿵! 쿠구구궁!
- 끄하아아악!
심장 부근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용의 뼈와 피부가 단단하다지만, 그것은 내부를 지키기 위함이다.
이미 내부가 뚫려 버린 용은 당황하는 것 말고는 할 수가 없었다.
파워 워드 킬마저 막힌 마당에 무엇을 하겠는가!
브리아스는 답답했다.
숨이 턱 막혔다.
바깥에는 벌레들이 미친 듯이 공격하고 있지.
내부에는 웬 기생충 같은 놈이 심장을 파먹고 있지.
어떻게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콰가가가가가!
더 힘을 내어 마법을 쏘아내 봐도.
안에 있는 놈의 중심이 흐트러지도록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난리를 쳐봐도.
- 끄악, 끄아아악!
고통은 가중될 뿐이었다.
상처는 벌어질 뿐이었다.
- 이건.
브리아스는 인정해야 했다.
자신이 방심했음을.
인류는 열등한 종족이 아니었다.
용족처럼 고고하게 독존(獨存)하는 종족이 아닌, 단합하는 종족이었다.
하지만.
너희도 희망에 찰 생각 하지 말아라!
나는 용이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가장 강하고 아름다운 종족이란 말이다!
후웅, 후우웅!
지수룡이 있는 힘껏 날갯짓했다.
땅이 아닌, 하늘 위로 더욱 솟구쳤다.
- 끄흐윽, 내가 죽더라도, 혼자 죽지는 않을 터이니.
구름을 뚫고도 더욱 위로 올라간 용이 천천히 아래를 오시했다.
내부에 충격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그리고.
쩌억!
입을 벌렸다.
그렇다.
용은 마지막 있는 생명력까지 끌어내어, 브레스를 쏠 심산이었다.
이번엔 애꿎은 하늘이 아닌, 지상으로 말이다.
* * *
고통스러워하는 용.
그 이후, 하늘로 솟구치는 용.
그것을 바라보며.
“……이건.”
한창 싸우던 마왕 잭 스미스의 동공이 커졌다.
저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던가.
“정말로 성공했어?”
스켈레톤 엠페러가 누군가를 모아놓고 뭐라 뭐라 떠드는 소리는 들었는데.
그냥 뭐라도 해볼 것처럼 말하길래 넘어갔었다.
근데 그게 정말로 성공할 줄이야.
“……!”
허공에서 유려하게 검격을 펼치고 있던 하세라 역시 놀랐고.
“역시…….”
마법사들에게 마력을 지원받으며 계속 마법을 퍼붓던 소피아도 탄성을 내질렀다.
“내가 말했잖아. 우리 스켈레톤 엠페러, 대단한 녀석이라고.”
스슷!
스스슷!
빅3의 수장들이 한 곳에 모여서 허공을 바라봤다.
“과연 명불허전이야.”
이제 피를 흘리다 못해, 한 십 년은 늙어 보이는 마탑주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 철옹성 같은 용을 뚫고, 한 방 먹이다니.”
“한 방 먹인 정도가 아니다.”
마왕이 중얼거렸다.
“용의 기운이 폭주하고 있는 게 느껴지는가? 이건 완벽한 빈틈이 생겼다는 방증이야.”
“맞지.”
소피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저 끔찍한 지수룡이 괴성을 지르는 것도 처음이었다.
주동훈은 지금.
마왕과 천마도 하지 못한 기행을 해낸 것이다.
“하지만, 아직 방심할 때도 아니지.”
마왕이 허공을 바라봤다.
그는 느꼈다.
용이 최후의 사투를 벌이려 함을.
어쩌면 이 유카탄반도를.
아니, 지구 전체를 멸망케 할 만한 짓을 벌일 수도 있었다.
- 올라가야 해.
휘리릭!
검을 휘둘러 허공에 잔상으로 글을 새긴 하세라가 먼저 하늘로 치솟았다.
“나도…….”
마탑주가 지팡이를 꽉 부여잡으려는 찰나.
“아니.”
마왕이 고개를 흔들었다.
“쉬어라. 그쯤 하면 됐다.”
“……하지만.”
마왕은 마탑주의 상태를 단박에 꿰뚫었다.
대단한 정신력으로 무너지는 육체를 붙들고 있음을 잘 알았다.
인간이 마법으로 마법의 종주를 상대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저 위는 나와 천마, 그리고 엠페러가 맡을 테니…… 마탑주는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을 찾아라.”
말을 마친 마왕은 스슷! 허공에서 사라졌다.
마탑주가 말을 더하려 했지만.
“…….”
픽.
실소를 흘리며 지팡이에 힘을 뺐다.
‘그래.’
싸우는 것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상에서도 분명히 준비할 수 있는 게 있을 터.
“후.”
그녀의 입김이 허공에 수놓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