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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286화 (286/368)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86화

비나사의 선물 (2)

비나사는 사실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자신의 생활 영역.

즉, 이 세계에 자신 말고 다른 용족의 씨앗이 있다는 것을.

- 크르르르…….

용(龍)이란.

보통 한 세계에 하나밖에 없을 정도로 고독하면서 홀로 서길 좋아하는 종족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영역에 있는 용의 싹이 보이면, 자기 새끼 빼고는 다 죽이는 게 보통의 용들이다.

하지만 파괴룡은 달랐다.

비나사는 모든 용(龍)들의 성정과 자신을 같이 묶어 취급당하는 게 싫었다.

왜냐?

자신은 용족 중에서도 최강, 파괴룡이니까.

그래서 내버려 뒀다.

솔직히 태어나 봐야 초룡이고.

일반 용들은 성룡에서 고룡까지 적어도 수천에서 수만 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뭐가 어떻게 되든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혹여 그만큼 시간이 걸려 고룡이 된다면?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전까지 성룡으로 성장하면 그만이고.

오히려 좋았다.

원래 맛있는 것은 키워서 잡아먹어야 더 맛있지 않던가.

- 키루, 키루루!

그래서 비나사는 다시 이곳을 찾았다.

사실, 원래는 그냥 모른 척 내버려 둘 생각이었는데…….

근데 저 인간이 눈에 밟혔다.

어미와 같은 종족.

용족에 비하면 한없이 약한 종족이긴 하지만, 그 눈빛만큼은 진심이었다.

고양이도 제 앞에 비비적거리는 애가 더 귀여운 것처럼.

비나사는 용기사가 귀여웠다.

또한 갸륵했다.

매번 올 때마다 존경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는 눈빛과.

처음 먹어보는 부드럽고 맛있는 살코기를 주는 것까지.

그 얼마나 기특하던지.

비나사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이 알의 위치를 알려준 것이다.

“……비나사시여!”

그래그래.

비나사는 뿌듯한 마음으로 용기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운 줄 알면, 앞으로도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 바치거라.

엣헴.

* * *

[‘델라일라의 던전 아티팩트’(SS급)을 사용합니다.]

[기력 100을 사용합니다.]

저번에도 설명한 적 있지만, 무릉도원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1. 드미르를 부른다.

2. 목걸이를 잠깐 받는다.

3. 기력 100을 들여 포탈을 생성한다.

우우웅!

눈앞에 황금빛 타원형의 문이 생겼다.

[해당 자리에 ‘포탈’이 생성됩니다.]

[‘포탈’ 속으로 들어가시면, ‘빈 세계’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해당 ‘포탈’은 24시간 후에 사라집니다.]

드엘 공방 석상 위에 설치된 포탈은 드미르가 계속 가동시키고 있는 제1 포탈이고.

여기 생긴 포탈은 다른 포탈이다.

또한, 무릉도원 내부에서도 생성되는 위치가 다르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기서 다시 태평양을 건너는 것보다는 훨씬 가까울 거다.

“와, 되게 편하네요.”

용기사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차앗!

바닥에 착지한 그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알을 내려놓았다.

“이런 식의 공간 활용이라니, 길드 생활을 적게 한 건 아니지만…… 별천지같이 신비로운 길드는 처음 봅니다.”

소유권을 확실히 하자는 말을 듣고 잠깐 놀랐던 그는 금방 평정심을 찾았다.

- 맞는 말입니다. 이 알은 비나사가 찾은 거고, 비나사는 길마님의 것이니 당연히 소유권은 길마님의 것이지요.

내 말을 듣고 그가 바로 내뱉은 문장이었다.

사실, 그에게 주기 싫은 건 아니다.

비나사가 준 선물을 내가 왜 뺏겠는가?

어차피 용 테이밍 관련 스킬이 있는 자만 길들일 수 있다는데.

다만, 확실히 하고 싶은 거다.

“맷 씨.”

“예, 길마님.”

그가 정중하게 답했다.

어째, 예전보다 더 군기가 들어 보이기도 했다.

동요 없어 보이는 눈이지만, 나는 읽을 수 있었다.

그 속에 보이는 간절함을.

내가 입을 열었다.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쇼.”

맷 제랄드가 말했다시피, 저 알의 소유권은 내 거다.

그도 인정했다.

그러하니, 내 마음대로 조건도 걸 수 있는 거다.

“복잡한 건 아니고, 그냥. 별천지에 계속 머무른다는 조건으로 드리겠습니다.”

여기에서 조건은.

그 용을 나를 위해 사용하라는 말이다.

어찌 보면 WIN-WIN이다.

나는 용을 길러줄 사육사를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거고.

용기사는 평생 숙원이었던 초룡을 길들일 수 있는 거고.

“헛! 그런 거군요! 그건 예상치 못했는데……!”

맷 제랄드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내가 머리에 물음표를 띄웠다.

“흠, 조건이 마음에 안 드시는 건가요?”

하긴.

본래 어느 길드를 가든 랭커는 갑(甲)이다.

보통은 뭐든 내놓을 테니, 머물러 달라 부탁하고.

그게 성에 차지 않으면 옮겨 다니는 게 랭커인데.

그것도 하이 랭커인 용기사가 발이 묶인다니, 불편하겠지.

“아뇨, 그럴 리가요!”

하지만 맷의 반응은 의외였다.

그가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흥분했다.

“조건이 너무 좋아서 예상치 못했다는 겁니다! 혹시 길마님은 천사신가요?”

“예?”

뭐야, 이 사람.

좀 특이한 캐릭터일 수도 있겠는데?

“별천지에 평생 충성 서약을 하라는 말이잖습니까! 그건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었던 일입니다! 아아, 평생 비나사를 볼 수 있다니……. 거기서 모자라 알까지 지급한다고요? 그게 얼마나 축복받은 일이랍니까?”

“…….”

“당장 계약하시죠! 계약만 할 수 있다면! 기본급만 받아도 상관없습니다! 기본급은 주셔야 해요! 용 밥 사줘야 하거든요.”

이 사람.

진짜 용가리에 진심이구나?

“지금 당장 부길마님께 말씀드리면 되는 겁니까?”

“아, 예.”

그저 용을 보기 위해, 평생 노예 계약도 마다하지 않는 72위의 랭커.

그게 바로 맷 제랄드였다.

‘음.’

알이 부화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만약 성공적으로 초룡을 길들인다면?

별천지에 크나큰 전력이 되겠지.

혹여 용기사가 배신한다면?

그때는 뭐.

‘본 드래곤 스켈레톤’(S급)의 소중한 재료가 생기지 않을까?

* * *

“이야, 우리 길마님! 한 건 하셨네요?”

소식을 전해 들은 김진아가 활짝 웃었다.

“평생 전속 계약서라니……. 후후, 이거 성과급도 올려줘야겠는걸요? 용기사! 기본금 및 성과급 인상! 체크!”

부길마 김진아는 고작 계약 하나에 쪼잔하게 구는 여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평생 전속 계약을 한다?

안 줄 것도 더 챙겨주는 게 그녀였다.

전속은 특별하니까.

나도 그게 좋았다.

기왕이면 별천지를 선택한 것에 후회가 없도록 해주고 싶었다.

믿음의 영역으로 다가오는 자에겐, 믿음으로 보답한다.

“성과급은 부길마 것도 왕창 올려주세요. 고생 많으시니까.”

내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드엘 공방과 거대 길드를 운영하는 나로서는.

이제 돈 걱정 따위 하지 않는다.

걱정은 개뿔.

솔직히 세어본 적도 없었다.

남들은 부동산 하나 가지려고 애쓰는데, 이미 나에겐 무릉도원이라는 땅이 있다.

그뿐이랴?

매월 마탑으로부터 들어오는 서적 번역비도 있고.

드미르 기성품 판매 대금도 있다.

또한, 랭커들이 뛰는 던전의 보상들도 공식적으로는 모두 별천지 거다.

“에이, 제 성과급을 왜 올려요?”

“……?”

“쓰고 싶은 거 있으면 법카 쓰면 되는데. 헤헤, 제 건 제가 알아서 잘 챙길게요. 길마님.”

뭔가…….

기분이 묘했다.

부부끼리 자원을 공유하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그러세요.”

뭐, 그래도 상관은 없다.

사실상 이런 돈을 벌 수 있는 메커니즘도 김진아가 없었다면 부실하게 짜였을 테니.

그걸 다 떠나서.

이젠 돈 욕심이 없었다.

내 관심사는 오직 강해지는 것.

그리고.

까앙! 거리는 소리가 귓속에 잔상처럼 울려 퍼졌다.

‘아, 망치질이나 거하게 하고 싶네.’

벌써 쇳향이 그리웠다.

* * *

SS등급으로 오른 이후.

만술 노인의 훈련 강도는 더욱 거세졌다.

“이놈아, 이제 육체랑 기가 따라주는 만큼 훈련 양도 극대화해야 할 때가 왔느니라.”

본래는 가끔 던전행도 용서해 주던 노인이.

무작정 개인 시간을 늘려 버렸다.

활용할 수 있는 12시간을 모조리 훈련에 쓰겠다는 거다.

“네놈의 본체는 뭐니 뭐니 해도 만술(萬術)이다. 근데 언제까지 창 쏘시개만 쑤시고, 주먹질만 할 참이냐?”

“……가끔 방패나 활, 검도 쓰는데요? 주술도 쓰고.”

“허, 이놈이 말대꾸하는 것 보소! 그래, 그렇게 해서 총 여섯 개? 그게 만술(萬術)이냐? 육술(六術)이지!”

“…….”

몽둥이도 있는데.

하여튼.

뼈가 아픈 걸 보니, 틀린 말은 아닌가 보다.

이거, 마사지할 때보다 더 뼈가 시린 기분인걸?

사실.

나도 느끼고 있긴 했다.

내가 활용할 수 있는 무기들이 조금은 한정적이라는 것을.

근데 어떡하냐…….

사람이 위급한 순간엔 익숙한 걸 찾게 돼 있는 건데.

나는 창이 편했다.

주먹으로 무진(武進)을 펼치는 게 편했다.

“이제부터 훈련량을 늘려야 한다. 하나만 깊게 파는 게 아니라 우선은 길고 얕게 파야 한다. 이미 그 여섯 가지 기술을 높은 경지까지 뚫어본 만큼, 나머지는 따라가기 쉬울 게야.”

하지만, 나는 노인을 따랐다.

어르신을 믿었다.

어르신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동네 뒷산에서 스켈레톤에게 과외나 붙여주고 있었을 거다.

열심히 던전 뛰어서, 기껏해야 B급 헌터나 붙여줬으려나?

“예, 열심히 할게요.”

그렇게 다시 훈련의 삶을 살았다.

나와 안면을 나누었던 신입 랭커들은 각자 팀을 꾸려 던전으로 흩어졌고.

그에 대한 모든 관리는 김진아가 처리했다.

물론, 몇몇은 김진아를 제치고 나에게 찾아오기도 했다.

그중 인상 깊은 몇몇이 있었는데.

먼저 약존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한다.

* * *

세계 랭킹 99위.

약존(藥尊), 지도익.

그는 한국인이다.

지원할 당시 랭킹은 107위였는데, 이번 레이드로 8위가 뛰었다.

“큼큼.”

그가 찾아온 것은 한창 채찍 사용법을 익히고 있을 때였다.

촤악, 촤아악!

탄력 있게 감기는 채찍이 뭐가 그리 부끄러웠는지, 나도 모르게 채찍을 등 뒤로 숨겼다.

“무슨 일이십니까?”

내가 정중히 물었다.

지도익은 70세가 넘는 노인이다.

내가 아무리 길마라도.

머리도, 수염도 새하얀 고령의 어르신께 높은 자세를 유지할 순 없었다.

그것도 랭커시잖아?

“내가……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 말이네.”

사실, 지도익은 처음에 나에게 극존칭을 사용했다.

하지만 몇 번 안면을 트고부터는 내가 말을 편하게 놓으라 한 상태였다.

“부탁이요? 말씀하십쇼, 어르신.”

내가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약존의 고유 능력은 영약 제조다.

각종 다양한 재료로 만든 영약은 버프를 주거나, 기력을 높이거나 한다.

그 덕에 김진아는 도시에 약존 전용 건물도 꾸려줬다.

드미르와 엘드린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5층짜리 건물 한 채.

1층은 약존의 방이었고.

나머지 2~5층이 모두 약재로 채워진, 특이한 형태의 건물이었다.

일단 건물 자체가 드미르 손을 타 엄청 고급지고 아름다운데.

엘드린이 거기에 주문의식까지 걸어놨다.

약재 이름을 말하면, 보관소에서 1층까지 약재가 저절로 내려오고.

다 쓰고 남은 약재를 제단에 올려놓으면, 자동으로 떠올라 보관되는…….

이름하여 「약재 자동 저장·분류기」!

그뿐이랴?

보관소에는 엘드린이 이곳에서 구한 각종 약재와 열매들을 빼곡히 넣어두었다.

그걸 보는 순간.

“내 평생 이런 말도 안 나올 정도로 대우해 주는 길드는 처음이라네. 당장 날 잡아가게! 여기 살면서 평생 영약만 만들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네!”

약존은 바로 평생 전속 계약을 걸어버렸다.

그렇게 영약 제조에 한창 열을 올릴 거 같던 약존이 왜 나에게 왔을까?

“혹시 이걸 봐줄 수 있겠나?”

약존이 나에게 무언가 약을 내밀었다.

주먹만 한 크기의 곤약이었다.

“……이건.”

건네받아 정보창을 열어본 나는.

“헐?”

이내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아이템 : ‘파괴룡 비나사’를 위한 영약]

[등급 : S]

[종류 : 영약]

[설명 : 수준 높은 영약 제조사가 해당 생명체를 보며 만든 영약입니다.]

[효과1 : 섭취 시, 24시간 동안 파괴 경험치 획득량이 200% 증가합니다.]

“……이게 뭡니까?”

이런 건.

처음 보는 종류의 영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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