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287화 (287/368)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287화

스틱스 (1)

성장에는 정해진 방법이 없다.

초창기에는 각종 방법론자와 연구가들이 등장해, [강한 헌터로 성장하는 법]에 대해 설파하고 논문을 썼지만, 종국에는 다 부질없는 짓으로 드러났다.

애초에 각자의 고유 능력이 다른 건 둘째 치고.

똑같은 방법을 사용해도 적용하는 사람마다 그 결과가 천차만별로 달랐기 때문이다.

차라리 성장 방법론보다는.

운, 재능, 피지컬.

이런 쪽이 더 설득력 있지 않겠는가?

사실, 영약 복용은 격변 초창기에 엄청난 인기를 누리던 방법 중 하나였다.

- 영약을 먹으면 일시적으로 몸에 기운이 돈다.

- 영약을 통해 그 기운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다.

- 영약이 왜 영약이던가!

- 영묘한 효험이 있어서 영약 아니던가?

실제로 영약을 꾸준히 먹는 사람 중 영구적으로 스탯이나 기력이 오르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영약으로 올릴 수 있는 성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어느 기점부터는 더 이상 시스템이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

그러다 보니, 영약의 인기는 급속도로 식었다.

영약 제조사를 찾던 길드들이 점차 사라졌고.

갑(甲)의 지위를 양껏 누리던 영약 제조사들은 상위 길드에서 동네 상가로 나앉아야 했다.

그런데.

그 영약만으로 하이 랭커에 오른 자가 있으니.

그게 바로.

세계 랭킹 99위, 약존(藥尊) 지도익이었다.

* * *

지도익의 영약은 좋았다.

그냥 좋은 게 아니라 많이 좋았다.

[효과1 : 섭취 시, 24시간 동안 파괴 경험치 획득량이 200% 증가합니다.]

뭐가 됐든, 성장 관련 영약이었으니까.

그것도 우리 비나사가 클 수 있는 영약.

‘파괴 경험치’가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유추는 할 수 있었다.

성룡으로 가는 그 경험치를 말하는 거겠지.

문제는 이런 걸 어쩌다가 만들게 됐냐는 건데…….

“사실, SS등급 달성 후 새로운 영약 제조 스킬을 얻었다네.”

지도익의 스킬은 다음과 같았다.

[스킬 : 욕망 해소 영약]

[등급 : SS]

[효과1 : 근처, 가장 큰 욕망을 가진 존재의 소망을 들어주는 영약을 제조합니다.]

[효과2 : 기력 100, 삼나무 수액 30mL, 파극천 100g, S등급 이상의 요리 1개를 사용합니다.]

“허.”

내가 감탄했다.

욕망을 들어주는 영약?

옛날 델라일라 시련에 있었던 「소원을 들어주는 주문서」랑 살짝 비슷한 개념인 건가?

‘게다가.’

저 효과1 때문에 파괴룡의 영약이 만들어진 거면…….

‘녀석…….’

나는 크롸라라- 우는 비나사를 떠올렸다.

어지간히 파괴욕이 솟구쳤나 보구나.

조만간 델라일라와 얘기 좀 해봐야겠다.

월드 링크로 차원을 옮겨 다니는 그녀라면, 무슨 방법이 있지 않을까?

내가 봤을 때, 파괴룡은 좀 더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

‘잠깐, 근데.’

효과2를 보던 내가 미간을 좁혔다.

“S등급 이상의 요리는 또 뭐죠? 재료가 좀 생뚱맞은데요?”

뭐, 삼나무 수액이야, 이곳 주변에 널렸고.

파극천은 계장풍이라고도 불리는 건데, 대충 삼처럼 생긴 약초다.

“……사실,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가 그거라네.”

지도익이 무언가 복잡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애초에 S등급 이상의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요리 계열의 헌터가 별로 없지 않나.”

“아.”

맞다.

극소수의 요리 헌터가 존재하지만, 그들 역시 아무리 높아봐야 A등급일 뿐.

S등급의 요리사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있긴 있을 수도 있는데, 일단 나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근데 이건 어찌 만드셨어요?”

내가 묻자, 지도익이 옳다구나 입을 열었다.

“아는 누님이 있네. 내가 아는 최고의 요리 헌터지. 아마 누님 앞에서는 그때 초청했던 미쉐린 3성 요리사도 울고 갈 거야. 그분한테 소량의 요리를 얻었지.”

그가 조곤조곤 설명하기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이랬다.

아는 S등급 요리 헌터가 있고.

자신은 SS등급 스킬의 숙련도를 올리고 싶고.

나 역시 파괴룡의 영약이 필요할 테니.

그 요리사를 무릉도원에 들여달라!

아니, 별천지의 멤버로 넣어달라!

“숙련도가 증가할수록, 영약의 성능도 올라갈걸세. 경험치 획득량도 늘고, 추가 효과도 더 붙겠지. 어떤가, 보아하니 자네도 파괴룡을 성장시키고 싶은 모양인데. 이러면 서로 좋은 것 아니겠는가?”

“물론 저야, 좋죠. 근데, 이런 건 부길마한테 말해도 알아서 처리했을 텐데.”

나는 길드 관리 전반을 모두 부길마에게 일임한 상태다.

“허허, 부길마가 이런 류의 청탁을 거의 병적으로 싫어하는 것 알지 않나. 게다가 자네 모르나?”

“예?”

“별천지 랭커 모집 신청 막아 놓은 거.”

어, 그래요?

몰랐는데요.

저번에 김진아가 와서 뭐라 뭐라 떠들긴 했는데, 제대로 듣지 못했다.

훈련하느라 바빴거든.

게다가 지금도.

[언제까지 휴식하면서 시간 끌 거냐? 12시간은 적다!]라는 표정으로 날 흘겨보는 노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흠, 이제 3시간만 더 하면 되나?

“하하하, 어르신. 그 문제는 오늘 중으로 한번 부길마와 상담해 보겠습니다. 긍정적인 쪽으로요.”

“……고맙네.”

지도익이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나 역시 마주 숙였다.

* * *

곧 훈련을 마치고 길드 성으로 이동했다.

성은 도시 한가운데 세워진 가장 거대한 건축물로 화려하면서도 굉장히 아름다웠다.

바로크 시대의 걸작, 베르사유 궁전도 드미르의 「길드 성」을 보면 기가 죽지 않을까?

그곳 중앙 꼭대기에는 나만을 위한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부길마를 위한 집무실이 있다.

[스켈레톤 엠페러(Skeleton Emperor) : 부길마, 잠깐 집무실에서 볼 수 있을까요?]

나는 그녀를 집무실에서 만나기로 했다.

[김진아 : 헐]

[김진아 : 이게 무슨 일?]

[김진아 : 길마님과의 시간이라면 만들어서라도 가야죠! 기다려 봐요!]

아늑한 소파에 앉아서 쉬고 있자.

덜컹!

문을 열고 김진아가 들어왔다.

이마에 흐르고 있는 땀과.

평소의 추리닝 차림이 아닌 정장 차림인 걸 보면 진짜 바쁜데 시간을 낸 것 같았다.

“무슨 일인데, 길마님답지 않게 얼굴 보면서 말하자고 해요?”

“…….”

이런.

나답지 않다니.

그녀가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는 뭘까?

길드에 관심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놈팡이?

물론, 저게 반가움의 표현인 건 잘 알았다.

어찌 보면, 내가 훈련하고 있는 것도.

다 길드를 위한 것이니.

나는 지도익에게 들었던 것을 차례차례 물었다.

영약의 성능부터, S급 요리사의 존재, 그리고 길드 가입을 막아 놓은 것까지.

“확실히 길드가 성장하니까 랭커들 가입 문의가 빗발치더라고요. 근데 다 쳐냈어요. SS등급이 없기도 했고, 대다수가 그 이번 협회 블랙리스트 애들이더라구요.”

“……블랙리스트면.”

명월여신의 통제를 따르지 않거나.

따랐다가 용을 보고 도주한 그들을 말하는 거다.

“웃기잖아요. 길마님 보고 뭐라 뭐라 씨불일 땐 언제고 길드 떡상 하니까 은근히 찔러보는 거. 쟤들은 모를걸요? 자기들 이름이 제 수첩에 요렇게 적혀 있는 거.”

그녀가 품에서 수첩을 꺼내 촤르륵 넘겼다.

여성 특유의 깨알 같은 글씨체로 적혀 있는 랭커의 명단.

내가 혀를 내둘렀다.

“설마 그걸 다 찾아 적은 거예요?”

“길마님 욕하거나 여론 선동한 놈들만요. 조사하면 다 나오거든요. 그 당시 카푸가 영상 다 따놔서.”

와우.

대단했다.

일 처리가 꼼꼼한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해줄 줄이야.

“확실히 해야죠. 그런 애들은 다른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때 또 그럴 거거든요. 아무리 랭커라도, 그런 애들을 별천지에 들일 순 없습니다.”

내가 존경하는 표정을 짓자,

그녀가 훗 웃으며, 씩씩하게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2기 신입들이랑도 안 친해진 상태잖아요? 3기 모집은 그 이후에 다시 공지할 생각이에요.”

역시.

김진아는 뭐든 알아서 잘한다.

내가 그녀가 하는 보고를 흘려듣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오케이’만 외치면, 완벽하게 해놓으니까.

하버드 수석은 고스톱으로 딴 게 아니었다.

“지도익 할아버지의 청탁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후, S급 요리사라……. 아마 성북구 정릉동 쪽의 양정애 씨를 말하는 걸 거예요.”

“양정애?”

“예. 국내 유일의 S급 요리사이자, 최근에 940위 랭커에까지 편입했죠. 여기 보실래요?”

그녀가 큼지막한 전자 패드를 슥슥 움직이더니, 나에게 보여줬다.

그곳에는 별천지 특급 비밀로, 지도익에 대한 각종 정보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양정애는 [지도익과 연결된 랭커]라는 탭에 분류되어 적혀 있었다.

“……이런 것까지 정리했어요?”

“필수죠. 별천지 평생 전속이면 앞으로도 쭉 가족일 텐데, 뒤가 구리면 안 되니까요.”

허.

짧게 감탄한 내가 내용을 훑었다.

- 세계 랭킹 940위, 마더(Mother) 양정애.

- 이번 레이드 사건 이후에 편입된 유일한 랭커 요리사로, 많은 길드들이 영입을 노리고 있음.

- 약존 지도익과는 오랜 친구.

- 그 음식이 가히 천상의 맛이라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도, 기업을 만든다거나 길드에 가입하지 않음.

- 현재는 달동네에 거주하면서 맛집 운영 중.

“맛집?”

세상에.

S급 헌터에 랭커까지 편입해 놓고 한다는 게 맛집이라고?

과거에 나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달동네에 거주?

능력이 있으면서도 청렴과 절제를 외치는 조선 시대 선비 같은 건가?

“맛집 어플에서 강북 1위 하는 곳이에요. 자리도 적어서 아침부터 줄 서지 않으면 먹을 수도 없죠. 아!”

갑자기 탄성을 내지른 김진아가 묘한 눈길로 나를 바라봤다.

“내친김에 한번 보러 갈래요? 같이 맛있는 음식도 먹고, 그분이 어떤 분인지도 알아볼 겸?”

“……그럴까요?”

궁금하긴 했다.

‘천상의 맛’이란 게 어떤 것일지.

게다가 우리 비나사와 관련된 일이라, 한번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물론 만술 노인 때문에 많은 시간은 못 낼 테지만.

“아싸! 좋아요. 그럼 여기 기다려 봐요! 사복으로 갈아입고 올 테니까!”

쓔웅!

말을 마친 그녀가 쏜살같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니, 근데 갑자기 사복은 왜?

* * *

서울 성북구의 정릉골은 북한산 일대에 자리 잡은 지역이다.

정확히는 달동네.

즉, 일종의 슬럼가이자 빈민촌이다.

그렇다고 여기 땅값이 싸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재개발 지역 0순위라 수많은 투자자가 몰리는 것은 둘째 치고.

북한산 쪽에 천마신교(天魔神敎)가 들어선 이후로, 안 그래도 높았던 땅값이 더 치솟았다.

강한 길드 주변에 있으면, 안전이 보장된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의 믿음 때문.

최근 의왕시의 집값이 10배 넘게 뛴 것과 같은 이치였다.

물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다 빈민이 맞다.

세상이 격변한 이후, 고아들이 판을 쳤고.

길거리에 나앉은 데다가 변변찮은 고유 능력을 받은 자들은 정말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었으니까.

그런 자들이 투자자들이 내놓은 싼 월세에 간신히 들어와 사는 곳이 바로 정릉골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위치한 정애루(正愛樓).

국내 최고의 맛집 이름이었다.

“여, 오랜만에 회식이나 하자고.”

“이쪽이면 정애루?”

“맛이 끝내주잖아. 가격도 착하고. 줄이 좀 긴 게 함정이긴 하지만, 진짜 어떻게 그 할머니는 만드는 메뉴마다 맛있냐?”

메뉴가 한둘도 아니다.

100개가 넘는다.

그마저도 매번 바뀐다.

즉, 특정 요리의 장인이 아닌 그냥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글쎄, 음식에다 마약 탄 거 아냐? 알게 모르게 중독되어 버린 거지.”

“진짜. 의심해 봐야 해. 요즘 세상이라면 또 모르거든. 던전에서 나온 희귀한 환각제를 쓰는 걸 수도.”

의심하면서도 발길은 돌릴 수 없는 그런 곳.

많은 사람들이 급경사 지역을 감수하며, 정애루로 향했다.

하지만.

“뭐야?”

“임시 휴업?”

“여기 휴업하는 날도 있었어?”

“……내가 알기로는 거진 10년간 없었던 걸로 아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상황.

오래된 소나무와 졸졸 흐르는 계곡.

그 사이에 서 있는 산사 입구 팻말에는 이런 글자가 적혀 있었다.

「정애루(正愛樓)」

「임시 휴업」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