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04화
별마전 (3)
제1경기가 끝나고, 경기는 잠깐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것도 있지만, 결과가 워낙 충격적이라 해설진과 사회자도 정비가 필요했기 때문.
경기장도 시끌시끌했지만, 중계방송을 보는 전 세계인들도 충격을 금치 못했다.
└ 와, 지렸다.
└ 다들 봄? 에너지 볼트로 슝! 슝슝! 하면서 스킬 다 파훼하고 마법사 때려잡은 거?
└ ㄹㅇ 에너지 볼트……. 그거 나도 쓸 수 있는 건데.
└ ㅋㅋㅋ 해설위원 말 들어보니까, 무슨 에너지 볼트로 마법을 파훼하냐고 말이 안 된다는데?
└ 내 생각엔 에너지 볼트 아닌 듯. 디스펠 계열의 새로운 마법임.
└ ㅇㅇ 속도도 엄청 빠르잖아.
방송을 시청하던 자들이 실시간으로 댓글을 달았다.
몇몇은 티켓을 구하지 못해서 아쉬워했으며.
마법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좋아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그들의 주제는 [저게 과연 에너지 볼트가 맞는가?]였지만, 아쉽게도 그걸 확인시켜 줄 만큼 강한 마법사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 자, 자, 자……! 다들 너무 흥분했어요. 심호흡하시고, 흥분을 가라앉히세요! 스으으읍~! 후우우우! 1경기가 대 반전이었던 만큼! 2경기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겠는데요……!
캐스터 스피릿이 슬슬 다음 경기를 안내하는 멘트를 날리자.
관중들도 금방 정신 차리고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그래.
경기는 이래야 한다.
두 랭커가 실력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서로 견제 탐색만 하면?
누군가는 대단한 심리전이다 치켜세울지 몰라도, 보통 사람들은 재미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재미있었다.
돈이고 나발이고, 시원하고 화끈했다.
“그래, 차라리 그냥! 별천지가 이겨 버려라!”
“어차피 폴더 묶어서 돈 다 날렸다! 이렇게 된 거 난 별천지 응원한다!”
“도하랑! 도하랑! 도하랑!”
민심이 급속도로 뒤바뀌기 시작했다.
기대에 못 미치는 실력으로 자신의 돈을 잃게 한 마탑보다, 꿀잼 경기를 선사한 별천지에 더 마음이 쏠리는 현상이었다.
“후우, 후우…….”
대기실에서 이번엔 도하랑이 심호흡했다.
밖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하는 소리가 들리니…….
‘오히려 더 부담돼.’
에밀리 언니가 눈앞에서 이기는 것을 목도했음에도.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언니…… 어떻게 한 거야? 나, 나가서 뭐부터 해야 해? 어떻게 하면 이겨?”
“……하랑아.”
에밀리가 부드럽게 웃었다.
“응?”
“그냥 나가봐.”
그녀가 과거를 상상했다.
도하랑이 마탑에서 나간다고 했을 때.
장로들이 더러워서 못 버텨 먹겠다고, 나가서 별천지에 가입 신청 넣을 거라 선포했을 때.
에밀리도 그냥 따라 나왔었다.
마탑에서 장로들 뒤치다꺼리하느니, 신생 길드 가서 초창기 멤버로 함께 정을 쌓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삶이 꼭 명예로워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근데.
‘그때 무심코 잡았던 동아줄이 알고 보니 황금 동아줄이었단 건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에밀리가 다시 도하랑의 눈을 응시했다.
“그냥 나가서 싸워보면 알게 돼.”
어느덧.
아린 님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 에밀리였다.
* * *
“이 멍청한……!”
장로, 어셔가 싸늘한 눈빛으로 실려 가는 브랜던을 응시했다.
‘그동안 얼마나 노력을 안 했으면.’
에밀리 같은 마법사한테 처맞고 나올까.
파들파들.
어셔의 뺨이 떨렸다.
그는 이미 큰돈을 잃었다.
‘저 버러지 같은 놈 때문에……! 전 재산이 날아갔어.’
1경기 승, 2경기 승.
이 두 폴더를 엮었기에, 둘 중 하나만 틀려도 베팅금을 회수할 수 없다.
자신이 2경기를 이긴다고 하더라도, 돈을 잃는 거다.
어셔는 그 사실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껴야 했다.
“어셔.”
그 순간.
대기실 뒤편에 앉아 있던 마탑주, 소피아가 다가왔다.
“내 경고를 무시했구나.”
“마탑주님……!”
어셔가 변명하듯 쳐다봤지만, 획! 마탑주가 싸늘하게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
소피아도 놀란 것은 매한가지였다.
무언가.
기존의 메커니즘을 뒤바꾸는 전투 방식이지 않던가!
‘마력 활용도를 이용한 싸움 방식인가?’
놀랄 노 자였다.
마치 이런 거다.
고위 마법이 총, 대포, 미사일 등의 무기라면, 마력 활용도는 그 무기를 사용하는 사람의 수준.
‘고성능 미사일을 든 아이와 총 든 어른이 맞붙은 느낌이지.’
아이는 미사일을 발사할 줄 모른다.
발사 버튼을 누를 힘도 없다.
그렇기에 미사일보다 훨씬 약한 총을 든 어른에게 당할 수밖에 없다.
물론, 어느 정도 마력을 컨트롤할 줄 알게 되면 그 격차는 다시 좁혀질 거다.
어느 정도 자라서 성체가 되면, 다 또이또이할 테니까.
‘이건…….’
저 장로들이 경고를 듣고 열심히 노력했다 해도 달라지지 않을 결과였다.
만약, 하랑이가 에밀리랑 똑같은 방식으로 싸운다면?
어셔 장로도 지겠지.
‘아아.’
소피아가 속으로 한탄했다.
결국, 대장로와 자신이 잘 싸워야 무승부라는 건가?
‘완전히 말려 버렸군.’
주동훈.
그 자식이 지는 게임을 하는 아이가 아니었는데 말이지.
하지만 주동훈.
대장로는 저 장로들과 좀 다를 거야.
케이나드는 놀랍도록 기초가 튼실하거든.
마력 활용도만 따져봐도.
저 에밀리란 아이는 케이나드의 발끝에도 못 미칠 거다.
‘그는 정말 마법에 진심이니까.’
* * *
- 아아아아! 보이십니까?
- 예에에에! 1경기와 놀랍도록 똑같은 모습입니다!
- 세상에,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 유명한! 다크 메이지(Dark Mage) 어셔가아아아!
- 대한민국의 백마도사(White Magician) 도하랑한테 맞고 있습니다! 그냥 반항조차 못 하고 맞고 있어요! 아아아,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건가요오오오오?!
2경기의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기장 위로 올라온 도하랑은 에밀리와 비슷한 방식으로 어셔를 조리했다.
다만.
브랜던과 달리, 좀 더 많이 처맞았다는 것 정도?
“꺼, 꺼허러럵……!”
결국 쓰러진 어셔는 입에 거품을 물더니 기절해 버렸다.
[띠링!]
[랭킹이 갱신되었습니다.]
[세계 랭킹 게시판을 참고하세요.]
랭킹이 또 변동되었다.
104위였던 도하랑이 어셔의 74위를 강탈했다.
당연히 74위였던 어셔는 75위로 밀려났다.
또한 에밀리가 91위로, 브랜던이 92위로.
100위였던 약존(藥尊) 지도익이 101위로 밀렸다.
“크하하하하! 역시 멋있구먼!”
광전사가 벌떡 일어나 호탕하게 웃었으며.
“좋구나, 좋아!”
“나이스으으으, 하랑이! 에밀리랑 같이 하이 랭커 진입했구나?! 축하해!”
별천지의 랭커들도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도하랑을 바라봤다.
VVIP 관중석에 위치한 멤버들은 마치 자신이 이긴 것처럼 기뻐했다.
경기가 가지는 긍정적인 효과였다.
다 같이 응원하고, 승리의 기쁨을 즐김으로써 더 끈질긴 소속감을 느끼게 되는…… 그런?
“언니! 언니이이! 진짜였어!”
대기실로 돌아온 도하랑이 에밀리를 꽉 껴안았다.
“그냥 너무 쉽게 이겼어! 장로가 뭐 하는지 그냥 눈에 훤히 보이더라고!”
“그치, 그치?”
두 경기를 마친 그녀들은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승리의 기쁨을 즐겼다.
얼마나 기뻤는지.
도하랑의 눈가에 물가도 살짝 맺혀있었다.
그동안 느꼈던 심리적 부담감이 한순간에 싹 내려간 느낌이겠지.
“와…….”
경기장의 분위기는 1경기 때와 비슷했다.
완전한 적막까지는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냥 다 허탈한 분위기랄까?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네.”
“마탑보다 별천지의 마법 커리큘럼이 더 낫다는 걸, 그냥 경기로 증명해 버린 거지. 결국, 도하랑의 말이 맞았어.”
“쟤네 승부 조작한 건 아니고?”
“승부 조작?”
누군가 픽 웃었다.
“생각을 해봐, 친구야. 어셔랑 브랜던씩이나 되는 랭커가 승부 조작을 굳이 왜 하냐? 돈 벌려고? 랭커면 이미 돈은 충분히 많아. 저렇게 처참하게 지는 게 훨씬 더 손해라고. 명예도 떨어지고, 브랜드 가치도 사라지고.”
“맞지, 게다가 이미 시스템도 인정했다잖아.”
“세상에, 이런 결과가 나오다니…….”
“이제 별천지의 마법도 무시 못 하겠는걸요? 세상 어느 마법사가 마탑 가려 하겠어요, 별천지 가지.”
“근데, 그건 아닐 거예요.”
“왜요?”
“별천지는 소수정예니까.”
“아.”
지수룡 사태 이후, 랭커가 지원해도 받지 않는 걸로 유명한 별천지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집단의 매력을 더욱더 끌어올렸다.
“와, 별천지 까리하네.”
“처음엔 그냥 배짱인 줄 알았더니, 실력에서 나오는 여유였던 거지.”
“캬, 랭킹 순위를 무시할 정도의 강함이라……! 하긴, 길마 자체가 사기잖아? 최연소이자 최단기간 하이퍼 랭커.”
“……나도 가고 싶다.”
랭커도 못 가는 길드.
가입하는 순간, 그 누구보다 성장률이 높아지는 길드.
“이 정도면 빅3보다 위 아냐?”
누군가가 물었다.
하지만.
“에이, 그건 아니지.”
그건 너무 나갔다는 듯, 바로 반박이 나온다.
“마탑의 진정한 힘은 저 장로들이 아니야. 바로 마탑주랑 대장로라고.”
“맞지.”
“본 게임은 지금부터야.”
“와, 결과를 떠나서 재밌겠는데? 다음 경기가 주동훈이랑 케이나드지?”
2경기의 여운을 채 즐기기도 전에, 관중들의 관심이 3경기로 쏟아졌다.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매력적인 경기이기 때문.
“후.”
대기실 문 앞에서.
내가 짧게 심호흡했다.
드디어, 내 차례인가?
“이놈아, 저 처자들도 이기고 돌아왔는데, 네놈이 지는 건 아니겠지?”
뒤에서 노인이 중얼거렸다.
훈련보단 경기가 더 재밌겠다고, 하루 소환 시간을 뺀 노인이시다.
‘저한테 너무 뭐라 하지 마요.’
내가 픽 웃었다.
‘저 지금까지 주술 연습 하나도 안 했잖아요.’
이는 노인과의 약속이었다.
만술(萬術)의 기초를 전부 떼기 전까지 다른 술(術)은 건들지 않겠다는 약속.
나는 그동안 주술의 주 자도 쳐다보지 않았다.
하지만.
끓어오르는 이 자신감은 뭐란 말인가.
“교수님.”
옆에 있던 아린이 날 부른 것은 그때였다.
“응?”
“가볍게 이기고 오세요! 파이팅!”
역시.
아린은 일말의 의심 없는 표정으로 날 응원한다.
전 우주에서 성좌급을 제외하고는 마법에 제일 능통한 그녀가 가볍게 이기고 오라지 않는가.
그것보다 확실한 보장이 있을까?
게다가 난 그 마법 대가의 교수다, 교수!
우주 최강 마법사가 내 제자라 이 말씀이야!
“그래, 그래.”
흐뭇하게 웃은 내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손발을 스트레칭했다.
- 자자자자자자! 많이들 기다리셨습니까아아아? 이제 곧 시작합니다! 앞선 경기가 워밍업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메인 이벤트급이죠오오?! 먼저, 나와주세요! 마탑의 대장로! 현 마법계의 이인자! 세계 랭킹 13위! 케이나아아아아아드으으으!
살짝 방정맞은 캐스터, 스피릿의 목소리를 들으며.
“후.”
나는 천천히 그의 호출을 기다렸다.
* * *
대기실 뒤편에서.
“아린 님, 아린 님.”
도하랑이 물었다.
“아까 길마님보고 가볍게 이기고 오라 하셨잖아요?”
“예.”
“정말로 길마님이 이길 수 있는 거예요? 그 케이나드를?”
도하랑이 살짝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던 에밀리도 진심으로 궁금한 눈빛으로 귀를 쫑긋했다.
“길마님은 반년 내내 마법 훈련에 참여하지도 않았잖아요.”
아니, 그전에.
길마님이 마법을 쓴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인 상황 아니던가.
‘무슨 네크로맨서가 마법이야?’
도하랑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아린 님이라는 괴물 소환수를 다루는 것도 사기인데, 직접 마법까지 펼친다고?
게다가 마법 말고 칼, 창, 활, 망치, 몽둥이 등등.
못 다루는 게 없지 않던가.
솔직히.
‘그냥 소환수만으로도 랭킹 1위 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게 바로 우리 길마님이었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대장로(大長老) 케이나드는 엄청난 사람이다.
어셔 등의 삼장로들과는 급이 다르다.
“으음.”
아린이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기초로 따지면, 저 케이나드라는 마법사가 교수님보다 더 튼실할지도 몰라요. 마법에서만큼은 그렇겠죠.”
마력도 저 정도면…….
마도세계 장로급 정도는 될 거다.
솔직히 말하면, 케이나드부터가 진정한 마법사라 할 수 있다.
어셔? 브랜던? 데미안?
이런 애들은 그냥 겉만 화려한 속 빈 쭉정이 수준이고.
진정한 마법사라면 마력을 제 손가락처럼 다룰 줄 알아야지
“그, 그럼. 어떡하죠?”
도하랑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길마님까지는 안 되는 건가?
그건 욕심인 건가?
생각할 찰나.
“그래도 괜찮아요. 한번 봐보세요.”
아린이 빙긋 웃었다.
동시에, 저 앞에 경기장으로 나서는 교수님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우리 교수님 곁에는…… 말도 안 되는 분들이 존재하거든요.’
아직.
이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존재들.
‘고대 마법을…… ‘따위’라고 칭할 수 있을 만큼, 위대한 존재들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