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05화
별마전 (4)
“우와아아!”
“저기요, 자리 좀 앉아주시죠?”
“다들 에티켓 좀 지켜주세요! 여기 혼자만 돈 낸 거 아니잖아요?”
관중석은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제법 널찍하게 설계된 경기장임에도, 모든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일어나 목을 쭈욱 빼니…….
‘나 참, 키 작은 사람은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나도 스크린 말고 직접 보고 싶다고.’
‘주동훈의 실물이라니!’
불만이 생기는 사람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
관심도 자체가 앞선 두 경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지금껏 펼쳐진 경기가 애피타이저라면, 이제 펼쳐질 경기는 본식이다.
그것도 갓 만들어진, 모락모락 김이 나오는 따듯한 메인디쉬.
“당연히 케이나드가 이기겠지? 아무렴 장로들이 힘을 못 썼다지만, 케이나드는 대장로잖아. 마탑의 이인자가 지는 그림은 잘 그려지지 않는걸?”
누군가가 말하자, 옆에 있던 관중이 눈살을 찌푸린다.
“웃기는 소리. 주동훈을 몰라?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위인이잖아! 어디 위인전 속 위인이 누구한테 지는 거 봤어? 이번 별마전도 그의 서사를 장식할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하다고!”
“주동훈이 대단한 건 알지만, 이건 마법 대전인데?”
“마법이고 뭐고! 주동훈이 짱이라고 짱! 보는 눈이 없어도 정도껏이지. 뉴스도 좀 보고 공부도 좀 해라, 이 멍청한 새꺄.”
“뭐? 멍청한 새끼? 너 등급 뭐야?”
분위기가 달아오르다 보니.
처음엔 점잖게 이야기하던 헌터들도 점점 격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다툼들이 다른 사람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우와아아아!”
“와아아아! 케이나드다!”
무려 20만 명이 환호하고 있는 자리였으니까.
이미 무대 위에는 케이나드가 올라와 당당한 자세로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수많은 관중의 시선에도 굳건하게 서, 마력을 정비하는 마법사.
사람들은 옥스퍼드 마탑을 말할 때 소피아가 그 주인인 줄 알지만,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마탑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온 자가 누구인지, 마법을 학문으로 받아들이고 짧은 시간 내에 이토록 발전시켜온 자가 누구인지.
그렇기에.
마법사 중에는 소피아보다 대장로를 더 존경하는 자도 많았다.
하지만 이내, 관중들의 관심은 또 다른 헌터에게로 옮겨갔다.
- 다음은! 예, 살아 있는 전설입니다! 떠오르는 별들, 별천지(別天地)의 수장이자, 세계에서 가장 빨리 하이퍼 랭커를 단 사내! 특별한 스켈레톤을 다스리는 황제이자, 본인 또한 막강한 무력을 선보이는 자! 무려 세계 랭킹 7위! 스켈레톤 엠페에에에에에러러러러! 주동후우우우운!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영웅이다! 영웅이야!”
“주동훈! 주동훈! 주동훈!”
지금까지 질렀던 함성보다 대략 두 배는 더 큰 함성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아마 챔스 결승 골이 터져도 이것보다는 데시벨이 안 나올 터.
‘미친.’
‘돌았네.’
‘어후, 귀야.’
몇몇 관중들이 [으으]거리며 턱을 당겼지만, 그들도 이미 온몸에 전율이 끓어오르는 상태였다.
주동훈의 환호가 더 큰 이유는 단순했다.
사람들은 뻔한 결과보다 반전을 더 좋아하는 법이고, 별천지라는 집단은 이미 그것을 실행시켰다.
수많은 전문가가 마탑의 우위를 점칠 때, 그것을 우습게 깨부수는 집단.
그리고 그런 집단의 수장.
“보여줘!”
“보고 싶다! 주동훈의 마법 실력!”
“으아아아아! 대에에~ 한민국! 짜자~작! 짝짝!”
덜컹!
대기실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그 모습에 함성은 더욱더 커져만 갔다.
“허어.”
김진아가 감회가 새로운 눈빛으로 주동훈을 바라봤다.
‘감회가 새롭네.’
기분이 묘했다.
- 안녕하세요. 혹시 여기 최대 얼마까지 융통될까요?
은행에서.
E급 헌터의 신분으로 돈을 빌리러 오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남자가 되어, 전 세계인의 환호를 받는다.
그 누구보다도 듬직한 모습으로.
우리의 집단, 별천지를 이끌고 있다.
픽.
김진아가 결국 즐겁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사실, 예전 같았으면 불안했을 거다.
‘마법으로 대장로를 이긴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방구야?’
하지만.
김진아가 다시금 주동훈을 바라봤다.
매번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사람.
상식이란 게 통하지 않는 사람.
‘그가 지는 모습이라…….’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절대 상상이 안 된다.
이제는 그게 더 말이 안 되는 일 같다.
‘이겨주세요, 길마님.’
나는 당신에게 큰돈을 걸었으니까.
큰돈을 떠나, 인생을 걸었으니까.
‘그리하면, 보답해 드릴게요.’
늘어난 자산으로.
다시 별천지의 몸집을 키워, 그 모든 부귀영화를 다 가질 수 있게 해드릴게요.
김진아가 조용히 두 손을 모았다.
* * *
“흐음.”
눈앞의 상대, 주동훈을 바라보며 케이나드가 낮게 신음을 흘렸다.
과연 하이퍼 랭커라는 건가?
그냥 올라왔을 뿐인데, 그 기세가 제법 매섭다.
- 대장로, 절대 방심하면 안 돼. 한계를 알 수 없는 녀석이야.
마탑주, 소피아의 경고를 떠올린 케이나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방심하지 않지.’
그는 앞선 장로들과 달랐다.
마법을 대할 때도 우직하게 기초만 파는 스타일이었으며, 매사에 진중한 성격이었다.
‘주동훈, 보통 사람이 아니다.’
랭커라면 그의 행보를 모를 수가 없다.
전 세계에서 벌어진 모든 굵직한 사건에 휘말려 있으며, 그 사건들을 다 손쉽게 격파해 낸 자.
고착화된 하이퍼 랭커의 순위를 뒤집어엎으며 신드롬을 일으켜낸 자.
그런 자가 지는 싸움을 한다?
절대 그럴 리 없다.
우우웅!
케이나드가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고오오오오…….
앞선 장로들과는 다른 정순한 마력이 일대를 휘감기 시작했다.
“반갑습니다, 주동훈.”
“음, 제대로 인사하는 건 처음이네요?”
“그렇죠. 지수룡 때는 서로 싸우느라 바빴으니…….”
꿀꺽.
케이나드가 마른침을 삼켰다.
‘대단했었어.’
용과의 전투에서, 그의 활약을 직접 봤었다.
답도 없던 순간에 그가 등장한 것만으로, 분위기가 180도 뒤바뀌었지.
그리고 결국에는.
그 용의 몸속으로 침투해, 직접 용을 끝장냈었다.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자.
그런 자가…….
자신의 눈앞에 있다.
투우욱.
케이나드가 천천히 지팡이를 바닥에 찍었다.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에이, 가르침이라뇨. 솔직히 마법은 제가 한 수 아래죠.”
화르륵!
불길과 함께 주동훈의 손아귀에도 지팡이가 생겼다.
케이나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더는 할 말이 없다.
관중들이 목이 빠지라 기다리고 있으니, 이제 마법으로 대화하면 될 일.
‘그저 보여준다.’
내가 닦아온 길을.
나의 마법을.
화르르륵!
처음 케이나드가 사용한 마법은 파이어 볼이었다.
화(火) 속성계 기초 마법이자, 견제구로 가장 잘 어울리는 마법.
이는 장로들이 사용하던 것과 확연히 달랐다.
그의 의지에 마력이 곧바로 반응했으며, 피어오르는 속도 또한 남달랐다.
“호오?”
그 순간, 주동훈이 웃었다.
“파이어 볼이라.”
그러고는 그 역시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동시에.
화르르르르르르륵!
엄청난 크기의 불덩이가 순식간에 눈앞에 생성됐다.
그가 키워낸 파이어 볼보다 적어도 10배는 큰 크기였다.
‘이게 무슨……?’
케이나드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분명 파이어 볼이다.
마력의 흐름만 봐도 안다.
누가 봐도 정석의 파이어 볼 아니던가.
하지만, 그 기세는 절대 파이어 볼이 아니다.
와그작, 와그작!
무슨 불줄기들이.
좁은 공간에 어떻게든 뭉치기 위해서 꾸덕꾸덕 움직인다.
마치 악마처럼 말이다.
‘어어?’
그리고 그 파이어 볼이 자신에게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어어, 이게 아닌데?’
다급하게 파이어 볼을 마주 던졌지만.
화르릇!
본래 작은 불은 더 큰불에 먹히는 법.
애꿎은 파이어 볼 하나가 무력하게 사라졌다.
‘제, 제길?’
결국, 케이나드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단 하나.
재빨리 자신의 몸에 방어막을 두르는 것!
콰아아아아아아앙!
결국, 케이나드의 몸에서 엄청난 폭발이 터졌다.
“…….”
환호를 내지르던 경기장이 일순간 적막에 휩싸였다.
“방금 뭐야?”
“케이나드…… 터진 거야? 지금 어떻게 된 상황이야?”
“해설! 해설 좀 해줘!”
누군가가 해설을 요구했지만.
- 어, 어어…… 어어어어어어어?!
베테랑 캐스터, 스피릿도 당황했는지 연신 ‘어’만을 외치고 있었고.
아예 전문가라 초청된 해설진들은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 어떻게 된 건가요! 방금 마법은 뭐였죠?!
폭발 후 피어오르는 연기 때문에 시야가 가려졌다.
때문에 모두가 어떻게 된 건지 몰라 머리 위에 갈고리만 띄우고 있는 상황.
그리고 그 순간.
털썩!
케이나드의 무릎 꿇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그런 그의 앞에서.
“처음부터 너무 세게 했나……?”
머리를 긁적이는 주동훈이 스크린에 잡혔다.
* * *
놀란 것은 관중들과 해설진만이 아니었다.
“에에에에?”
“……!”
대기석에서 지켜보던 도하랑과 에밀리 역시 입을 떡 벌린 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저, 저, 저, 저게 뭐예요?”
“파이어 볼! 분명 술식은 파이어 볼이었는데?!”
“저게 어떻게 파이어 볼이야, 언니? 헬 파이어 아니야?”
“헬 파이어도 저렇게 끔찍하진 않겠다, 얘.”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마법과 아예 관련 없어 보이는 주동훈이, 마법계 이인자인 대장로를 이겼다?
아니, 이긴 정도가 아니라 고작 기초 마법 한 방으로 박살을 내버렸다?
그걸 누가 믿겠느냔 말이다.
“…….”
다만, 단 한 명.
아린만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도 세계에서도 유명하셨지.’
그녀가 뒤바꾼 과거, 기억 속 교수님의 파이어 볼.
‘그 실비아 교수조차 말도 안 된다고 넋을 놓을 정도였으니까.’
그뿐이랴?
앤드루 패트릭과의 결투에서.
마법 하나만으로 마도 세계 장로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게, 바로 교수님의 기초 마법이다.
아무리 케이나드가 기초에 충실했다 해도.
신살(神殺)급 지팡이로, 정수 효과를 뽑아다 쓰는 교수님의 마법을 감당하긴 힘들다.
“진짜…… 진짜, 한 방에 끝난 거예요? 대장로가?”
도하랑이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을 찰나.
“아뇨.”
아린이 답했다.
“저길 보세요.”
그러고는 무대 위를 가리켰다.
“아직, 포기하지 않았잖아요.”
아린이 눈에 이채를 띄웠다.
무대 위, 그곳에는 온몸이 그을린 케이나드가 있는 힘껏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 * *
“끄, 끄으으으…….”
겨우 정신을 붙든 케이나드가, 지팡이로 몸을 지탱해 겨우 몸을 일으켰다.
입가에서는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근육은 떨렸으며, 통증이 계속해서 신경을 자극했다.
마력으로 온몸을 보호했는데도 이 정도라니.
과연 괴물 아니던가!
- 아, 아아아아! 케이나드가! 케이나드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괜찮을까요?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습니다!
“……타임! 괜찮겠습니까?”
심판으로 보이는 이가, 잠깐 나와서 케이나드의 의사를 물었다.
‘괜찮겠냐?’
당연히 괜찮지 않다.
하지만, 케이나드는 궁금했다.
그 궁금증이 고통을 무시하고 그를 일어나게끔 했다.
‘분명 술식은 파이어 볼이었어.’
근데 맞아보니, 절대 아니다.
저런 걸 파이어 볼이라고 부를 수 없는 거다.
마법에 진심인 그는 납득이 안 됐다.
어떻게 마법사도 아닌 그가 이런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지?
이건.
더 맞아봐야 한다.
어떻게든 그에게서 마법을 끌어내야 한다.
몸으로 느끼고, 분석해야 한다.
발전이란, 그런 것이니.
“나는 괜찮습니다…….”
“정말입니까?”
“예, 쿨럭! 계속, 계속할 수 있습니다.”
케이나드의 눈빛에서 의지를 읽었음일까?
심판도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조, 좋습니다! 대신, 상황이 안 좋으면 곧바로 항복하셔야 합니다!”
“예.”
대답한 케이나드가 이번엔 주동훈을 바라봤다.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를.
하지만, 자존심이 상하진 않았다.
그는 그래도 될 자이니까.
케이나드는 배움의 자세로 다시 주동훈을 마주했다.
“다시……. 다시 한번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정말 괜찮겠어요?”
케이나드의 눈에 핏발이 섰다.
“예. 제대로. 봐주지 말고 상대해 주십시오.”
그래.
어차피 이곳은 교류의 장 아니던가.
승부를 떠나.
진정한 마법 교류를 이뤄내고 싶은 케이나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