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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306화 (306/368)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06화

별마전 (5)

“저놈. 눈빛이 제법이구나.”

뒤에서 팔짱을 낀 채 대결을 지켜보던 어르신이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마치 첫 만남 때 네놈을 보는 기분이야.”

흐음, 그런가?

고개를 갸웃한 내가 눈앞의 대장로, 케이나드를 바라봤다.

‘독기 가득한 눈빛이네요.’

한 대 맞고, 몸이 난장판이 되어 있을 텐데도. 과연…… 그 눈빛만큼은 살아 있다.

안광이 줄줄 나오는 게, 마치 무림의 절대 고수 같달까?

‘하긴.’

제법이긴 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한 방 맞고 항복했을 텐데, 봐주지 말고 다시 한번 제대로 와달라니.

“상대가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덤벼드는 것. 딱 네놈이 하던 행동 아니더냐. 저 아이 입장에선 나쁘지 않은 일이지. 막혀 있던 벽을 깰 수도 있는 상대를 만났는데, 목숨을 거는 상황도 아니니. 오히려 기꺼울 게야.”

내가 기연이라.

그렇다면, 이걸 어쩔까.

도와줘야 하나? 무시해야 하나?

으음.

“봐주지 말라 하셨죠?”

내가 케이나드에게 되물었다.

지팡이를 꽉 쥔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정제된 독기가 그득한 눈빛으로.

‘그래.’

나 역시 고개를 마주 끄덕였다.

좋다, 도와주자.

마탑과는 동맹 관계이기도 하고, 소피아에게 나 역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으니까.

더군다나 그냥 봐주지 말고 패는 거라면, 나야 좋다.

쉽기도 하고.

또 별천지의 수장으로서 경기를 보러 와주신 관중들께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해야 하지 않겠는가?

“흥, 본인 힘도 아니고, 템빨로 싸우는 놈이 이제 마법 스승 행세를 하려 하느냐?”

뒤에서 내 생각을 읽은 노인이 비아냥거렸지만, 내가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이게 왜 본인 힘이 아닙니까?

내 템이니까, 내 힘이지.

‘사실 그것보단.’

케이나드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

나와 비슷한 눈빛.

앞선 장로들과는 결이 다른 태도.

이런 사람은 무얼 하든 꼭 대성한다.

‘세계 랭킹 13위면 이미 성공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안다.

이 우주밖에 얼마나 위험하고 끔찍한 것들이 도사리고 있는지.

그 무수한 존재들을 생각하면, 현실에 안주할 수 없다.

더 정진하고 노력하고 강해져야 한다.

지구는 우물이고 우린 아직 개구리일 뿐이니까.

혹시 아는가?

델라일라가 걱정하는 것처럼, 정말로 지구에 말도 안 되는 위험이 닥칠지.

당장 지수룡만 봐도 엄청난 재앙이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나는 케이나드의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었다.

이는 대의를 위해서도 있지만, 내 개인적인 감정이기도 했다.

내가 약하던 시절.

기소율이 도와줬던 것처럼, 서울 오성이 호의를 베풀었던 것처럼.

나 역시 될성부른 떡잎 보고 오지랖 한번 부려도 되는 것 아닐까?

“그럼 바로 가겠습니다.”

우우웅!

내가 다시 마력을 끌어올렸다.

* * *

‘아아.’

상대의 마력을 느끼는 순간, 케이나드는 전율했다.

‘대체…….’

이 사람은 뭘까?

캐스팅 되고 있는 마력의 흐름이 전부 보인다.

- 그로우 스템.

- 그로우 홀드.

- 워터 밤.

- 샌드 스톰.

목(木) 계열 마법 두 개와 수(水) 계열 마법 하나, 그리고 토(土) 계열 마법 하나.

모두가 마탑의 마법사라면 기본적으로 다룰 수 있는 기초 중 기초 마법이었다.

‘한데.’

이 엄청난 마력의 소용돌이는 뭐란 말인가?

정말 저런 게 기초 마법이 맞단 말인가?

콰득, 콰드드득!

땅에서 자라난 줄기가 채찍처럼 휘감겨오기 시작했다.

하나가 아니다.

뽑히는 줄기만 무려 10개가 넘는다.

“흐읍!”

기겁한 케이나드가 재빨리 전면에 실드를 친 후, 옆으로 피했다.

갑작스럽게 움직이니, 온몸의 근육이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으음?”

상대가 고개를 갸웃했다.

“봐주지 말라더니, 피하기만 할 겁니까? 그로우 홀드!”

“허어업!”

그로우 스템의 연계 마법이 펼쳐졌다.

뻗어 나간 줄기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케이나드를 속박하려 했다.

‘이건.’

화(火) 속성의 마법으로 태워야 한다.

그것도 중급 이상으로.

‘하지만.’

이미 저 앞에 촤르르륵! 거리며 생성되는 물을 보니, 의욕이 싹 사라지는 기분이다.

‘미친.’

케이나드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저게 워터 밤이라고?

저게?

주동훈 위에 마치 원기옥처럼 생성된 물의 공을 보니, 도저히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간 죄수 끌려가듯 따라가다, 답 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이 정도면…… 미스 매치 아닌가? 마탑주님이랑 붙어야 할 체급 같은데.’

주동훈은 그의 말을 정말 잘 들어주었다.

일체 봐주는 게 없었다.

그저 무심한 얼굴로 지팡이를 휘두를 뿐.

“마지막은 샌드 스톰.”

콰가가가가가가!

사방에서 피어나는 모래의 소용돌이가 케이나드를 향해 날아온다.

“크하아아앗!”

온 힘을 다해 실드를 펼쳐보지만, 역부족이다.

날아온 그로우 홀드가 팔다리를 꾸욱 옭아매었다.

온몸이 꽁꽁 묶였는데, 설상가상으로 준비되었던 워터 밤까지 다가왔다.

맞으면 끔찍이도 아프게끔 압축된 수구.

게다가 이미 옆에 도달한 샌드 스톰이 그의 전신을 난타하고 있었다.

‘아아.’

이게 말이 되나?

강한 건 알고 재도전한 거지만, 이 정도로 압도적일 수가 있는가?

“커허어억!”

몸에 닿는 거력에, 온몸의 근육이 터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속에서는 피가 끓었고, 코끝이 비릿한 혈향으로 물들었다.

주르륵.

입가에서는 피가 새어 나왔다.

‘이런 게…….’

마법?

솔직히 말하면, 아름다웠다.

수억, 수십억 년을 수련해서 마법을 완벽하게 정제할 수 있다면, 마치 이런 마법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나는 여태껏 무엇을 했는가.’

케이나드의 몸이 덜덜 떨렸다.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했던가.

아침에 일어나면 마력을 통해 기초를 닦았고, 점심에는 번역된 서적을 빠짐없이 읽었다.

자기 전에는 읽었던 서적을 머릿속에 정리하고, 실제로 시도해 봤다.

일과의 반복.

케이나드에겐 휴가도 휴식도 없었다.

그의 헌터 인생이 곧 마법이었으며, 마법이 곧 그였다.

‘한데.’

지금은 그 마법에게 부정당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쫓아온 마법이 사실은 가짜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회의감.

부정적인 감정의 무게가 그를 짓누르기 시작할 때였다.

“힐링.”

주동훈의 속삭임과 함께, 속박이 풀렸다.

순수한 기운이 그의 찢어진 근육을 붙였으며, 뒤틀려 날뛰는 마력을 잠재웠다.

“커흐윽.”

그제야 턱 막혀 있던 호흡이 풀렸다.

숨이 쉬어졌고, 살 것만 같았다.

“뭐예요?”

그가 물었다.

“…….”

“봐주지 말라 할 때의 패기는 어디 가고. 고작 기초 마법에 의지가 꺾인 거예요?”

그가 이죽거렸다.

하지만, 할 말이 없다.

저게 무슨 기초 마법이냐고 따지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정말 기초 마법이 맞으니까.

“후, 그럴 거면 왜 다시 붙자고 한 건지…….”

무력하다.

저 중얼거림에도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는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가 된 느낌이다.

“케이나드.”

그가 말한다.

실망스럽다는 표정으로.

“강해지고 싶으면, 더 강한 존재를 마주했을 때 기회를 잡아야 해요. 아쉽네요. 당신은 그걸 아는 줄 알았는데…….”

“…….”

이상했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자의 말인데.

처음 손을 섞어본 사인데.

마치 스승 같다.

‘왜일까.’

그의 말이 하나하나 날카로운 창으로 분해되어 심장을 콕콕 찌르는 느낌이다.

“노력했겠죠. 저는 알아요. 당신이 얼마나 힘든 노력을 했을지, 느껴집니다. 왜냐, 저도 그랬거든요.”

“…….”

“근데 있잖아요. 세상에 강자는 많아요. 진짜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아요. 근데 그런 자들을 만날 때마다 그렇게 포기할 거예요? 그런 우울한 감정 따위에 휩쓸릴 거예요?”

부들부들.

몸이 떨려왔다.

힐링으로 회복되었다지만, 그 후유증은 어찌할 수 없는 법.

이미 놀란 근육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케이나드는 힘겹게 지팡이를 들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여기서 포기하면…….’

커다란 벽에 가로막혀, 더는 그 벽을 뚫을 수 없을 거다.

자신과 그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테고.

나중엔 감히 손에 잡지조차 못할 정도로 멀어질 거다.

또한 지금의 패배가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 자신의 성장을 방해하겠지. 억누르겠지.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흐아아압!”

화르르륵!

다시금, 대장로의 지팡이에서 염화가 피어올랐다.

파이어 블래스터(S급).

끓어오르는 화염이 총처럼 주동훈에게 쏘아졌다.

이전에 장로가 쓰려 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강력한 마법이었다.

하나.

“급해요.”

미동조차 없는 그가 촤르르륵! 워터 밤으로 불을 식혀 버린다.

그와 동시에.

화르르르륵!

기존에 썼던 그 파이어 볼 같지 않은 파이어 볼이 생성되어 쇄도한다.

콰아아아아앙!

다시 한번 경기장에 폭발이 일었다.

- 이, 이게 무슨……! 제가 정말 제대로 보는 것이 맞습니까? 이건 마치……. 선생이 학생을 교육하는 모습 아닙니까?

캐스터가 당황했고.

- 이, 이건 아무래도 상대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 제가 봤을 때도 이미 경기는 끝났어요. 이건 대결이 아닙니다. 대결이란 게 서로 어느 정도 수준이 맞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주동훈을 보세요. 단, 한 대. 한 대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 문제는 상대가 대장로라는 것이죠. 전 세계에서 마법을 두 번째로 잘하는 그 대장로요.

- ……놀라운 일이죠. 예, 저도 지금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이네요.

해설위원들도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연신 혀를 내둘렀다.

문제는.

승패가 가려졌는데도, 경기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

“어어?! 대, 대장로가 일어섰어!”

“근데 왜 저렇게 끈질기게 버티는 거야?”

“저러다 죽는 거 아냐?”

술렁술렁.

어느덧 환호 소리가 사라지고,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해가 안 되는 거다.

저들이 하는 행동이.

하지만 지켜보는 몇몇 랭커들은 분명 눈을 빛내고 있었다.

대장로의 몽롱한 눈.

저 눈을 보면 안다.

‘무아지경.’

정신이 온통 무언가에 쏠려, 스스로가 무얼 하는지도 잊어버리게 되는…… 집중의 최고 단계.

랭커라면 한 번쯤 겪는 최고의 기연 아니던가.

저런 상태에 돌입하면 뭐라도 얻게 된다.

성장을 하든, 레벨이 오르든, 등급이 오르든 말이다.

‘아아.’

‘주동훈, 그는 천사인가?’

‘대인배도 저런 대인배가 따로 없네. 지금껏 무시했던 결투 상대의 성장을 지켜봐 주고 도와준다고? 얼마나 그릇이 크면 그게 되는 거냐?’

‘난 지금부터 진심으로 저분을 존경한다.’

랭커들이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장로의 상황에 감정 이입한 거다.

저런 상황이 왔을 때, 그것을 여유롭게 지도해 줄 수 있는 자는 흔치 않으니까.

‘아마 대장로는 주동훈을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겠지.’

‘나라면 마탑 탈퇴하고, 별천지 들어간다.’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이번엔 연달아 폭발음이 세 번 터졌다.

다시 한번 대장로가 무릎을 꿇었다.

“…….”

관중들은 할 말을 잃었다.

처음엔 충격이었지만,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왜…… 하이퍼 랭커를 신이라 부르는지 알 것 같네.”

“맞아, 딱 그거네. 신에게 도전하는 인간 같잖아.”

“대장로…… 불쌍해.”

그 비싼 티켓을 들고 경기장에 온 이들이다.

대다수 식견이 있기에, 저 대장로란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도 그 누구보다 잘 안다.

아니, 식견이고 나발이고.

세계 랭킹 13위 아니던가.

그런 13위를 그냥 애 가지고 놀듯 하는 주동훈의 모습은 그냥…….

인간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 맞아.’

쿨럭!

피를 쏟아낸 케이나드가 다시 지팡이를 들었다.

무의식 속에서도 생각했다.

‘저 사람은 인간이 아니야.’

그렇기에.

이 도전이 의미가 있는 거겠지.

‘도대체 뭘까?’

결국, 마법이란 마력을 통해 현세에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쓰는 마력은 다 똑같을 수밖에 없을진대.

어찌 저런 마법이 나온다는 말인가.

자신을 놓은 상황에서도 케이나드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왜 내 마법은 저런 위력을 내지 못하는 걸까?’

솔직히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니까.

‘포기하지 말아라.’

자신보다 앞서가고 있는 사내, 그가 자신에게 내어준 숙제는 그거였다.

마법으로 이기려 하지 말고, 그저 버텨라.

마음이 꺾이지 말고 도전하라.

콰아앙!

몸이 부서져도.

콰아아앙!

끔찍한 고통이 느껴져도.

‘그저 버틴다.’

지켜보던 관중들도, 대기석의 인원들도, 캐스터도, 해설진도.

이제는 그 모습을 숭고하게 지켜봤다.

몰입.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인간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영원히 버틸 수는 없다.

그건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콰아아아아앙!

실드를 녹여버린 파이어 볼이 다시 한번, 케이나드의 전면을 강타했다.

“……!”

몽롱하던 케이나드의 눈이 부릅떠졌다.

마침내, 심장 속 마력이 전부 다 비어버린 것.

몰입이 깨짐과 동시에 정신이 돌아왔다.

“꺼, 꺼헉……!”

힘겨운 비명을 내지른 대장로, 케이나드가 결국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점차 사라져가는 의식 속에서, 눈앞의 존재, 주동훈을 다급하게 바라봤다.

‘나는.’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는가?

그가 내어준 숙제를 완수했는가?

다행스럽게도.

그에 대한 해답은 존재했다.

멀어져 가는 시야에 잡힌 그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피어올라 있었으니까.

아아.

다행이야.

정체 모를 안도감이 케이나드의 전신을 뒤덮었다.

정말로 다행이야.

대장로는 그제야 온전히 자신을 놓을 수 있었다.

스르륵!

몸에 힘이 다한 듯 조용히 바닥에 드러눕는 케이나드.

그렇다.

대장로의 완전한 패배였다.

“…….”

“…….”

하지만, 그런데도 대중들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누가 대장로를 패배했다 조롱할 수 있으랴!

여기 있는 그 어떤 헌터를 저 앞에 데려다 놔도 대장로처럼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관중들은 그 순간 티켓값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진정한 랭커의 싸움.

대장로의 의지는 랭커가 왜 랭커라 불릴 수 있는지, 그들에게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80억 인구 중 13번째로 강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 이, 이번 경기는 스켈레톤 엠페러, 주동훈의 압도적인 승리입니다!

그렇게 제3경기가 막을 내렸고.

그제야.

“와아아아아아아! 최고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폭발적인 함성이 무릉도원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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