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09화
별마전 (8)
랭킹에 변동이 생겼다.
[랭킹 1위, ???]
[랭킹 2위, 마왕(魔王) 잭 스미스]
[랭킹 3위, 천마(天魔) 하세라]
[랭킹 4위, 스켈레톤 엠페러(Skeleton Emperor) 주동훈]
[랭킹 5위, 옥스포드의 현자(Oxford's Sage) 소피아 실버스톤]
[랭킹 6위, 던전 메이커(Dungeon Maker) 델라일라]
[랭킹 7위, 팔라딘(Paladin) 아리아 유엘]
[랭킹 8위, 로이더(Roider) 로니 윌리엄스]
[랭킹 9위, 폭탄광(爆彈狂) 벨키서스]
[랭킹 10위, 백룡혼(白龍魂) 무라드]
스켈레톤 엠페러, 주동훈이 7위에서 4위로 올라섰고.
마탑주가 5위로 내려갔다.
그에 따라 델라일라, 아리아의 순위도 한 단계 뒤로 밀렸다.
└ 와, 방금 게시판 최신화된 거 봄? 주동훈 결국 4위 먹음 ㅋㅋㅋ
└ 미친……. 이게 대체 뭔 경우냐?
└ 그러게, 경우가 없어도 너무 없는데? 이러다 하세라랑 붙이면 3위 먹고, 잭 스미스랑 붙이면 2위 먹는 거 아냐?
└ 주동훈 최강자론이 진짜일 수도 있겠네;;
└ 진짜일 수도 있는 게 아니라, 진짜 아님? 더군다나 마탑주를 이긴 게 주동훈이 아니라 주동훈의 ‘스켈레톤’이라는 걸 고려하면…….
└ 미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졌다.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유명한 마탑주가 고작 스켈레톤 하나에 지다니.
그것도 그냥 졌는가?
‘뭐 해보지도 못하고 발린 것 같은데?’
‘랭킹 시스템이 전지전능하다는 것도 옛말인가 보네.’
‘와, 무슨…….’
아직도 관중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떡 벌린 채, 여유롭게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는 아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귀여운 꼬마가 마탑주를?’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봐도 도무지 이해가 안 돼.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 거지?’
‘옥스퍼드 어떡하냐, 이제…….’
‘일단 별천지는 이제 무조건 빅3 이상이다.’
대장로를 포함한 장로들이 전부 망신을 당한 마당에, 마탑주까지 당해 버렸다.
마탑주가 방심했다?
그렇다기엔, 그녀가 쓴 기술이 너무도 유명하다.
파이어 오브 디스페어(SS급).
지수룡 사태 때 사용했던 고위 마법이라, 이미 수많은 전문가들이 다뤘기 때문.
소피아가 체념한 표정으로 아린을 바라보았다.
역시.
대단한 줄 알았는데, 최근 더 큰 성취를 얻은 모양이다.
“깔끔하게 졌네. 인정할게.”
투욱.
지팡이를 내려놓은 그녀가 아린에게 고개를 숙였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그녀의 목표는 고대 마법에 가까워지는 것이지, 세계 랭킹을 올리는 게 아니니까.
‘강자에게 지는 게, 부끄러운 건 아니지.’
오히려 다행이었다.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게.
랭킹이라는 수치에 자만하고 있던 자신의 위치를 다시 한번 자각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대결은 의미가 있는 거다.
‘대장로도 나도.’
픽.
소피아가 실소를 흘렀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겠네.’
- 그, 그렇다면! 마탑주님의 항복 선언으로……! 벼, 별천지의 엘로이즈 아린이 승리합니다!
스피릿의 공식 선언과 함께.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
터져 오르는 함성과 박수가 별마전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별천지(別天地).
이젠 더는 신생이라 부를 수 없는 집단이 온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 * *
빅4!
별천지의 위상은 단숨에 올라섰다.
누군가는 마탑을 빼버리고, 그 자리에 별천지를 넣어야 한다고 했지만.
그렇다기엔 나머지가 검증이 안 되었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천마신교와 마왕군도 마탑과 똑같은 꼴을 당할지.
그렇다면 마탑만 억울한 상황이 된다.
물론, 그렇다고 별천지를 아예 높은 곳으로 빼 둘 수도 없었다.
별천지가 마왕군이나 천마신교를 이길 거란 보장 또한 없는 거니까.
└ 확실히 상황이 애매하긴 하지.
└ ㅇㅇ, 이번이 특수한 경우고 원래 저런 거대 집단끼리 싸울 일이 아예 없잖아.
└ 맞아. 또 모르는 거야. 별천지는 소수정예고, 마탑은 적어도 수천 마법사가 존재하는데 목숨 걸고 단체전 하면 반대로 마탑이 별천지를 발라먹을 수도 있는 거 아냐?
└ ㅋㅋ 근데 그렇다기엔 수준 차가 너무 나던데??
└ ㄹㅇ, 마탑은 아린 하나한테 다 썰릴 것 같음.
전 세계인들이 하나같이 목소리를 내었고, 의견은 빠르게 종합되었다.
별천지가 빅4에 편입하는 거로.
다만, 그냥 빅4는 아니고.
「소수 정예」라는 이미지가 강화된 특수 집단 느낌이었다.
“하하하, 그걸로 충분하지!”
김진아는 이 순간이 너무도 기뻤다.
드디어 별천지가 세상을 향해 날개를 뻗었다.
근데 그 날개가 너무 크고 강력해, 이미 저 창공을 가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빅4라니, 빅4라니……! 히히힣.”
세계 최고의 집단이라는 목표.
솔직히 일생의 목표로 설정하고 달려갈 생각이었는데, 벌써 근접해 버렸다.
‘이게 다 길마님과.’
또.
‘아린이 덕이지!’
실제로 경기가 끝난 후, 김진아는 바로 대기실로 뛰어가 아린에게 뽀뽀 세례를 날렸다.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탓이다.
- ……아, 어아아?
물론, 당황하며 뒤로 빠지는 아린이었지만, 김진아를 완전히 막아낼 수는 없었다.
‘김진아는…… 교수님이 가장 신뢰하는 부하.’
즉, 소중한 아군이었다.
아군을 막으면 안 된다.
“잘했어! 너무 잘했어요! 으유우우우, 이쁜 것! 아니, 이쁜 아린 님!”
얼마나 흥분했는지, 평소 쓰지 않는 반존대까지 써가며 난리 치는 김진아.
그녀가 이토록 기쁜 이유는 사실 또 있었다.
목표에 가까워지는 것도 충분히 기쁜 일이지만.
‘판돈이…….’
눈이 돌아갈 정도였다.
거의 전 세계인이 배팅한 자금의 대다수를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녀는 다섯 폴더를 묶었다.
각각의 배당률은 이러하다.
[에밀리 승 6.00]
[도하랑 승 6.00]
[주동훈 승 3.20]
[아린 승 12.5]
[별천지(別天地) 승 10.0]
토토는 배당에 대한 곱 연산이므로, 총 배당은 14,400배.
그녀는 여기다 과감하게 500억을 투자했었다.
잃어도 크게 부담 없는 돈.
하지만, 따면 기분이 좀 많이 좋을 돈.
그게 김진아에겐 딱 500억이었다.
어쨌든, 계산해 보면 단순 결괏값만 720조인데, 이는 거의 한 국가의 기금이 가지고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세계 협회는 공식 단체고, 수수료와 지수룡 사태 복지 기금 등의 세금으로 반 정도가 날아갔다지만…….
‘그게 어디야.’
김진아의 뺨이 파르르 떨렸다.
하도 웃어서 얼굴 근육이 제발 그만하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반이 날아가도 360조인데~’
김진아가 미쳐 날뛰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수준의 거액이었다.
그 유명한 마탑의 자본력이 1조 달러 이상이라 했으니, 대략 1,000조 언오버 수준이다.
들쑥날쑥한 환율을 따지면 1,300조까지 갈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김진아는 이 한 경기로 소액(?)을 투자해서, 마탑 자본의 대략 36%의 수익을 벌어들인 거다.
근데 아린이 안 예쁠 수 있으랴?
- 그, 급보입니다!
누군가의 설명을 들었는지, MC 스피릿이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이미 경기가 끝난 지 30분 정도 흘렀지만, 대다수가 아직도 경기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나가는 길이 좁은 것은 둘째 치고.
‘이 여운을 어떻게 놓쳐? 여기에 언제 또 와볼 기회가 있다고.’
‘경기가 너무 빨리 끝나버렸잖아! 100만 원이나 냈는데.’
‘사진, 사진! SNS에 올려야 해!’
환상적인 절경 속에 지어진 경기장을 두 눈과 카메라로 담기 바빴기 때문이다.
- 조금 전! 별천지 부길마님께서 별마전에 참여해 주신 관객 여러분들을 대상으로 드릴 선물이 있다고 합니다!
“선물?”
“어? 선물이 있다고?”
“공짜는 못 참지.”
관중들의 눈빛이 번뜩였다.
- 예, 과연 부길마님! 소문대로 화끈하시네요! 하하, 자! 선물이 뭐냐면! 별천지의 승리 기념으로 참여하신 모든 관중께 골든벨을 울린다고 합니다! 경기장 바깥으로 나가시면 무릉도원의 도시로 향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곳 도시 곳곳에 맛있는 음식과 고급 주류를 준비했다고 하네요! 예쁘게 지어진 도시도 구경하면서, 무제한으로 마음껏 드시다 가시랍니다!
“와아아아아아!”
“우와아! 정말이냐?!”
“과연, 김진아! 화끈하다!”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재밌는 경기였지만, 큰돈을 잃어서 찝찝한 기분을 별천지가 달래준 것이다.
“캬, 역시 별천지. 크게 될 집단은 태부터가 다르다니까?”
“암, 그릇이 다르지. 부길마가 원래 유명하잖아? 시원시원하기로!”
“빅4는 무슨 빅4냐. 내 마음속의 빅1은 언제나 별천지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
사람이란 게 참 간사하다.
같은 랭커 길드라도, 자신에게 베푸는 길드에게 더 정이 가는 걸 보면.
아니, 간사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건가?
“후후.”
좋아하는 관중들을 바라보며, 김진아가 웃었다.
“뽀찌들 가져가라고.”
그녀가 번 돈이 다 저들에게서 나온 거다.
한데 번 돈의 1%도 쓰지 않고,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낼 수 있으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게다가.’
그녀는 한 수 더 앞을 바라봤다.
‘이제 도시가 완공되었으니, 슬슬 소문내야겠지.’
이곳에 온 사람들은 푯값에 100만 원 이상 쓸 수 있는 여유 있는 자들이다.
급 높은 헌터도 있으며, 심지어 랭커도 몇몇 있다.
그들이 드미르가 지어놓은 도시의 아름다움을 본다면?
‘투자하고 싶겠지.’
돈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상권이 생기고, 도시가 번화하게 된다.
물론, 무릉도원에 입장할 주민들을 선정하는 절차는 까다로워야 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김진아가 다시 아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급한 일은 끝냈으니, 이제 천천히 누군가의 허리를 반으로 접어야 할 때.
싱긋.
김진아가 상쾌하게 미소 지었다.
살벌한 미소였다.
* * *
“와, 이게 도시야? 정말?”
“아, 아니야. 이건 도시가 아니야.”
“그럼?”
“이건 예술이야! 아아, 중세 수상도시 베네치아를 처음 발견한 사람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미친? 어딜 베네치아를 들이밀어? 베네치아는 그래도 사람이 만든 티라도 나잖아. 이곳은…… 그래, 분명 신이 만들었을 거야. 아아! 신이시여!”
도시로 이동한 관중들이 감탄하며, 신나있을 때.
웃지 못할 자들이 있었으니.
바로 세 랭커.
어셔, 브랜던, 데미안이었다.
“허.”
데미안이 넋이 나간 얼굴로 터덜터덜 걸었다.
“장로님……. 하루아침에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러게나 말이다.”
브랜던 역시 입술을 깨물었다.
“빌어먹을……!”
억울한데, 방법이 없다.
별천지에게 개기는 것은 언감생심이요, 그렇다고 마탑에 돌아갈 수도 없다.
그들이 이룩해 놓은 게 하루아침에 날아가 버렸음은 물론이고.
이제 어딜 가나 조롱거리가 될 게 분명했다.
「에너지 볼트」에 처맞아 나뒹군 마법사들로 말이지.
“……이게 다 그 별천지 비겁한 자식들 때문이다.”
혼자 중얼거리던 어셔가 목소리를 낸 것은 그때였다.
“너희들.”
그가 두 전 장로를 바라봤다.
“이대로 참을 거냐?”
“……그럼 어떡한답니까. 방법이 없는데.”
“이런 멍청한 것!”
으드득!
어셔가 이를 갈았다.
“상대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그런데 그냥 당하고만 있자고? 아이고, 마탑에 부처가 났구나. 너희는 마탑보다 그냥 머리 싹 밀고 절에나 들어가는 게 낫겠다!”
“그, 그럼 방법이 있는 겁니까?”
“그거 아느냐?”
“예?”
“잃을 게 없는 자가 제일 무서운 법이란 걸.”
그들은 이미 모든 걸 잃었다.
여기서 더 잃을 게 없었다.
“그렇지요. 우린 더 이상 잃을 게 없지요.”
“그 개새끼들 때문에……!”
브랜던과 데미안도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별천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딴 건 관심 없었다.
그들은 그저 지금의 이 암울한 상황에 대한 분노의 대상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놈들은 사람 잘못 건드린 거야. 앞으로 내 남은 인생을 처절하게 별천지를 물어뜯으며 살아주마. 우선, 이곳에 떠서 여론전부터 펼쳐보자.”
“여론전이요?”
“거대 집단일수록, 빈틈이 많아지는 법이다. 별천지가 어디 깔 부분이 없겠느냐? 찾아보면 다 나오는 거야.”
“오오.”
“역시, 어셔 장로님입니다!”
“그놈의 빌어먹을 장로 소리는 이제 집어치워라!”
어셔가 미간을 찌푸리며 외쳤다.
“별천지고 마탑이고 이제 다 신물 나니까.”
그는 앞으로 살아갈 삶의 방향을 정했다.
처절한 복수의 화신이 되어, 두 집단을 괴롭히는 것.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도시를 벗어나, 포탈 쪽으로 접근한 세 장로 앞에.
“안녕들 하세요?”
방긋 웃는 김진아가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