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14화
델라일라의 초대 (1)
메시지를 확인한 내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초대에 응한다.’
암, 응해야지.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이토록 빠르게 성장해온 데에, 그녀의 공이 적지 않은 것은 둘째 치고.
일단은 나에게 호의적인 랭커이니까.
‘그렇죠, 어르신?’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나는 제일 우선적으로 만술 노인을 소환했다.
“오냐.”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놈의 그 지적 호기심을 서둘러 충족시켜야 다시 예전처럼 훈련에 집중하지 않겠느냐? 쯧쯧, 그놈의 랭킹이 뭐라고.”
예이, 예.
그것도 맞죠.
내가 픽 웃으며 상태창을 올려다봤다.
[초대에 응하셨습니다.]
[‘월드 링크’(SSS급)가 사용됩니다.]
우우웅!
그 순간, 내 주변으로 신묘한 빛이 솟구쳤다.
잠깐 동안 빛무리들이 어지럽게 시야 전체를 휘감더니.
스스슷!
등장한 공간은 평범한 공터였다.
공기의 질이나 나무의 형태만 봐도 절대 지구는 아닌 이계의 공터, 그곳에 등장한 자는 내가 처음이 아니었다.
먼저 와 있는 일개의 무리가 나를 향해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오, 주동훈. 자네도 왔군. 우린 초면이 아니지?”
먼저 근육질이 울긋불긋한 마초남.
세계 랭킹 8위, 로이더(Roider) 로니 윌리엄스.
우리 대웅이 형이랑 함께 두면 굉장히 잘 놀 것 같은 스타일이다.
“별마전은 인상 깊게 봤어요. 주동훈.”
다음은.
성스러운 갑주를 온몸에 휘두른 황금빛 머리칼의 서양 여자.
“설마하니, 그 소피아 님을 이길 줄이야……. 돈은 좀 잃었다지만, 눈은 충분히 즐거웠으니 만족해요.”
세계 랭킹 7위, 팔라딘(Paladin) 아리아 유엘.
“그나저나 여기가 어디요……? 마치 다들 꼭 와본 것처럼 행동하는 것 같은데. 하이퍼 랭커들끼리 으레 하던 행사인가?”
“그러니까 말입니다. 일단, 초대가 와서 응하긴 했다만……. 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나머지 두 남자는 이번에 하이퍼 랭커로 편입된 뉴페이스였다.
세계 랭킹 9위, 폭탄광(爆彈狂) 벨키서스와 세계 랭킹 10위, 백룡혼(白龍魂) 무라드.
뉴페이스라지만, 이미 랭커 공부를 빠삭하게 한 나는 그들의 얼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여기가 처음인가 보네.’
물론, 나도 처음이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상황을 보아하니, 랭킹 10위 위로 면면이 으리으리한 랭커들만 불러 모아놨나 본데.
“아, 반갑습니다. 주동훈이에요.”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내 궁금한 기색을 읽었을까.
아리아가 방패에 팔을 괴고 빙긋 웃었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델라일라는 이렇게 하이퍼 랭커들을 초대하곤 해요. 저도 이번이 두 번째긴 한데. 무언가 인류에 미칠 중대한 의사 결정이 필요할 때 소집한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이번엔 하세라 건이겠지.”
로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결국 그 요원하던 입마의 경지에 들었다니. 원래도 강한 여자였지만, 지금은……. 어후, 상상도 못 하겠군.”
“그 무시무시한 마왕이 따라잡힐 정도이니, 말 다 했죠.”
아리아가 동조할 때였다.
스슷, 스스슷!
허공에서 동시에 두 인영이 나타났다.
“내 이야기들 하고 있었나?”
지구보다는 마계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남자.
세계 최고의 집단 마왕군(魔王軍)의 리더.
마왕(魔王) 잭 스미스가 마탑주와 함께 등장했다.
옆에 있는 마탑주는 나타나자마자 나를 바라보며 찡긋 눈인사했다.
나 역시 눈을 마주 깜빡여 줬다.
“마왕!”
“마탑주님도 오셨군요.”
로니와 아리아가 동시에 인사했다.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를 받은 마왕이 나를 응시했다.
“그쪽은 거의 8개월 만이네, 9개월인가?”
“음, 그쯤 되었죠?”
“그동안 제법 성과가 있었나 보군. 그때보다 기운이 안정적이야.”
오오.
과연 하세라한테 밀렸다지만, 마왕은 마왕이란 건가?
그저 만술(萬術)의 기초만 팠을 뿐인 내 성과를 한눈에 알아보다니.
“하세라는? 그녀랑 델라일라만 오면 되는 건가? 주인공들이라 제일 늦나 보구먼.”
마왕은 랭킹을 뺏긴 것에 있어, 그렇게 개의치 않는 듯했다.
나였으면 열 받아서 바로 폐관하고 분노의 훈련만 했을 텐데.
‘후.’
어쨌든.
지구에서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인물들.
별로 교류가 없던 이들이 갑자기 모이니, 당연히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그나저나 감회가 새롭긴 하네.
내가 여기서 마왕 다음으로 강하다니.
폭탄광과 백룡혼도 나름 엄청난 랭커들인데, 나를 신기하다는 듯 힐끔힐끔 바라보는 게 느껴진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스슷, 스스슷!
천마(天魔) 하세라와 던전 메이커(Dungeon Maker) 델라일라도 줄줄이 나타났다.
세계 랭킹 2~10등.
전원 참석이었다.
* * *
“어서들 오세요.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 델라일라는, 친절하게도 우리 전부와 각각 인사를 나누었다.
폭탄광(爆彈狂)과 백룡혼(白龍魂)에게는 하이퍼 랭커 달성 축하 기념, ‘델라일라의 던전 아티팩트’(SS급)를 지급했고.
하세라의 입마 달성 또한 축하했다.
“그나저나 델라일라 님. 요즘은 통 시련 소식이 없네요? 예전에는 추천할 멤버나 심사위원도 구하고 하시더니.”
아리아 유엘의 질문에는.
“후우, 누군가가 힘겹게 만들어 놓은 시련을 다 부숴놓아서 말이죠…….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오래 걸린답니다. 이리저리 계약할 자들도 찾아다녀야 하고. 휴우우우…….”
델라일라가 깊은 한숨과 함께 답했다.
뜨끔!
듣던 내가 움찔했다.
어쩐지 소식이 없더라니.
그게 나 때문이었어?
“끌끌, 하긴.”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노인이 웃었다.
“네놈이 독무(毒霧)도 먹어치우고, 탐욕룡(貪慾龍)도 죽여 버린 데다가, 섀도우 셰퍼드 킹인가 하는 검은 똥개의 점수까지 쌓아 계약까지 해결해 줬으니……. 저 처자 처지에선 상당히 곤란하겠다.”
‘알아요.’
나도 잘 알았다.
‘안다구요.’
근데 어쩌랴.
내가 잘난걸.
어깨를 으쓱 들어 올리는 내 모습을 본 건지, 델라일라가 픽 웃었다.
“그래도 전 만족한답니다. 떡잎부터 대단했던 분이, 이제는 완전히 발아해 세상을 빛내고 있으니까요.”
“아하하하.”
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세상을 빛내고 있다니, 그것참 낯간지럽네.
“세상을 빛내다니, 제가 무슨……. 과찬이십니다.”
하여튼.
한 차례의 인사가 지나가고.
“그래서.”
마왕이 입을 열었다.
“여기 부른 이유가 뭐지, 델라일라?”
역시 마왕.
시원시원하게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예, 바쁘신 분들을 잡고 제가 너무 시간을 끌었네요. 으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부드럽게 웃은 델라일라가 우리 전부와 눈을 한 번씩 마주쳤다.
“아, 이것부터 말하면 되겠네요!”
그리고 시작된 말.
집중한 우리는 금세 델라일라의 스토리로 빠져들어 갔다.
* * *
기존에도 설명했다시피, 델라일라는 우주를 탐험하는 데 대다수 시간을 보낸다.
수많은 유사 인류들을 만나고, 그들의 정보를 수집한다.
용족.
그 외 수많은 종족.
세계 랭킹 게시판이 있는 행성, 없는 행성 등등.
아직까지 인류가 우주에 관해 풀어낸 것은 1%조차 되지 않으며, 델라일라는 그게 불안했다.
혹시 모를 지구의 위기를 대비하기 위해, 여느 때와 같이 정보들을 수집하던 순간.
“어어?”
델라일라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왜 있지 않은가.
가끔 들려 정보를 교류하던 묘인족 남자.
지수룡을 처리한 후, 그가 있는 세계에 들어가려 했을 때였다.
[띠링!]
[모종의 힘으로 ‘월드 링크’(SSS급)가 거부됩니다.]
[다른 지역을 연결해 주세요.]
‘이건……?’
처음 보는 메시지가 아니었다.
우주를 누비다 보면, 가끔씩 보이던 메시지였으니까.
‘하지만.’
원래 가던 곳이 갑자기 막힌 것은 단언컨대 이번이 처음이었다.
뭐지?
갑자기 스킬이 막힌다고?
왜?
그녀는 커다란 상실감에 빠졌다.
묘인족이 사는 세계는 랭킹 게시판이 존재하는 곳이다.
지구와 비슷한 곳.
‘얼마 안 되는 곳이었는데.’
게다가 말이 가장 잘 통하는 곳이기도 했다.
가장 깔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곳.
접근하면 일단 경계부터 하는 다른 세계들과는 확실히 평화롭고 협조적이었다.
- 허허, 그쪽 세계에 용족이 나타났다고?
- 지수룡? 처음 듣는 이름이긴 하나, 뭐…… 용족이 나타났다고 그렇게 호들갑 떨 건 아니지 않은가? 뭐, 우리도 용족 출현은 재앙급 사태이긴 하지만.
- 아아, 우리 묘인족의 전사들도 과거에 용족을 잡아낸 이력이 있다.
묘인족의 세계는 지구보다 조금 상향 평준화되어 있었다.
일단, 랭킹만 봤을 땐 이랬다.
[랭킹 1위, ???]
[랭킹 2위, ???]
[랭킹 3위, ???]
[랭킹 4위, ???]
[랭킹 5위, ???]
[랭킹 6위, ???]
[랭킹 7위, ???]
[랭킹 8위, 대전사(大戰士) 체르덴]
[랭킹 9위, 새벽의 악몽(A nightmare at dawn) 랑랑]
[랭킹 10위, 묘지기(A grave keeper) 파라스]
무려 ???의 존재가 일곱.
- 나도 왜 랭킹이 저렇게 뜨는진 모르지만, 저들은 다들 엄청난 강자다.
- 용도 저들 중 셋만으로 충분히 잡았었어.
델라일라는 그때 어렴풋이 알았다.
아, 어느 정도 실력이 올라가면 게시판이 랭크를 표시하지 못하는구나.
우주에 지구보다 강한 세계는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겠구나.
‘혹시.’
랭킹 1,000위까지 전부 ???인 세상도 존재하지 않을까?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녀가 수년 동안 돌아다니며 탐험했던 공간이라 해봐야, 전체 우주에 비하면 지구의 먼지만도 못하니까.
먼지는 개뿔.
먼지의 0.000000001%도 안 되겠지.
‘더, 더 발전해야 한다.’
잭 스미스?
하세라?
주동훈?
그들이 강한 건 맞다만, 그건 지구 기준일 뿐이다.
또한 지구는 아직 변한 지 1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수백 년 동안 생존을 겪어온 세계들에 비하면 아직 애송이 수준도 못 된다는 말이다.
‘일단 묘인족들에게는 호감작을 해야겠군.’
그래서.
이번에도 다른 여정을 미뤄두고 묘인족부터 만나려 했었다.
만나서.
우리도 용을 잡았다고.
스켈레톤 엠페러라는 자가 있는데, 진짜 역대급이라고 자랑도 좀 하려 했는데.
‘왜…….’
우주에 붕 뜬 그녀가 허망한 표정으로 튕겨 나간 공간을 바라보았다.
본래 행성이 있던 자리엔, 투명막이 거미줄처럼 둘러싸여 있었다.
마치 공간 자체가 분리되어 있는 느낌?
[띠링!]
[모종의 힘으로 ‘월드 링크’(SSS급)가 거부됩니다.]
‘모종의 힘.’
그게 뭘까?
묘인족은 왜 저런 상황에 놓인 걸까?
그 순간, 그 묘인족 남자가 처음 했던 말이 떠올랐다.
- 내 생각엔 어떤 존재가 있는 것 같다. 무시무시하게 강한 존재가. 우리에게 신비한 능력을 주고 시스템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그러한 존재.
- 여러 문명을 펼쳐 놓고, 우월한 놈들만 살리고 도태되는 문명은 지워 버리는 거지.
- 말이 안 된다 생각하지 마라. 따지고 보면 이 우주도. 시스템도. 우리의 탄생도. 지금까지 밝혀진 거 하나 없지 않은가!
‘설마 그 존재가 접근을 막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델라일라가 묘인족 남자의 말을 다시 곱씹었다.
그는 초월적인 가상의 존재를 만들어 의심했고.
그것을 모든 묘인족 구성원들에게 알렸었다.
그 결과, 겁에 질린 그들은 오직 강함만을 추구했고.
사회가 무너져 내렸었지.
그게 델라일라가 지금껏 랭커들에게 ‘금제’까지 걸어가며 비밀을 지키려 했던 이유.
‘하지만.’
그녀는 덜컥 겁이 났다.
계속 이렇게 비밀로 하고 있다가.
정말로 큰일이 나버리면?
묘인족 남자가 했던 말이 맞다면?
자신의 아집으로 지구가 대비 없이 재앙을 맞이해야 한다면?
‘지금 묘인족의 접근이 막힌 게, 그들에겐 재앙일 수도 있는 거잖아…….’
볼 수 없기에, 모른다.
만약.
지금 묘인족 세계가 지옥으로 변해 있는 거라면?
끔찍한 괴물들이 나타나 그들에게 시련을 가하는 거라면?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그러고 보니.’
그녀가 아는 세계 랭킹 게시판이 있는 세계 중 묘인족 세계가 가장 강했다.
이상하게, 묘인족 세계보다 강한 세계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그것보다 센 세계는 접근이 막히는 건 아닐까?
막히는 데에는 일종의 기준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사고의 흐름까지 흘러갔다.
‘어려워.’
결국, 밤낮을 지새우며 고민하던 그녀는 랭커들을 소집하기에 이른다.
지구에서 가장 영향력 있다는 하이퍼 랭커들을 말이다.
* * *
“허.”
“허어어…….”
델라일라의 설명을 들은 랭커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
“……물음표 표시가 다른 세계에도 있었다고? 그것도 일곱이나?”
“용을 쉽게 잡는 세계가 있다니……. 두렵네요.”
“재앙이라…….”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나 있을 수밖에 없다.
하물며, 그게 지구의 구성원보다 강할지 모르는 외계인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델라일라가 담담하게 말했다.
“제가 여러분을 모은 이유는 두 가지예요.”
모두의 시선이 델라일라에게 집중됐다.
나 역시 미간을 좁힌 채 그녀의 입술을 쳐다봤다.
그 이유가 뭔데?
“먼저 묘인족 사태에 대해 진득하게 의견을 모아볼 것. 그리고.”
그녀가 품에서 용지를 꺼냈다.
“이 사건을 전 세계에 알릴지, 아니면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만 알아야 할지 투표할 것. 우매한 저는 모르겠으니, 여러분들이 좀 알려주세요.”
델라일라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랭커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