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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315화 (315/368)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15화

델라일라의 초대 (2)

“흐음.”

“으으음.”

듣고 있는 랭커들의 표정들이 전부 석고상처럼 딱딱해 보였다.

델라일라의 어투에서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먼저 물음표의 존재.

그게 최소 성좌급이라는 것은 하세라만 봐도 대충 각이 나온다.

‘SSS급이자 성좌급…….’

비교적 최근에 마주했던 지수룡과 똑같은 등급.

그런 무지막지한 존재가 무려 일곱이나 있는 세상이 있단다.

웃긴 건.

그런 세상마저도 간섭할 수 있는 미지의 존재가 있고.

그 존재가 얼마만큼 많은지, 또 어떤 형태인지, 어떤 방식으로 간섭하는지에 대해서 전혀 알 방법이 없단다.

“솔직히 묘인 세계의 존재는 그렇게 놀랍지 않다.”

마왕이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굳은살이 박혀 있는 커다란 손.

그 손은 그가 얼마나 힘겨운 세상을 견뎌왔는지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내가 속해 있는 마계는 거기보다 더하거든. 비록 거긴 세계 랭킹 게시판 같은 게 없다지만…… 상급 마왕만 되어도 SSS급이다. 총 다섯뿐이 없다는 최상급 마왕은…… 그것보다 더하지. 정말 끔찍하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막강한 존재들이다.”

섬뜩한 말이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우주의 방대함에 주눅 들 수밖에 없는 말.

델라일라도 말하지 않았던가.

전체 우주로 치면, 지구의 먼지 한 톨만큼조차도 조사하지 못했다고.

그럼 그 밖에는?

또 얼마나 강한 놈들이 즐비할까?

‘허.’

순간, 걱정되는 존재가 생각났다.

파괴룡, 비나사.

녀석을 풀어주면서 맘대로 파괴하고 다니지 말라고 교육했었는데…….

오히려 어디 가서 맞고 다니는 거 아냐?

어쩌면.

그 비나사마저 대우주(大宇宙) 앞에는 한낱 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더욱 막막한 느낌이다.

- 나 역시 동감해.

스스슥!

가만히 있던 하세라가 허공에 검을 그어 문자를 생성했다.

- 입마(入魔)의 경지 또한 진정한 마(魔)의 경지로 가기 위한 초입일 뿐. 난 아직 멀었어. 더 성장해야 해.

크으.

눈빛 봐라.

오욕칠정(五慾七情)을 배제하고 오직 성장에 대한 순수한 갈망만을 담은 눈빛.

기만도 하세라가 하니까 기만처럼 보이지 않는다.

진짜 순수하게 세지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마치 나처럼.

“큼큼, 우선.”

아리아 유엘이 입을 열었다.

“저는 델라일라 님의 추측에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추측이요?”

랭커들의 시선이 모두 그녀에게 옮겨졌다.

“예, 지금껏 봤었던 가장 강한 세계가 묘인 세계라 했고. 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접근이 막혔다 했죠? 접근이 막힌 세계가 한둘이 아니었다고도 했고요.”

“예.”

델라일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리아가 말을 이었다.

“그럼 충분히 가능한 얘기잖아요! 만약 정말 엄청나게 강한 외계의 존재가 있다 쳐요? 그럼 그들도 생명체일 테고, 두려움을 알 텐데, 싹을 밟으려 하지 않을까요? 인류의 존재 자체가 자신들에게 위협적이라고 판단된다면요.”

“으음, 반대로 보호해 줄 수도 있겠지.”

로니 윌리엄스가 끼어들었다.

“인간도 멸종 위기 동물들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연구하곤 하니까.”

“그게 그거죠!”

아리아가 답답하다는 듯 로니를 바라봤다.

근데 그 표정이 마치.

‘저 새끼는 뇌도 근육으로 되어 있나?’

하는 표정이다.

“누군가의 관리를 받고 보호를 받는 것. 그 말은 우리가 누리고 있던 자유도 사라진다는 뜻이 돼요. 게다가 인류를 보호한다? 그럴 거면 지금 보호하지 왜 더 세졌을 때 보호한담?”

“그야 우리가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약하니까?”

“그 말도 일리는 있어요. 하지만, 원래 모르는 일에 대한 대비를 세울 때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 생각해요. 우리 인류 역사를 봐요. 모르는 문명을 만났을 때 대다수가 어떻게 했는지.”

“…….”

그 부분은 나도 동감이다.

인간의 역사는 야만적이고 탐욕스러웠다.

문명과 문명이 만나면 항상 강자가 약자를 제압하고 지배했지.

전쟁을 일으켜 식민지화 시켰으며, 그 명분 또한 붙이기 나름이었다.

그중 제일 웃긴 건.

- 자신들의 우월한 기술을 제공한다.

제공만 해주면 다행이지, 그 과정이 얼마나 잔혹하고 사악하던가.

다른 외계 문명도 그렇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하지만, 아직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확정된 게 없으니까 최악을 가정해야죠!”

“글쎄, 우주의 시간은 느리고 느려서 우리 세대가 걱정할 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

“하! 답답해요! 그럼 묘인족은? 우리의 시간은 느리고 묘인족의 시간은 빠른가 봐요?”

주제가 던져지자, 랭커들끼리 가타부타 의견을 나누었다.

의견과 의견이 부딪히자, 금방 시장통처럼 어수선해진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나, 그리고 하세라뿐.

대략 10분 동안 서로 목소리를 내던 랭커들이 곧 우리를 바라봤다.

“거기는 왜 말이 없어?”

“그러게요? 뭐라도 의견 좀 내봐요.”

으음.

나?

나는 별생각 없는데.

어차피 답이 없는 문제 아닌가?

우리가 아무리 머리를 맞대도 현재로서는 알 방법이 없잖아.

당장에 아린도 모른다 했는데.

- 그냥.

스슥!

하세라가 다시 허공에 검을 그었다.

- 적자생존(適者生存)이야.

그녀가 랭커들을 쓱 둘러봤다.

- 원래 약하면 죽는 세상이잖아?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

간단하지만 본질을 꿰뚫는 말이었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공감하는 바입니다. 외계에 어떤 존재가 있는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솔직히 그런 건 잘 모르겠어요. 근데 한 가지 확실한 건……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약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겁니다.”

나는 특히나 델라일라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델라일라 님도 그것 때문에 시련을 만들고 랭커를 키워냈던 거 아니었나요?”

“하지만…….”

델라일라가 말끝을 흐렸다.

왜 그런지 안다.

묘인족의 사례가 두려운 거겠지.

여기서 더 강해졌다가 모두가 죽을까 봐 덜컥 겁이 난 거겠지.

“어차피 발전을 막을 순 없어요. 당장에 저 내용을 공표한 후, 혹시 더 세지면 외계의 존재가 우릴 인식할 수 있으니, 이제 그만 세지자! 이렇게 발표한다 해봐요. 누가 그 말을 듣겠어요?”

이미 세상은 변했다.

중세의 힘은 계급에서 나왔고, 근현대의 힘이 자본에서 나왔다면.

지금은?

헌터 등급에서 나온다 할 수 있다.

랭커만 되어도 모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세상 아니던가.

그런 세상에서 힘을 키우지 말자! 하면 퍽이나 듣겠다.

“주동훈의 말이 맞아.”

마탑주가 싱긋 웃으며 나섰다.

“너무 겁먹을 필요 없어, 델라일라. 초심을 지켜야지. 우린 그렇게 약하지 않다고.”

“약하지 않으니까, 다가오는 위험을 무시하자는 말인가요?”

“아니.”

마탑주가 고개를 저었다.

“무시하자는 말은 아니야. 다만, 방법이 없을 뿐이라는 거지. 강해지는 것 말고는.”

“…….”

“하세라의 말마따나, 원래 세상이 그렇잖아?”

“좋은 말이군.”

마왕 잭 스미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그 부분에 있어서는 동감한다.”

랭킹 2~5위의 의견이 하나로 뭉쳤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넷, 빅4의 수장이 하나로 뭉쳤는데 다른 이들이 별수 있을까?

“맞는 말입니다.”

“하긴, 굳이 있지도 않을 일을 사서 걱정할 필요 없었어요.”

“시련? 오면 좋죠. 원래 우리야 시련을 즐기는 족속 아닙니까!”

모두의 의견이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냥 싹 다 무시하고 원래 하던 것처럼 강해지는 데에만 집중하자]로.

“으음.”

델라일라가 침음을 흘렸다.

얼굴이 마치 이게 맞나? 싶은 표정이었다.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인물들이긴 하지만, 일단은 힘을 추구하는 랭커다.

다른 누구보다 ‘힘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자들.

정말로 세상의 안위를 이들의 의견으로만 정해도 되는 걸까?

싶을 찰나.

“그나저나, 내가 제안 하나 해도 될까?”

씩 웃은 마왕이 앞으로 나선 건 그때였다.

“묘인족? 그 종족의 랭커들이 성좌가 일곱이나 되다니, 나는 다른 것보다 그게 기분 나쁘군.”

“…….”

“우리도 다음 세계 랭커 발표식 때는 ???로 도배해 보는 것 어떤가? 자랑스러운 지구의 인류로서 유사 고양이 종족 정도는 이겨야지.”

한술 더 뜨는 마왕을 보며, 델라일라가 관자놀이를 부여잡았다.

아이고야.

이 사람들.

지금까지 내 얘기 잘 들은 것 맞겠지……?

하는 표정으로.

하지만.

“크으으으, 역시 마왕! 저는 찬성입니다! 크하핫! 아무렴 사람이 야옹이 따위에게 질 수 없지요!”

로니가 웃었고.

“콜이요.”

나 역시 당연하다는 듯 웃으며 화답했다.

내 목표는 랭킹 1위이니, 당연히 ??? 정도는 달아줘야지.

델라일라의 낯빛에서 혼이 빠져나가고 있는 느낌이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어떤 시련이든 와라.’

니체가 말했지.

나를 죽이지 못하는 시련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라고.

살짝 오글거리긴 하지만, 그게 바로 정론이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정론.

* * *

델라일라의 회담은 그렇게 끝이 났다.

정보는 굳이 바깥에 풀지 않기로 했다.

풀어봐야 어떻게 대비할지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이며, 혼란만 초래할 거라는 판단이었다.

[주의! 주의! 주의!]

[‘비밀’을 들음에 따라 금제가 부여됩니다.]

[해당 ‘비밀’을 ‘외부’에 발설 시, 해당 시련에서 얻었던 모든 보상 및 개연성이 소멸됩니다.]

[여기서 ‘외부’란 비밀을 듣지 않은 자를 말합니다.]

델라일라의 회담에서 말했던 내용은 그대로 이전에 설정해 둔 ‘비밀’에 남아 있었다.

과거 시련이 끝난 이후.

듣고, 보고, 느꼈던 델라일라의 우주 이야기.

이게 참, 사기 스킬이라 느끼는 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큼은 절대 발설하면 안 된다.

말하는 순간, 내 신살(神殺) 창이 사라진다는 말이니까.

‘뭐, 어차피 발설할 일은 없겠지만.’

어쨌든 그 때문에.

“길마님, 길마님! 갑자기 어디 다녀오신 거예요?”

똘망똘망한 눈으로 묻는 김진아에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바람 좀 쐬고 왔습니다. 아, 그리고 이제 정보 조사는 그만하려 해요.”

“에엥, 갑자기요?”

“예, 이제 슬슬 준비해야죠. 많이 쉬었으니까.”

“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녀는 단박에 깨달았다.

“또 떠나시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노인과의 약속을 지켰고, 세계 랭커 발표식도 끝났다.

게다가 마왕과 약속도 했지.

1년 안에 성좌급에 다다르기로.

그렇다면?

‘강해져야지.’

현시점에서 내가 해야 할 것은 딱 하나였다.

뼈구의 각성.

SS등급의 매개체 던전을 클리어하고 그 보상을 받는 것인데.

‘후.’

벌써부터 살이 떨렸다.

뼈팔이 때는 ‘투신’(SSS급)이란 성좌랑 미친 듯이 싸웠는데, 뼈구는 또 어떤 끔찍한 놈이 기다릴까?

갈수록 난이도가 증가하는 매개체 던전의 특성상…… 그냥 넘어갈 리는 없는데.

“이번에도 얼마나 걸릴지, 모르시겠죠?”

김진아가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예.”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진짜 모른다.

얼마나 걸리냐가 문제가 아니라, 못 돌아올 수도 있다.

“에휴우우우, 내 팔자야.”

김진아는 [또 길마님 없이 온종일 뺑이 치겠네~]라고 중얼거리며, 애써 밝은 척했지만 다 느껴졌다.

걱정하는 그 마음이.

“이번엔 수하들 다 놓고 갈 거예요.”

이번 매개체 던전은 좀 특수하다.

[주의! 주의! 주의!]

[경고합니다!]

[‘정령왕의 의지’가 활성화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해당 던전은 1인 특수 던전입니다.]

[던전 입장 시 가지고 있는 모든 스킬이 봉인됩니다.]

[그래도 입장하시겠습니까?]

무려 ‘스킬 봉인’.

저 안에서 나는 그 어떠한 스킬도 사용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내 수하들은 무릉도원에 남아 훈련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니, 도움이 필요하면 아린한테 말해요. 걔가 지금은 저보다 센 거 같으니까.”

“알겠어요, 길마님. 그것보단…….”

날 빤히 쳐다보던 그녀가 이내 복잡한 표정을 집어던지고 말을 꺼낸다.

“제발 무사히만 다녀오세요. 길마님 없으면 제가 아무리 키워놔 봤자 별천지는 끝인 거 아시죠?”

“알죠.”

“그럼 그 몸조리 잘하세요. 그 몸뚱이 길마님 혼자 거 아니니까.”

“…….”

아니, 내 몸이 내 거지.

그럼 또 누구 거람?

내가 즉답하지 않자, 김진아가 표독스럽게 눈을 번뜩인다.

“길마님? 알겠어요, 모르겠어요?”

“아, 알겠습니다.”

그래, 그래.

언제 부길마가 틀린 말 한 적 있던가?

부길마 말이 다 맞다.

* * *

무릉도원의 훈련장 공터.

가볍게 정리를 끝낸 나는 매개체 구슬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우우우웅!

신비로운 빛무리가 휘감고 있는 작은 구슬.

이 작은 물품이.

바로 모든 랭커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는 최고의 기연이자 시련, 매개체다.

[아이템 : ‘정령왕의 의지’(SS급)]

[등급 : SS]

[종류 : 매개체]

[설명 : 숨겨진 유적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는 구슬입니다.]

[효과1 : 던전, ‘정령계’를 개방할 수 있습니다.]

[효과2 : 헌터, ‘주동훈’에게 귀속된 아이템입니다.]

[효과3 : 해당 아이템은 헌터 등급 SS 이상부터 활성화 가능합니다.]

별천지 멤버들에겐 굳이 말하지 않았다.

나중에 부길마가 잘 설명해 주겠지, 뭐.

“후.”

내가 짧게 호흡을 내뱉었다.

이전 매개체.

‘마법 낙제생’이나, ‘권각대립’의 등급이 S였다면, 이번은 최초의 SS등급이다.

난이도 자체가 기존과는 차원이 다를 거란 이야기.

‘하자, 하자! 할 수 있다!’

당연히 걱정도 됐지만, 설렘도 있었다.

어려울수록, 정복했을 때의 그 성과가 달콤하니까.

[그래도 입장하시겠습니까?]

다시 한번 떠오르는 입장 메시지를 보며.

‘그래.’

저벅.

나는 걸음을 옮겼고.

파아앗!

눈앞을 휘감는 새하얀 빛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느끼며.

번쩍!

세상이 점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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